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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며칠전에 김영하 작가의 낭독회에 다녀왔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아마도 그 낭독회에 가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낭독회에 다녀와서 나는, 민수라는 인물을 한번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다.
김영하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 계간지 리뷰를 통해 데뷔했을때부터 읽었다. 그 당시 국내작가들의 글에 흠뻑 취해 즐거운 탄성을 질러대던 때였다. 그의 작품은 이후로 많은 문학계간지를 통해 읽거나 그의 책을 통해 읽었다.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골치아플 필요도 없이 쏙쏙 내용이 들어왔던 때였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턴가 그들(국내작가)의 작품에서 계속되는 반복된 느낌, 소재나 주제면에서 늘 제자리를 오가는 글에 질려 손을 놓고 말았다. 새책이 나오면 구입하려다가도 문학계간지에 연재되던 소설이나 단편을 다시 출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구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활발한 작품을 내던 작가들 중에서 살아남은 몇몇 작가 중 한사람으로 기억하는 작가가 [김영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낭독회에 가보기로 했고 때마침 부산에서 열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목소리로 민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민수, 그가 궁금해졌다.
퀴즈쇼. 20대 백수 이민수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가 특별히 잘하는 거라곤 퀴즈방에서 잡학상식을 자랑하는 정도다.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집도 잃고 기거할 공간마저 빼앗긴 처지지만 편의점 알바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창도 없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한달치 방세를 걱정해야하는 신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지에 몰린 사람같지 않다.
그는 80년대생이고 20대지만, 70년대생이고 30대인 나와 혹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청년실업문제야 하루이틀 있어온 일도 아니고, IMF로 직격탄을 맞은 세대가 90, 91학번들이니 그 연장선에 있는 80년대생과 별반 다를바 없다. 나의 혹은 우리의 친구들은 취업을 하지 못해 대학원진학을 하고 석박사가 되고서도 시간강사자리도 겨우 얻으면 다행이고, 40대를 바라보는 지금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며, 그러다보니 사귀던 이성친구도 떠나고, 결혼도 늦어지고, 그런 것이다. 그래도 80년대생들은 좀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준비없이 IMF를 맞았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준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부추겼던 사회가 어쩌면 하나밖에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한건 아닌지.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비록 아바타나 닉네임으로 가려진 '나'기는 해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제 기량을 제대로 뽐낼 수 있는 사이버공간은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장소다. 그들이 사이버가 아닌 현실의 사회에서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자화상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