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도덕교과 폐지주장한 김상봉 교수 관련 논란
과도한 획일화 비판 불러

2005년 11월 12일   신정민 기자 이메일 보내기

“한국 사회의 발전과 양심을 위해 도덕교과는 폐지해야 한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신간 ‘도덕교육의 파시즘-노예도덕을 넘어서’(길 刊)을 통해 이같이 선언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도덕교육의 문제는 정부와 서울대에 의한 교과의 독점, 파시즘 조장으로 금욕과 수동적 개인만을 양성해, 결과적으로 권력관계의 제도화를 견고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체제유지를 위해 이규호 교육부장관을 내세워 1981년 다양한 학문을 조립해 서울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 개설했으며, 이후 20년간 내용의 변화없이 서울대 교수들만 집필해왔기에 온전한 도덕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현행 도덕교육이 식민지배를 위한 한국 근대교육, 황국신민교육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율적 생각보다는 계급과 사회만을 위해 가르치고 명령한다고 계속 비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랫사람을 위한 교육은 있으나 윗사람에 대한 교육은 없으며, 사회와 국가공동체를 위한 자기부정과 개인적 금욕을 배우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 그리고 법, 규칙과 획일적 질서의 절대화만을 강요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덕 교과서의 집필권이 원칙적으로 개방돼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윤리의식을 능동적으로 정립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철학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윤리교육학계에서는 철학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 동감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ㅇ 교수는 “특정 학교의 출신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학회에서는 김 교수의 의견에 부정적이며 비판적”라며 윤리교육학자들의 모임 분위기를 전한다.


지방 국립대의 ㅅ 교수는 “김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과목이 없을뿐더러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김 교수의 경우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처사”라며, “구석기 시대의 고정관념으로 남의 영역에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어 지방 사립대의 ㅂ 교수는 “전체나 역사적 맥락없이 특정한 관점에서 음모적으로 해석해 지나치게 편협하고, 오히려 이런 시각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라고 역비판한다. 


김 교수가 반도덕적인 교육 혹은, 사이비도덕교육 양산의 원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서울대 국민윤리학과에 재직중인 교수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김 교수와 동일하게 칸트를 전공했으면서, 전두환 정권 때 처음 윤리교사로 발령을 받았던 박찬구 서울대 교수는 현장의 경험을 들어, “예전에 관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고통 속에서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이끌어갔다”라며 권력의 시녀론에 반박한 후, 도덕교육은 “자기중심적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이타적 행위의 강요는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박 교수는 “자유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미국의 교육이 도덕적 상대주의 조장과 무규범적 학생 양산이라는 부작용으로 최근 인격과 덕 교육으로 선회”했던 점도 첨가한다.


반면 윤리교육학계가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입장인 정창우 서울대 교수는 “김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 기준에 의한 균형성을 상실한 평가로, 파시스트만큼 사고가 경직돼 있다”라고 지적한 후 “자율을 도덕전반에 적용해 노예근성과 국수주의를 양성한다는 평가는 도덕교육이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결과로, 미성숙한 아동의 경우 사회화와 건전한 애국심이 필요하다”라며 그 한계를 말한다. 그는 퍼터스의 말을 빌려 ‘습관과 전통의 뜨락을 지나 이성의 궁전으로’ 인도하는 것이 윤리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교육의 내용이 타율적 자기부정이냐, 능동적 자율이이냐에 따라 해석이 사회화나 파시즘으로 갈라진다는 점이다.


초등과정에서는 자기보존과 상호공존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중등과정은 선 개념에 대한 능동적 성찰을, 그리고 고등과정에서는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사유하게 해야한다는 김 교수의 도덕교육 세 단계론에 대해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도덕교육론의 오랜 아포리아를 끌어들여 “습관적 도덕성에서 어떻게 자율적 도덕성으로 질적 비약을 할 수 있게 하는가”라며 반문한 뒤 “도덕교사의 철학적 능력과 동시에 전문가적 관점에서 학생들의 도덕심리 등을 분석·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이밖에도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학생 및 졸업생이 대기업의 노동운동과 전교조 결성의 주체로 활약했다는 의견, 1970년대 초부터 독립교과로 도덕이 있었으며, 1977년에 이미 서울대에 국민윤리학과 대학원 과정이 개설됐고, 1979년에는 동국대에 국민윤리학과와 경북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가 있어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다르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도덕교육과정의 개정주체는 서울대가 아닌 한국교육평가원 도덕교육연구실이다. 또 도덕교과가 8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 풀리는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라, 김 교수의 도덕교과서 생산과정에 대한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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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1-1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교수가 아주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
주장의 내용은 이미 이전부터 식자들 사이에 논의된 적이 있지만,
이를 공론화했다는 데 김교수의 발언의 의미가 있다.
김교수가 얼마나 충실하고 치밀한 논거를 제시했는지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도덕 교과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교과인지,
그리고 그 교육을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가 전담하다시피 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관한 문제제기는 정말 정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김교수에 대한 반론들은, 적어도 기사 내용으로 판단하자면,
내가 보기에는 밥그릇 챙기기의 교묘한 변용들 이상이
아닌 것 같다.

