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처럼, 쑥 쑥 읽히는 맛은 없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된 것이겠지만, 인용부호가 전혀 없는 대화체들이, 문단의 나뉨도 거의 없이 나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꼬리잡기나 하고 있는 인물들의 갑갑한 대화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장치일지도 모른다. 언론을 통해 익히 봐왔던 정치인들의 말바꾸기와 말꼬리잡기는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게다가, 권력을 쥔 자가 공공의 이익과 권익 운운하며 휘두르는 방망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절로 느끼게 해 준다.

 

 

4년전 눈먼자들이 다시 눈을 떴지만, 그들의 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원상복귀되었다. 눈먼자들을 백색전염병 운운하며 정신병원에 가두고 이후로 속속 눈이 멀고 사회 체제가 엉망이 되었지만, 그들이 눈을 뜬 뒤, 눈먼 상태에서의 모든 일을 덮어버렸다. 그것이 그들 사회의 가장 썩은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은 눈뜬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진 백지투표를 통한 선거는 그들이 4년전 눈이 멀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아무도 그 원인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인데 주동자도 드러나 음모도 전혀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하나의 희생양을 통해 모든 걸 덮어버렸다. 이것은 현실세계에서도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이던가? 희생양이 되는 대상은, 단 하나,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결정된다. 이 책에서는 모두 눈멀었을 때 눈을 뜨고 있던 여자가 희생양이 되었다. 사회 전체가 어떤 이념, 혹은 사건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 한 사람의 희생양은 사회전체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은 떳떳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희생양이, 다른 사람을 위해 그토록 온 힘을 다했던 그 여자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결국은, 눈먼자들이 행한 모든 사실을 눈으로 본 여자를 없애버림으로써 4년 전의 사실은 암묵적인 비밀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뭘까? 이젠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이 책을 덮는 순간, 너무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진실도 권력 앞에서는 한낱 불온한 징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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