민음사 40주년을 바라보는 문화계의 시각
인문학의 산실 … 지나친 상업화 아쉬워

2006년 06월 07일   신정민 기자 이메일 보내기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함께 민음사의 문학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속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어려울 적에 출판업을 시작해 문학출판을 궤도에 올렸고, 40년간 유지시켰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음사에 대한 평가는 90년대 중반 이후 엇갈린다. 인문학적 본령을 지켜왔던 민음사가 90년대 이후 상업화의 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문열의 ‘삼국지’, ‘드래곤 라자’(1998),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2000)로 많은 매출을 올렸음에도, 비슷한 시기 ‘대우학술총서’를 종간하고 지성인의 담론지였던 ‘현대사상’을 3년만에 폐간 했으며, 이문재나 나희덕의 시집이 절판돼 다른 출판사로 발행하게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출판평론가 박천홍 씨는 “다각화되는 출판시장의 흐름과 동향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한 것은 인정하지만, 기존의 정체성에 신뢰를 보낸 독자들은 아쉬웠다”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편집위원은 ‘민음사만의 일은 아니겠지만’이라는 칼럼에서 “연간 매출 3백억대에 이르는 대형출판사가 경제적 타산으로 시집을 살해한 것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문학적 가치를 지켜야 하는 측면에서 어색하기도 하고 독실한 시장숭배로 키웠을거란 생각에 걸맞아 보이기도 한다”며 이는 “민음사의 부끄러움이자, 대한민국 출판문화의 부끄러움이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학자발굴이 예전보다 많이 덜해진 느낌이라는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는 “상업과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있는 출판사인만큼 외국이론을 수용·소개하는 차원을 떠나 보다 견고한 인문학적·자생적 이론의 산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다.


출판사는 문화사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하는데, 그 중심에는 인문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말한 어느 주요 일간지의 한 기자는 “분화되기 전에는 자유주의적 노선에 입각한 인문학적 정신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아예 발벗고 돈벌이에 나선 것 같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같은 비판은 지난해 홈쇼핑 진출과 박상순 대표의 퇴임으로 더해졌다. ‘세계문학전집’을 홈쇼핑에 내놓고 수십억원의 매출을 한꺼번에 올렸지만, 출판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 인터넷서점보다 훨씬 높은 할인율과 사은품은 고객에게 도서정가를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며, 막강한 자금력으로 중소출판사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출판협회 회장사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자제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는 “출판사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문화적 가치와 수익창출 가치의 균형을 갖추기 위한 시행착오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쓴소리들은 ‘그래도 민음사라면’이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도 민음사라면 손해보는 인문학도, 오역·오타를 엄정하게 걸러내야 한다는 게 독자들의 바람이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2006 Kyosu.net
Updated: 2006-06-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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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0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본 사람이라면, 특히 그가 교수나 사회 저명인사가 아니라 무명인사라면, 민음사가 어떤 "출판사"인지, 아니 어떤 "회사"인지 잘
경험했으리라 본다. 민음사를 신뢰하고 애정을 가지는 독자들도 많더라만 ...

balmas 2006-06-08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죠. 민음사라면 당연히 그렇게 얘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뭐,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오래된 인문학 출판사들이 M&A를 당하고
거대 자본에 종속되는 상황인데 ...

헤르베르트 2006-06-08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뭔가 오프 더 레코드가 있음이 암시되는 군요^^;

balmas 2006-06-0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기인 2006-06-08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민음사와 과일 때문에 여러번 부딪친 적이 있는데.. 쩝.. 참 피곤했어요.
박상순 시인이 대표직을 사직하고 퇴사한 이유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국문학 관련하여 강화시키자는 주장이 안 먹혀서라고 하네요.

2006-06-08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6-09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그랬군요. 음 ...
속삭이신 님/ 예, 그 분이죠. ^^;;
 

 Michel Foucault, “Crise de la médecine ou crise de l'antimédecine?”, in Dits et écrits, vol. III, Gallimard, 1994, pp. 47-48.


[...]

