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참수위기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의 절규다.

두려움에 질린 그 호소를 들었을 때 받은 첫 느낌은 결연했다. "올 것이 왔다"였다. 찬찬히 돌아 보라. 한국 정부는 6월 18일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발표했다. 아랍 방송들이 곧장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알 자지라>도 마찬가지다. 다음날 이라크의 최대 일간지 <아자만>도 1면에 4단 크기로 편집했다. 특히 이 신문은 "한국군의 파병은 연합군에 세번째로 많은 병력"임을 보도했다.

이라크 민중이 <알 자지라>와 <아자만>을 보고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는 자명하다. 김선일씨가 파병 공식 발표에 앞서 피랍되었으되, 발표 뒤 참수위기에 놓인 상황을 보라. 무장단체 또한 또렷한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파병철회와 한국군 철군을.

그래서다. 올 것이 왔다고 느낀 까닭은.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성찰해보아도 충분하다. 거듭 새겨보자.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김선일씨의 참수위기는 올 것이 온 것처럼 '필연'이 아니다. 얼마든지 그 '올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던가. 추가파병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고하지 않았던가.

이미 지난 칼럼 '피로 물든 서울 도심을 상상하라'(6월 16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경고했듯이, 사태의 책임은 추가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권에 있다. '마드리드 참사'를 거론하며 그 책임이 여론을 무시하고 파병을 결정한 스페인 집권당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지 않았던가. 노 정권이 국민 여론에 귀기울여 추가파병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사태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두번째 이유이다. 올 것이 아직 다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선일씨의 피랍과 참수위기는 '시작'일 따름이다. 피로 물든 마드리드처럼 '피로 물든 서울의 아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라. 미국의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그 가능성을 실감나게 입증하지 않았던가.

알 카에다는 9·11 때 한국의 미국 시설물을 동시 테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기를 납치해 공중에서 폭파하거나 일본이나 싱가포르 또는 한국 내 미국 목표물에 충돌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 검토의 '프로그램'은 빈 라덴이 묻어두었을 뿐이다.

심지어 6월22일치 신문 사설에서 <조선일보>도 테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 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참으로 가증스럽지 않은가.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언죽번죽 '성숙한 대응자세'를 주문하는 저 신문이.

그렇다. 문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김선일씨의 참수 위기는 '신호'이다. 설령 그가 다행히 목숨을 구하더라도 신호는 살아있다. 그 신호 속에 얼마나 큰 참사가 담겨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라크 민중 그리고 우리 민중이 어떤 실천을 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다. 명토박아 둔다. 올 것이 온 게 아니다. 필연이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재앙'이다. 역사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반드시 보복해 왔다. 그 역사가 '신호'까지 보냈는데도 이를 묵살한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노무현 정권에게 파병철회를 진지하게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가, 그리고 저 17대 국회의원들이 거부한다면, 민중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 그것은 김선일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다.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 눈물의 절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이어야 옳다.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2004/06/22 오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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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2004.6.18 - 6.24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상영일정은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이곳을 참고...

오늘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다녀왔다.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과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 두 작품을 보았다.

강연은 이번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김정아님(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 해주셨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보았다. 사실 파병문제로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그냥 참았다.

요리스 이벤스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얼렁뚱땅 정리모드..강연내용과 자료집을 토대로 요약 정리한 것으로 무언가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면 몽땅 내 책임;;;)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89년까지 20세기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영화감독이다. 다양한 실험영화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다큐멘터리까지 잡종 영화인이라 불릴 만큼 활동 영역이 넓었다고 한다. 거대자본을 위한 홍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반면 세계노동운동을 위한 선정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그의 신념은 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던 전략가이기도 했다.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돈을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 <필립스 라디오> <인도네시아가 부른다>-, 로버트 카파,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에른스트 부쉬, 피카소, 헤밍웨이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아옌데, 주은래, 호치민 등 수많은 정치지도자와도 교류를 가졌다.

그는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 불릴만큼 20세기 사회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다. 소련, 쿠바, 칠레, 스페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세계 곳곳의 격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그가 가장 애착을 느꼈던 곳은 중국이었다. 1939년에 중국을 배경으로 <4억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찍은 후, 1976년에는 중국 문화 대혁명을 다룬 12시간의 12부작 다큐멘터리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를 찍었고,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인 1988년에는 그의 영화 전반을 정리하는 <바람의 이야기>를 중국에서 찍었다.

사진사였던 할아버지, 사진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카메라와 친해졌던 이벤스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적 추구를 하게 된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이벤스는 단편, 과학, 카툰, 홈무비등 영화 미학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영화 청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때 기회를 얻어 소련을 가게 된다. 소련 방문 이후 그는 작품 세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과 관련을 맺게 된다. 그는 또한 영화에 대한 대중매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변혁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고 그 투쟁을 대중과 공유하는 요즘으로 치면 비디오 액티비즘과 유사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중 하나는 시적 영상.  바람과 구름은 그의 시적 영상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초기작 <비>에서 시작하여 그의 시적 표현은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그리고 그의 유작 <바람의 이야기>로 집대성 된다. 고흐, 샤갈, 보티첼리, 중국 서예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자기 작품에 인용하는 것도 그가 즐겨사용한 방법.

