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숨바꼭질 - 우리아기 까꿍놀이
애플비 편집부 엮음 / 애플비 / 2006년 12월
품절


아이가 10개월이 되었어요. 지금 한참 까꿍놀이에 재미를 붙였답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물건 뒤에 숨은 동물이나 사람을 찾아내면서 까꿍놀이를 한답니다.

주황색 모자를 들추면 무엇이 있을까요?

펄럭거리는 코끼리 귀를 만지고 있네요.
의성어 의태어가 적절하게 사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어주면서 까꿍놀이를 해보아요^^

앗, 소방관 아저씨도 있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외국아이들이라서 조금 불만이에요. 애플비의 카드에도 외국아이들 사진이죠?

아이와 까꿍놀이를 하기에 좋은 책이에요. 그런데, 혹시 애플비의 터치 앤 필 카드를 갖고 게시면 다른 책을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터피엔 필 카드의 기법과 똑같아서 아이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잇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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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그네스 선생님을 읽은 후에, 몇가지 생각을 더해본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야." (p.34)

듣기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반대지. 성적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렸잖아. 혹시라도 저 말을 곧이들을 청소년이 있을까?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 - 보지는 않았고, 제목만 안다 - 는, 그 제목만으로도 이슈가 되었지만, 살다보니 행복은 성적순이더라구. [행복]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은, 좋은 성적 - 잘 나가는 대학 진학 - 고액 연봉 입사 - 화려한 결혼 - 뭐 이렇게 나가는 공식아닌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은 금전순이더라.....라는 말. 남의 말 같지는 않네.

"아그네스 선생님은 우리가 그렇게 남한테 속지 않으려면 산수를 잘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 (p.50)

아, 나도 지독하게 산수가 싫었어. 아니, 정확하게는 수학이 싫었지. 산수는 그런대로 할만했거든. 남한테 어리버리 속지 않고 살려면 셈 정도는 정확하게 해야지. 아, 필요에 의한 공부는 할만해. 못하면 나만 손해잖아. 열심히 일하고도 한푼도 못버는 일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런데, 말야. 산수든 수학이든 남한테 속지 않으려고 배우는 건 아니겠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세상에는 정말 많은 수학이 존재하더라구. 남들이 수학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물만 내가 이용하고 산다고 그게 불행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할것같네. 그렇지만 역시 수학은 재미없어 --''

 
"듣지 못한다고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p.56)

알래스카의 이 학교처럼, 보코가 수화를 배우는 동안, 다른 아이들도 수화를 배울 수 있어서 대화가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수화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듣지 못한다고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특수학교가 있는 거겠지만 특수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에서 어울려 배우려면 다른 아이들도 수화를 할 수 있는 환경 - 선생님도 물론이고 - 이 되어야하는 거 아닌가? 듣지 못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보지 못하거나, 몸이 불편한 아이도 마찬가지야. 그런 환경을 만드는 일이 가장 우선일텐데, 거기에 들어갈 학교 예산은 어떻게 한다? 처음부터, 학교라는 공간을 만드는 순간부터 함께 고려되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 이 이야기가 1940년대 이야기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근 60년이 다 지난 지금도 해결이 안된 이야기라는 거지.

"마리, 나중을 위해서라도 읽고 쓰는 것 정도는 꼭 배워야 해." (p.70)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드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마리에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야. 옛날 우리 부모세대하고 비슷하지? 얼마전에 구청에 갔다가, 서류 작성을 하려고 하는데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부탁을 하셨어. "~서류가 어느 것인지 좀 찾아주세요. 내가 글을 몰라서 그러는데, 대신 좀 써주세요."라고.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들 계신다고. 아이들을 장성시켜서 결혼도 시키고 다했지만 정작 자신은 읽고 쓰는 게 서툴러서 고생인 사람들 말야. 아주 남의 얘기는 아니지.

"공부는 평생하는 거야. -중략- 내가 봐도 살아가면서 계속 무언가 새롭게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게다가 평생이니까 시간에 쫓길 필요 없이 느긋하게 즐기면서 배워도 된다는 뜻이잖아." (p.71)

요즘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평생 느긋하게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참 아이다운 발상이지만, 요즘 시대였다면 꿀밤이나 맞을 소리였겠지?