파란여우 2005-11-1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대학에 '국민윤리학과'가 존재한단 말입니까?
경이로운 세상이군요.여적 존재한다니....

balmas 2005-11-1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있죠, 여우님.
그 학과에서 배출된 교사들이 중등학교 윤리교육을 전담하고
있지요.

가시장미 2005-11-1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 예전에. 님의 리뷰를 읽고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아. 즐찾을 해두었는데. 댓글을 다는 것이 어려워 많이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도덕교육에 대한 글을 보니,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족하겠지만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제가 원래 무겁게 글을 쓰는 편은 아닌데 왠지 처음이고, 님의 이미지가 올빼미라서.. 저의 마음을 꿰뚫어 보실까봐 염려되어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새 중에 올빼미가 가장 무섭습니다. ㅠ_ㅠ

저는 아이들에게 독서와 토론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사교육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이 '철학'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이라. 외국의 철학교육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기에 철학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지만 너무 하고싶었던 교육이라 우선 취업을 하고 차근차근 철학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있게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하고 있지요. ^-^
솔직히 이 쪽 교육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낀 적도 많지만, 제가 학교 다니면서 배워왔던 교육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한다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대체 도덕시간과 윤리시간에 무엇을 배웠던 것인지.. 저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런 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특히 윤리교육에서 철학자들의 사상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에 머물고 그것에 마치 정답이라는 주입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과의 쌍방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의사소통으로 오히려 사고의 전환을 막고 창의적인 생각을 소멸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철학'이라는 학문은 열린사고를 기본으로 해야하는 교육이 아닐까합니다. 제가 말한 내용이 도덕교육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맥락이 아니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현행 도덕교육은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한다는 저의 의견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책... 기회가 된다면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혹 읽게 되시면 리뷰 꼭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balmas 2005-11-1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가시장미님, 안녕하세요?
저런, 올빼미를 무서워하신다니 죄송하네요 ...
사실은 제가 밤에 놀다가 아침에 잠드는 올빼비/부엉이과라서
부엉이를 이미지로 썼다죠. 자세히 보면 귀엽답니다. ^-^

아이들 철학교육을 맡고 계시는군요. 몇년 전에 제가 아는 분이
그쪽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셔서 저도 약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책임감있는 가시장미님 같은 분이 계시니까 전망이 있겠군요.(아부모드? ㅋㅋ)

정말 중등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윤리/철학 교과는
철학을 싫어하게 만들기에 딱 좋은 내용으로 되어 있죠.
배워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말예요.
저도 페이퍼를 올린 김에 김상봉 교수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요즘 조금 바빠서 올해 안에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예요. ^^;;;

앞으로도 자주 뵙기로 해요, 장미님. :-)

릴케 현상 2005-11-14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국민윤리과목 넘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 제가 점수 잘 나오는 몇 안 되는 과목 중 하나였걸랑요...근데 국민윤리 선생님들한테는 유감이 많아요. '최루탄 냄새를 국립대 앞에서 맡으면 그래도 참을 만한데 똥통대학 앞에서 최루탄 냄새 맡으면 못 참겠다 암것도 모르는 애들 때문에 고생하니까' 뭐 이런 소리나 하는 사람이었거덩요. 그래도 정권의 시녀 노릇 안 한 교사도 있겠죠 뭐^^

바람돌이 2005-11-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봉교수는 항상 이슈를 몰고 다니는군요. 그의 의견이 100% 옳은건 아니겠지만 저는 항상 그의 발언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말하기 정말 쉬운일 아니거든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이 철학전공자로 국민윤리라는 과목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내부자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almas 2005-11-1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ㅋㅋ
그래서 국민윤리 과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죠. (난 아니라고 말못해 ...^^;;)
바람돌이님/ 그게 김상봉 교수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칸트 철학
전공자이니 전공만으로 본다면 보수적이거나 아카데믹하기 쉬운데, 김상봉
교수는 그런 한계를 잘 넘어서는 것 같더군요.

릴케 현상 2005-11-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한테도 기대하는 게 있으시다니 영광입니당~

알고싶다 2005-11-14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 또 바꾸셨군요. ^^ 김상봉씨의 <나르시스의 꿈>을 지난 여름에 읽은 기억이 있어요. 칸트 철학 전공자이면서도 오히려 칸트 철학을 위시한 서양 윤리학에 비판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글 잘 읽었고, 퍼가겠습니다.

