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공지영이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한다. 그 글의 내용이 어떠하고 그 글의 가치가 어떠하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어떤 스킬로서, 속된말로 하는 글빨로서, 그녀는 쉽게 잘 읽히는 글을 쓴다. 나는 그런 면에서 그녀가 괜찮은 작가라기 보다는 돈 값을 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원래 뭐, 돈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너는 나보다 이걸 더 잘하니까, 내가 돈을 주고 너의 그 스킬을 사겠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글쓰기에 관한한 꽤나 고급한 스킬을 가지고 있으므로 돈 주고 사는 것이 별로 아깝지 않다. 아아,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해 두자니까.  

음, 난 잘 몰랐는데, 공지영에게 태클거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가보다. 난 진짜로 잘 몰랐는데, 공지영 소설이며 에세이 몇권 읽고 나니까, 인제 막 잘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공지영에게 되게 태클많이 거나보다. 그렇게. 그리고 공지영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태클거는게 너무너무 억울한가보다. 책마다 안나오는데가 없네? 

사실 전작 <즐거운 나의 집> 읽으면서도 사실 이 장면에서 빵 터졌었다. (아마 작가도 웃으라고 쓴 장면 같으니까 막 웃어주기로 했다.) 

"야! 너....... 반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래! 나 이뻐! 얼굴도 매꼬롬해. 근데 너는? 너! 못생겼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못생기면 다야?"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푸른 숲, 2008, p.120 

우와, 우하하, 이거 뭐야, 이거 이거 뭐야, 우하하, 이거 왜 이래?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거 자전적 소설 아냐? 우하하하하하하, 완전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는데, 이 책에선 서문에서부터 빵빵 터졌다.  

가끔 어딜가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처음 만난 분들이 약간 놀라면서 "어머 공지영 씨, 정말 소탈하고 재미있는 분이군요?" 하곤 했다. 나로 말하자면, "저 원래 그런데요. 어릴때부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p.5) 

그러니까 작가는 지금 본인 입으로, 나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것도 무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해 준다는 엄청난 위세를 등에 업고. 못살아 못살아. 자뻑도 이쯤되면 너무너무 귀여워서, 응응, 그래, 당신 사실은 되게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주변에서 너 이쁘다고 괜히 태클걸고 괴롭혀서 힘들지? 라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진달까.  

예전에 김별아의 에세이집 <식구>를 읽다가 거기에 나온 엄청난 작가로서의 자의식에 뭔가 기묘하게 존경(오해마시라, 작가 정신에 대한 존경이 아니고, 나 작가요 하는 자의식에 대해서니까.)같은 걸 느낀적이 있는데(지금도 말하지만 그 글의 포스는 엄청났다. 흠. 생각난 김에 옮겨볼까.) 

그럼 도대체 내가 집에서 하는 일들은 다 무언데? 식사 준비, 빨래, 청소, 장보기, 공과금 처리, 친족 관리, 거기다 아이의 양육에 관한 일 전부를 패키지로 하고 있는데, 그리고 남는 '여가'에 내 인생 전부를 쏟아 부어도 모자랄 소설을 쓰느라고 맨땅에 헤딩을하고 있는데,
김별아, <식구>, 베텔스만, 2005, p.40 

내가 느낀 것과 같은 포스를 느끼신 분 또 없으신가. 하여간 뭔가 그 기묘한 엇박자의 느낌은 느낌인데, 딱히 뭐라고 말을 해줄수도 없고, 그냥 아아, 그렇군요. 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아, 이 단어 이상하게 일본풍의 냄새가 나서 쓰기가 싫었는데 여기엔 가장 합당한 단어같다. 말 그대로 엄청난 박력이 느껴진다.

흠. 딴소리가 길었다. 

