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읽기 위해 번역한 이리가레의 글을 하나 더 올립니다.

지난 번에 올린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와 마찬가지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및 헤겔의 [안티고네]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인데,  지난 번 글이 매우 함축적이고 난해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글은 훨씬 평이하고 명시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번역자에게는(-.-;;) 여간 까다로운 글이 아닙니다. 참고할 만한 다른 외국어본을 갖고 있지 못해서 오역이 적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수정할 생각입니다.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도 두어 군데 수정한 곳이 있는데, 나중에 따로 올릴 생각입니다.

이 글은 원래 글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후반부도 곧 올릴 생각입니다.

 

Luce Irigaray, “Le Genre féminin”, in Sexes et parenté, Minuit, 1987.


여성의 유/여성 젠더

[이 글의 제목에서 “genre”라는 단어는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는 문법에서 명사나 형용사의 “성(性)”을 가리키는 단어이면서 젠더를 의미하기도 하고, “유類”(또는 속(屬). 영어로 하면 genus)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기계la machine는 성을 갖고 있지 않다. 자연, 그녀는 항상 성별화되어sexuée 있다. 분명히 기계는 때로는 성을 모방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녀(기계, elle)는, 특히 자신의 도구로서의 지위 때문에 한 성보다는 다른 성의 경제에 더 관련되어 있다apparenté. 기계, 그 생산 활동에서 성이 없거나 하나의 성만을 가지고 있는 기계는 때로는 생명을 보충[“보충”의 원어는 “protège”인데, 불어에서 “protéger”는 어떤 결함을 인공물로 보충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철이나 의족, 의수 등이 이러한 보충의 사례들이다.]하거나 보완한다. 그녀는 생명을 창조하지도 산출하지도 않는다.
  인간 정신은 성들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만큼 이미 너무나 기술의 명령들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들 사이의 차이의 중요성을 긍정하는 사람은 때로는 수구주의자, 반동,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과학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떤 남자들 또는 어떤 여자들은 분명히 수구주의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는 성적으로 차이화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미 죽어 있는 셈이다. 담론의 성별화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가? 기계, 기계론 및―주체의 제어에서 벗어나는―어떤 에너지로 환원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살아 있는가? 우리는 생명, 형상, 정신을 산출하고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아직 충분히 살아 있는가? 생명체로 남기 위해, 우리 자신을 생명체로서 재산출할 수 있기 위해 우리에게는 성적 차이가 필요하다.
  이러한 차이는 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적 모순이다. 서툴게나마 위치시킬 수 있는 상호보완성도 없고, 획득된 객관적 위치도 없고, 대상도 모습도 없는 [차이이므로]. 성들 사이에는 분명 생리학적, 형태론적morphologique 상호보완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호보완성은 증식에 도움이 되도록 자리잡아야s'habiter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성/되기에서는 주체적인 성적 차이는 존재했던 적이 없다. 이는 특히 사유 속에서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기회다.
  우리는 다른 환경으로 넘어가는 중에 있는데, 이 환경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연적 여건milieu이 된다. 기술의 여건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정상적인 환경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땅과 태양, 식물, 물, 공기가 존재하던 곳에 이제 콘크리트, 전기, 실내 공기 조절 장치, 기차, 비행기, 기차역, 주유소 등이 존재한다 ... 이처럼 보고, 들이마시고, 만지고, 맛보는 데서 [이전과] 차이가 존재하는 것 이외에도, 또한 소음bruit이 존재한다. 아마도 이 소음은 시계의 초침에 따라 규칙적으로 표시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음악가들은 소음에 리듬을 부여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이 소음은 더 이상, 예컨대 계절이나 풍경에 따라 규칙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므로 제멋대로 발생하는 셈이다. 기계의 소음은 일년의 절기나 지역 또는 세계 각 나라에 따라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정도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항상 거의 동일하다. 여기에서 지각 능력의 쇠퇴가 생겨나는 것일까? 오늘날 교대로 일어나는 것은 소음 또는 그것이 정지할 때 나타나는 정적이다. 하지만 정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대는 인공적이고 거칠다. 참된 교대는 기계의 소음과 자연의 소음bruit[자연의 경우에는 “bruit”를 “소리”로 이해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기계나 자연 모두 똑같은 “bruit”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존중하여 모두 “소음”이라고 번역했다.] 사이에 존재한다. 자연의 소음에는 리듬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이 소음은 리듬의 차이들을 존중한다. 이 소음은 형상을 부여한다informe. 이 소음은 항상, 그리고 여전히 최초로 일어나는 소음이다. 이 소음은 또한 항상 젖어 있다. 곧 상처를 주지 않고 접촉할 수 있다[“이 소음은 또한 항상 젖어 있다. 곧 상처를 주지 않고 접촉할 수 있다”의 원문은 “Il est aussi toujours humide, c'est-à-dire capable de toucher sans blesser”이다. “humide”는 “축축한”, “습도가 높은” 등의 의미를 갖고 있고, “toucher”는 “접촉하다”, “만지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또한 “타격을 가하다”, “상처를 주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기계의 소음은 항상 동일하다. 이는 그것의 실효성의 조건 자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소음은 반복하도록 기능한다. 기계는 반복적일 경우에만 신뢰할 수 있다. 반복되지 않을 때 기계는 손상되고 고장난 게 된다. 자연, 그녀는 반복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생성한다. 비록 자연의 주기들 내에 유사성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동일하게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들 및 자신의 꽃들을 통합하면서 성장하고 생성한다. 그녀는 소리son 및 모든 감각들을 통해 그치지 않고 형상을 부여한다.
  자연은, 항상 도처에서 성별화되어 있다. 우주적 질서cosmique에 충실한 모든 전통은 성별화되어 있으며, 자연의 역량/잠재력들을 성별화된 항들에 따라 고려한다. 자연의 역량/잠재력들 역시 교대에 따라 규제되지만, 모순적이지는 않다. 봄은 가을이 아니고 겨울은 여름이 아니며, 밤은 낮이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우리의 논리에서 알고 있는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 하나가 다른 하나와 대립하거나 모순되지 않으며,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고 그리하여 열등한 것을 제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증식의 리듬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두 극은 필수적이다. 겨울은 여름을 파괴하지 않으며, 수액(樹液)이 땅 속으로 들어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수액이 나무의 꼭대기에서 항상 열매를 맺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게 가능한가? 이는 확실치 않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 반대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교훈을,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peuple des hommes은 잊어버린 듯하다. 이 인민은 정상으로 올라가 거기 머물러 있으려고 하며, 타자, 예컨대 여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길을 상실한 채 땅 위에 매몰되어 있도록 내버려둔다. 어쨌든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과제, 성장하기 위해 자신들의 뿌리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과제를 잊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항상, 자신들의 최초의 모성의 뿌리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지만, 그들은 문화 안에서 이러한 향수를 살해한다. 또는 직접성[무매개성]을 반박한다(모순화해서 지양한다, contredisent)[“contredire”는 단어의 의미대로 하면 “반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리가레는 여기서 이 단어를 “contradiction”, 곧 “모순”과 관련시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contredire”는 시초에 주어져 있는 직접적인 자료(여기에서는 모성의 뿌리)를, 모순의 매개를 통해 지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질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꼭대기와 뿌리 사이의 이러한 교대들은 문화의 발흥과 퇴보를 통해,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전쟁, 많은 경우 기술의 확대에서 생각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전쟁은 부정의 부정일 것이다. 이는 감각적 직접성으로의 복귀로 이해될 수 있는가? 감각적인 것을 자신에게 고유한 것으로, 자신의 정신의 본성으로 육성하는 대신, 남자―좀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이 감각적 직접성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이를 자연의 타자에게, 특히 다른 젠더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각에 대한 의무obligation sensible는 사적이고 공[개]적인 삶에서, 사적이고 공[개]적인 전쟁에서 그에게 다시 돌아온다. 공[개]적으로 볼 때 남자는 자신과 같은 젠더하고만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다른 젠더와 비공개적으로 벌이는] 또다른 전쟁은, 마치 이 전쟁이 절대 지식 또는 절대 정신 안에서 이미 해결된 것처럼, 은폐된 채로 비밀스럽게 남아 있다. 이 전쟁이 절대 지식 또는 절대 정신 안에서 이미 해결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완성된 정신 역시 부정의 부정처럼 보인다. 정신의 완성 역시, 부정되었던 것 또는 변증법화되지 못했던 것이 감각 경험 안에 존재하는 직접적인 것으로서 복귀함을 의미한다. 감각 작용의 절대적 성격은 개념화의 절대자 안에서 복귀하는가? 절대자는 직접적인 것의 다른 이름이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그렇다. 절대자는 지식 안으로 감각적인 것의, 그리고 감각적인 것 안으로 지식의 회고적이며 포괄하는 복귀이다. 절대자는 정신 안에 들어 있는 감각적인 것의 쟁점이고 지평이며 목표이고 가면을 쓴 이행이며, 위상학적 총체성의 형태 아래, 잠재적으로 폐쇄된 우주의 형태 아래 감각적인 것의 복귀이다. 절대자는 또다른 세계, [기술적으로] 제작되고fabriqué, [자연의 대지로부터] 뿌리뽑힌 세계의 분신(分身, double)을 성취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절대자는 가장 개연성 있는 우주적 리듬과는 반대로 살해하고 탈생명화하는데, 왜냐하면 절대자는 자연으로부터 시간화 과정temporalisation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은 적어도 절대자가 젠더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표시된다. 정신은 자신을 완성하면서 땅 속에 자신의 뿌리를 더 깊이 박아두지 않는다. 정신은 자신의 일차적 뿌리들을 없애버린다. 문화, 역사가 정신의 땅이 되며, 이는 정신이, 인식하는 것의 신체적 규정들déterminations incarnées을 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특정한 문화들이나 종교들이 무어라 예견하든 간에, 죽은 [남]자들은 그 자체로 부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들이 부활한다면, 이는 절대 정신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감각적으로 상이한 세계 안에서 그렇다. 죽은 자들을 땅에 맡기는 것은 여성이다. 만약 그녀가 이러한 윤리적 의무를 아직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인간 유genre humain라고 불리는 남성이라는 유/남성 젠더는 자신의 타자와 유희하지만, 타자와 짝을 맺지는 않으며, 타자의 젠더를 망각함으로써, 이 젠더의 뿌리를 파괴함으로써 [타자와의 관계를] 끝맺는다. 아마도 그는 타자와 만나느니, 스스로를 변질시키려고 할 것이다. 스스로를 변질시키고 고통받고 죽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와 그의 모든 화신들avatars은 가능하겠지만, 타자는 그렇지 못하다. 왜? 절대자를 원하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것의 노동을 작동시키기 위해 직접적/무매개적 대자성을 포기하는 것이 함축하는 욕구불만과 결핍, 절제를 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주체, 한 유[젠더]의 절대 지식은 부정적인 것의 노동이 완수되지 않았다는 표시이다. 육화된, 성별화된 신은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것의 노동을 수락하는 것, 자기 자신을 신성화하기 위해, 완전성을 얻기 위해 신체를 얻어야 하는 필연성을 가리킨다. 한 쌍으로 된 신은 이를 좀더 변증법으로 말하지 않을까? 또는 말하게 되지 않을까? 어떤 신도 자신의 젠더 안에서 또는 이 젠더를 통해서는 절대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각각의 신은 일시적으로나마 젠더들 사이의 항상적인 접합으로, 성적 차이로 표상되는 생명체의 두 가지 모습 또는 구현incarnations 사이의 변증법으로 자신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