가시장미 2005-11-1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미지 바꾸셨네요. 와우~ 귀여운 부엉이네요. 으흐흐흐 ^-^ 솔직히 예전 부엉이는 좀 무서웠어요. 지금 이미지가 전 더 좋아요. 헤헤.

cplesas 2005-11-15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친구가 발표준비한다고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 몇 부분을 복사해왔더군요. 읽어보고 코멘트해주라고. 내용도 윤리교과서와 비슷비슷한게, 제가 정말 고등학교 때 이런 걸 배웠나 싶을 정도로 처참하더군요. 더 심각했던 건, 이걸 언제 배웠고 읽었는지 자체가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다.

도덕이 뭔지, 윤리가 뭔지는 책에서 아예 사라져있더군요. 텍스트는 윤리적 삶의 정당화 쪽으로 매우 기울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간단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사는 게 좋은 거야." 끝에선 쪽팔리기 싫으니까, 환경오염이니 지구촌 얘기 몇번 나오고(철학 교과서 저자 중 한 명이 이진우라면서요ㅋ)

그저 김상봉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도덕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욕망 앞에 무기력하다."

balmas 2005-11-1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님이야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서재 주인장이시죠. ^-^
리들러님/ 잘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
장미님/ 장미님을 위해 이미지를 바꿨답니다. 미인에 약한 발마스 드림(^^;;;)
무영님/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는 저도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문제가 많은 책이죠. 딱딱하고 지루하고 빈약한 내용에다가, 틀린 사실도 들어 있고.
제 조카뻘되는 아이가 그 책으로 공부했는데, 철학이 제일 지루한 시간이라고
하더라구요. -_-;

가시장미 2005-11-16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정말 저때문에요? _-_)~ 기뻐서 뒤집어지는 가시장미. 으흐흐흐(제 웃음소리랍니다)
감사드려요!! 헤헤. 근데 미인이라고 하시면 눈 낮다고 흉 들으세요. ㅋㅋ 제 서재에 사진이 깔려있으니 바로 확인이 되기 때문에요. 으흐흐흐 저야 칭찬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

balmas 2005-11-1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사진보니까 듣던 대로 정말 미인이신데요, 뭘. ^-^
 

 

"전민중과 함께 아래로부터 새로운 좌파 프로젝트를"

사빠띠스타, 2006년 7월 대선 앞두고 '다른 선거' 준비

 

엑또르 델라 꾸에바(멕시코) 

2006년 7월 6일 멕시코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대선은 6년 마다 진행된다) 그러나 대선 3년 전부터 멕시코에는 ‘선거 전 징후', 즉 정치적 부패, 스캔들과 이에 대한 투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지난 2000년, 제도혁명당(PRI)은 70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했다. 멕시코는 민주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제도혁명당(PRI)이 사실상 단일정당으로서 독재 지배를 해왔고, 사회를 전체주의로 통제했으며, '사회적으로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폭력으로 관철시키는 폭압을 일삼아왔다. 1968년 이후 여러 정치,사회운동은 제도혁명당(PRI) 정권에 맞서기도 했고 때론 굴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멕시코 좌파 진영은 많이 성장했고, 멕시코 정치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엑또르 델라 꾸에바
한 예로 1988년에는 좌파의 상당수가 제도혁명당 출신이자 민족민주주의자인 꾸아우떼목 까르데나스(Cuauhtemoc Cerdenas) 후보를 지지했다. 선거에서 까르데나스는 정치적 음모로 인해 당선되지 못했지만 사실상 승리한 것과 다름 아니었다.(까르데나스는 제도혁명당에서 분리해 나온 민족민주전선(FDN) 후보였다. 1988년 대선 당시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개표 전산 시스템이 고장 났고, 이 틈을 타고 제도혁명당 살리나스 후보 측이 득표율을 조작하여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까르데나스는 민주혁명당(PRD)을 만들었고, 제도혁명당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좌파의 상당수를 민주혁명당(PRD)으로 규합했다.)

그런데 2000년 코카콜라 사장 출신인 빈센떼 폭스(Vincente Fox)와 그의 전통 우익정당인 전국행동당(PAN)이 등장하면서 그간 진행되어온 민주화운동의 여러 성과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당시 선거에서는 '실용적으로 투표하자'는 현상이 대중을 압도했고, 제도혁명당을 권좌에서 밀어냈다. 심지어 좌파 중 일부도 제도혁명당을 밀어내야 한다는 이유로 이런 흐름을 따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권 교체'라는 명분으로 폭스 정권은 정당성을 확보했고, 개혁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출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정권 교체'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폭스는 유례없는 무능함과 나약함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폭스는 이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으며, 멕시코를 미국에 종속시키기 위한 통합 정책까지 구사했다. 게다가 제도혁명당이 낳은 비민주적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예를 들어 노사협조주의적 노동조합 구조는 지속되었으며, 출범하면서 제도혁명당의 국가범죄(70년대 ‘더러운 전쟁’ 때의 여러 실종사건들, 학생들에 대한 학살, 정치적 살인 등)와 관련해 '처벌하겠다'던 약속은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그렇다고 폭스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 큰 진전을 이룬 것도 아니다. 제도혁명당과 민주혁명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어쨋든 지방에서든 수도에서든 폭스에 대한 지지도는 낮아졌으며, 그가 무능력하고 비전문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갈수록 확산됐다.