그의 한 쪽 눈은 삶에 깃들여져 있는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 쪽은 불의와 가난 그리고 착취가 가득한 모순적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요작품

1928. 다리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경이. 산업화의 주역인 기차를 타고 또다른 주인공인 (움직이는)다리를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는 것. 오늘날까지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작품으로 실험영화에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

1929. 비
비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작품으로 그의 시적 영상을 잘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

1931. 필립스 라디오
필립스사로부터 회사홍보영화 제안을 받고 작업한 작품이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거대 공장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노동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노동자들의 모습, 생산라인의 움직임과 함께 구성해 마치 교향악처럼 만들어 냈다.

1933. 신세계
네덜란드 간척사업을 다룬 영화

1934. 보리나제
벨기에 탄광 노동자 파업을 다룬 영화.

1937. 스페인의 대지
프랑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민병대의 투쟁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 당시 '너무 끔찍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 헤밍웨이와 함께 작업.

1939. 4억의 사람들
일본과 장개석 정부 사이의 전쟁을 필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만든 작품. 로버트 카파와 함께 작업. 국민당 정부의 엄격한 검열하에 촬영된 영화로 공산당과 마오쩌둥에 관한 이야기는 드러내질 못했다.

1946. 인도네시아가 부르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의 식민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향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벤스에게 의뢰한 작품. 그러나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가기전 인도네시아는 자체적으로 해방 선언을 하게 되고 연합국에는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자 이벤스는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와 연합국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고 그후 얼마동안 네덜란드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1954. 강의 노래
세계노동조합연맹이 제작비를 댄 작품으로 세계 6대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피카소등 유명 예술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1957.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프랑스 세느강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벤스의 시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는 작품.

1963. 발파라이소
아옌데의 후원으로 1962년 산티아고를 방문한 이벤스는 산티아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 이론과 제작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칠레의 독특한 항고 도시에 관한 영화 <발파라이소>가 탄생.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시적인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1968. 위도 17도
그의 세번째 부인인 마셀린 로리단과 함께 베트남전을 기록한 영화. 16mm 경량 카메로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을 기록.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혁명전을 치르는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6.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1988. 바람의 이야기
이벤스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성찰한 내용이자 세계 속에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고찰한 영화. 마르셀린 로리단과 공동으로 작업. 중국을 배경으로 바람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서, 그리고 문화 사회 혁명의 변화들을 나타내는 은유로서 포착하고자 했다. 1988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상영되어,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현장 구매, 예약만 가능.. 오늘 본 바람의 이야기는 매진에 입석까지 있었다.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는 오늘 보았고..
예매한 영화는

20일 8시 필립스 라디오, 스페인의 대지
21일 8시 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24일 8시 강의 노래.

좀 무리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아니면 또 언제보나 싶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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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스페인의 대지

스페인의 대지
1937년 / 52분

스페인 내전을 영화로 담겠다는 이 프로젝트는 이벤스가 뉴욕에 머물던 1936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본래 스페인의 내전을 찍은 뉴스 영화를 편집하여 제작하기로 했었다.그러나 아카이브 자료들을 대출하는데 높은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자료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았고, 프랑코으 ㅣ정치적 입장을 찬성하는 것들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벤스는 스페인으로 직접 날아가 이 전쟁을 다룬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 것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잇는 도로에 인접한 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페인 내전의 최전방의 광경, 프랑코의 폭격으로 인한 공포와 죽음, 그리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농부들의 투쟁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영화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벤스는 시가전의 현장뿐만 아니라 전방의 다른 측면, 즉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존 페르노의 인상 깊은 촬영과 헬렌 반 동겐의 파워풀한 편집,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해설이 만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편집을 맡은 헬렌 반 동겐의 세삼한 작업은 이벤스가 지시한 세 가지 지침을 따라 완성되었다. 첫째, 각 쇼트를 유동적이고 연속적으로 편집할 것, 둘째 매우 감각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할 것, 셋째 감독이 가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을 충분히 드러낼 것이었다.

영화의 시연은 백악관에서 있었다. 그 자리엔 루즈벨트 대통령과 가의 부인, 헤밍웨이와 이벤스가 참석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화의 내용과 완성도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며칠 후 LA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열린 친구들의 조언으로 인해 영화에 큰 변화가 생긴다. 당시 영화 해설을 맡은 이는 오손 웰즈였으나 그의 목소리가 이 영화에 비해 '너무 아름답다'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헤밍웨이가 해설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엔 미국과 유럽에서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이벤스는 자신의 영화가 그의 원칙대로 완성되었다고 확신했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영화평에 대해 이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은 파시즘과 반파시즘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반드시 확고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극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감독은 반드시 어느 한 편의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들도 마음속에 매우 단순하지만 한 가지 입장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당신은 이쪽이나 저 쪽 편에 가담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총에 맞을 테니까요. 아니면 군대의 감옥에 감금될 수도 있겠죠. 양쪽 편에 가담하는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은 군인과 마찬가지로 감독에게도 적용됩니다."

- 자료집에서.


감독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드려내는 아주 선동적인 영화였다. 어제본 <위도 17도>와 같은 관점의 영화로 자신들의 땅을 떠나지 않고 계속 저항하며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스페인의 대지>에서는 수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황무지가 된 땅에 물을 공급하면 수도 마드리드로 10배 넘는 식량을 보낼 수 가 있고 그건 바로 우리의 힘이 될 거라는 그들의 신념.