  여성들의 해방, 상이한 정체성에 대한 긍정을 둘러싼 질문들은, 자주 여기에 관련되어 있는 윤리적 비극이 지니고 있는 광범위한 쟁점들을 회피하곤 한다. 헤겔은 이 쟁점들을 감지했으며, 인륜적 질서는, 특히 인간의 법과 신의 법, 각자 남성과 여성의 의무(이자 운명?)로 귀속되는 두 법 사이의 해소할 수 없는 대립에 의해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리라고 예견했다, 또는 진단했다. 이처럼 제시된 [남성과 여성의] 과업들―여기에는 가족과 생명체, 신들을 보호하는 일이 포함된다―의 배분은 이미 신적인 것이 남성 젠더에 속하고 여성 젠더에서 제거된 세계에서는 낯설게 보인다. 두 젠더의 정신적 의무 사이에서 성취되는 변증법 대신에 헤겔은 우리에게 이중의 책략을 지닌 감금[“이중의 책략을 지닌 감금”의 원어는 “enfermement à double tour”이다. 이는 또한 “이중의 망루로 이루어진 감옥”, “이중의 여정으로 이루어진 폐쇄”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을 제시한다. 이로부터 헤겔 체계의 위력이 나오며, 내가 보기에는 아직까지 누구도 이를 풀어내지 못했다.
  왜 이 체계는, 적어도 이중의 책략/이중의 망루에 따라 닫혀 있는가? 왜냐하면 여성이 자연과 유[젠더]를 주재하는 한에서, 여성이 가족을 보호하고 가족 중 죽은 [남]자들에 대한 제례를 존중하는 한에서, 여성은 신의 법과 함께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안티고네에 의해 완성된 법의 행사는 이미 남성적 보편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안티고네는 더 이상 빛과 화덕, 자신의 신들 및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여성이 아니라, 두 오빠가 논란을 벌이는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빚어진 가족의 파괴에 일시적으로 대처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이미 남성들의 신, 남성들의 파토스에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죽은 [남]자들의 신을 달래고 살아있는 [남]자들로부터 범행의 흔적을 씻어내기 위해 범행을 사죄하고 죄를 없애려고 시도한다. 이미 문제는 여성 젠더에 속하는 한에서의 그녀의 과업이 아니다. 국가의 권력 및, 희생 위에 수립된 인간의 권리들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국가가 [죽은 [남]자들로 하여금] 흘리게 만든 피를 없애려고 안티고네가 시도하는 이상, 그녀는 이미 국가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le féminin은 이미 더 이상 자신의 젠더, 자신의 변증법에 봉사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남성 지시대명사][“여성[이라는 남성 지시대명사]”는 “il”의 번역이다. 불어에서 “il”은 남성 지시대명사를 가리키고 “elle”은 여성 지시대명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불어에서 여성에 해당하는 “le féminin”은 남성 정관사 “le”가 붙는 남성 명사이다. 이 문장에서 이리가레는 “le féminin”을 받는 남성 지시대명사 “il”을 사용함으로써, 안티고네가 남성적인 권력에 봉사하고 있음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il”을 “여성[이라는 남성적 지시대명사]”으로 번역했다.]은 신의 법, 자연의 법, 생명으로부터 남성적인 인간의 법으로의 이행 속에 감싸여 있고 말려 있다[“감싸여 있고 말려 있다”의 원어는 “enroulé, roulé”이다. “rouler”이라는 동사는 “말다”, “구르다” 등을 의미하며, 구어로는 “말려들다”, “속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런 이중적 의미가 모두 표현되고 있다.]. 안티고네는 이미, 동일자의 타자를 대표하는 여자, 대표하는 [남]자이다[이 문장의 원문은 “Antigone est déjà la représentante, le représentant, de l'autre du même”이다. 이 중에서 “le représentant”은 “대표자”라는 뜻을 가진 남성 명사이며, “la représentante”는 이것의 여성형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이리가레는 같은 뜻을 가진 명사를 성만 바꿔 두 번 사용함으로써, 안티고네의 행위의 남성적 성격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곧 안티고네는 남성이라는 동일한 젠더의 질서 내에서 표현된, 또는 이 질서 안으로 이미 포섭되어 있는 여성적인 타자라는 의미이다. “동일자의 타자”란 이를 가리킨다.]. 화덕(가정, foyer)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과업에 충실하고, 화덕의 불꽃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그녀는, 남성적 질서가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방향으로 전진하도록 해주는 일과 연결되어 있는, 화덕의 어두운 쪽만 담당하고 있다. 범행을 사죄함으로써 안티고네는 자신의 과업, 윤리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 관계, 자신의 신들에 대한 봉사를 더 이상 지키지 않고 있다. 여성 젠더의 독특성은, [한편으로는] 저항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적 신들 및 남자들 사이의 전쟁에 대한―모성적?―충실성[헌신]에 굴복하고 있는 이 인물에서 상실되어 버린다. 안티고네는 더 이상 여신이 아니다. 그녀는 남자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신들에 충실하며, 이 신들 때문에 죽는다. 하나의 [여성적인] 과업une tache을 다시 말소하기 위해. 어떤 과업?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의식(양심, conscience)이라는 과업, 여성 젠더에 소속되는 과업, 자신의 모성적 혈통filiation이라는 과업이다. 여성 젠더에 대한 이중적으로 은밀한 이러한 소속에서 박탈당한 안티고네는 또한 남성의 잃어버린 뿌리들에 대한 충실성[헌신성]이라는 점에서도 소멸되어 버렸다.
  개념의 분열은 동일자 내부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개념 안에서 분열은 여성 개념과 남성 개념의 분열로 남는다[이 때 여성과 남성은 언어학적인 의미의 여성과 남성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 ]. 언어는 이러한 분열을 전도시키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분열의] 표시marque를 여성에게 유보시키고, 남성은 이러한 표시 아래에 있는 언어의 질료, 언어의 친숙한 실체로, 그리고 표시 위에서는 절대 정신으로 또는 신으로 존재하게 한다. [남성적 변증법 안에서] 남성은 [여성을] 포함하는 기체(基體, substrat), 여성[의 존재]을 보증해주는 원천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는 반대의 것이 발생한다. 곧 여성은 원천, 기체, 포함하는 것(용기, l'englobant)으로 남고, 남성은 (음성학적, 음운론적, 언어학적인 본성[자연]을 포함하는) 자연 및 자연으로서의 여성적 젠더에 대해 알지 못하는 표시이다. 하지만 전자는 표시, 부적절한 가면, 타자가 덮어씌운 겉치장으로 환원되고, 후자는 질료, 주체(기체, sujet), 포괄하는 절대자가 된다고 가정되어 있다. 언어는 변증법이 기술하는 것을 전도시키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원환은 이러한 전도, 비변증법적이지만, 담론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전도에 의해 닫혀진다. 언어는 보편자의 도구이다. 언어[라는 여성명사]는 하지만 보편자가 아니다. 자연과 결부된 모든 것은 직접적으로/무매개적으로immédiatement 보편적이다. 분절articulation을 경유하는 것은 매개적으로만 보편적이다. 이러한 보편자는 가족의 정신, 성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들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보편적 도구는 시민들이 가족의 독특성의 시각에 대해, 가족의 법들 및 그것의 필연적인 성적 차이의 시각에 대해 중립적/중성적이기를 원한다. 성들 사이의 평등에 대한 옹호는 많은 경우 국가 및 국법들의 이익을 위해 가족 및 성적 독특성을 중성화하려는 기획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는 결국 기술로 귀착되는 우리 시대의 유물론적 전복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법들은 공개적으로 여성을 희생시켰으며, 보이지 않게 남성을 희생시켰다.
  가족의 목표는 독특한 사람, 개인이지만, 이는 우연적인 개인이 아니라 더 이상 가족에 속하지 않게 될 미래의 시민이다. 가족, 젠더, 성욕sexualité의 목표는 보편자로서의 개인이며, 다이몬, 영혼 또는 개인은 우연적인 것들로서 부정된다. 비우연적인 이 개인은 전통적으로 여성, 유/젠더의 보호자에게 귀착된다. 여성들을 어떤 [남성적] 전체의 부분들([여성] 하나 + [여성] 하나 + [여성] 하나 ...)[불어에서 “un”은 남성 부정관사이고, “une”은 여성 부정관사다. 따라서 “un tout”는 “남성적 전체”이고, “une + une + une ...”은 “여성 하나 + 여성 하나 + 여성 하나 ...”가 된다.]로 정의하는 이론적 또는 실천적 사실은 여성들 각자의 고유한 젠더, 그들의 개인성에게 보편적 소명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방식이다. 여성들은 보편적 독특성/전칭 단수le singulier universel에 상응한다. 자신들의 개인성 안에서 여성들은 가장 독특한 것과 가장 보편적인 것을 결합한다. 여성들의 정체성은 자연과 정신의 체계적인 비-분열 안에서, 자연과 정신이라는 이 두 가지 보편자들의 수정/재결합retouche[불어에서 “retouche”는 “수정”, “가필”을 뜻하지만, 단어를 분철하면 “re-touche”, 곧 “다시 접촉함”, “다시 결합함”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안에서 성립한다. 여성은 온전하고 보편적이며, 너무나 온전할 정도로 보편적이다. 우리의 문화는 여기에서도 사물들의 질서를 전도시켜 왔다. 이는 우리의 문화에서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낯설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여성들은 [남성적] 인간들hommes이라기보다는 다이몬, 비우연적인 개체들이다. 또는 그렇게 머물러 있다. 단지 어머니만이 아니라 이미 여성도 문제가 된다. 여성에게 바쳐질 숭배는 우리의 문명에서는―처녀성에 대한 자주 잘못 해석되어온 숭배를 제외한다면―반드시 다이몬, 곧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로서, 근원적으로 분열되지 않은 자연과 정신으로서의 여성 자신인 다이몬에 대한 숭배인 것은 아니며, 드물게조차 이런 숭배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분명 헤겔에 따르면 죽은 [남]자는 마침내 평화를 발견한 자이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 안에서 분열되어 있지 않고 계속적인 투쟁 상태에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또다른 평화, 식물적인 생명력의 성장이라는 평화를 얻게 될 수도 있다. 더욱이 헤겔의 체계 전체는 몇 가지 오류나 근거 없는 논변들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평화와 유사하다. 그의 철학의 일반 모델은 은밀하게 식물적인 모델이 아닌가? 