개인들에게 최면요법을 시술할 수 있게 되자마자 고통 장벽 --- 유기체의 자연적 보호장치 --- 은 사라지고,

개인들에 대해 어떤 수술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살균 기술이 없는 가운데에서는 모든 수술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거의 확실하게 죽음으로 인도하게 된다. 예컨대 1870년대에 유명한 프랑스의 외과의사였던 게렝은

부상당한 몇 사람의 여성에게 신체 절단 수술을 했는데, 그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죽고 말았다. 이는 의술이 자신의 실패와 자신이 감행한 위험의 기초 위에서 항상 작동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 중 하나다. 모든 중요한 의학적 발전은 다양한 부정적 결과들을 대가로 치러왔다.

  근대 의학사에 전형적인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새로운 차원에 이르렀는데, 이는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의학적 위험은 치료 대상인 개인에게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의학은 개인의 직계 자손에게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곧 있을 수 있는 부정적인 작용의 힘은 가족이나 그 직계 자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오늘날 의학이 새로운 기술을 보유하게 됨에 따라 유전 세포 구조를 변형시킬 가능성은

단지 개인이나 그 자손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생명의 모든 측면은 의학적

개입의 주제가 된다. 우리는 사람이 생명의 역사 전체와 생명의 미래를 변형시킬지도 모를 어떤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생명 역사(bio-histoire)라고 부를 의학적 가능성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의사와 생물학자들은

더 이상 개인과 그의 자손들의 수준에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와 그것의 근본 사건들의

수준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는 생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

 

-----------------------------------------------------------------------------------

 

 

한 계간지에서 "생명 정치"(bio-politics) 특집호를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실으려고 하는

푸코의 글 중 한 부분이다. 국내 학자의 글을 한 편 실으려고 했는데, 결국 필자를 구하지 못해서

푸코 자신의 글로 대체할 생각이다.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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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이북스 출판사의 인문학 도서 특별 할인전! 20~25% 할인가에 드립니다.
기간 : 2006년 6월 5일 월요일 ~ 2006년 6월 30일 금요일

 

 

오, 이제이북스에서 6월 한달 동안(6월 5일 - 6월 30일) 인문학 도서를 20-25%

할인 판매하는군요!!

이제이북스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책값이 비싸서(이제이북스 책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비싼 편이죠. 험험 ...

책을 잘 만들기는 하지만. ^^;;)  사지 못했던 책들을 구입할 절호의 기회인 듯 ...

사실은 저도 몇 권 찜해 놓은 게 있습니다.

스티븐 툴민과 앨런 재닉의 명성이 자자한 책인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클라우스 에메케의 [기계 속의 생명],

마크 포스터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기 전에 인터넷을 생각한다]

이 세 권은 꼭 사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스피노자와 정치]를 미처 구입하지 못한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 권씩 구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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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 2006-06-0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미처' 구입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사보아야 겠군요.^^
(그런데 그래도 역시 비싸긴 하네요.ㅋ 궁시렁 궁시렁)

balmas 2006-06-07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래도 비싸긴 비싸죠. ㅋ

딸기 2006-06-0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이북스가 책값이 비싼 편인 건가요?
몇권 사긴 했는데... 거긴 주로 철학책을 내는 것 같더군요. 제가 산 책들은 물론 철학과는 관련 없는 것들이었습니다만.
(써놓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철학과 관련 없는게 과연 세상에 있을까)

쎈연필 2006-06-0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멋진 정보 감사드립니다...
스피노자에 대한 책은 몹시 어려울 것 같지만 숨 고르고 질러야겠군요...!!