헤밍웨이의 목소리는 강건하고도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하지만 오손 웰즈의 나레이션 또한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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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필립스 라디오

필립스 라디오
1931년 / 36분

네덜란드 최초의 유성영화.
필립스 라디오 공장에서 라디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우선 그 옛날 진공관 라디오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굉장히 신기했다;;;
라디오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부품들을 보여주는 화면, 음악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편집등 영화적 재미도 풍부한 영화. 모던 타임즈의 다큐멘터리 판이라고나 할까...
놀라운 생산공장이나 기계설비가 아니라, 그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얼굴과 움직임을 담아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자료집에 해설이 잘 되어 있어서 조금 옮겨 본다.

네덜란드 최초의 유성 영화이자 아방가르드 계열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본래 이 작품은 아인트호벤의 필립스 공장의 라디오 개발과 생산을 홍보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벤스는 필립스사가 규정한 조건들을 거부하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그의 미적이고 시적인 스타일로 표현하였다.

루 리히트벨트의 음악과 공장의 소음을 조합한 이 영화는 네덜란드 최초의 유성 영화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사운드 트랙은 음악과 공장의 소음을 결합한 초창기 실험 영화의 선구적인 예로 꼽힌다. 영화의 이미지들은 기본적으로 리듬과 음의 고저, 그리고 음악의 분위기에 맞춰 편집되었다. 이러한 사운드 트랙 효과에 관해 이벤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복적인 사운드는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자, 이러한 노동의 무자비한 면을 관객들에게 알리고자 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작품은 이벤스의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노동과 산업의 진보에 초점을 맞춘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혼합된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 바로 전에 다녀 온 러시아 여행은 영화 제작 방식이나 내용 면에 있어 이벤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필립스 라디오>는 이벤스가 러시아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인간과 노동에 대한 문제와 그의 독특한 미적 형식이 결합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벤스는 노동자의 얼굴에 나타난 육체적인 고통을 클로즈업 기법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현대적인 조립라인의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포현하였다.

20년대 제작된 <다리>같은 작품은 하나의 대상을 표현주의 형식으로 탐구한 반면, <필립스 라디오>는 인간의 노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런 입장에 관해 그는 "기계가 아닌 노동하는 인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생산력을 지닌 노동자들의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라디오 진공관을 만들기 위해 유리를 입으로 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유명한 시퀀스는 유리 부는 사라의 양 볼에 묻은 하얀 가루들 때문에 우습고 재미있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는 단 한순간도 쉴 수 없는 현대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벤스의 의도가 담긴 이미지이다.

촬영과 편집이 완성되는 데 총 넉 달의 시간이 걸렸다. 이 영화는 이벤스가 처음으로 제작한 사운드 필름이며 헬렌 반 동겐과 처음으로 함게 편집한 작품이기도 하다. 회사 홍보용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몇몇 필립스 지점들은 영화에 담긴 사회적 내용 때문에 상영을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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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두번째 부분입니다.

 

데카르트와 자기원인 개념의 발명

  이처럼 『윤리학』에서 나타나는 자기원인 정의의 독특성 및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의 이례성, 그리고 『윤리학』 이전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기원인 개념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의 저작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의미와 용법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플로티누스 또는 데카르트에서 처음 등장한다[서양철학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역사에 대한 소개로는 Hadot 1971이 간략하지만 요령이 있다. 플로티누스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문제에 관해서는 Narbonne 1993; Beierwaltes 1999를 각각 참조하고, 데카르트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중요성에 관한 논의로는 Gilson 1930 중 “Une nouvelle idée de Dieu” 및 특히 Marion 1986; 1996을 참조. 자기원인 개념이 플로티누스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데카르트에서 비로소 형이상학적 중요성을 얻게 되었는지는 특히 Narbonne 1993과 Marion 1996 사이의 논쟁의 핵심 쟁점이다. 나르본은 하이데거의 존재-신-학적 문제설정에 따라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의 독창성을 강조하려는 Marion 1986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에네아데스』 6권의 텍스트 분석 및 데카르트와의 비교를 통해 플로티누스야말로 자기원인 개념의 창시자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Marion 1996은 플로티누스(또는 프로클루스)에게는 1) 자기원인의 작용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고, 2) 자기원인이 원리로, 곧 근거율로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 문제가 있다고 재반론을 펴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의 논의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 우리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것은 데카르트의 용법인데, 데카르트는 『성찰』에 대한 논박에 답변하면서 이 개념을 ⌈첫번째 답변⌋과 ⌈두번째 답변⌋, ⌈네번째 답변⌋ 세 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상세한 논의는 ⌈첫번째 답변⌋과 ⌈네번째 답변⌋에서 제시되고 있다.
  첫번째 사례는 『성찰』에 대한 카테루스(Johanes Caterus)의 첫번째 반론에 대한 첫번째 답변에서 볼 수 있다. 우선 데카르트는 자기원인의 가능성을 긍정하지만, 이는 시간적인 관점에서 이해된 작용인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나는 어떤 것이 자기자신의 작용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 ‘작용적’이라는 용어가 자신의 결과들에 시간상으로 앞서는, 또는 그것들과 다른 원인들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은 현재의 맥락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원인의 개념은 엄밀히 말하면 단지 원인이 자신의 결과들을 생산하는 한에서만 적용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에 앞서지 않는다.”(AT VII, 108―강조는 인용자) 데카르트의 주장은 왜 스피노자가 『소론』 2부 17장 5절에서 자기원인 개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곧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용례에 따라 작용인 개념에 대한 시간적 이해를 배제하고 있으며, 이처럼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라 파악된 자기원인 개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데카르트는 어떤 의미에서 작용인 모델에 따라 자기원인 개념을 생각할 수 있는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빛은, 왜 그것이 실존하는지(cur existat) 물을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곧 그것의 작용인이 탐구될 수 있다는 것, 또는 만약 작용인을 갖고 있지 않다면, 왜 그것이 작용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cur illa non indigeat) 물을 수 있다는 것을 지시해 준다(dicta). 따라서 만약 내가 어떤 것도 자기자신에 대해 작용인이 자신의 결과와 맺고 있는 것과 동일한 관계를 맺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분명히 최초 원인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소위 ‘최초’ 원인의 원인에 관해 질문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나는 결코 다른 모든 것의 최초 원인이었던 것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거대하고 소진될 수 없는 권능(potentia)을 소유하고 있어서, 최초로 실존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고, 지금도 자신의 보존을 위해 어떤 도움도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자기자신의 원인인 어떤 것이 실존할 수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AT VII, 108-109)

