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세계 1위 미래학자가 내다본 로봇과 일자리 전쟁
제이슨 솅커 지음, 유수진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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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가 있다. 사람들은 로봇과 직업의 미래를 이 두가지로 보았다. '로봇, 자동화, 인공지능으로 야기되는 비극적인 미래인 로보칼립스와, 기계가 인류를 위해 모든 일을 처리하는 천국과 같은 로보토피아'(p.15). 영화나 먼 미래를 다룬 소설 속 세상은 로보칼립스에 가깝지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당연히 로보토피아일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 중간 어디쯤일지도 모른다.

로봇이 보편화되는 세상이 오면 직업 또한 변화할 것이다. 직업의 미래 역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두 가지 면을 다 보여준다. 자동화의 영향을 덜 받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자동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공유 공간'이 유행하고 있었다. 일은 혼자서 하지만 공유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회사의 일원인 것처럼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이 된 이후에는 공유공간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자동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제조업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여러 산업군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일의 특성이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것들은 자동화되어 로봇으로 대체되기 쉽다. 반대로 많은 교육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과 대면해야 하는 직업은 오히려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2020년 미디어를 통해 '의료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한다. 이 책이 기본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와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보편적인 흐름은 비슷하다. 미국에서 일자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분야는 미국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이 차지하고 있다. 개인 돌봄 지원, 공인 간호사, 재택 건강보조원, 음식준비/서비스 근로자, 간호 조무사 등의 직업이 그러하다.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20개의 직업 중에서 13개가 건강 관련 직업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래의 직업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자동화의 위험이 높은 비숙련직업과 저임금 직업은 실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 사이의 거리 두기를 실현하는 기술에 우선순위가 주어질 것으로 본다.

우리는 로봇과 자동화로 인해 시간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끼기를 바란다. 이로 인해 업무 시간뿐 아니라 개인 시간도 자유로워진다. 사물인터넷으로 제품 큐레이션 품질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했듯 서점에서 즐거운 문학적 발견을 하거나, 우연히 마주치는 즐거움 등은 사라진다. 우리는 자동화로 인해 시간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지만, 우리의 선택을 앗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동화로 인해 키오스크와 ATM이 늘어난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점의 주문 시스템이 이미 키오스크로 바뀐 것을 보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셀츠계산대가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셀프서비스 혁명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현실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주문을 받기 위해 반드시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된다. 키오스크에서 스스로 주문을 하고, 음식이나 물건이 나오면 스스로 가져간다. 그런가하면 테이블에 비치된 스마트 기기로 주문을 하고, 계산을 마치기도 한다. 이러한 키오스트와 자동화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가지만 그 이면에서는 물건이나 음식을 만드는 인력은 더 필요해지므로 일자리는 추가적으로 증가한다.

제조업 일자리가 하나 줄어들 때마다 그 지역에서는 1.6개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제조업 일자리를 잃는 지역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첨단기술과 관련한 직업에서는 5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된다. 그러므로 국가나 도시가 비숙련 노동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하는 첨단기술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에 공감하며 읽었지만, 5장 사회보장제도는 조금 의외였다. 미국 사회보장제도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사회보장이 있는데 이 제도들로 인해 미국 정부 부체 수준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며 미국 경제 성장에도 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사회보장제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평소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어서 공감하지 못했다.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세수확보가 필요하고 이는 자동화를 야기한다. 그렇게 되면 각종 세금 부담이 증가하고, 의료보험료도 증가하며 최저임금 인상 위험으로 고용주들이 서둘어 자동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한국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전체 개념을 봤을 때 소득재분배와 함께 본격적인 공산주의의 낌새가 보인다고 말한다. 아니 여기서 공산주의의 낌새라니. 저자는 유럽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로 유럽인들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즉 공산주의에 대해 잘 모르는 유럽인들이라서 지지한다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라서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아래 쪽에 있는 욕구, 의식주에 관한 욕구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이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더 낫다는 말일까?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짜로 지급하는 돈으로 볼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성인이 지원금을 받아 물건을 살 수 있다면, 그것들의 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물가가 올라가고 세금이 올라가므로 보편적 기본소득은 기술 개발이나 투자, 경제 활동 전반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직 순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주어지는 세상이라면 좀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며 살아가지 않을까? 적어도 굶거나 추위나 더위로 죽거나 하지는 않을테니까.