그래서 '한 국가의 정치변화의 기회는 오로지 6년 마다 열리는 대통령선거 밖에 없다'는 식으로, 폭스는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음을 비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 이후 멕시코는 사회적-정치적 해이, 마약밀매를 둘러싼 전쟁, 부정부패, 여러 정당의 '예비 후보들' 간 상호 공격과 정치적 분쟁들로 얼룩지고 있다.

이 과정에 최근까지 민주혁명당 출신으로, 멕시코시티 시장이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뻬스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는 세력을 규합하며, 정치적 힘을 키워나갔다. 모든 여론 조사 기관들이 1년 이상 '오브라도르가 그의 상대편보다 우위에 있으며 대통령 후보로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사'라는 여론 결과를 내놓았다. 연방정부는 이런 대중적 지지여론을 무마하거나 법률 조작을 통해 아예 그가 선거에 출마조차 못하게 하려 하고 있는데, 연방 정부의 이런 어리석고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오브라도르의 지지율' 상승을 부채질 할 뿐이었다. 만약 내일이 선거라면 오브라도르와 민주혁명당이 이길 것이고, 제도혁명당이 2위로 밀렸을 것이다.

게다가 주요 기업인들도 오브라도르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고, 협상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포퓰리스트(populist)이자 좌파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중도’를 자임하며, '좌파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매일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과 의회주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민주혁명당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오브라도르의 승리가 정치 영역에서의 지정학적 지형 변화를 상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 대한 종속을 극복하고 남미의 다른 진보적 단위들과 함께 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올해 말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될 것이며, 지금까지의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들은 이미 이런 끝없는 ‘쇼’에 지쳐가고 있으며, 정치 지형 전체에 대한 불신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싸빠띠스따의 "다른 선거"

이 제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전 또 다른 정치적 주체가 등장했다. 바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선언이다. 이는 공식적인 대통령 선거의 외곽에서 "다른 선거(La Otra Campaea)"라 불리는 사업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며 전국적인 사업 기획을 선포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1994년 1월 1일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 멕시코 동남부 지역 원주민 마을을 중심으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마르꼬스 부사령관이 이들의 목소리 역할을 했다. 싸빠띠스따 봉기는 전국을 뒤흔들었고, 살리나스 데 고르따리(Salinas de Gortari)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타격을 가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엘리트 정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비록 제도혁명당이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의 위력, 이에 대한 전국적, 국제 시민사회의 엄청난 지원, 그리고 멕시코 내 정치 상황 때문에 정부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싸빠띠스따의 ‘저강도 전쟁’은 치아빠스에서 계속됐고, 연방정부는 원주민 지역에 수만 명의 군인을 항시적으로 주둔시켜왔다. 원주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의 인민군은 산속에 흩어져 지내며, 연방군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전국적 또는 국제적 정치 기획들을 내놓았고, 전지구적 투쟁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원주민 권리 쟁취와 원주민 문화 수호라는 그들의 절대적 요구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런 요구는 지난 몇 년 간 거의 유일한 요구였다. 지난 2001년 ‘대지의 색채 행진(Marcha del Color de la Tierra)’으로, 싸바띠스따민족해방군(EZLN) 대표단은 전국을 횡단하면서 '평화 협상' 당시 약속받았던 원주민 마을에 대한 인정과 헌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회는 이런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침묵을 선택했고, 원주민 마을 자치권을 수호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반란지역의 기반을 다졌다. 이런 노력은 ‘좋은 통치를 위한 회의(Juntas de Buen Gobierno)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원주민 마을 내부 통치제도를 지칭함-역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새로운 선거 국면과 더불어 정치적, 도덕적 해이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설 것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라깡도나 숲의 여섯 번째 선언'(역주 : 라깡도나 숲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EZLN은 봉기를 일으켰을 당시부터 선언문을 여러 차례 내보냈고 이번이 여섯 번째이다.)을 통해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민주혁명당과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포함한 모든 정당에 대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더 이상 원주민 투쟁에만 자신들을 국한시키지 않을 것으로 - 비록 원주민 투쟁을 여전히 우선시 하겠지만 -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사회적 부문 주체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 간 회합 등을 포함한 전국적, 국제적 기획을 추진할 것이며, 전 민중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이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새롭고 진정한 '좌파 프로젝트'를 추동하자고 호소했으며, 이런 모든 노력이 '선거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를 위해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공식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선거'를 실천하고 공식 선거 과정 속에서 '소멸된 민중들의 이해에 복무하자'고 호소했다. '다른 선거'는 투표 거부를 의미한 것이라기보다 아래로부터의 대화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선거'는 2006년 1월 1월에 출범할 예정이며, 이 때 마르꼬스 부사령관은 전국 횡단에 나설 예정이다. 그리고 이후 보다 확대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 대표단이 나서서 멕시코 좌파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이런 목표 하에 이미 수백 개 조직과 수 천 명의 사람이 이런 새로운 기획을 조직화하기 위해 치아빠스 숲에 모여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과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멕시코 정치 지형에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다. 이들은 향후 수개월 간 전개될 복잡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정치 게임에 돌입한 멕시코의 미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잡하고 미약한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단계를 밟아나가기 시작한 멕시코 사회운동 진영은 지금 상황의 핵심 주체이다. 그러나 단일한 전략은 없다. 어떤 이들은 선거를 앞에 두고 정치인들과 협상을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싸빠따주의를 명확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선거 이후 상황이 많이 변할 것이다. 멕시코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멕시코 좌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번역] 전소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사무처장
엑또르 델라 꾸에바(Hector de la Cueva) 현재 멕시코 노동연구조사센터(CILAS) 소장이며 자유무역반대행동네트워크(RMALC) 공동대표임. 미주사회동맹(HSA)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94년 평화협상 당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이 임명한 민간협상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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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1-1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