이 글에서 데카르트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우리는 모든 것에 관해 그 실존의 이유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곧 일종의 충족이유율, 근거율의 최초 형태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작용인으로서의 자기원인 개념은 최초 원인의 가능성을 근거짓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된다. 최초 원인은 자기원인의 형태로만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무한소급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원인은 자신의 실존 및 실존의 보존을 위해 다른 어떤 것의 도움도 요구하지 않는 “거대하고 소진될 수 없는 권능을 소유한” 존재자, 곧 신이 실존하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
  첫번째 측면은 데카르트 철학 체계의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데, 이는 이 정식이 인과율을 피조물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신 자신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자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따라서 존재의 가장 보편적인 원리로 확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답변⌋의 공리 1은 이를 매우 명시적으로 보여 준다. “모든 실존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것의 실존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 게 가능하다. 이 질문은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실존하기 위해 어떤 원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본성의 광대함이 왜 그가 실존하기 위해 아무런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 또는 이유(causa sive ratio)이기 때문이다.”(AT VII 164-165) 이는 답변들의 데카르트를, 유명한 다섯가지 신존재증명 중 두번째 길(secunda via)에서 볼 수 있듯이[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은 『신학대전』 1부 두번째 문제 제 3절(Iª q. 2 a. 3 co.)에 나와 있다(Aqunias 1888; 1993). 이에 관한 논평으로는 특히 Gilson 1989 67-97쪽 및 Scribano 2002의 여러 곳 참조.], 작용인의 범위를 피조물의 영역에 한정시키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구분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인과성의 범위를 관념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성찰』의 데카르트와도 구분시켜 주는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이처럼 최초로 자기원인 개념을 “실정적인 방식으로”(modo positive) 사용함으로써, 또는 자기원인 개념을 발명함으로써(장-뤽 마리옹), 1630년 이래 자신의 형이상학의 숨은 원리로 작용해 온 영원진리 창조론과 갈등에 놓이게 된다. 왜냐하면 영원진리 창조론의 형이상학적 핵심이 일체의 가지성의 원리를 넘어서는 신의 파악 불가능한 초월성에 있다면, 답변들의 자기원인 개념은 이처럼 인과율 또는 근거율을 신 자신을 포함하는 보편적 원리로 격상시킴으로써, 신 자신조차도 이 원리에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번째 측면에서 볼 수 있듯이 데카르트는 1630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신의 “아주 거대하고 소진될 수 없는 권능”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이 신은 데카르트가 “왜 그것이 실존하는지 물을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존재의 보편적인 원리로 확립해 놓은 이상 이미 인과율 또는 근거율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답변들』의 다른 텍스트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이러한 급진성을 완화시키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자기원인 개념의 명시적인 형용모순적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신의 초월성, 곧 영원진리 창조론이라는 자신의 형이상학의 핵심 원리와의 갈등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아르노의 ⌈네번째 반론⌋에 답하는 ⌈네번째 답변⌋에서 앞서 제시된 자기원인 개념을 하나하나 되풀이해서 검토하면서 그 급진성을 누그러뜨려 자기원인 개념은 “엄밀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quodammodo), 또는 “유비적으로”(per analogiam)만 작용인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결과들과 구분되지 않는 원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작용인이 아니라는 것 ... 을 나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로부터 이러한 원인이 어떤 의미에서도, 작용인과 유비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실정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 따라나오지는 않는다. ...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것이 자기자신에게 실존을 줄 수 있는지를 물을 때, 이는 어떤 것이, 실존하기 위해 작용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러한 본성 또는 본질을 갖고 있는지 묻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의 빛에 의해, 아주 광대한 본질을 지니고 있어서 실존하기 위해 작용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자는, 마찬가지로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모든 완전성들을 소유하기 위해서도 작용인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각하기 때문이다.(AT VII 240-241)