어쨌든,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동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다. 로봇의 시대에도 살아남는 직업을 가지려면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늘 더 배우기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 저자의 주장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주장도, 저런 주장도 새겨들을 필요는 있다. 어떤 것이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다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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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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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집집마다 플랜카드가 붙었다. 재개발때문이다. 부동산에 큰 관심은 없지만(관심이 없을라고 없었겠나. 내 집이 될 일 없으니 그랬고, 남의 일이니 그랬다.) 동네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겠다. 그것이 바로 우리 골목은 제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단지를 짓겠다고 한참 선전하고 광고하는 중인데 딱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킽에 붙은 집들만 제외되었으니 시끄러울만도 하다. 이 동네 떠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우리 입장에서는 골목을 벗어나는 순간 공사장에 둘러싸일 판이다. 물론, 재개발 떠들썩해도 10년 가까이 말만 많기도 하더라.

어쨌든, 이런 시국에 이 책을 만났다.

1부 건축은 불순한 학문이다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가 배워야 할 지식으로 글쓰기, 그림그리기, 기하학, 광학, 수학, 역사, 철학, 음악, 의학, 법학, 천문학 등을 열거했다고 한다. 이는 지금의 건축학 교육과도 거의 일치한다니 이 정도면 거의 모든 학문이 건축에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과 사회에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축은 건축주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수단이다. 건축은 부동산이고 재산 형성을 위한 욕망의 산물이다. 건축물만이 아니다. 도시도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주택지, 상업지, 학교, 공공 청사 등 용도에 맞춰 분할하고, 정해진 땅에는 정해진 용도의 건물만 세우게 한다. 건축물은 어떻게 지을지 기획한 바를 건축가가 수주한 다음, 설계한 것을 심의해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짓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수많은 배제 논리가 법규로서 개입하게 된다. 건축을 규제하는 배제 논리도 생산, 상품,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요구가 담겨 있다. 근대 건축이 흰색을 가장 우월한 색채로 본 이유는 언제 봐도 새 건물처럼 보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 건축 대부분은 시간을 없애는 건축, 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축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거주는 어떤 장소에 귀속해 그 공간을 소유하거나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주다. "정주 사회는 가족, 재산, 권력 등을 지속하려고, 또 전해 내려온 관습을 축적하려고 경계를 둘러 통합한다. 한 점에 수렴하려는 편집증과 같은 욕망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경계를 넘어 분산한다. 외부를 갈망하고 교통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 한다. 미래를 향해 계속 이동하고 미분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사방으로 도주하는 일종의 분열증 같은 욕망이다. 욕망으로 건축을 구분하자면 경계를 둘러 정주하려는 건축과, 경계를 넘어 계속 움직이는 유목건축이 있다."(p.51~52)

건축에서 공간과 장소는 상반된 뜻을 나타난다. '장소'는 돌아와 머무는 곳이고, '공간'은 확장하고 떠나는 것이다. 광장이나 시장은 생각과 물건을 교환하는 '장소'이지 '공간'이라 하지 않는다. 즉, '공간'이란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비어있는 무엇을 뜻한다. 장소는 안정을 찾고 공간은 자유를 찾는다. 장소가 '주거'의 성질을 담고 있다면, 공간은 '도시'의 성질을 담고 있다.

제2부 건축 뒤에 숨은 사회를 발견하다

건축 공간은 처음부터 사회적이었다. 사람은 비바람이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숨을 곳'을 만들었다.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으며, 간단한 오두막이라도 하룻밤 자고서 떠나버리지 않는다.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쉬운 곳을 찾아 집을 짓고 오래 머물며 주변 환경과 함께했다. 이런 점들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경계와 영역은 본래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것이어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경계는 이쪽과 저쪽, 안과 밖, 나와 남을 구분하며, 경계 안에는 어떤 힘이 지배하는 영역이 생긴다. 건축 설계는 공간을 열고 닫으며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작업이다.