헤르베르트 2006-06-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말대로 퀄리티에 비해 좀 비싼 편인거 같긴 해여. [빈 비트겐슈타인 세기말의 풍경]은 종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볼때, 꽤 저렴한 방식으로 제작한 거 같은데 값이 만만치 않죠(니체 관련 책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그런데 저런 책은 1~2천권 팔까 말까인듯 하니 출판사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째거나 이제이북스에서 출간하는 책은 일관적인 기준치가 있어서 신뢰가 가는 편입니다. 오히려 A급 품질의 책도 잘 만드는 출판사가 어쩌다 안팔리는 책을 허접하게 만드는 경우에는 좀 짜증나죠. 영리하게 장사하는 만큼 마땅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발마스님 혹시 서양철학사 저 책 읽어 보셨나요? 내용이 괜찮으면 스웨이드 양장본으로 하나 구입하고 싶은데^^;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할인 기간에 [헤겔 또는 스피노자]랑, [스피노자와 정치]도 장만해야 겠습니다ㅋ

푸하 2006-06-07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balmas 2006-06-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ㅎㅎ 상대적이겠지만, 보통 좀 비싸다고들 하죠. ^^; 이제이북스에서는 앞으로 서양철학의 고전들을 주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더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플라톤 전집, 그리고 근대 철학의 고전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이 원래 철학을 전공한 분이고, 출판사도 좋은 철학책들을 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하니까, 앞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 전문 출판사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합니다. ^____________^
철학은 범위가 너무 넓은 게 좀 문제죠. ㅎㅎ
또마님/ 흐흐, 감사합니다.
헤르베르트님/ [서양철학사]는 저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한번 서점에 나가서
직접 실물을 보시고 결정하시죠. :-) ㅎㅎㅎ 정말 마슈레와 발리바르 책은 이런 기회에 하나 장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푸하님/ 뭐가 멋지십니까? 저요?? ^^;;

비로그인 2006-06-0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 그의 삶과 철학
이 책은 어떠한 가요? 니체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입문서로 권할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요..

헤르베르트 2006-06-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렇군요. 예전에 교보에서 서양 철학사 스웨이드 본은 비닐포장이 되어있어서 내용을 볼수가 없더라고요. 일반판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래도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텐데.. 다른 경로로 다시 체크해봐야 겠습니다.
이제이북스 출판사의 장래 활동이 매우 기대되는 군요. 기왕에 굵은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품질관리에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balmas 2006-06-0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니체에 대한 입문서로는 좋은 책입니다. 적극 추천!
헤르베르트님/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네요. ㅎㅎㅎ
좀 안타깝게 됐습니다.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며칠 전 한 출판사의 뒷풀이 모임에 갔다가 한 시인을 만났다.

처음 들어보는, 그러니까 나에게는 무명의 시인이었던, 그는

아주 수줍어하는, 부산의 시인이었다.

철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하노라고, 또는

시 안으로 철학을 들여온다고 늘 야단맞는다며,

수줍게 웃는 그 시인은,

피가 더러운 것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공학과 출신의 공학도였던, 그는

피가 더러운 탓에,

과학철학과 과학사 공부에도 기웃거려 보았다가,

결국 시인이 되었는데,

힘드셨겠다고,

사실은 내가 아는 학생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몇 있다고,

그런데 그 학생들에게 차마 철학을 공부하라고 적극 권유할 수는 없었다고,

말하는 나에게,

수줍게 웃으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피가 더러운 것들은 어쩔 수 없다고.

그 피가 더러운 시인이 생각 나서,

마침 네루다의 시집을 집어든 김에, 역시

피가 더러운 족속인 네루다의 시를 한편 올려 본다.

 

더러운 이들이여, 번성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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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05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가 더러운 족속들, 핏빛 글자로 쓰셨네요.
사지가 뜨거워지면서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예요, 이 새벽에 어쩌자고.

balmas 2006-06-05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나어릴때님도 혹시 더러운 피를 가진 분 ...??

릴케 현상 2006-06-0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피만 더럽지도 않은가 봐요

하늘바람 2006-06-0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시인데요.