이 글에서 데카르트의 논점은 첫째, 자신이 생각하는 작용인은 엄밀한 의미의 작용인이 아니라 유비적으로 파악된 작용인인데, 둘째, 이러한 유비적인 의미로 파악된 자기원인은 “실존하기 위해 작용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러한 본성 또는 본질”을 지닌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유비적으로 파악된 작용인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말하는 자기원인이 자기자신에 대한 시간적 선행성이라는 터무니 없는 부조리와도 관계가 없고, 또 “자신의 결과들과 구분되지 않는 원인”이라는 관점과도 관계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약 이 후자의 경우라면, 신의 초월성, 또는 신의 탁월성에 관한 신학적 관점에 당장 위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둘째 측면으로부터, 데카르트가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자기원인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작용인만이 “자신의 결과들을 생산하는” 원인의 능력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며, 따라서 “아주 거대하고 소진될 수 없는 권능을 소유”한 신의 권능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마리옹이 지적하듯이 결과들로서의 관념들의 영역에 한정되었던 『성찰』의 신존재증명, 따라서 그 선험적, 또는 “존재론적” 성격이 불분명했던 신존재증명을 선험적 신존재증명으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다(Marion 1996, 154-160쪽 참조).
  지금까지 살펴본 답변들에서 데카르트의 논변은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1) 데카르트에서 자기원인의 문제는 신존재증명, 그것도 선험적 신존재증명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했다는 점이다. 2) 그리고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영원진리 창조론과는 달리 신을 포함한 일체의 존재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로서의 인과율을 확립하고, 따라서 “원인 또는 이유”(causa sive ratio)라는 형태로 나중에 라이프니츠가 발전시킬 충족이유율의 최초 형태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3) 하지만 데카르트의 이러한 노력은 두 가지 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데카르트가 인과율을 보편화하고 자기원인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 기초하고 있는 모델은 작용인 모델인데, 이는 데카르트 자신의 계속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의 선행성”이라는 한계, 또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한 데카르트의 이러한 시도는 신 자신을 보편적인 인과율의 적용대상으로 만듦으로써, 1630년대 이래 데카르트 철학의 근본원리로 작용해 온 영원진리 창조론, 특히 그 형이상학적 핵심으로서 신의 초월성 테제와 충돌하게 된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데카르트의 시도가 ⌈네번째 답변⌋에서 제시된 유비적인 해결책이지만, 이는 어쨌든 인과성에 준거하고 있는 이상, 신을 보편적인 인과율에 귀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의 독특성

  지금까지의 논의가 앞서 우리가 『윤리학』의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제기했던 물음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줄까? 우선 우리가 답변들에서 데카르트의 논의와 관련하여 참조했던 마리옹의 답변을 들어보자. 마리옹은 스피노자가 실제로는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정의, 기존의 개념적 내용을 단순히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Marion 1996, 147쪽). 그에 따르면 이는 자기원인 개념이 보여주는 놀라운 특징인데, 왜냐하면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적어도 플로티누스에서 수아레즈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자들이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던 자기원인 개념이, 스피노자 다음부터는 더 이상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없고 그냥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수아레즈까지 자기원인은 사유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지만, 스피노자 다음부터는 더 이상 이것에 관해 사유할 만한 것이 남지 않게 된다.”(같은 글, 153쪽). 이는 데카르트의 개념적 발명과 스피노자의 단순한 활용을 대비시킴으로써 데카르트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수사법적 논변인데, 어쨌든 우리는 앞에서 스피노자가 이 개념을 발명하지도 않았고, 또 그가 『윤리학』 1부의 정의 1에서 이 개념에 관해 독창적인 내용을 제시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마리옹이 말한 것처럼 스피노자가 “이 개념을 활용했으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같은 글, 147쪽)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는 단지 어떤 의미에서만 그럴 뿐이다.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왜 스피노자는 자신이 발명한 개념이 아님에도, 그리고 이를 새롭게 정의할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활용할 목적이었음에도, 이 개념을 『윤리학』 1부의 첫번째 정의에 위치시켰을까? 우리가 보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는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신존재증명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자기원인 개념이 실체(정의 3)나 신에 대한 정의(정의 6)가 제시되기에 앞서 정의 1에 제시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신과 결부되어 제시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정리 12의 증명에서 비로소 자기원인과 신은 결부된다. 그러나 이는 신의 실존이 증명된 이후의 일이다). 자기원인이 신과 결부되지 않고, 또 신존재증명의 맥락에서 사용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데카르트 자신의 용법만이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라이프니츠에 이르는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의 맥락에서 전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자기원인 개념을 반박한 철학자 또는 신학자들 모두는 단지 이 개념이 자기모순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이 개념이 신의 초월성이나 신의 무한성과 어긋나기 때문에 이를 반박했으며[예컨대 다음과 같은 수아레즈의 논변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절대적으로 말하거니와, 우리는 선험적으로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이를 선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신의 실존의 원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그가 이를 갖고 있다 해도, 신은 우리가 (말하자면) 그의 원리들로부터 출발하여 그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정확하고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는다.”(Simpliciter loquendo non posse demonstrari a priori Deum esse, quia neque Deus habet causam sui esse, per quam a priori demonstretur, neque si haberet, ita exacte et perfecte a nobis cognoscitur Deus, ut ex propriis principiis (ut sic dicam) illum assequamur) Suarez, Disputationes Metaphysicae XXIX, s.3, n.1, t. 26, p. 47(Marion 1996, 165쪽에서 재인용).], 반대로 데카르트는 선험적 신존재증명의 가능성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자기원인 개념을 실정적인 개념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이 개념을 발명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반대로 이 개념의 발명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이 개념을 활용했다는 데 바로 스피노자의 독창성이 있는 게 아닌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윤리학』에서 이처럼 처음부터 신과는 독립적으로 자기원인 개념을 제시하고, 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개념이 그 전통적인 논의의 장으로부터 독립하여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에서 이 개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작용하는가? 우리가 보기에 이 질문에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다.