하지만 체계의 내부에서 이 체계의 의식적 전개의 질서를 따를 경우, 독특성에서 벗어남은 죽음의 질서, 죽은 [남]자의 질서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념 또는 신념은 신체와 정신의 분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분열은 여성이 국가에 희생될 때, 남성이 시민성 및 젠더의 관점에서 보면 중성화되어 있는 문화에 진입할 때 작동하게 된다. 사실 독특성의 지양은 성장에 대한 복종에 의해, 자연적인 보편적 리듬에 대한 귀속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 이러한 귀속은 심지어 독특한 죽음보다 더 보편적이다. 분명히 자연의 보편성은 복합적이지만, 자연은 끊임없이 완성되고 생성 중인, 완성되고 열려 있는 모습이며, 자신의 완성 속에서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가족에 빚진 게 없으므로, 생명에 대한 성별화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므로, 직접적/무매개적으로 생성된 자연의 존재는 죽음이다. 자연에 빚진 게 없으므로, 자연에 대한 복귀는 죽음의 질서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곧 자연적이고 가족적이며 여성적인―또는 원한다면, 한밤중의nocturne―정신의 희생은 뿌리내린 존재enracinement의 밤을 개념의 시대의 맹목으로 대체했다. 의식의 대자를 소멸시킨 다음, 남자들,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감각적인 것의 즉자, 감각적인 것이 즉자대자로 생성하는 것을 파괴한다. 이러한 파괴는 정신의 내용을 파괴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축소시킨다. 감각적인 것 그 자체는 정신의 생성에서 거의 사고되지 않고, 사고된다 하더라도 정신의 파토스[“파토스pathos”는 “passion”과 마찬가지로 “정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수동”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 후자의 경우 “정신의 파토스”는 정신이 완전히 개념화해서 포섭할 수 없으며, 사고활동을 위해 정신이 항상 의존하고 복귀해야 하는, 개념의 타자, 사고의 원천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가 아니라 정신의 질료 내지는 실체로서의 감각 지각으로 사고되는 것 같다. 만약 분명하게 선언되고 벌어진 전쟁이 인민을 파괴한다면, 이 전쟁은 또한 의식이 정신의 가능한 내용으로서 감각적인 것의 파괴로 이끄는 좀더 은밀한 전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이는 소음이 우리의 신체 균형에 미치는 충격에 의식이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의식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과거나 미래의 전쟁은 의식이 생명의 자양분이자 생명을 위한 피신처로서의 자연의 파괴에 직면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의식의 주의를 분산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은밀한 파괴는 전쟁을 초래하거나 아니면 전쟁과 맹목적 폭력, 물자부족을 조장할 것이다.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결백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의 명석한 부분을 대표하기(또는 대표할 것이라고 가정되어 있기?[“대표할 것이라고 가정되어 있기?”의 원어는 “représentrait?”이며, 이는 “représenter”라는 동사의 조건법(영어로는 가정법) 형태이다. 이런 의미를 고려해서 “이라고 가정되어 있기”라는 말을 추가했다.])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쪽을 억압한다. 웃으면서, 공손하게 의무에 따라 남자들은 상처를 입히거나 죽인다. 그들은 악에 대해 무의식적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문화를 완결하는 데 도구로 삼았던 절대적 의식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악을 영속시키는 순간에, 그들은 악에 대해 무의식적이다. 하지만 무의식에게 모든 권리를 부여하고, 모든 면죄부를 부여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나는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나의 답변, 정신분석학의 입장도 포함하는 나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세계 전체/모든 사람들tout le monde[불어에서 “tout le monde”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숙어이지만, 말 그대로 하면 “세계 전체”라는 뜻이다.]는 코드화된 언어 현상인 무의식에서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무의식은, 부분적으로는 남성에 의해 다른 젠더 및 자신의 젠더의 그림자, 이 양자가 무의식 안으로 감금된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범죄이기도 한 이 밤의 파토스에 대한 권리를 왜 무의식에게 부여하는가? 다른 젠더가 우리 문화의 경제 안에서 동일한 행동의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하는가? 여러 세기 동안 세계의 [여성적] 일부une partie는 헤겔의 관점에 따르면, 타자에 대해 범죄적이었다. 이는 이 일부분이 세계의 다른 절반의 윤리적 법칙을 깨뜨리거나 침해하고 있음을 뜻한다. 여러 세기 동안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윤리적 의식을 점거/탈취하고서s'empare, 윤리적 의식을 절대적으로 밝혀낼 수 있고, 그것의 진리, 모든 진리를 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여러 세기 동안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인간의 유[젠더]를 그 유의 파토스와 혼동해왔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여정은 우리 문화에서 정신의 이러한 생성에 대해 잘 기술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두 개의 유로서 실제로 인지하는 대신, 다른 젠더에서 유래하는 통찰―즉자적이고 대자적인 통찰―을 받아들이는 대신,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은 자신들이 모든 진리를 지니고 있고 전체에 관해 입법할 수 있는 권리(철학, 법, 정치, 종교, 과학 ...)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기 의식은 행위하자마자 유죄라는 사실, 그것은 분명히 그렇다. 그것은 특히 유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행위를 규정하고, 다른 젠더를 자신의 그림자 안에다 놓아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양가성을 부정하면서 또는 다른 젠더를 이러한 양가성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단순성을 주장하고 본질이 존재하는 그대로 자신에게 발현된다고―하지만 이러한 발현은 사실은 자기 의식이 어떤 대자 안에서 자기로 복귀하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불과하다―주장할 때, 자기 의식은 유죄이다. 게다가 종교적 계시révélation의 내용은, 이러한 계시를 종결/폐쇄시켜야clôture 할 필연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젠더는 자신에게 어떤 신, 아버지 신, 아들 신, 성령 신을 필연적으로 부여할 수밖에 없음을 증거해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계시에 대해 어떤 것도 덧붙여지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 역시 증거해준다. 여성에게는 보호하는 게 범죄였던 반면에, 남성에게는 덧붙이는 게 범죄가 될 것이다. 그녀는 보호할 수 없는 반면, 그는 [덧붙이지 않고] 오직sans plus 보호[보전]해야 한다. 의무는 항상 동일하며, 심지어 언어 안에서도 그러하다. 실체 및 첫 번째 토포스topos[“토포스”는 희랍어로 “장소”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질료”라는 의미에 가깝게 사용된 것 같다. 곧 존재자들이 형성되기 위한 원초적 기반, 모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여성인 반면, 육화[신체화]되고 발현된 기호는 남성이며, 어떤 것도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서는 안된다. 이러한 구분은 닫혀 있어야 한다. 여성이 덧붙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결/폐쇄는 언어의 불가침성으로서 진리의 계시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가? 남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의 정신에 대한 관점에 따를 경우, 이는 궁극적으로 최초의 운동자le premier moteur와 제일 질료la matière première[“최초의 운동자”는 순수 능동성을, “제일 질료”는 순수 수동성을 함축한다. 게다가 전자는 남성 명사이고 후자는 여성 명사이다.]가 서로, 신과 여성이 서로 접촉 불가능하다는 사실로 귀착되는 것인가?
  하지만 남성-신은 남성 젠더의 언어와 마찬가지로comme la langue du genre masculin, 여성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훼손되지 않고 찬양받는 어떤 질료―이 질료가 다양한 장식들로 치장되기는 하지만―로부터 탄생했다. 둘 사이에서 인간/남자가 성립한다. 만약 인간/남자가 자신의 그림자들과 빛들 사이에서, 자신의 밤들과 밝음들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면, 여성은 아무런 표시도 지니지 않은 제일 질료와 남성이 이 제일 질료를 치장하고 가리는 기호들 내지는 표장들 사이에서, 남성 및 그의 세계에 의해 분할되어 있다. 여성은 결코 자신을 재통합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이러한 재통합은 아직도 도래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이 재통합은 아마도 기원에서는 발생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 또는 여러 여성들의 입술들/음순들 사이에서 탄생했음을 보여주는 탄트라 문화를 비롯한 몇몇 문화들이 이를 증거해준다. 히브리 문화, 적어도 카발라는 입술들을 전도된 이중의 yod[ “yod”는 히브리어의 10번째 알파벳 문자이다.], 전도된 이중의 언어로 표시한다.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의 어머니에게서 침묵의 기호의 중요성을 통해, 그녀의 처녀성이 지닌 신성한 성격을 말하고 있으며, 입술들을 결합함/닫음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침묵 이외에, 이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문자는 m이다. 이 자음은 다른 모든 자음의 기원에 존재하는, 가장 완전하면서 또한 가장 모호한 자음이다. 이러한 m의 음성은 인도 문화에 따를 경우, 특히 aum이라는 신성한 음절에서 볼 수 있듯이, 발현되지 않은 것[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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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타인의 사고]에 실었던 여성주의적 비판에 대한 김규항 선배의 (중간) 답변입니다.