balmas 2005-11-1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추천 감사 ^-^
 

 

"신자유주의 의료체계, 더 죽고 더 비싸고"

힘멜스타인 교수, "미국인구의 16% 의료보장체계로부터 완전 방치"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다른 나라가 미국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리병원 허용과 의료시장 개방을 골자로 한 제주특별자치도입법안이 보건사회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11일 ‘아시아보건포럼2005’ 개막 첫 강연자로 나선 힘멜스타인 교수는 “신자유주의 의료체계가 도입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오히려 비용은 더 많이 든다”며 “다른 나라가 미국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캠브리지병원의 지역사회의학과 과장인 힘멜스타인((David U. Himmelstein) 교수는 지난 1986년 창설된 PNHP의 핵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 2월 미국 내에서 연간 파산자의 50%에 달하는 2백만 명이 의료비 때문에 파산했다는 실증연구 결과를 발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날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 중심의 미국 의료’ 발제를 통해 미국의 의료체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설명했다. 힘멜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경우 국민의 66%가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고, 전체 인구의 16%인 4천 6백만 명이 의료보장체계로부터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간 30만 명이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있지만, 미국병원에는 매일 20만개의 침대가 비어있다”며 미국 민간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료비지출 세계최고 미국, 영아사망률 한국보다 높아”

힘멜스타인 캠브리지병원 지역사회의학과 과장
선진국 중 유일하게 공적의료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미국은 잘 알려져 있듯 전 세계에서 의료비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평균수명률과 영아사망률 통계를 보면, OECD국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보다도 높다. 힘멜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영아사망율은 캐나다의 하위 20%계층의 영아사망률보다 높다”며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 의료체계를 도입한 미국과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해 온 캐나다를 비교해 보면, 의료비용 지출은 미국이 월등히 높지만, 의료의 질은 오히려 미국이 낮다”고 지적했다.

힘멜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지배계급은 의료가 매우 이익이 남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 무혁협정 등을 통해 의료시장을 개방하고, 상품을 팔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힘멜스타인 교수의 이날 강연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의료산업화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그는 영리병원 도입으로 대표되는 의료의 시장화정책은 결국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 하고, 비용도 절감하지 못 하는 자본만을 위한 정책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는 참여정부의 보건의료정책”

힘멜스타인 교수의 ‘경고성’ 강연을 이어 받은 조홍준 의료연대회의 정책위원장 역시 현 정부의 의료시장화 정책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조홍준 교수는 참여정부가 당초 공약으로 제시한 공공의료확충, 평생건강관리체계 구축, 건강보장성 강화 등을 언급하며 “이미 기대를 접은 지 오래”라며 “오히려 당초 참여정부의 보건의료 공약과는 완전히 다른 소위 ‘의료서비스산업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참여정부는 보건의료정책에 있어서도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고 있는 꼴”이라고 읍소하며 “영리법인 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역할 강화, 건강보험 당연지정 철폐 등으로 요약되는 의료시장화정책이 일단 도입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홍준 교수는 “의료제도 개혁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방점이 찍힐 곳은 시장화가 아니라 공공성, 보장성, 거시적 효율성”이라며 △공공의료 확충(30%) 및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80%) △의료시설과 고가 의료장비 과잉 해소방안 강구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사회적 규제 방안 마련 △비영리법인 병원에 대한 공적 지원 확대 △의료의 질 평가 및 결과 공개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아시아보건포럼2005 : 아태지역 의료시장화와 민중의 대안' 개막
"의료산업화정책, 부자와 기업만을 위한 의료정책"
신비한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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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1-1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기사도 한번 읽어보세요. :-)

로드무비 2005-11-1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이라는 나라 정말 신비(?)하군요.
그건 그렇고 힘멜스타인 교수 스타일이 멋집니다.(엉뚱소리.=3=3)

balmas 2005-11-1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로드무비님, 그러실 줄 알았다구요.
힘멜스타인 교수 스타일이 멋있죠? ^^;;

알고싶다 2005-11-1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인 노동자 의료 백서>라는 책을 보고 충격을 받은적이 있어요. 돈없으면 치료못하는 매정한 세상 ㅎㅎ 미국 이야기만이 아닌것 같아요.