1) 초월성에 대한 비판

  앞의 텍스트 분석은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정의가 특이한 문법적․의미론적 비규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윤리학』 1부인 ⌈신에 대하여⌋에서 자기원인 개념의 용법은 전통적인 신존재증명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이는 자기원인의 용법이 『윤리학』에서는 신학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 개념이 발명되는 맥락을 고려해 볼 때 매우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정의에 나타나는 익명적인 “id”라는 지시사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스피노자가 정의 1을 통해, 찬성과 반대에 관계 없이 자기원인이라는 표현은 항상 절대자로서의 신에 준거함으로써만 의미를 지녔던 당대의 논의 맥락[이를 잘 보여주는 한 사례가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와의 서신교환이다. 이 서신교환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경우에는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의 사용자가 스피노자가 아니라 올덴부르크라는 점이다. 곧 스피노자가 두번째 편지에서 “이것[실체]은 그 본질 자체로부터 실존한다”(quod sit de ipsiis essentia existere)(G IV 8)라고 말하고 있는 데 대해 올덴부르크는 “왜냐하면 이 정리는 모든 실체를 자기원인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Haec enim Propositio omnes Substantias causas sui statuit)라고 답변하고 있다(올덴부르크가 스피노자에게 보내는 3번째 편지(G IV 11)). 더욱이 올덴부르크는 “어떤 것도 자기자신의 원인일 수는 없기 때문에”(cum nihil possit esse causa sui ipsius)(같은 곳)라고 말함으로써, 자기원인 개념의 불가능성에 관한 견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는 적어도 그런 가설을 한번 제시해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신학적 기능에서 벗어난 자기원인 개념은 어떤 효과를 산출하며, 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비신학적인 방식으로 사용될 때 자기원인 개념은 첫째, 초월성을 배제하는 기능을 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선험적 증명에서 초월성에 대한 부정과 완전한 가지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이끌어 온다. 곧 우리는 앞서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은 선험적 증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제시되었지만, 이는 역으로 신의 초월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는 데카르트가 제시한 자기원인 개념이 보편적 인과율을 확립함으로써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가지성의 원리를 확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자신의 초월성의 원리 때문에 유비적인 것으로 제한시킨 이러한 원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 이를 『윤리학』의 첫번째 정의로 제시하고 있다[사실 스피노자가 『소론』에서 선험적 신존재증명의 맥락에서 자기원인 개념을 사용할 때에도 이는 신의 가지성을 부정하는 아퀴나스에서 유래하는 신학적 논변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고 있다. 곧 스피노자는 전통적인 신학자들 및 철학자들은 신의 본질을 구성하는(또는 “그것을 통해 신이 구성되는”) 속성들과 신에게만 속하지만 신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는(또는 “그것 없이는 신이 신일 수 없는”) 특성들 내지는 고유성들(propria)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유와 종차에 따른 정의만이 참된 정의라고 간주하는 데서 비롯하는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유와 종차에 따른 정의는 최고유로서의 신을 불가지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세계에 대한 참된 인식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와 다른 진정한 논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진정한 논리는 스피노자가 『지성교정론』에서 말하고 있는 “원인에 의한 인식”(85절) 또는 “발생적 방법”이며, 이는 『윤리학』을 인도하는 핵심적인 방법론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좀더 자세한 논의는 『소론』 1부 7장을 참조.]. 사실 데카르트의 자기원인 개념에서 나타나는 애매성은, 이 개념이 데카르트가 1630년 이래 자신의 신학의 불변적 기초로 삼고 있는 신의 초월성 및 전능성(omnipotentia)과 모순을 빚는다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자기원인 개념을 『윤리학』의 첫번째 정의로 제시하는 것은 자기원인 개념이 내포하는 완전한 가지성을 확립함으로써 신의 초월성의 여지를 제거하고, 신과 피조물 사이의 공통성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게루의 관점이기도 하다. 게루는 자기원인을 실체 자체가 아니라 실체의 한 특성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자기원인의 기능은 실체를 정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성을 확립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Gueroult 1968, 41-42쪽 참조.].