"아그네스 선생님은 예전 교재 대신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주셨어. 그것도 학생 한 사람 한사람마다 수준에 맞게 각기 다른 걸로." (p.97)

요즘, 아이들 독서교육에 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인데 결국은 1940-50년대 아그네스 선생님의 방법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거 있지? 책을 읽고 연극을 한다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읽기 교재의 내용을 아이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어 읽는다든가... 결국은 뭐야, 이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 감동을 얻는다기보다 어른들이 읽고 반성해야하는 이야기란 말이지. 또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의 문학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야하는 실용적인 책과 가깝더라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는 걸 반대해.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거나 선생님에 대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닌것같아. 이 책이 1970년대쯤에 아이들에게 읽혓다면 또 다른 이야기겟지만...대신 1970년대생인 어른들이 읽으면 생각꺼리가 제법 있을것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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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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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처럼, 쑥 쑥 읽히는 맛은 없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된 것이겠지만, 인용부호가 전혀 없는 대화체들이, 문단의 나뉨도 거의 없이 나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꼬리잡기나 하고 있는 인물들의 갑갑한 대화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장치일지도 모른다. 언론을 통해 익히 봐왔던 정치인들의 말바꾸기와 말꼬리잡기는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게다가, 권력을 쥔 자가 공공의 이익과 권익 운운하며 휘두르는 방망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절로 느끼게 해 준다.

 

 

4년전 눈먼자들이 다시 눈을 떴지만, 그들의 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원상복귀되었다. 눈먼자들을 백색전염병 운운하며 정신병원에 가두고 이후로 속속 눈이 멀고 사회 체제가 엉망이 되었지만, 그들이 눈을 뜬 뒤, 눈먼 상태에서의 모든 일을 덮어버렸다. 그것이 그들 사회의 가장 썩은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은 눈뜬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진 백지투표를 통한 선거는 그들이 4년전 눈이 멀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아무도 그 원인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인데 주동자도 드러나 음모도 전혀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하나의 희생양을 통해 모든 걸 덮어버렸다. 이것은 현실세계에서도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이던가? 희생양이 되는 대상은, 단 하나,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결정된다. 이 책에서는 모두 눈멀었을 때 눈을 뜨고 있던 여자가 희생양이 되었다. 사회 전체가 어떤 이념, 혹은 사건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 한 사람의 희생양은 사회전체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은 떳떳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희생양이, 다른 사람을 위해 그토록 온 힘을 다했던 그 여자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결국은, 눈먼자들이 행한 모든 사실을 눈으로 본 여자를 없애버림으로써 4년 전의 사실은 암묵적인 비밀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뭘까? 이젠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이 책을 덮는 순간, 너무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진실도 권력 앞에서는 한낱 불온한 징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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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그네스 선생님 푸른동산 6
커크패트릭 힐 지음,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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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그네스 선생님이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낸 즐거운 학교는, 이상적인 학교모델이다. 1:11이라는 적은 수의 학생, 수준별 편차(학년, 나이, 학습시간 등)를 고려한 교수학습, 아이의 재능을 살린 적기 적성교육, 진학이 아닌 앎과 배움의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델과 같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꿔왔을 그런 교육현장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왜 안되는 것일까? 내 아이가 아그네스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면 정말 기쁠까? 아마도, 불만이 쌓이고, 불안감이 높아져서 전학을 고려하지 않을까?

아그네스 선생님의 교육방식은 너무나 훌륭했고, 그로 해 아이들이 공부, 아니 배움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은,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에서는 대학입시를 위한 머리 터지는 싸움도 없고, 아이의 교육에 목매다는 부모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전의 선생님들이 알래스카의 아이들에게 행한 행동들-생선 냄새를 싫어하거나,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재로 일관된 수업을 한 것 등-이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를 재미없고 지루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의 우리 학교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적어도, 아그네스 선생님의 수업방식을 따르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학교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6-70년대에 누구나 열심히 공부만 하면 성공할수 있었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때에, 의무교육(경쟁 없이도 누릴 수 있는 교육)에서만큼은 모든 학생이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어떤 감흥을 줄 지는 모르겠다. 대신, 이 책은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읽었으면 한다. 지금 아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고, 그 교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깨달았으면 한다. 물론 그것이 학교교육의 변혁을 일으킬 만큼 큰 힘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겠지.

p.s 안타깝게도 이 책은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보여주지만 비현실적이다. 아그네스 선생님의 교육에 감동하기보다는, 알래스카라는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선생님의 모습에 느낀 것이 많다. 또, 이 책을 통해 알래스카의 다양한 문화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그러나, 국어교과서 같은 느낌의 편집은 눈을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리더스 가이드 이벤트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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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웅진 세계그림책 15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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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그림은 물론이고, 항상 마지막 즈음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그렇다. 이번에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을 보면서 또한번 느꼈다.

어릴 때, 어린이책은 무조건 환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이책을 고를 때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어린이책을 읽다보니 나의 그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주거나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책이 제법 많다. 너무나 기분이 좋다.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사실, 미술 아니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행복한 미술관]을 보면서 미술관에 데리고 가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작품을 통해 생각할꺼리를 만들어주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힌트도 제공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책을 보는 아이뿐만 아니라 함께 보는 부모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림 쉽게 읽기라고 할까?

책 속의 명화들은 앤서니 브라운이 어떤 관점에서 채택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각각의 그림이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는 것은 사실이다. 오거스터스의 그림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힐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것도 한 가정을 이해하게 하는 점으로 생각한다면 무리가 없을듯하다.

맨 마지막 그림놀이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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