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만나뵈었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연세는 더 많으신데 외모는 더 젊어보이셨습니다(아마 젊은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리신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 날 식사 자리에는 제가 아는 다른 선배분하고 또 다른 젊은 철학도가 한분 더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두 분 다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57학번이시니까 우리 나이로 하면 67세이신데, 철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정치부에 근무하다가 75년에 해직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뒤 다시 언론계로 복직하지 않고 거의 30여년 동안을 독서와 사색으로 지내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왜 [한겨레 신문] 창간될 때 복직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보니까, 빙그레 웃으시면서 두려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느낀 두려움은, 간단히 말하자면, 기자로서,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언론 통제가 극심하게 이루어지던 당시에 기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순응하면서,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교묘한 언어들로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맞서 저항하는 길, 신문사를 그만 두는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력의 통제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당신이 이 마지막 길을 실행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 때문에, [한겨레 신문]으로부터 끈질긴 동참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입사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날 대화의 초점 중 하나가 이 세번째 길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과 관련하여 세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중국의 백화문의 사례이고, 둘째는 리영희 선생(선생님은 당시의 언론인들 중에서는 리영희 선생만이 유일하게 이 세번째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지젝, [Self-Interview](The Metastases of Enjoyment)에서 지젝이 말한 "말의 윤리"라는 사례였습니다(선생님은 올해 나온 지젝의 Organes without Bodies를 벌써 구해 읽으셨을 만큼, 지젝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이 세 가지 사례들 모두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것의 빼어난 사례들이라는 것이지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원하는 진실한 내용을 전달하되, 그 때문에 전해야 할 내용의 함량이 줄어들거나 또 하나의 권력이나 관행으로 고착되지 않게 하기.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이 이런 일을 해줄 수 있을지, 또 당신이 새로 신문기자가 되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한겨레 신문]에 입사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 [한겨레 신문]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신문]은 결국 “문민 정부”의 한계, “50년만의 정권 교체”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선생님의 예견을 입증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결국 그 선택(들)로 인해 해직 이후부터 따지면 30여년 가까운 세월을 독서와 사색으로 소일하신 셈인데, 당신께서는 “돈 별로 안들이고 시간 잘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그 세월의 고독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헤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러한 “선택”은 당신의 헤겔 해석과도 맞물려 있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 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헤겔 저작만이 아니라 헤겔 연구서들까지 폭넓게 섭렵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헤겔의 문제, 헤겔이 청년기에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심했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법의 실정성을 극복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로 집약하셨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법은, 법의 실정성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지만, 또 그 법이 단지 법으로, 실정적인 법으로만 남아 있게 되면, 그 법을 처음 정립했던 힘, 원칙은 퇴락하고 전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상적인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떻게 법을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헤겔에게는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헤겔의 이런 문제의식은 단지 헤겔의 문제의식일 뿐만 아니라, 근대 사상, 근대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듯했습니다. 알튀세르에 관해, 문화혁명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 하시는 이런저런 말씀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독일의 저명한 헤겔 연구가인 디이터 헨리히(Dieter Henrich, 1927-)가 발굴해낸 “반성의 논리Logik der Reflexion”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시는 게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이 문제를 한번 연구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셨는데, 사실 전부터 얼마간 막연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던 터라, 선생님의 권유를 받자 매우 반가웠습니다. 

* 병아리 모이만큼 찔끔찔끔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만(-_-;;;;),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에서 글을 줄여야 할 듯합니다.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영 쉽지 않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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