 

편지와 답장

진보넷 게시판에서 일어난 여성주의 문제와 관련한 얼마간의 논란을 위해 쓴 '정리 글'. 나와 여성주의 문제에 대한 그간의 논란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 글'로도 읽혀지길 바란다.


그제 밤 어느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는 근래 이 게시판에서 불거진, ‘여성주의에 대해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면서 저에게 비판적인’ 분들의 생각을 저에게 사려 깊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급하게 씌어졌음에도 편지는 그런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담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제 생각을 폭넓게 개진하는 것도 좋지만, 불거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해명하는 게 ‘연대와 존경’을 위해 좀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애초 쓰려던 글을 뒤로 미루고 편지에 답을 다는 방식으로 제 생각을 적어 봅니다. 문장 앞의 이름은 ‘읽기 좋으라고’ 제가 단 것입니다.


(고유미) 안녕하세요? 저는 고유미 라고 합니다.
저는 그저 김규항 님의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근래 진보넷 독자게시판에서 일고 있는 소모적인 '소동'을 김규항 님이 그만 종식시켜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다소 뜬금없는 메일을 보냅니다.
더욱이 내일까지 입장 글을 올리겠다는 글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김규항)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고유미) 2년 전부터 계속된 김규항 님을 둘러싼 여성주의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제가 한 생각이며, 가능하면 내일 입장 글에 이에 대한 입장 혹은 해명이 실리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김규항 님이 여성주의자들의 비판 지점을 비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히려 제 글이 김규항 님에게 그야말로 헛다리 긁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합니다. 다만 진정으로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 싶습니다.