Muse 2005-11-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기사 올려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관련기사도 꼬옥 꼼꼼히 볼께요.
(퍼 가도 되죠?)

balmas 2005-11-1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들러님/오랜만이네요. 그렇죠, 정말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죠. 개선해도 모자랄
판에 하필 미국 따라가겠다고 하니까 더 문제죠.
서연사랑님/ 안녕하세요? 그럼요, 퍼가셔도 되죠.
좀더 많은 분들이 같이 읽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니까 많은 분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죠.
앞으로도 종종 뵙기로 해요. :-)
 
 전출처 : 파란여우 > 농민들 정말 힘들거든요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다.
또한 아이들이 밝히는(사실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밝히는)빼빼로 데이다.
빼빼로라는 과자는 기다란 막대 과자에 초코렛을 입혀
과자와 초코렛을 다 함께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인데
요새는 원조 빼빼로를 업 그레이드하여
막대도 더 굵고 초코렛도 더 진하며
게다가 무슨 장식까지 하느라 겉에 아몬드 가루까지 덧입혀 나온다.
맛있나?
아, 물론 맛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오늘 이 과자를 선물하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용돈을 모으고 어떤 모양의 과자를 살 것인가
포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노심초사한다.
 
앙증맞은 포장지에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래도 봐줄만한데
꽃바구니 많한 커다란 바구니에 알록달록한 폴리프로필렌 재질의 화려한 포장을
해 놓고 꽃 장식에 구슬장식에 리본 장식에 덤으로 인형이나 게임 모형까지
찬조출연시켜서 그거 하나에 몇 만원이라고 가격을 붙여 놓은 것을 보고 기겁했다.
요새 엄마들이 아이들 키우는데 정말 돈 많이 들겠구나 싶다.
 
엄마들만 힘드나
학교에 들고 간 빼빼로 바구니는 교실 한 가득 차고 넘쳐서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선생님들의 수업집중에 어느정도는 보이지 않는 지장을 초래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노파심이고,
그런데 그 애들 중 오늘이 농업인의 날이라는 것을 아는 애가 별로 없다.
애들이니까.
 
애들이니까?
어찌보면 예민한 문제다.
밥그릇 이야기는 왠만해서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 한 번만 하고 자빠져 자야겠다.
애들은 애들이니까 그렇다 치자.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고 농민의 주된 노동이 작물도 있고, 축산업도 있지만
그 중 밥그릇을 연상시키는 쌀농사가 주된 농사다.
농산물의 불평등한 개방 문제로 이경해씨가 이역만리 땅에서 죽은 일은 다 잊혀졌다.
솔직히 그의 이름을 모르는 농민들도 많고
도시인들은 더 많다.
국민들은 아예 그가 누군지 모른다.
 
모른다고 욕하지 말자.
그가 왜 타국에서 배를 가르고 죽어야했는지 안다고 해도 힘없는 자가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현안은 별로 없다.
데모 한다고, 쌀가마니 쌓아놓고 불로 태워버린다 해서 해결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쌀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것은 보릿고개가 전설처럼 사라지고
그 덕분에 쌀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길거리에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먹거리들이 풍족하다 보니
농자천하지대본의 바탕이 되고 농업국가의 대표주자이던
쌀이 없어도 당장 굶을 염려가 없어진다.
언제 우리가 농업국가였는지 기억도 없다.
원래 우리나라 3차산업 국가출신 아니야?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변화무쌍함과 다양성의 종(種)의 파급은 눈부신 항해를 거듭했고
그 결과 쌀은 유야무야 내 주어도 별로 큰 타격 받을 것 같지 않은
생산성의 극대화를 이룩하여 쌀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러니까 북한 동포들이 허기져 있다고 퍼 주는 인심도 넉넉해지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국가가 자연재난까지 겹치면 거기에 또 퍼준다
인심좋은 우랄 알타이어족.
 
그런데 결식아동은 줄지 않고
하루에 한번씩 배급되는 동사무소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는 독거노인들도 여전히 증가한다.
부의 재분배가 원활하지 못한 것인가?
그러게 농민들이 쌀값을 너무 비싸게 받아서 그런거 아냐?
 