2) 내재적 인과관계의 확립

  하지만 자기원인 개념의 보다 중요한 측면은 이런 부정적 의미보다 실정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곧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자연(Natura)은 어떤 초월적이거나 외재적인 원인에 의해 생산되지도 존속하지도 않으며, 자연 자신의 합리적․내재적 활동을 통해 실존한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가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그 이전의 철학 전통과 달리 “모든 인과성의 원형으로, 그것의 본래적이고 전체적인 의미”(Deleuze 1999, 87쪽)로 제시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중세 및 근대의 철학적 신학의 전통에서 자기원인 개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항상 작용인의 모델 위에서 사고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작용인의 모델에 따라 사고할 경우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외재적인 관계로 사고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자기원인에 대해 적용하게 되면, 자기원인은 모순적인 개념이 되거나 기껏해야 유비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피노자에서 일차적인 인과관계는 작용적 인과관계,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타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내재적 인과관계이다(“신은 모든 사물의 타동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E I P18)).[“Deus est omnium rerum causa immanens, non vero transiens.”]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피노자는 타동적 인과성에 따라 이해되어온 작용인 개념을 내재적 인과성에 따라 개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스피노자의 고유한 역량(potentia) 개념이다. 사실 역량 개념은 『윤리학』 1부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서, 스피노자는 “신의 역량은 신의 본질 자체이다.”[“Dei potentia est ipsa ipsius essentia.”](E I P34)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스피노자에서 역량 개념은 현실태와 잠재태를 구분하는 전통적인 신학과 달리 실존할 수 있는 힘, 항상 현행적인 힘으로 제시된다. “신의 역량은 신의 활동하는 본질과 다르지 않다.”[Dei potentiam nihil esse, praeterquam Dei actuosam essentiam.](E II P4s) 그런데 이처럼 역량을 신의 본질과 동일화하고[이는 논쟁적인 문제이다. 게루 같은 이는 역량은 신의 특성(proprium)의 하나일 뿐 신의 본질로 볼 수 없다고 보는 반면(Gueroult 1968, 375쪽 이하 참조), 들뢰즈와 마트롱, 미니니 등은 각자 상이한 방식으로 역량을 신의 본질과 동일화한다. Deleuze 1969/Deleuze 2003; Matheron 1991a; 1991b; Mignini 2000 참조. 피에르 마슈레의 경우는 게루와 입장을 같이 한다. Macherey 2004 참조.] 항상 현행적인 힘으로 파악하는 것은, 데카르트(및 어느 정도까지는 아퀴나스)의 신 개념에 대하여 중요한 비판적인 의미를 갖는다. 데카르트에서 신과 피조물 사이에는 존재론적으로 양의성(兩義性, équivocité)이 성립하며, 따라서 신은 피조물에 대해 초월적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에서 신의 역량 개념은 바로 이러한 신의 초월성을 표현해 주는 개념으로 사용되며, 이 경우 역량 개념은 일차적으로 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리킨다. 곧 신의 역량이 절대적이라면, 이는 신이 모순율이나 수학의 법칙 같은 영원진리들을 자유롭게 창조하고, 심지어 이것들을 하려고만 했다면 자유롭게 창조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역량은 모순율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고 절대적인 역량이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다면, 신의 역량은 무엇보다 어떤 것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를 자유롭고 무관심하게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데카르트의 이러한 생각을 잘 표현해주는 한 사례로 [메슬랑에게 보내는 1644년 5월 2일자 편지]를 들 수 있다(AT IV 118); 마슈레 2004, p. 267. 아퀴나스는 데카르트처럼 신과 피조물 사이의 양의성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신의 역량에 대한 관점, 곧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는 점에서는 데카르트와 유사성이 있다. Summa Theologiae I, q. 25, Aquinas 1888; Aquinas 1993 참조.].
  반대로 스피노자는 자기원인 개념을 통해 신과 피조물 사이의 공통적인 가지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따라서 역량 개념 역시 더 이상 자유롭고 무관심한 결정 능력으로서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량 개념, 신의 본질로서의 역량 개념은 자연이 외부의 초월적 원인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기자신의 힘에 따라 실존한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역량은 바로 이처럼 자연이 스스로를 생산하고 실존하게 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정적이고 현행적인 역량 개념을 통해 자기원인 개념은 가지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인식근거(ratio cognoscendi)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실존을 정립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존재근거(ratio essendi)의 의미도 얻게 된다.