(김규항) 저는 2년 전 ‘그 페미니즘’과 그 글을 보충하는 ‘그년들과 그놈들’을 쓰고 여성주의 문제에 대해 침묵해왔으니, “계속되었다”기 보다는 재연되었다고 하는 게 좀더 정확하겠지요. 어쨌거나 한번은 짚고 넘어갈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고유미) 김규항 님의 여성주의 비판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서, 김규항 님은 김규항 님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지점이 김규항 님의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규항) 제가 ‘감정적인 비난과 인격적인 재단’ 속에서 그런 섬세한 비판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만일 고유미 님처럼 “제 비판의 타당성”을 별개로 인정한다면 그런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예 “제 비판의 타당성”을 무시하는 상태에선 제가 귀 기울일 방법이 없습니다. 제 비판이 ‘여성주의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라 악의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과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유미) 즉 김규항님은 스스로를 '마초'라고 명명하는 대신 '여성주의자'로 명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성으로서 생물학적인 혹은 사회적인 한계 때문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여성주의자'로 명명하는데 주저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규항) 말씀 그대로 ‘자괴감’ 때문입니다. 여성주의를 지지한다고 해서 여성의 억압을 실제 갖지 않는 내가 ‘여성주의자’를 자처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유미) 그러나 김규항님의 평소 여성주의 지지자로서 자신을 규정한 태도를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저도 근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유미) 여성주의 지지자와 여성주의자가 다른 겁니까? (사회주의 지지자와 사회주의자가 다른가요? 혹은 인종차별주의 지지자와 인종차별주의자가 다른가요?) 남성 지식인들은 노동자가 아니면서도 노동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김규항) 개념적으로 다르지만 우리가 말하려는 의미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밝혔듯이 저는 “좌파는 당연히 소수자주의자이며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고유미) 이런 생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김규항님이 스스로를 '마초'라고 명명하는 것은 논쟁에 있어서 '무책임하고 비겁한' 태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여성주의를 비판하면서, 비판 내용에 대한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의 책임은 회피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마초'로서 이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훌륭한 것이 되고 맙니다.

(김규항) 정확한 지적이고 제가 분명히 반성할 부분입니다.
그와 별개로 우리가 함께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비판한 게 과연 ‘여성주의의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여성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주의 영역에서 유발되었으나 이미 전체 사회로 비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영역의 문제가 그 영역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이유는, 그 문제가 그 영역 전체의 것이거나 적어도 그 문제가 그 영역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문제에 대한 비판의 자격을 제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둘째는, 모든 여성주의가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하나인가,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말하자면 ‘절차적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전체 사회운동은 빠른 속도로 보수화합니다. 사회운동의 주류는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다시 말해서 주류 사회운동의 대상은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운동이 ‘시민들의 일상문제’에 천착하듯이 90년대 이후 여성주의는 여성이 갖는 두 가지 억압(계급, 여성) 가운데 ‘여성’에 좀더 집중해왔습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여성의 억압이 계급 문제에 가려지거나 생략되는 일을 바로잡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계급’ 문제를 희석화하는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처럼 주류 여성주의의 대상이 갈수록 중산층 지향적일 경우 중산층 이하의 여성에 좀더 집중하는 대상으로 하는 좀더 진보적인 여성주의가 주류와 분명한 긴장을 이루는 건 당연합니다. 그럴 때 두 여성주의는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라는 건 대등한 두 갈래가 아니라 단지 ‘보수에 편입된 상태’를 뜻합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이런 문제는 서구에서도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비판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고유미) 대신 김규항님이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로 명명했다면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 비판의 내용이 훨씬 정밀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고유미) 또한 "박근혜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진정한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을 반대한다." 이렇게 주장했다면, 불필요한 '주류' '비주류'에 대한 오해는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김규항)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범주 문제’에 대해 조금 부연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여성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침묵’을 비판한 것입니다. ‘주류’라는 표현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사실 ‘여성의 이름으로 박근혜지지’ 같은 엉뚱한 주장은 어느 소수자 운동에서나 나올 수 있습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혹은 ‘소수자의 정서적 연대감을 악용하는 보수파’에 의해서, 좀더 정확하게는 그 둘의 결합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대개 그 소수자 영역 내부에서 비판과 성찰을 통해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지난번 어느 분이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 글을 올려주셨는데, 장애인 운동으로 가정을 해보지요. ‘파시스트의 정치적 자식’이 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 운동의 이름으로 지지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진보적 장애인운동가들이 말 그대로 난리를 냈겠지요. 의견을 담은 매체나 사회적 영향력이 한계를 갖는다면 (그들이 늘 하는 대로) 몸을 묶고라도 시위를 하겠지요.
만에 하나 ‘광범위한 침묵’을 보인다면, 역시 장애인운동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 문제가 됩니다. 반민중적 주장은 어떤 소수자의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내 외부를 막론하고 ‘장애인운동을 위하여’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비판을 “장애인 운동 전체를 비난했다”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제 비판이 “전체 여성주의를 비난했다”는 해석은 제 비판의 대상인 보수적 여성주의자들이 제 ‘비판의 타당성’을 흐리기 위해 해온 말입니다. 그런데 제 비판의 대상이 아닌 여성주의자들이 제 비판을 “비판의 타당성”은 제쳐둔 채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만 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요. 게다가 감정적인 반감에서 “전체 여성주의를 비난했다”고까지 비난하는 게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소수자 운동의 보수 부분은 언제나 소수자들의 ‘정서적 연대감’을 악용합니다. 보수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주의 내부의 비판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약한 수준인 데다, 사회적 비판 역시 ‘정서적 연대감’을 통해 흐려버리니, 결국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게 됩니다. 2년 전의 박근혜 지지론이 여전히 활개 치는 상황은 바로 그 결과인 셈입니다.
‘박근혜 지지론을 말하는 방식’에 대한 지적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 지지론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박근혜 지지론’인 것입니다. 그런 보수적 주장의 확산이 가져올, 여성주의의 보수화, 즉 중산층 이하 여성들의 ‘배제’와 ‘고통’인 것입니다.

(고유미) 여성조차도 여성주의자로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성주의에 대한 외부의 '논평'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링' 안에서의 치열한 자기 연마와 올바른 여성주의를 위한 투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규항님은 줄곧 여성주의 비판 내용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름'에 초점을 맞춰 해명합니다. 김규항님은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 논쟁에 임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는 내부 외부를 가를 수 없습니다. 진보적인 여성주의가 보수적 부분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 전까지는 얼마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비판을 제기하고 저 같은 사람은 ‘비판의 존재’를 부각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략은 서로 간의 신뢰가 회복된 이후의 문제겠지요.

(고유미) 둘째 김규항 님 같은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지식인이 스스로를 너무나 당당하게 '마초'라고 명명하는데 놀랐습니다. 그건 마치 김기덕이 여성에 대한 소름끼치는 폭력을 능청스럽게 영화로 만들어 놓고 그러게 애초에 '나쁜 남자'라고 했잖아 라고 물러서는 비열함이 연상됩니다. 여성들이 어떤 단어에 대해 감성적으로 느끼는 적대감을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규항) 앞서 말했듯, 그 말은 저의 자괴감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단어 자체가 가질 거부감을 좀더 감안하지 못한 건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그 단어에 상처를 받은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고유미) 다음으로 김규항님이 반복해서 지적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박근혜 지지자'들에 대한 방관 내지 침묵에 대한 것입니다. 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성들은 경악했으며, 여러 매체에 열심히 여성 혹은 여성주의를 팔아 박근혜를 지지하는 경향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제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수없이 접했던 그런 비판들을 김규항 님은 하나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규항) 당시 상황은 ‘광범위한 침묵’이라 말하는 게 좀더 보편적입니다. 물론 침묵은 ‘지지’와 다릅니다. 그러나 ‘반대’ 보다는 ‘공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수없이 접했던 그런 비판들”이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그걸 빌미로 여성주의 전체를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부당한 현실, 침묵과 공감을 표시하는 여성주의 부분만 부각되고 비판적인 여성주의 부분은 존재 자체가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에 주목한 것입니다.
제 비판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공감’이 여성주의 전체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켰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의 모호한 상태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거의 모든 한국 교회’(‘주류 교회’도 아니고)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빙자한 상점”이라고 공공연하게 비판해왔는데, 그런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에게서 단 한번도 ‘교회 전체에 대한 비난’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비판의 방식이나 자격 이전에 그런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거의 모든 한국교회’를 내부는커녕 교회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주의자들의 반감이 고유미 님 말씀대로 “제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반감이 전적으로 그것에서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런 반감은 오히려 그런 반감을 갖는 분들의 모호한 상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제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거나 제 비판을 ‘사회적 연대’라 파악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많다는 건 그 사실을 반증합니다.

(고유미) 물론 '한겨례' 같은 유력 일간지에 실리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여성주의로 밥을 먹고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게 마이크를 갖다대지 않고, 김규항님처럼 가끔씩 툭툭 던지는 비판을 우선적으로 실어줄 만큼 김규항 님의 사회적 발언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규항) 저에게 얼마간의 발언력이 있는 건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저의 “사회적 발언력”이 아니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을 압도하는 보수화한 여성주의자들의 “사회적 발언력”입니다.
내부인가 외부인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가 어떤가를 얼마나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의견의 타당성이 어떤가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떻게든 압박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부인한다면 자신의 건전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유미) 여성주의가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해방, 인간해방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부분임을 인정한다면 진정한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김규항님이 여성주의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김규항) 앞서 말한 대로 “좌파는 당연히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드러내도록 하겠습니다.