사실,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쌀값(소비자 기준)은 인근의 쌀소비국가와 비교해서 볼 때 비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칼로스쌀은
더 우수한 품질의 쌀이 80Kg 기준 미국현지가격으로 약 3만1천원,
중국의 지린성 동북미는 건조과정이 다소 미흡하지만
비슷한 종자로써 80Kg기준으로 약 2만9천원선이다.
우리쌀값은 그 몇배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농민들은 농협 고리대금업에 칠순나이까지 이잣돈 갚느라 헉헉댄다.
정약용 선생이 살던 시절의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같은 세를 안받으니
오히려 그걸 고맙다고 여겨야 하나.
 
원조 빼빼로 한 곽에 얼마지?
쌀 80kg에 우리동네 현지 시세로
그것도 생산자에게 직접 방앗간에서 가져오는 가격이 128.000원이다.
얼마전에 10월에 공식적인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17만원이라고 보도가 나왔다.
그 때 현지 시세는 15만원이었다.
2만원 어디갔나?
 
지역별 차이와 품종별 차이가 다소 있겠지만 쌀값 2만원은 상당한 차이를 의미한다.
지금쯤 언론에서는 쌀값이 내렸다고 하면서 15만원선에서 보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쌀값은 왜 중요한가?
한마디로 내 밥그릇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존의 법칙이며 기본이며 모든 먹는 문제를 일체 포함하는 문제다.
WTO 출범이후 농산물 시장은 전면개방으로 고속철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치고 달렸다.
그러기에 정부는 징글맞게도 준비를 성실하게 해주지 못했고
지역 단체들(농협, 축협, 수협이나 농민단체등)도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
농민들 중에도 배타적 국수주의에 허우적 대느라 무조건 안된다는 목소리만 내고
도시 소비자층은 피부로 이 문제에 공감해 주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전에 한 번 써서 더 이상의 언급은 안하련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71566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
빼빼로 데이는 인스턴트 천국, 미국의 유산물이다.
태어나기는 한반도 땅일지언정 그들의 몸속에는 미국의 피가 흐른다.
쌀은 우리땅에서 태어나지만 쌀의 혈관도 우리의 피와 같지만
시대가 그런지, 정부 정책이 그런지, 우리로부터 외면당하고 홀대를 받아오고 있다.
쌀에 대한 홀대는 농민에 대한 홀대다.
농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비싼 쌀값을 받으면서도
왜 부자가 될 수 없는지 모른다면 당신은 바보이거나, 쌀이 필요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농촌은 고령화 집단이다.
각종 기계로 농사를 지어야하므로 장비 임대 비용이 만만치 않고
비료값, 사료값, 기름값, 농자재값, 이거 장난 아니다.
정부의 농업인 대책이나 지원정책을 들여다 보다가 혈압으로 쓰러질까봐
그 현안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면에서 받아 온 작은 책자를 내던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글로벌 시대고 WTO시대이므로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일관한다.
각자 특색있는 작물로 대처하는 일만이 살길이라는 궁색하고 모호한 연설뿐이다.
어떤 개자식이 이런 글을 써서 농민들을 우롱하는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농협의 대출금 관련 상품 이자와 저축 상품 이자율을 비교하다 보면
다혈질의 나는 쓰러지실 지경이다.
대출금 이자는 5%인데, 저축 이자는 3%.
망. 연. 자. 실.....
 
내일부터 APEC가 부산에서 열린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표자님께서는 과연 어떤 주머니를 받아 오실까
그가 받아 오는 주머니에 미국의 압력이라는 카드가 들어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간절하게 바라는 것일수록 나중에 허망한 것이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절부절 못하는 농촌.
 
산업화, 성장 발전,개발이란 것이 모든이들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신앙이 되지 않는다는
뚜렷한 증거가 미국과 여타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다.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가 바로 "이기면 바로 정의다"
"이긴자가 무조건 옳다" all이냐? nothing이냐?" 이것이 핵심 정체다.
 
빼빼로 데이라고 아해들 과자부스러기 하나 먹는 일에 쓸데없이 말이 길었다.
결론은, 나 오늘 빼빼로 못 먹었다.
그래서 저녁에 동태찌게에 밥을 한 그릇 고봉으로 먹었더니 자꾸 흰소리가 나온다.
제. 기. 랄
 
농민들 정말 힘들거든요.
생존의 위협속에 희망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각고를 한번쯤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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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2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11-1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독재 상징 김지하, '박정희식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

 

천규석 주장… "생태ㆍ농업 포기하고 세계화에 투항"

 

  김지하 시인은 극우 파시스트인가, 새로운 생명사상의 개척자인가?