헤르베르트 2006-06-05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별론데ㅋ 요즘 마던 락 밴드들의 가사 같다는 느낌이...
죄송해여 이럼 안되는 거죠? (_._)

2006-06-05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05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6-06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ㅎㅎ 그게 무슨 말씀??
하늘바람님/ 그러셨군요. ^^
헤르베르트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 그럼 안되는 게 어딨나요? ㅋ
그러고보니 또 노래 가사를 닮기도 했군요. ^^;
속삭이신 님/ 과제를 내준 사람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무난할 것 같군요. :-)
 

 

 

7시간 30분의 감동…연극 한편의 놀라운 힘
연극비평_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LG아트센터, 5.20~21)

2006년 06월 03일   노이정 연극평론가 이메일 보내기

얼마전 내한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형제자매들’에 쏟아졌던 관심만큼이나 그 여파가 적지 않다. 연극 한편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레프 도진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연극의 힘을 재발견했다. 특히 우리 연극인들에게 반성의 거울이 됐다. 배우들, 극작가들, 연출가들에게 이 연극은 우리가 연극에 담긴 가능성을 얼마나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직전 초연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해온 이 작품은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레프 도진의 초기작이다. 스탈린 시대 러시아 북부 아르항겔스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아브라모프의 소설 4부작 중 앞의 3부(‘형제자매들’(1958), ‘두 해 겨울과 세 해 여름’(1968), ‘길과 갈림길’(1978))를 연극화했다. 공식적으로는 2년 간 준비했다지만 1977년 배우들과 함께 아브라모프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직접 찾아가 생활하는 등 도진의 고백에 따르면 준비기간은 10년에 이른다.


공연 전 우리가 주목했던 건 7시간 30분(순수 공연시간 5시간 20분)이라는 공연시간이다. 세계적으로 10시간을 넘는 연극 작품도 꽤 있지만 요즘 국내 연극은 2시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효율로, 속도로 계산하는 시대에 몸으로 대항하는 이 연극은 우리 관객에게도 느린 호흡으로 살 기회를 제공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동지들이여, 시민들이여, 형제자매들이여!”이라는 스탈린의 연설과 함께 배경에 1940년대 전쟁기록영화를 투사하면서 시작된 연극은 1941~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러시아 집단농장 콜호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줬다. 러시아판 인생유전이라 할만하다. 나이가 차지 않아 참전 못한 청년 미하일과 남자들이 없는 마을을 책임지는 콜호즈 여위원장 안피사 등의 이야기가 이 펼쳐지는 제1부 ‘만남과 이별’, 전쟁이 끝나 남자들이 돌아오고 스탈린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2부 ‘길과 갈림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있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교차를 다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는 이 위로도 배신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불신과 분열의 분위기가 무대를 지배하게 된다. 농촌에 남은 사람들, 도시로 간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영광의 인물과 위기의 인물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것이 정해진 스토리대로, 쓰여진 텍스트대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매우 지루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주요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집중돼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긴장과 이완을 체화한다. 보는 관객도 그 흐름에 따라 집중과 이완을 하게 된다. 이것을 도진은 하나의 교향악이라 표현했다. “드라마에는 그 자체에 멜로디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 긴 시간 동안 관객이 편안히 연극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에 들어있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마리아 셰브초바는 이 연극의 스타일을 ‘산문의 연극’이라 칭했다. 배우들이 “소설을 온전히 공연하면서” 즉흥적 시도를 통해 “대본의 신체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소설의 강건한 내러티브는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응축된다. 전체적으로는 비극적인 톤을 가진 이 작품을 우리가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건이 끝나면 다른 사건을 맞기 위한 여유가 생기고, 비극적 사건들 사이에는 긴 희극적 릴리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나뉘어 질펀한 음담패설을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적 휴식, 씨뿌리기도 축제와 같이 함께 하는 농촌의 전통이 이 연극에 희극적 에너지를 부여한다면, 불행하게도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적어진다. 집단농장의 삶이 곤고해지면서 사람들의 집단성은 분열되고 이기심이 싹트며 연극 첫 막에서 제시되던 카니발리즘적 에너지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집단성의 해체, 혹은 코러스로 합류해 들어가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해체돼가는 코러스로 변화를 보여주면서 연극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이 살아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지 어떤 한 시기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허구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 사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고발이다.


이 긴 공연의 모든 사건 속에 뗏목과 장대들이 있다. 10여 년의 삶의 다양한 무대들, 방과 집, 헛간, 목욕탕 등의 사적 공간과 파종과 축제의 무대가 되는 공적 공간들은 뗏목 모양으로 만들어져 무대 중앙에 매달린 단 하나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진다. 360도로 회전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모든 장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뗏목은 나무로 만들어진 등장인물과도 같다. 무대를 감싸고 선 20개의 장대들은 숲인 듯 감옥인 듯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에워싼다.