(고유미) 솔직히 남성진보주의자들보다 일반 혹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내 문제를 훨씬 공감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여성주의를 진정한 진보주의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남성 진보주의자들의 그 몰이해와 편협함에 커다란 벽을 느끼기도 합니다.

(김규항) 여성에게 계급적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동시에 존재하고 좌파남성들의 의식이 아직은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런 ‘공감’은 당연한 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좌파운동과 진보적 여성주의가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운동은 억압에서 해방하는 싸움이고, 운동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억압이 가장 심각한 부분입니다. 좌파는 ‘계급’에서 출발하고 여성주의는 ‘여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가장 억압이 심한 부분은 같습니다. 가장 하층계급이면서 가장 많은 여성적 억압을 갖는 게 누구입니까. 바로 ‘가난한 여성’입니다.
여성주의가 가난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가난한 여성을 우선으로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모든 소수자 운동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건전한 장애인운동이 가난한 장애인, 특히 ‘가난한 여성 장애인’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여성주의에서 ‘진보’가 뗀다면 그 원칙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보수적 여성주의는 그 원칙에서 적대적입니다.
좌파남성과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연대와 존경을 향해 나가는 도정에 있다는 사실에 피차 더욱 진지해져야 합니다. 좌파남성들이 보이는 문제들은 그들의 의도나 입장이라기보다는 오래 시간 길러온 가부장적 관습, 말하자면 ‘못된 버릇’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자신의 이념과 관련이 있다는 걸 미처 모르는 것이지요. 관습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치기 어렵다는 건 고칠 수 없다는 것과 다릅니다. 보다 분명한 건 고쳐서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주의자들이 좌파남성을 불신과 적대감으로 대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저도 소속한 단체가 있지만 현재 좌파 남성 가운데 공공연한 성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게 불과 최근 몇 해 동안의 변화입니다. 성폭력 사건처럼 뚜렷하게 불거진 문제에 대한 변화는 좀더 잠복한 문제들의 변화가 임박했음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여성주의자는 좌파남성의 현재 상태에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파남성이 더욱 변화할 테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그 변화의 어려움을 배려해야 합니다. 여성주의자에게 좌파남성은 적이 아니라 ‘미숙한 동지’입니다.

(고유미)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내가 지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당사자로서의 심층적인 문제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한 접근 혹은 비평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비판이 당사자들에게는 뜬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오해의 책임이 누구인가를 떠나서 오해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아울러 어떤 사회적 의견을 제출하는 데 있어, 부정적 부분을 비판하는 방식(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보다는, 건전한 부분을 부각하고 힘을 실어주는 방식을 사용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고유미) 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작성한 글에 제가 염려하는 부분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걱정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입장 글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규항)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제 의도는 여성주의에 대한 ‘연대와 존경’입니다. 결국 이 공간에서 불거진 문제는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도를 수용하는 방식 사이의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문제로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고유미 님이 권유하신 대로 제가 제 자신을 ‘여성주의자’라 명명하는 건 그런 노력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급하게 씌어졌지만 매우 일목요연한 편지였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모든 기자들께 : 이 글을 맥락과 관계없이, 혹은 맥락을 생략한 채 인용하거나 사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Posted by gyuhang at 2004.05.27 12:3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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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배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 특히 록이나 블루스, 재즈 이런 음악에 아주 미쳤는데, 어느 때부턴가는 전혀 이런 류의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기특한 사고의 전환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90년대 이후 대학가에 불어닥친 록음악 바람에 좀 심드렁한 기분이었고, 그것을 <진보>와 연관시키려는 심사도 잘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최근에는 또 재즈가 문화적인 아우라를 띠고 유행을 타는 것 같더군요. 아도르노처럼 독하게 비판할 만한 능력도, 생각도 없지만, 김규항 선배 글에는 얼마간 공감이 가서 퍼왔습니다.

 

 

한국 록에 관한 사적인 기억들

(며칠 전 컴퓨터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 2년 쯤 전에 지큐에 쓴 글인데 아직 날짜를 확인하지 못했다. 제목 그대로 기억나는 록 뮤지션들을 짤막짤막하게 메모한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이렇게 생각했나?' 싶은 부분도 있다. 가슴 편집장 박준흠 씨가"재미있게 읽었다."는 소감을 준 걸 보면 못봐줄 정도는 아닌 듯.)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이른바 "록은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에 대해 말이다. 한국에서 록은 대개 저항적이긴 커녕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굳이 비껴가고 딴지 놓는 어떤 것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록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70년대 말은 유신 정권의 말기다. 그 세상에서 그 록들이 내뿜는 낭만성은 참으로 한심하다. 민주화의 기대를 짓밟은 군부 파시스트들이 광주에서 양민을 도살하고 10여 년 동안 손수 한국을 통치하는 동안 대체 록이 무슨 놈의 저항을 했던가. 90년대 들어 대중문화 영역에 대거 투신한 일군의 인텔리들이 지껄여 대기 시작한 "록은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말엔, 록의 영토를 '구라'로 지배하려는 그들의 음험한 욕망과, 자신의 활동 구역에 모종의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들의 비린 허세가 담겨 있다. 록은 어떤 신령한 저항성이 담겨져 있는 음악이 아니라 단지 불량한 음악이며 그 불량함은 저항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이 그 사회적 함의가 거세된 채 수입되는(포크에서 이 즈음의 흑인음악들까지) 한국적 문화전통은 유구하고, 한국에서 록이 어떤 정신을 확보하는가는 두고 볼 문제이자 애써 볼 문제다.

좌파라는 이가 '록을 기억'한다 해서 모종의 비장한 록담론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일찌감치 다른 기사로 넘어가시는 편이 낫겠다. 이 글은 이 글의 제목 그대로 산울림에서부터 근래 발견한 몇몇 인디밴드들까지, 25년 여에 걸친 한국 록에 관한 내 사적인 기억들이다. 록의 불량함은 모든 불량한 이로 하여금 록에 대해 말하게 한다. 아유레디!

산울림 : 1977년 그들은 책이나 좋아하는 중학 3학년이던 나를 습격했다. 산울림은 내가 이른바 그룹사운드(이 시골이발소 풍의 이름은 이제 밴드로 개명되었다)에 이끌리게 된 계기였다. 카세트 테입 속 해설지엔, 그 앨범을 낸 음반사 사장인가 하는 사람이 데모 테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소감을 "AFKN에서나 들을 수 있는 사운드"라 적고 있었다. 배호 정도는 되어야 가수라 생각하는 기성 세대는 산울림을 '음치'라고 했으며 당시 기준으로 산울림은 분명히 음치였다. 하여튼 산울림은 완전한 새로움이었다. 나는 드럼이라는 악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으며 산울림은 내게 드럼 선생이기도 했다. 두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일은 처음엔 차력의 일종처럼 보였으나 이내 드럼 세트의 각 부분이 따로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기나긴 베이스 독주나 '불꽃놀이'의 장타령 풍 리듬이 매일 밤 나를 매혹했다. 막 배운 마스터베이션과 함께.

사랑과 평화 : 산울림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밴드였다. 최이철 김명곤을 중심으로 한 사랑과 평화는 요즘 말로 하면 전문 세션맨들의 밴드였다. 산울림이 캠퍼스적 아마추어리즘(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나 어떡해' 는 산울림의 곡이다)을 바탕으로 했다면, 사랑과 평화는 원숙한 테크닉의 밴드였다. '장미'에서 보여주는 연주의 조직력과 드럼 필인은 지금 들어도 훌륭하다. 곧 도래한 디스코 시대에 그들의 펑키한 리듬감은 뇌가 없는 댄스곡처럼 밋밋해지고, 오늘 '최장수 밴드'로 지루하게 남았다. 2집(1979)의 '얘기할 수 없어요'는 김현식의 노래들과 함께 내 불변의 십팔번이다. 듣는 것보다는 불러야 맛이 나는 곡.