난 개인적으로 작가의 에세이집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랄까 그런 것들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기분도 되고, 그런 에세이집을 읽고나면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고 해서, 게다가 글 잘 쓰는 사람이 쓰는 에세이는 그 자체로 재미있으니까, 대부분 찾아서라도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소설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주변에 모여 말 그대로 사소한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재미를 느끼게해 주는 책이었다. 다만, 글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그 기묘한 포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가능하면 그 포스를 느끼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어질 법하다.  

공지영은, 그간 내가 너무 진지한 글들을 써 와서 사람들이 날 너무 무게감 있게 보는데 사실은 나 유쾌한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한 것 같은데, 읽는 내내, 음, 전제도 결과물도 다 인정은 못하겠지만, 여튼 글은 재미있고, 잘 썼다 싶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 소설들에서 보아온 공지영을 확인한 느낌이었달까.  

음. 이러나 저러나 재미있는 에세이라는 사실만은. 서문에서부터 그랬듯, 읽는 내내 빵빵 터진다. 여러가지 의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은 날 : 2009. 9. 10   

당신이 소설을 읽으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일종의 판타지를 바란다. 완벽하게 구성된 하나의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그 이야기는 가능하면 아름답기를 바라고, 고난과 역경에 차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용기와 가능성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기를 바란다. 과거의 영웅들이 주인공이 되는 로맨스 소설의 세상에서 사소한 개인의 사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아름다운 여인과, 용감하고 능력있는 남성이 나오는 한편의 완벽한 로맨스나, 신데렐라류의 이야기는 지겹고 구태의연하기는 해도 열가지 이야기를 열번 읽어도 재미있다. 내가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인 듯 하다. 어떤 가치는 차치해두고 라도. 

이 소설에서 가난하고, 구박받지만 아름다운 신데렐라 아가씨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82-83) 

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추녀다. 이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안경쓰고 촌스러워 못생긴줄 알았지만 안경 벗기고 미장원, 옷가게 한번 데려갔더니 눈이 튀어나오게 아름다운 "본모습"을 찾는 일반적인 신데렐라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못생겼고, 못생겨도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될 정도의 못생김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박민규의 예전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했다. 왜 모든 사람들은 1등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자문하게 만들던 소설. 아니, 사실은 지나치게, 음, 작가의 의도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라, 여기저기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려서 거칠다 싶은 소설이었지만,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고 본다면 아주 괜찮다 싶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한단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주제의식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대로이고, 작가의 말하기 방식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으나, 훨씬 세련되어졌다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똑같은 내용의 말을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데도 이 사람 말은 들을만 하고 저 사람 말은 빈정상하는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예전의 소설은, 뭔가 은근히 반감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가 않다. 말하는 방식이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고, 작가가 그만큼 소설속으로 더 잘 숨어들어가 있어서 소설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도 되겠다. 

어쨌든 박민규의 솜씨, 시쳇말로 "글빨"은 극에 달했다는 느낌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맛깔나게 읽히는지, 400 여 페이지의 소설이 그냥 술술 읽힌다.  

왜 여자는 예뻐야 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서?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건, 익숙함의 다르지 않은 이름이라는 걸 우리 대부분은 안다. 박민규의 이 말대로.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고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물론 근사치야 있겠지만 그런 거라구.
.........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p.173-174) 

항상 우리에겐  비교의 대상이 존재한다. 굳이 대상이 아니라면 기준이라도. 그런데 그 기준은 누가 선정하는 것이며, 그 대상과 비교해 우위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박민규가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다. 너는 왜 너의 사랑에 관해,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너로 하여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정말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들은 해도 실은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란 거.(p.175) 

나는 사실은 나만을 생각한다. 내 생각을 하기에도 벅차서 남의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누가 아주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래 그 자리에선 잠시 부럽고,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래 그 자리에선 잠시 부럽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건 내가 특별히 쿨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인간이어서 그렇다.  