이 공연을 보고 아무도 이것이 새롭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공연은 ‘새로움’이 아니라 ‘낡음’을 강조한다. 목재로만 제작된 무대, 배우의 연기와 제스처만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모든 관객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삶의 원초성에 대한 대사들. 그런데 왜 이 연극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 연극이 처음으로 서유럽에 소개될 때 서유럽 관객들도 연극에 놀랐다. 1988년 파리 가을축제에 초청된 이 공연을 보고 현 보비니 극장 예술감독인 파트릭 소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가 연극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하는 것들의 종합이잖아. 코러스적 성격, 준 자연주의성, 서사적이고 교훈적인 인물. 이건 이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런데 도진과 말리극장의 연극들은 계속 서유럽에 초청됐고 인정받았다. 1992년에 초청된 ‘가우데아무스’(2001년 내한)와 1994년의 ‘폐소공포증’은 유럽의 새로운 연극 현상인 ‘코러스성’(등장인물들이 코러스가 되는 현상)의 문제를 무대로 회귀시킨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2002년 유럽연극상을 수상한 도진은 인터뷰에서 그의 연극의 근원을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사회가 진보의 행렬 속에서, 새로운 지식습득의 방법 속에서 상실한 것 중 하나로 그는 ‘전통적 가르침’을 들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선생이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체되는 상황. 그는 선생은 제자들에게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사람이며 제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유년기부터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스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첫 연극 스승은 두브로빈이다. 메이어홀드의 제자였으나 소련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자 전문적 활동을 포기하고 어린이들과 작업했던 그의 스승. 도진은 12살 때 수영강좌가 마감돼 연극을 하게 됐고, 그를 만났다. 도진이 말하는 두브로빈의 수업은 다음과 같다. 스승은 자기 주위에 아이들을 둘러앉게 하고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들은 아무거나 물었고 그는 마치 랍비와 같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했다. 도진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부터 그에게 극장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다. 이 선생에게서 도진은 즉흥의 방법, 낡은 텍스트를 바꾸는 기적을 배웠다.


피터 브룩의 러시아 순회 공연과 조르지오 스트렐러 작품 ‘벚꽃동산’의 단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의 상상력이 불타올랐다고 고백하는 도진은 실상 가장 중요한 훈련은 제자들과 수업이라고 단언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젊음을 이야기하여 선생을 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선생은 같은 것을 다른 세대에게 반복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


이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엔 다만 우리에게 잊혀진 것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인간과 연극의 진실에 관한 오랜 믿음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 시대에 그의 연극은 사람 사이의 교류에 대한 오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리안느 므누슈킨이나 피터 브룩, 오태석 등 우리가 아는 연극의 대가들은 모두 이 믿음에서 연극을 시작한다.

노이정 / 연극평론가


©2006 Kyosu.net
Updated: 2006-06-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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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0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휴식 시간에 먹으며 봤으면 끝내줬겠어요.
세 번째 장면 사진 보니 어떤 연극인지 느낌이 옵니다.
이틀밖에 안하고 끝났나 보네요.

balmas 2006-06-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벌써 시작하고 끝나버렸네요. -_-
한번 봤으면 좋았을 것을 ...

Runa 2006-06-1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부산에서도 보려가려고 다이어리에 몇 달 전부터 적어놓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말 암 것두 하기 싫은 맘 땜에 그만 놓쳐 버렸네요.
근데, 공연 며칠 후 라디오에서 한 진행자 왈, 같이 울고 웃고 가슴 아파하다보니 그 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연극이 끝났더라고 하더군요.
이 글은 더 실감나게 절 아쉽게 만드는군요.

그러니, 학위도 하셨는데 바쁘시겠지만 가까이서 좀 챙겨 보세요. 예?
멀리 있는 사람 성질 나거든요.ㅎㅎ

balmas 2006-06-1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앞으로는 애용하겠습니다.
그런다고 카우테님이 덜 열받게 될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