활주로(송골매) : 바야흐로 밴드의 시대였다. 산울림과 사랑과 평화 같은 밴드의 성공은 대학 밴드들의 활황과 맞물렸다. 그러나 밴드 체제로 유행가가 아닌 록을 하는 밴드는 항공대 밴드 활주로가 유일했다. 1978년 해변가요제에서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로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입상한 활주로는 나원주/이응수라는 저작자와 배철수라는 텁텁한 보컬리스트의 조합으로 한국 록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한국적인 록을 구사했다. 활주로는 송골매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데 구창모가 보컬로 들어올 무렵 원래의 색깔을 잃는다. 신중현과 산울림을 재조명한 인탤리들이 이 밴드를 소흘히 넘어간 건 건 그들의 한심한 안목 덕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밴드는 활주로의 '세상만사'로 출발한다.

작은거인 : 밴드의 이름은 바로 밴드의 리더 김수철이다. 1979년, 작은 체구에 지미 핸드릭스처럼 기타줄을 물어뜯는 김수철의 '일곱색깔 무지개'는 한국 최초의 하드록 사운드였다. 작은거인 역시 대학 밴드(광운대)였지만, 노인들에게서도 '잘 논다'는 동의를 얻을 만큼 음악적 설득력이 뛰어났다. 김수철의 재능에 대한 사회적 공인은 이 유니크한 로커로 하여금 록의 검약한 본성(록은 독특한 것이어서 편성이 간략할수록 강력하기도 하다. 작은 거인은 산울림처럼 3인조였다.)를 망각하고 교향악단을 사용하는 대작을 좇거나 민족음악에의 어설픈 경도를 낳게 했다. 아시안게임 음악은 김수철에게 어떤 만족을 남겼을까.

신중현 : '미인'이 실린 앨범 신중현과엽전들(1974)은 분명 한국록의 명반이지만, 70년대 말에 대마초(한국에 연성마약을 허하라!) 복용 혐의로 활동 중지 상태였던 신중현은 록의 선배라기 보다는 잘나가던 가요 작곡가로 여겨지곤 했다. 어쨌거나 그는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로 복귀했다. 엽전들이 3인조였음을 생각한다면 세명의 관악 파트에 두명의 여성 보컬을 포함 자그만치 9명으로 조직된 대편성 밴드인 뮤직파워는 신중현의 달라진 음악적 지향을 드러낸다. 신중현에 대한 이런저런 찬사들은 대개 맞거나 좋은 말이지만, '아름다운 강산'이 한국록 불후의 명곡이라는 주장과 '록의 아버지'가 된 90년대 이후 신중현 음악에 대한 아첨에는 동의를 못하겠다. 내 생각에 '아름다운 강산'은 그저 '불후의 대곡'일 뿐이며, 그의 근래 음악들은 '록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봐주기 민망한 것들이다.

마그마 : 1980년, 대학가요제 생방송을 보며 대체 그룹사운드는 언제 나오나 기다릴 때 마그마가 나왔다. "어둠 속에 묻혀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여리고 느린 앞부분에 낙심하는 순간, 귀를 의심케 할 만한 강력한 사운드가 폭발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회자는 "세명이서 어떻게 저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지 신기하다"고 감격했다. 마그마의 사운드는 80년대 중반 시나위에 가서나 등장할 헤비메탈 사운드를 구현한 선구적인 것이었다.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리더 조하문은 곱상한 얼굴을 들이민 채 '이밤을 다시 한번'을 애원하게 된다.

들국화 : 라이브만 하는 대단한 밴드가 등장했다는 풍문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같은 곡도 물론 좋지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곡자체로나 연주면에서나 가히 명곡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들국화만큼 보편적인 지지를 받은 밴드가 있었던가. 들국화는 재결합하여 새로운 히트곡이 없음에도 여전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들국화에 대한 이런저런 피력들은 오히려 상투적일 뿐이다.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시나위 : 1986년 내가 입대하던 해 시나위가 등장했다. 아버지 신중현에게서 "테크닉 면에선 나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던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밴드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강한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리프와 솔로, 무겁고 단순한 드러밍이라는 헤비메탈 사운드의 전형이다. 헤비메탈이 록의 분방함을 벗어난 지나치게 양식화된 음악으로 보는 편인 나는, 나중에 김바다가 보컬을 맡던 시절 리메이크 된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더 좋아한다. 열린 하이해트 심벌이 촬촬거리는 소리는,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기분을 낳는다. 시나위는 말 그대로 한국 헤비메탈/하드록의 산 역사이며 근래 8집도 여전히 훌륭하다.

부활 : 내가 80년대의 대학생이거나 80년대의 청년이던 80년대 내내 나는 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매판문화의 일환이었다. 나에게 3년 동안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원치 않던(난 평범한 군대 생활을 바랬다) 드러머 노릇을 하게 되면서다. 어느 날, 리드 기타를 치던 고참이 휴가길에 사온 테이프를 틀어놓곤 "기타가 죽이잖냐. 방위새낀데 존나게 노래 잘하지." 했다. 김태원의 둔중하면서 몽환적인 기타와 이승철의 끈적이는 보컬에 빠져드는 순간, 조인트를 세게 채였다. "개새끼가 고참 말에 대답도 안해."

한대수 :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히피 한대수는 감옥 같은 조국을 떠난다. 그가 1989년 14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앨범 무한대는 록이었다. 리메이크된 '하루 아침'의 가사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유일한 문명비판적 음악가의 세계관을 되새기게 한다.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하는 보컬에 이은 어쿠스틱 기타, 그 다음 "베이스 들오고" "기타 쫌 울고" "장구우 때려" 하는 한대수의 명령어에 베이스와 기타와 드럼이 차례로 들어오는 '고무신'은 한대수의 음악가로서의 위엄을 한껏 표현한다. 내 다섯 살짜리 아들 김건은 이 곡을 무척 좋아하는데, '고무신'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장구때려'라 하면 얼른 알아듣는다. 그에게 한대수는 '장구때려 아저씨'다.

H2O : 내 기억으론, H2O는 재미교포 젊은이 몇몇이 만든 밴드였다. 멤버가 대부분 바뀐 H2O 3집(1993)은 음악평론 하는 후배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에 뒤늦게 들었다. 강기영 김민기 박현준의 연주야 당연히 훌륭하고 마크 코브린인가 하는 엔지니어까지 부른 사운드는 거의 완벽하다. '나를 돌아보게 해'는 가사도 깊고 반복해서 듣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이 앨범은 대중적으론 철저하게 실패했고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크래쉬 : 나는 바하를 좋아하는 이유(구성의 명료함)와 같은 이유로 스래시 메탈을 좋아한다. 크래쉬는 대개 영어로 노래한다. 영어만이 메탈적이라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지만(덜 메탈적이더라도 무슨 소린지 알아듣는 편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크래쉬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양식적 완성에 있고 나 역시 그런 차원에 한정해서 이 밴드를 존중한다.

노이즈 가든 : "저 친구 기타 정말 잘 치는군." 1996년, 노이즈 가든이 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그들의 라이브를 구경했다.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블루스(알다시피 블루스는 록의 뿌리다)의 필을 짙게 깔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 장인이었다. 레인보우의 대곡 '스타게이저'도 연주했는데 리치 블랙모어 정도는 오래 전에 구어 먹은 솜씨라 나는 얼마나 흐뭇했던가.

델리 스파이스 : 델리 스파이스의 보컬은 참으로 록답지 못하다.(물론 이런 말은 정당하지 않다) 특히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음악의 보컬리스트라면 일단 걸걸한 목소리여야 한다는 입장이다.(물론 이건 심각한 편견이다) 그런 내가 델리 스파이스의 연주에, 이를테면 '챠우챠우' 후반부에 어느덧 빠져드는 걸 보면 델리 스파이스는 만만치 않다.

허클베리핀 : 대중음악에서 지적 능력을 표현하는 결정적인 수단은 가사이며, 허클베리핀은 지적이다. 이 밴드의 특징은 여성 보컬리스트의 중성적 매력이다. 남상아(3호선 버터플라이으로 옮긴)가 그랬고 현재 이소영도 그렇다.얼마 전 나온 2집 '나를 닮은 사내'는 세련되었고 내가 운전할 때 가장 많이 듣고 다니는 음반이다.