최근 '유목-농경문화 통합론'과 '동북아 문화 공동체'를 주창한 김지하 시인의 비전이 사실은 '박정희식 국가주의'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이 비판은 김 시인의 서울대 미학과 동료이자 한살림 운동을 함께 일궜던 천규석 대구 한살림 이사와 생명ㆍ환경운동의 후배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에 의해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은 생태-농업 포기하자는 것"
  
  천규석 이사는 오는 15일 발행될 예정인 <녹색평론> 2005년 11~12월호(통권 제85호)에 기고한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은 사실상 도시의 농촌 흡수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또 다른 서울 중심주의, 시장 제국주의"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제시된 '한반도 문화 허브'론도 박정희의 국가주의 비전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천 이사는 김 시인과의 대학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인연을 담담하게 회고한 뒤 "최근 그의 담론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농업 관련 발언들은 여러 가지 의문과 이견을 자아내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지하는 (생태주의) 농업 일변도나 유목 일변도의 외짝 문명으로는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유목-농경적 통합 문명'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창조적 통합을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실체는 모호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천 이사는 "통합을 하려면 통합의 주체인 양쪽 당사자가 대등해야 하지만 이미 유럽과 미국의 도시 문명으로 상징되는 유목주의가 이미 온 세계 농촌을 모두 짓밟거나 흡수통합해버린 시장 제국주의 시대에 그것과 통합될 농업과 생태주의는 없다"며 "김지하의 주장만 듣고 보면 마치 생태주의 농업이 세계적인 유목주의에 대등하게 저항하거나 심지어 압도하고 있는 듯 들린다"고 꼬집었다.
  
  천 이사는 "둘의 통합 이전에 통합의 한 대상인 지역의 농민과 농사부터 먼저 살리는 것이 순서"라며 "이런 고민이 없는 김지하의 주장은 지금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 유목주의의 흡수통합 압력에 맞서 어렵게 숨을 지탱해 오고 있는 생태주의와 농업에 희망과 용기를 주기보다는 '김 빼고 초 쳐' 흡수통합된 상태 그대로 두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지하, 도시중심 문화의 우월주의 극복 않고는 아무 것도 못해"
  
  천규석 이사는 더 나아가 김지하 시인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문화운동 우선주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전개했다.
  
  천 이사는 "김지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인터넷 등 디지털 문화가 활발해지는 이 때 생명운동가들이 귀농과 같은 실천에 매달려 있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심지어'생태 파시즘'이라고 매도하면서) 디지털과 에콜로지가 공생하는, 즉 노트북, 자동차,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도 유기 농산물을 먹는, 두 가지 다 지향하는 문화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김 시인의 문화운동론을 소개한 뒤 "온갖 도시의 기득권은 그것대로 다 누리면서도 납 들어간 조기와 오염된 썩은 배추 대신 건강한 유기 농산물을 먹고 싶다는 그의 주장은 지나친 욕심으로밖에 안 들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도대체 도시에서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도시로, 도시로 가는 현실에서 그 유기 농산물은 누가 농사를 지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천 이사는 "더구나 생명운동의 대부로 자처했던 사람조차 생태와 농업보다 은연중에 유목문화와 도시에서 하는 문화운동을 우위에 두고 실재하지도 않는 생태농업과 도시 유목문화의 통합론을 펴고 있는데 (지역에서) 남아날 생태와 농사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의 비전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일부 소수의 '잘난 놈'들이지 모든 세계 민중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천 이사는 "농업만으로 인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 대세인) 태생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고 비(非)자급적인 유목문명만으로도 더 이상 안 된다"며 "지금 필요한 진정한 문화운동은 '도시중심ㆍ유목중심의 교육과 문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끝까지 밝히고 폭로해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동체 교육과 문화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자치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락 한 포기 안 심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그 도시 중심 문화 우월주의부터 극복하지 않고는 사람의 마음도 세상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하가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 국가의 목표가 고작 박정희 비전이라니…"
  
  천규석 이사는 또 "한반도 전체를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다리로 보고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올라서자는 김지하의 주장은 박정희의 공업화 국가 비전과 다를 게 없다"며 "굳이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가 단순한 물질과 산업적 물량중심주의자라면 김지하는 지식, 정보 등 문화적 물량중심주의자라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천 이사는 "이런 지식, 정보, 문화의 물량중심주의 또한 박정희 식의 산업적 물량중심주의의 결과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결코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며 "같은 비전의 물량-물류 국가주의도 박정희가 하면 독재고 김지하가 하면 민주주의냐"고 반문했다.
  
  그는 "김지하가 목숨 걸고 그에 대항해서 쟁취한 민주화된 국가 목표가 박정희의 비전과 차별점이 없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런 천 이사의 주장은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이 최근 발행된 <말> 11월호(통권 제233호)에 기고한 또 다른 김지하 시인에 대한 비판 '나치 칭송곡 울린 바그너가 되려는가'와 일맥상통한다.
  
  우석훈 실장은 "김지하가 지난 1월 펴낸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은 저자 이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어느 극우파 사상가가 쓴 것이라고 오해될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제조업에서 벗어나 서비스와 문화 컨텐츠를 중심으로 육성하면 한반도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신세대와 지식인들에 의해 세계적 문화 대혁명이 한반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나치 치하 제3제국의 영광에 대한 노골적 칭송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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