3) 비-근거로서의 자기원인

  그러나 이 경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자기원인에서 자기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자기를 정립하고 자기를 생산하는 이 자기는 처음에 어떻게 해서 실존하게 되는가? 자기원인이 자기-정립적이고 자기-생산적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기원인 개념은 자기모순적인 것이 아닌가?
  이러한 반론은 사실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가 두번째 신존재증명과 관련하여 제기했던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것이 자기자신의 작용인이라는 것은 발견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자기자신보다 선행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용인들을 따라 무한하게 소급해 가야 한다면, 최초 원인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신이라 부르는 최초의 작용인이 실존한다는 점을 긍정해야 한다.”(신학대전』 1부 두번째 문제 제 3절 Iª q. 2 a. 3 co.)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 이 세계에서 발견되는 작용인의 질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근거짓는, 또는 적어도 이를 시작하는 최초의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게 아퀴나스의 논변이다. 이는 아퀴나스의 논변은 다른 신존재증명과 마찬가지로 근거의 정초라는 맥락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의 독창성이 존재한다면, 그는 『성찰』에서는 관념들의 인과성에 따라, 그리고 답변에서는 보편적인 인과성에 따라 선험적으로 신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는 데 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결국 이러한 사고노선과 동일한 지반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완전한 가지성과 역량의 실정성에 근거한 첫번째와 두번째 답변이 아직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의 좀더 근원적인 함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는 특히 두번째 답변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두번째 답변은 역량의 실정성을 통해 자기원인을 궁극적인 존재의 근거로 설정함으로써 결국 본의 아니게 자기(Sui)라는 주어/주체를 가정하고 있고, 이를 통해 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내재적 인과관계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외재적․초월적 관계는 배제하지만, 자기원인 개념을 여전히 궁극적 정초의 문제, 자기정초의 문제로 이해함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월성을 끌어들이고 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들뢰즈처럼 자기원인을 모든 인과관계의 원형으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은 모든 인과성의 원형이 된다고 말할 때, 궁극적으로 어떻게 인과성의 이중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이 점에서는 마슈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Macherey 1992; 2004 참조). 들뢰즈는 스피노자에서 인과관계는 수직적 인과관계와 수평적 인과관계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고, 『윤리학』 1부 정리 26(“어떤 것에 작업하도록 규정되는 사물은 필연적으로 신에 의해 이렇게 하도록 규정된다. 그리고 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사물은 자기 스스로 작업하도록 규정할 수 없다.”(Res, quae ad aliquid operandum determinata est, a Deo necessario sic fuit determinata; &, qua a D대 non est determinata, non potest se ipsam ad operandum determinare))에서 스피노자 자신이 직접 이를 확인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인과관계 자체를 궁극적 근거의 문제와 분리시키는 것이며, 이 경우에만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이 지니고 있는 독창성이 좀더 잘 부각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발리바르의 논의가 제일 설득력이 있다. Balibar 1996/Balibar 2004 참조.]. 
  하지만 다시 정리하자면,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이러한 궁극적인 근거정초의 의미로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원인 개념이 정의, 그것도 첫번째 정의로 제시되고 있다는 데서 우리는 이 개념이 일체의 증명의 맥락, 논리적 요청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스피노자의 초기 저작 이래 기하학적 설명방식에서 자기원인 개념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검토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스피노자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자신의 철학을 기하학적 설명 모델에 따라 제시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자기원인 개념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우선 이 개념은 『소론』 ⌈부록⌋에서는 공리로 제시되고 있다. “자기원인인 것은 그 자체로 한정될 수 없다.”(G I 114) 그런데 1661년 올덴부르그에게 보내는 2번째 편지에서는 다시 이를 정리의 의미로 제시하고 있다. “선생님의 첫번째 질문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제가 여기서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둘째, 실체는 생산될 수 없으며, 그것의 본질에는 실존함이 속해야 한다는 점”(G IV, 8―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다시 『윤리학』에서 이는 정의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공리는 자명하게 인식되는 것을 뜻하고(따라서 스피노자는 『소론』에서는 “흔히 말하는” 자기원인의 의미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는 증명되어야 할 명제를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하면(따라서 스피노자는 이 당시부터 자기원인 개념을 독자적으로 문제삼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윤리학』에서 이 개념이 정의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스피노자가 이 개념을 자명하게 인식되는 것도 증명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을 증명이나 논증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궁극적 근거정초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함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기원인 개념이 궁극적 근거의 문제와 무관하다는 것은 스피노자의 근거율의 독특성을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하여] 정리 11의 신존재증명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근거율 명제를 제시한다. “모든 사물에 대해, 그것이 실존한다는 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비실존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원인 또는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Cujuscunque rei assignari debet causa, seu ratio, tam cur existit, quam cur non existit] 이 명제의 독특성은 우리가 이를 라이프니츠의 근거율 명제와 대비시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자연과 은총의 원리』(Principe de la Nature et de la Grâce) 7절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근거율 명제를 제시한다. “왜 무가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Leibniz 1996, 228쪽) 라이프니츠의 이 원리와 대비해 볼 때 스피노자 근거율의 고유성은 무와 실존을 동등한 두 개의 항으로 정립하는 게 아니라, 비실존, 곧 무를 이미 실존의 한 양태로 포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첫째, 스피노자에게 무는 가능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 논리적 근거, 인과적 원리는 항상 이미 일어난 있음, 존재함이라는 사태 이후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왜 정리 11에서 자기원인이 증명의 근거로 사용되지 않고, 대신 이것에서 파생된 근거율 테제가 사용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은 무엇을 뜻하는가? 스피노자에서 자기원인은 이러저러한 존재자의―또는 스피노자의 고유한 어휘를 사용하자면―사물(res)의 필연적 실존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궁극적 정초를 뜻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도 필연적 실존 그 자체를 의미한다. 곧 이는 누구에게 귀속되기 이전의, 누구의 실존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있음이라는 사태 자체이다. 이 사태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가지성이 성립한다는 의미에서 합리성의 궁극적 질문으로서 왜라는 질문이 전제하는 사태이며, 따라서 근거율 이전에 일어나는 사태이다.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에서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이라는 규정, “그것 말고 달리 ~일 수 없음”(non potest ~ nisi)라는 규정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아울러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이라는 규정은 라이프니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가능태로서의 본질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설정이 스피노자에게는 부재함을 가리킨다. 본질은 항상 이미(“영원하게”(aeternum)) 실존을 함축하고 있으며, 실존은 항상 이미 본질의 행위, 현행적인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기원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자기라는 단어, 자기원인이라는 어휘만을 놓고 본다면, 이는 한편으로는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이 각자 나름대로 지적한 바 있는) 언어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의 신학적․철학적 어휘를 빌려와 이 어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신학적․철학적 논의의 장을 개조하려고 했던 스피노자의 고유한 논증전략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암묵적으로 자연(Natura)의 외부, 자연 이전에 성립하는 형이상학적 무를 가정하고 있는 궁극적 근거에 관한 문제설정과 무관하며, 이러한 문제설정에서 파악할 때만 자기원인 개념이 자기모순적인 것으로 보일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자기모순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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