풀린개 : 라이브를 한번 보고 나중에 가사를 얻어 본 풀린개는 말하자면 한국의 RATM이다. 이런 밴드가 있다는 건 단순한 문화적 다양성의 의미를 넘어 안도감을 준다. 음악이 아니라 메시지가 목표일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혁명 너희가 원하는 것은 시나리오/ 바꾸기를 원하는가 정말 원하는가/우리가 바랬는가 세상 뒤집는가/시나리오를 원하는가 개소리 떨지마라/그런 것 따윈 없어 너부터 바꿔봐라"

모든 록이 이런 식이라면 더도 덜도 아닌 스탈린의 세상이겠지만, 이런 록이 이렇게 없는 세상은 더욱 문제다. 세상이 불량하다는 사실엔 모두들 동의하면서, 불량한 음악 록은 왜 세상보다 덜 불량한 것일까.

Posted by gyuhang at 2004.05.23 12: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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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만나뵈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연세는 더 많으신데 외모는 더 젊어보이셨습니다(아마 젊은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리신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 날 식사 자리에는 제가 아는 다른 선배분하고 또 다른 젊은 철학도가 한분 더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두 분 다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57학번이시니까 우리 나이로 하면 67세이신데, 철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정치부에 근무하다가 75년에 해직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뒤 다시 언론계로 복직하지 않고 거의 30여년 동안을 독서와 사색으로 지내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왜 [한겨레 신문] 창간될 때 복직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보니까, 빙그레 웃으시면서 두려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느낀 두려움은, 간단히 말하자면, 기자로서,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언론 통제가 극심하게 이루어지던 당시에 기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순응하면서,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교묘한 언어들로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맞서 저항하는 길, 신문사를 그만 두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당신이 이 마지막 길을 실행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 때문에, [한겨레 신문]으로부터 끈질긴 동참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입사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날 대화의 초점 중 하나가 이 세번째 길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과 관련하여 세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중국의 백화문의 사례이고, 둘째는 리영희 선생(선생님은 당시의 언론인들 중에서는 리영희 선생만이 유일하게 이 세번째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지젝, [Self-Interview](The Metastases of Enjoyment)에서 지젝이 말한 "말의 윤리"라는 사례였습니다(선생님은 올해 나온 지젝의 Organes without Bodies를 벌써 구해 읽으셨을 만큼, 지젝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이 세 가지 사례들 모두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것의 빼어난 사례들이라는 것이지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원하는 진실한 내용을 전달하되, 그 때문에 전해야 할 내용의 함량이 줄어들거나 또 하나의 권력이나 관행으로 고착되지 않게 하기.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이 이런 일을 해줄 수 있을지, 또 당신이 새로 신문기자가 되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한겨레 신문]에 입사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 [한겨레 신문]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신문]은 결국 “문민 정부”의 한계, “50년만의 정권 교체”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선생님의 예견을 입증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결국 그 선택(들)로 인해 해직 이후부터 따지면 30여년 가까운 세월을 독서와 사색으로 소일하신 셈인데, 당신께서는 “돈 별로 안들이고 시간 잘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세월의 고독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헤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러한 “선택”은 당신의 헤겔 해석과도 맞물려 있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 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헤겔 저작만이 아니라 헤겔 연구서들까지 폭넓게 섭렵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의 문제, 헤겔이 청년기에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심했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법의 실정성을 극복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로 집약하셨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법은, 법의 실정성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지만, 또 그 법이 단지 법으로, 실정적인 법으로만 남아 있게 되면, 그 법을 처음 정립했던 힘, 원칙은 퇴락하고 전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상적인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떻게 법을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헤겔에게는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헤겔의 이런 문제의식은 단지 헤겔의 문제의식일 뿐만 아니라, 근대 사상, 근대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알튀세르에 관해, 문화혁명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 하시는 이런저런 말씀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독일의 저명한 헤겔 연구가인 디이터 헨리히(Dieter Henrich, 1927-)가 발굴해낸 “반성의 논리Logik der Reflexion”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시는 게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이 문제를 한번 연구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셨는데, 사실 전부터 얼마간 막연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던 터라, 선생님의 권유를 받자 매우 반가웠습니다. 

* 병아리 모이만큼 찔끔찔끔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만(-_-;;;;),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에서 글을 줄여야 할 듯합니다.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영 쉽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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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페이퍼] 쓰기가 뜸했는데, 당분간 다른 일 때문에 [리뷰]나 [페이퍼]를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아, 틈새를 메우는 의미에서 지난 주에 만나뵌 독자분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한달 전쯤 어느 독자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로 짐작컨대 60대 정도인 이 독자분은 출판사에서 연락처를 얻었다고 하시면서, 성함을 밝히신 뒤 먼저 좋은 책([헤겔 또는 스피노자])을 번역해 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헤겔 또는 스피노자] 독자 중에 60이 넘은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 그랬고, 처음 들어보는 성함이어서 더 그랬습니다. 철학계에 몸담고 계시는 분 중에 그 연세에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만한 분이라면, 제가 직접 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그 분의 성함은 제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제 당혹감을 눈치채셨는지, 곧이어 당신께서는 아마추어 독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번역에 관해 몇 가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게 또 놀랄 만한 일인데, 그 분이 지적해 주신 것은 헤겔 인용문 중 독일어 원문의 쪽수가 두 어군데 잘못된 게 있다는 것이었고, 제가 독일어 원문 쪽수를 표시하면서 몇군데는 <독어본 누락>이라고 해놓은 게 유감스럽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헤겔 또는 스피노자]를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헤겔 저작의 독일어본 쪽수 표시 중에서 몇 군데는 <독어본 누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러운 일인데, 이렇게 표기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곧 제가 책머리의 [일러두기]에 표시해둔 것처럼, 마슈레가 사용한 헤겔 저작의 불역본이 참조하고 있는 독어본과, 제가 갖고 있는 헤겔 저작집(Suhrkamp 출판사에서 펴낸 20권짜리 저작집), 그리고 임석진 교수의 국역본이 참조하고 있는 독어본 전집(Felix Meiner)이 다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마지막 전집의 경우 이전의 헤겔 저작 편집본에 수록되어 있던 내용들이 재편집되고 상당히 첨삭되어 있어서, 인용문의 쪽수를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교정 작업은 지난 해 12월부터 시작되었는데, 1월 초로 예정된 출판사의 인쇄 날짜에 맞춰 책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상당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갖고 있는 주어캄프 판본 위주로 독일어 원문의 쪽수를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주어캄프 본에 빠져 있는 독일어 원문은 일단 <독어본 누락>이라고 표시해놓은 뒤, 나중에 재판을 내면 다른 판본에서 원문을 찾아 빠진 쪽수를 채워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에 쫒기던 그 때 생각으로는, 그렇게 해도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책이 나오고 보니까 이 문제가 줄곧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분께 이 문제를 지적당하고 보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원문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책을 읽으신 것을 볼 때,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그 분이 (헤겔) 철학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문제점을 더 지적당하지나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번역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으니, 책을 다 읽은 뒤에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망신은 그래도 면했구나 안도하면서, 식사 초대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 뒤 3주 정도 지난 뒤에(그러니까 지지난 주) 이 독자분께서 다시 전화를 하셨습니다. 책을 잘 읽었노라고 말씀하시면서, 피에르 마슈레의 철학적 능력을 칭찬하고 번역의 노고도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번역과 관련하여 두 어 군데 미심쩍은 점을 물어보시고, 지난 번에 약속했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공짜로 저녁을 얻어먹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고,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시간과 약속 장소를 정하고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만나뵙고 식사를 했습니다.

* 이것도 글이라고 쓰기 힘들어서(-_-;;) 2부는 내일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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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5-1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e still have such a reader!..

balmas 2004-05-2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헤겔 또는 스피노자]의 번역료로 지금까지 받은 돈이 대략 150만원 가량 됩니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많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이 책을 번역해서 이런 독자분을 만날 수 있었으니 돈 몇푼으로 따지기 힘든 보답을 받은 셈입니다.
나이 어린 독자들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 욕심이 과한가요?^^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번역을 마다 않는 건 결국 이런 독자들(과의 소통)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합니다.

포월 2004-05-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나이가 어릴테니(?) 과한 욕심이 채워지는 셈입니다. ^^;

balmas 2004-05-2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렇게 영계(^^)란 말입니까? 제가 말한 나이 어린 독자는 20대 초반의 독자를 가리키는데 ... ^^ 그나저나 3편은 언제 올리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