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은 이 정도 두께의 책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책을 읽기 쉽다 어렵다 판단하는 것은 두께가 아니라 내용이기 때문이다. '휴먼카인드'는 '사피엔스'를 읽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두꺼운 책을 쫙 쫙 펼쳐서 줄 쳐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인간 본성 자체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수많은 책과 이론들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제대로 팩트체크하지 않은 채 그러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현실에서는 그 반대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은 위기가 닥칠 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약탈하고 공격하고 무차별적인 살상을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 봐라.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가? 라고. 왜 그럴까? 저자는 리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엘리트가 공황에 빠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의 인간 본성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p.37)

며칠 전, 회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플라시보 효과와는 반대의 말이 있을텐데 그게 뭘까 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많다 보니 쉽게 이야기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를 뜻하는 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처럼, 이 책에서 그 단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노시보 효과'이다.

의사가 가짜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정말로' 상태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학저널》에서 플라시보는 실제 외과 수술과 가짜 외과 수술의 효과를 비교했는데, 모든 사례의 4분의 3에서 도움이 되었고, 절반 정도는 실제 수술과 동일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가짜 약을 먹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병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환자에게 약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한다면 그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이 '노시보 효과'이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많이 보면서도 실제 임상 실험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윤리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타인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관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우리는 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을까? 우리의 관심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이끌린다는 부정편향과 어떤 것을 쉽게 떠올린다면 상대적으로 그것이 흔하다고 믿는 가용성 편향 때문이다. 대부분의 뉴스나 책, 다른 미디어들이 소개하거나 다루는 내용은 예외적인 것들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기 어렵거나 신기한 일, 관심을 끌만한 새로운 것,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데 특히 부정적인 내용을 자주 다룬다. 선박이나 자동차 탈취사건에 비하면 그 빈도가 훨씬 적은데도 불구하고 비행기사고는 뉴스를 장식한다. 왜냐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이제킹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골딩의 《파리대왕》이 성공한 비결을 설명하는데, 1960년대의 시대정신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준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골딩이 자신에 대한 슬픈 인식을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과 같은 상황에서 실제로 난파당한 통가의 조난자들은 《파리대왕》의 아이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편향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면 노시보가 되어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사실, 아이에게도 이 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책과는 다른 실제 조난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해주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책에서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믿게 하는 홉스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선함이 있다고 선언한 루소를 두고 각각의 입장에서 견해를 살펴본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람들은 우리의 우전자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인간만이 얼굴을 붉힐 수 있다며 이러한 특징은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그렇게 뻔뻔하다면 얼굴을 왜 붉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유전학자는 가장 우호적인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은여우 실험과 침팬지 실험에서도 '친밀감'이 중요한 특질로 작용하였다.

저자는 계속해서 인간이 부정적이거나 사악하지 않다는 증거들을 소개한다. 사격을 거부하는 병사들의 사례를 통해서 인간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한다. 그리고 수렵 채집 생활에서 정착생활과 농경사회를 통해 지도자가 탄생하고 사유재산이 증가하면서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로 최초의 전쟁이 발생한다. 농경생활과 정착생활로 인한 변화는 제임스 스콧의 [농경의 배신]에서도 다루고 있다.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전염병이 확산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사회심리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드는 요인을 찾아내기 위해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실험들을 실시했다고 말한다. 이 실험들은 우리도 알고 있는 것들인데 교도소 실험이나 전기충격 실험 등이 그것이다. 조작되고 위장된 결과들이 우리 자신을 죄가 많은 본성을 가졌다고 믿게 만든다. 그리고 언론은 계속해서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확대재생산한다. 최근에서야 뉴스들을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팩트체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뉴스와 언론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다.

'휴먼카인드'를 읽는 동안 왜 그렇게 많은 가짜 뉴스들이 우리들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용기와 충성심, 헌신과 연대의식이 때로는 전쟁과 같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적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공감은 낮아지고 공격은 더 잔인해지는 법. 그리고 뉴스는 이러한 공감을 한계로 몰아붙이는 자극제가 된다."(p.284) 현대사회에서 뉴스는 비정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친절하고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뻔뻔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앞에서 설명했던 '플라시보 효과'와 비슷한 것으로 '피그말리온 효과'가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인지 상상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반대인 '골렘 효과'는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자주 쳐다보지 않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된다. 그들을 향해 자주 웃지도 않는다. '골렘 효과'는 일종의 노시보이다. 가난한 학생은 더 가난하게 만들고, 노숙자는 희망을 잃게 만든다. 고립된 10대들은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인종차별의 이면에 있는 메커니즘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대치가 낮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더욱 떨어뜨려서 자신의 성취를 낮게 만든다. (p.355)

차별과 혐오를 끝내기 위헤 저자는 '접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접촉'은 효과가 있지만 즉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이 책을 덮은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더 읽을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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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6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사점들을 많이 던져줄 것 같네요. 꼼꼼한 책 소개 덕분에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

하양물감 2021-05-16 22:45   좋아요 1 | URL
이 책 강추합니다^^

초딩 2021-06-05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하양물감 2021-06-05 18: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당선작 올랐어요

초딩 2021-06-05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정말 두께 때문에 몇번 그리고 지금도 망설이고 있어요 ㅎㅎ

하양물감 2021-06-05 18:20   좋아요 1 | URL
두께에 비해 잘 읽히는 책입니다. 도전해보세요

초딩 2021-06-05 18:23   좋아요 1 | URL
넵!! 도전 ㅎㅎㅎ

서니데이 2021-06-05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양물감님 축하드립니다^^

하양물감 2021-06-05 18:2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간만에 당선작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책을 12만원 가까이 구매했는데, 결제 다하고 보니 적립금이 들어와 있었어요. 타이밍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