창은 안전과 안심을 상징하며 나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시대의 각박함을 나타내고, 인구 감소로 늘어나는 빈집의 창은 퇴락하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고층 아파트에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 한 장으로 막은 통창은 파노라마 조망을 독점하는 창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증했는데, 여기에는 건축과 관련된 중요한 기술이 많다. '도시 국가의 법이란 문자 그대로 벽에 관한 것'이라는 문장은 건축과 제도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한다. 아렌트는 법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배분하다, 소유하다, 살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벽을 둘러 짓는 집은 재산을 갖고 그 안에 살게 해주지만, 동시에 공적 영역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법이 곧 벽' 또는 '벽이 곧 법'이라는 말로 건축이 제도에서 비롯하여, 제도는 건축으로 분명해진다는 뜻을 전달했다. 아렌트가 도시를 설명한 것 증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람이 평등해서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날 때부터 불평등했기 때문에 법에 의해 시민이 됨으로써 인공적으로 약속한 사항에서 평등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p.120~123)

**한나 아렌트를 인간 본성을 다룬 책에서 주로 만나다 보니 건축에서 접하는 것은 새롭다.

제3부 건축을 소비한다는 것

공간은 계급적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주택이 제일 그렇다. 건축은 음악이나 미술 또는 패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싸다. 재산 중에서 가장 큰 것 역시 주택이다. 일생에 한 번 살까 말까한 물건이며, 모두가 제각기 갖고 싶어 한다. 재산으로서의 주택은 사회적 신분을 가장 크게 상징한다. 특히 소비 사회에서는 집과 살림살이가 곧 사회적 신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p.172)

저자는 아파트가 획일적인 것은 분양받을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 4인 핵가족을 전제로 살계한다는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성별로 역할이 설정되었고, 교외 거주의 근간도 핵가족이며 성별 분업은 공업화 사회의 기능 분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업 주부는 도시의 생산성을 유지하게 하고, 정부는 사회 보장 비용을 가정에 넘겨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제4부 건축이 모두의 기쁨이 되려면

학교 건물은 이사회의 교육 제도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므로 교육의 미래를 짓는 것과 같고, 회사 사옥을 짓는 것은 회사의 미래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건축은 시간을 부정했다. 건물은 오래 가기 때문에 바뀌는 용도가 시간이다.

영어 'use'는 '사용', '이용', '활용'이라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사용'은 용도가 새롭게 정해졌다는 뜻, '이용'은 용도를 고정하지 않고 때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달리 쓰고 있음을, '활용'은 더 의미 있게 다른 용도로 쓴다는 뜻이다. 건축에서는 '사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용자'는 목적이나 기능을 정하고 그것에 맞게 쓰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기능주의 건축은 사용자를 강조한 건축이었다.

근대 사회에서는 주거와 직장을 분명하게 나누었지만, 지금은 이 두 공간이 서로 보완적 관계이며 생활은 이 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이웃 뿐만 아니라 유아교육시설, 고령자를 위한 돌봄시스템 등 주택 밖 시설도 깊이 의존하게 된다. 공동체와 지역성을 생각할 때는 주거와 그밖의 건축 공간의 관계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시대나 지역, 취향과 관점에 따라 바뀌겠지만, 건축이 주는 기쁨은 지역과 문화를 넘어 변함없이 공통적이고 근본적이다. 건물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건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들으며 귀가를 했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 속에 내 집은 어차피 없으니 그저 눈감고 귀막고 들아왔을 뿐.


** 이 책은 21세기북스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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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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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라 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맘충' 이다. 아마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이 단어가 특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첫 머리에 '급식충'을 예로 들었다. '어떤 벌레'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일컫는 것일까?

'급식충'은 '급식'에 '벌레 충(蟲)'자를 붙인 말로 '급식을 먹는 벌레'라는 뜻이다. 주로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을 비하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급식을 먹는 계층이 많을텐데 유독 중고등학생에게 급식충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몇 해 전 있었던 '무상급식' 논란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는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사람이었고, 학교 내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밥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랐다. 무상급식을 놓고 포퓰리즘이니 선거용이니 하며 말도 많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밥조차 못 먹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좀더 부끄러워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교육이 늘 미래다라고 하면서, 그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그 밥값이 그리도 아까웠을까?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공짜 밥을 먹는 생각 없는 아이'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충(蟲)이 접미사로 붙은 표현이 온라인상에서 먼저 쓰이다가 일상생활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과거부터 '식충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었다. 그것이 확대재생산된 것이 지금의 ~충이 아닐까 한다.

책에 나온 사례들은 4컷 만화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차별적 언어들을 일상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 노인 비하 표현으로 '틀딱'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노인을 비하하는 '노슬아치'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이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주변에서 점점 더 노인이 많아질텐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괴롭혀서야 될까. 물론 나 역시 노인 세대에 불만이 많았던 청년기를 지나왔지만, 일부 노인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를 표현하는 단어로 굳어가고 있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 책에는 직업과 관련 있는 차별의 언어도 다루고 있다. 경찰관, 간호조무사, 급식조리사 등의 직업군에 관한 표현도 있고, 직업군 자체에 관한 편견도 있다. 예를 들면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 하고 소방관한테는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전문직이란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긴 하나 다른 직업을 낮춰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직업인을 부를 때는 해당직업을 지칭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변호사님, 꽃집사장님 처럼 말이다.

