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 건축 너머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 서가명강 시리즈 17
김광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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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집집마다 플랜카드가 붙었다. 재개발때문이다. 부동산에 큰 관심은 없지만(관심이 없을라고 없었겠나. 내 집이 될 일 없으니 그랬고, 남의 일이니 그랬다.) 동네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겠다. 그것이 바로 우리 골목은 제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단지를 짓겠다고 한참 선전하고 광고하는 중인데 딱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킽에 붙은 집들만 제외되었으니 시끄러울만도 하다. 이 동네 떠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우리 입장에서는 골목을 벗어나는 순간 공사장에 둘러싸일 판이다. 물론, 재개발 떠들썩해도 10년 가까이 말만 많기도 하더라.

어쨌든, 이런 시국에 이 책을 만났다.

1부 건축은 불순한 학문이다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가 배워야 할 지식으로 글쓰기, 그림그리기, 기하학, 광학, 수학, 역사, 철학, 음악, 의학, 법학, 천문학 등을 열거했다고 한다. 이는 지금의 건축학 교육과도 거의 일치한다니 이 정도면 거의 모든 학문이 건축에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과 사회에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축은 건축주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수단이다. 건축은 부동산이고 재산 형성을 위한 욕망의 산물이다. 건축물만이 아니다. 도시도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주택지, 상업지, 학교, 공공 청사 등 용도에 맞춰 분할하고, 정해진 땅에는 정해진 용도의 건물만 세우게 한다. 건축물은 어떻게 지을지 기획한 바를 건축가가 수주한 다음, 설계한 것을 심의해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짓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수많은 배제 논리가 법규로서 개입하게 된다. 건축을 규제하는 배제 논리도 생산, 상품,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요구가 담겨 있다. 근대 건축이 흰색을 가장 우월한 색채로 본 이유는 언제 봐도 새 건물처럼 보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 건축 대부분은 시간을 없애는 건축, 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축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거주는 어떤 장소에 귀속해 그 공간을 소유하거나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주다. "정주 사회는 가족, 재산, 권력 등을 지속하려고, 또 전해 내려온 관습을 축적하려고 경계를 둘러 통합한다. 한 점에 수렴하려는 편집증과 같은 욕망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경계를 넘어 분산한다. 외부를 갈망하고 교통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 한다. 미래를 향해 계속 이동하고 미분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사방으로 도주하는 일종의 분열증 같은 욕망이다. 욕망으로 건축을 구분하자면 경계를 둘러 정주하려는 건축과, 경계를 넘어 계속 움직이는 유목건축이 있다."(p.51~52)

건축에서 공간과 장소는 상반된 뜻을 나타난다. '장소'는 돌아와 머무는 곳이고, '공간'은 확장하고 떠나는 것이다. 광장이나 시장은 생각과 물건을 교환하는 '장소'이지 '공간'이라 하지 않는다. 즉, '공간'이란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비어있는 무엇을 뜻한다. 장소는 안정을 찾고 공간은 자유를 찾는다. 장소가 '주거'의 성질을 담고 있다면, 공간은 '도시'의 성질을 담고 있다.

제2부 건축 뒤에 숨은 사회를 발견하다

건축 공간은 처음부터 사회적이었다. 사람은 비바람이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숨을 곳'을 만들었다.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으며, 간단한 오두막이라도 하룻밤 자고서 떠나버리지 않는다.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쉬운 곳을 찾아 집을 짓고 오래 머물며 주변 환경과 함께했다. 이런 점들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경계와 영역은 본래 안에 있는 사람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것이어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경계는 이쪽과 저쪽, 안과 밖, 나와 남을 구분하며, 경계 안에는 어떤 힘이 지배하는 영역이 생긴다. 건축 설계는 공간을 열고 닫으며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작업이다.

창은 안전과 안심을 상징하며 나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시대의 각박함을 나타내고, 인구 감소로 늘어나는 빈집의 창은 퇴락하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고층 아파트에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 한 장으로 막은 통창은 파노라마 조망을 독점하는 창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증했는데, 여기에는 건축과 관련된 중요한 기술이 많다. '도시 국가의 법이란 문자 그대로 벽에 관한 것'이라는 문장은 건축과 제도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한다. 아렌트는 법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배분하다, 소유하다, 살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벽을 둘러 짓는 집은 재산을 갖고 그 안에 살게 해주지만, 동시에 공적 영역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법이 곧 벽' 또는 '벽이 곧 법'이라는 말로 건축이 제도에서 비롯하여, 제도는 건축으로 분명해진다는 뜻을 전달했다. 아렌트가 도시를 설명한 것 증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람이 평등해서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날 때부터 불평등했기 때문에 법에 의해 시민이 됨으로써 인공적으로 약속한 사항에서 평등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p.120~123)

**한나 아렌트를 인간 본성을 다룬 책에서 주로 만나다 보니 건축에서 접하는 것은 새롭다.

제3부 건축을 소비한다는 것

공간은 계급적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주택이 제일 그렇다. 건축은 음악이나 미술 또는 패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싸다. 재산 중에서 가장 큰 것 역시 주택이다. 일생에 한 번 살까 말까한 물건이며, 모두가 제각기 갖고 싶어 한다. 재산으로서의 주택은 사회적 신분을 가장 크게 상징한다. 특히 소비 사회에서는 집과 살림살이가 곧 사회적 신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p.172)

저자는 아파트가 획일적인 것은 분양받을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 4인 핵가족을 전제로 살계한다는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성별로 역할이 설정되었고, 교외 거주의 근간도 핵가족이며 성별 분업은 공업화 사회의 기능 분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업 주부는 도시의 생산성을 유지하게 하고, 정부는 사회 보장 비용을 가정에 넘겨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제4부 건축이 모두의 기쁨이 되려면

학교 건물은 이사회의 교육 제도를 지속하기 위한 것이므로 교육의 미래를 짓는 것과 같고, 회사 사옥을 짓는 것은 회사의 미래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건축은 시간을 부정했다. 건물은 오래 가기 때문에 바뀌는 용도가 시간이다.

영어 'use'는 '사용', '이용', '활용'이라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사용'은 용도가 새롭게 정해졌다는 뜻, '이용'은 용도를 고정하지 않고 때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달리 쓰고 있음을, '활용'은 더 의미 있게 다른 용도로 쓴다는 뜻이다. 건축에서는 '사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용자'는 목적이나 기능을 정하고 그것에 맞게 쓰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기능주의 건축은 사용자를 강조한 건축이었다.

근대 사회에서는 주거와 직장을 분명하게 나누었지만, 지금은 이 두 공간이 서로 보완적 관계이며 생활은 이 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이웃 뿐만 아니라 유아교육시설, 고령자를 위한 돌봄시스템 등 주택 밖 시설도 깊이 의존하게 된다. 공동체와 지역성을 생각할 때는 주거와 그밖의 건축 공간의 관계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시대나 지역, 취향과 관점에 따라 바뀌겠지만, 건축이 주는 기쁨은 지역과 문화를 넘어 변함없이 공통적이고 근본적이다. 건물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건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들으며 귀가를 했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 속에 내 집은 어차피 없으니 그저 눈감고 귀막고 들아왔을 뿐.


** 이 책은 21세기북스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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