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주어진만큼만 충실하게 하는 사람, 창의적인 기획력은 없지만 시키면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일을 하는 동안은 제법 능력있다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도 그때니까 그랬지, 요즘 같으면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지금의 남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그 시절의 보상이라도 되는 양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그게 위로가 될까? 

요즘 문득 허~한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학생 때 내가 닮고자 무척이나 애쓰던, 지금 생각하면 내가 꽤 좋아했던 듯한 그 녀석이 뜬금없이 내 꿈에 나타나 나랑 무척이나 닮은 여자와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서 싱숭생숭하게 만들질 않나...  

전화를 해서 꿈얘기를 하다가, 내 기분이 그랬다는 걸 숨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 "그 여자가 너랑 닮은 여자가 아니라 너였다면 참 좋았을텐데.."하는 선심성 멘트에 뜨끔하질 않나...  

"이 녀석이!! 애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하고 잘라버렸지만...기분은 쪼끔 좋더라........... 

그 옛날, 그때, 우리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지금과 다른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사귀는 사람이 있음에도 연인처럼 편지를 주고받았던(어쩌면 자기 애인한테 보낸 것보다 우리 둘이 주고받았던 게 더 많았을 듯) 건 왜 그랬을까? 군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경기도 모 우체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보로 부쳐주었던 그 녀석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동기보다 1년 늦게 졸업하는 나를 위해 졸업식에서 인형을 손에 쥐어주던(그 인형은 지금도 한솔이 손에서 곱게 자리잡고 있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에서 강의할 때 쉬는 시간을 용케도 알고 찾아와 방없는 시간강사의 설움을 풀어주던 그 시간들.... 

나이 마흔에 떠올리기에는 좀 낯부끄럽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러고 싶네. 확실히 여자 나이 마흔의 첫 가을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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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센치하게, 가을이니까 맘껏 센치하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아요, 하양물감님. 덧글은 여기까지만 쓸게요 ^^;;
허한 마음 책으로 달래야겠어요.

하양물감 2011-10-11 14:52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어쩌면 그때는 찌질한 일상이었는데, 지금 떠올리니 영화같은 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추억이란 게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꼬마요정 2011-10-1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을 바람에 머물 것 같은 이야기에 홀려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가을이 지나고 나면 그 바람에 실려 세상을 여행하다 어느 순간 다시 나에게 돌아 올 그런 감정의 이야기 말입니다. 괜히 저도 아련한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닌 어떤 감정의 추억을 끄집어 내 봅니다.... 가을은 묘하네요..^^

하양물감 2011-10-11 16:30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어느 순간, 나이 마흔, 그러고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입니다.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노래처럼 그런 애매한 시절이 있었네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더니....아무래도 나한테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있는겐지...ㅋㅋㅋ

하늘바람 2011-10-1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님은 상상만으로도 멋있는 분같아요

하양물감 2011-10-11 16:32   좋아요 0 | URL
음...대학 때, 그 녀석 분위기가 순정만화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처럼 생겼었답니다. 잘생긴건 아니지만, 날렵한 턱선과 조금 찢어진 눈, 게다가 제법 탁월한 패션감각까지요. 더불어 시를 쓰는 인간(?)이었으니...
뭐 지금이야 저나 나나 중년의 모습이지만...

하늘바람 2011-10-12 08:47   좋아요 0 | URL
에효 안 멋질 수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