차별을 표현하는 언어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말들이 많다. 벙어리, 장님, 절름발이 같은 말들도 그렇다.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많이 쓰는 표현 중에는 결정 장애나 선택 장애 같은 표현도 문제가 된다. 그 내용이 어떠하든,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싫어한다면 조심해야한다.

말은 전파력이 강해서 한 번 내뱉고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달된다. 매번 자신의 언어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말도 습관이다. 자꾸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해야 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말을 곱씹어 봐야 고칠 수 있다. 일상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차별의 언어를 나부터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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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0
주디스 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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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에 《깜빡깜빡 잘하는 고양이 모그》로 모그를 처음 만났는데, 이 그림책에서는 모그가 떠난다. 헛. 나는 제목만 보고 모그랑 처음 만나는 그림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별의 그림책이었다.

모그는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고 머리도 발도 꼬리조차도 무거웠다. '이제 영원히 잠들고 싶어'라고 생각한 모그는 그대로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하지만 모그의 영혼은 무슨 일이 일어난지 볼 수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렇게 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을 것이다.

tv등을 통해 동물 학대 사건을 접할 때가 많은데, 실상은 가족처럼 사랑하며 키우는 집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지낸 동물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온다. 모그는 죽었지만 이 그림책은 슬프지 않다. 모그가 영혼이 되어 몸에서 떠날때의 모습도 보면 살짝 미소를 띄고 있다.

모그가 떠난 집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다. 아기 고양이가 온 것이다. 어미가 돌볼 수 없게 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아기고양이는 겁이 많아서 바스락 소리에도 도망치고가방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한다. 결국 아빠 엄마는 고양이를 살짝 못마땅해한다. 그걸 보고 있는 모그도 그렇게 생각한다. 집에 적응을 못한 아기고양이는 여전히 겁을 내며 숨어있는데, 모그가 도와주기로 한다.

모그는 엄마고양이처럼 아기고양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거기에다 이 고양이는 영혼인 모그를 볼 수 있기까지 하다. 모그가 하는대로 따라하는 아기고양이를 보며 모그는 '아주 버릇없는 고양이는 아니군. 그냥 도움이 좀 필요했던 거야." 라고 말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일들이 많다. 모그는 오랫동안 이 가족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뭔가를 가르치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척척 해냈을 것이다. 물론 모그도 아기고양이때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고양이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혈연으로 자연적인 가족관계가 이루어지던 시기에서 요즘은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새롭게 가족에 편입된 누군가는 분명 낯설고 힘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반려동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모그가 아기고양이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듯이 우리 역시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또 작은 동물들에게 다가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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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시인의 하루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74
장혜진 지음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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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비도 오고, 마음은 착 가라앉으니 오늘은 책꽂이에서 그림책 몇 권 꺼내본다.

꼬마시인의 하루는 제15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수상작이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나니 그림책 볼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산책 좀 다녀오겠다는 꼬마 시인에게 집 안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숙제는 다 하고 가는 거야?"

"예습 복습은?"

"방 청소는?"

순간 살짝 뜨끔~!! 해졌다.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테이블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집이 놓여 있다. 아, 이 시를 이해한다고?


'가지 않은 길'은 프로스트가 직업도 없고 문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그 시기에 썼던 시라고 한다.

'나는 과연 남들이 가지 않은 그 길을 갈 용기가 있었을까?'

이 시를 볼 때마다 생각해본다.

나는 여전히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나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아, 정말 꼬마시인은 이미 철학자의 길로....

아주 작은 식물도 꽃을 피워내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인생의 대부분을 공부하는 데 쓰거나,

가정을 꾸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꿈꾼다.

고민하던 꼬마시인이 시를 쓰려고 하자, 뱃 속에서 '꼬르륵'.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도 결국은 배고픔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며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한다.


집안의 누군가는 여전히 공부는 안하고 어딜 써다니냐며 잔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꼬마시인은 오늘도 한 편의 시를 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 진행된다.

나의 선택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고, 나는 매번 선택의 순간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인생 꽤나 고민한다는 청소년들과 읽을 맛이 나겠다.

물론 함께 읽어야 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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