여기에 대고 박민규가 묻는다. 너는 그런 인간이면서, 사람들의 속성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너는 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가고. 너는 남에게 시선을 잘 주지도 않지만, 준다고 해도 그거 잠깐 주고 잊고 넘어가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하지만 생각거리 이전에,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박민규의 문체는 무척 독특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웬만한 스포츠는 다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야구는 정이 안간다. 축구 골프 배구 농구, 하다못해 탁구까지도 보는데도 이상하게, 참말 이상하게 그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야구에는 관심이 없다. 야구가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야구 선수가 멋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 나에게 야구는, 늘 지겨운 종목중의 하나였고 겨우겨우, 이현세의 만화에서나 그저 그만하게 볼 만했던 스포츠에 불과했다.

그래서였나.
이 책도 사 놓은지는 오래 되었으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박민규라는 이 친구, 글 꽤나 유쾌하게 잘 쓴다는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박민규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려 있던 「갑을 고시원 체류기」였다. 유쾌하면서도 냉소적이고 어딘지 허무한 문체 사이사이에 짙게 깔려있는 페이소스 때문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작가였다.

아마 야구와 고교야구(이 고교야구는 이현세 만화의 주요 배경과 소재가 되어 주었다, 사실)만이 있던 한국에 갑자기 프로야구 바람이 불면서 프로가 되기를 강요당한 야구 선수들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마추어들을 프로로 만드는 건 결국 국가와 사회의 음모였다는 게 이 글의 결론. 삼미 슈퍼스타즈로 대표되는 아마추어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열정적으로 찬미하는 소설이었다.

글쎄. 박민규식의 가치관에 내가 쉽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말고 문득,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있는 삶도,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삶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도태된 것 처럼 보이는 아마추어의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시간을 내 것으로 온전히 가지는 삶.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꼼꼼하게 음미하고 맛볼 수 있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큰 집과 멋진 차...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집과, 내가 원하는 차가 있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인 그런 삶. 돈이 많이야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아야 하는 삶. 하긴 세상을 알아버린 지금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집은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더 높이 더 빨리 날고 뛰어야 하는 걸까. 그래봐야 삶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건데.

박민규에게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또 하나의 답변이 된 책이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말이야, 이 세상엔 1등이 하나밖에 없듯, 정답도 하나밖에 없는 거고, 정답대로 살아가는 1등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 자기 나름의 답변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책.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 였다. 그래도 읽어볼 만은 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온통 역설로 가득하다. 정의는 정의롭지 못하며, 정의롭지 못한 것이 곧 정의다. 2000년 가을에 언론인 김훈은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고 초야로 내려가 이 글을 썼다.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원고지에 성실하게 채워나간 이 글에 세상은 동인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안겼다. 이 책이 2001년 동인문학상의 수상작품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동인문학상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앞으로 나는 이상문학상을 믿듯 동인문학상도 믿기로 한다.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이 글의 문체다. 김훈만의 아름다운 문체미학. 대학에서 학보사 주간을 했던 동생은 김훈이 시사저널의 편집장으로 칼럼을 써낼때부터 그를 좋아했다 한다. 그의 문체를 좋아했다 한다. 맞다. 그의 문장에는 맛이 있다. 멋이 있다.

그의 문장은 늘 이야기하듯 '지독한 단문'이다. 화려한 수식어를 모두다 배제하고 -김훈의 말에 의하면- "뼈다귀만으로" 쓴 글인데도 그 어떤 화려체 문장보다 화려하고 수식적이다. 이 역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수식 없는 문장이 수식적이고 꾸밈 없는 문장이 화려한 이 역설은 김훈의 문장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설의 힘에서 나온다.

김훈의 문장은 거의 역설로 일관하고 있다. 매치 될 수 없는 두 가지를 매치 시키는 것으로 그는 역설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역설이 또 재미있다. 우리의 눈으로는 매치 될 수 없는 것이라도 김훈의 눈으로는 완벽한 짝이다. 그러니까, 김훈은 역설이 되라고 쓴 글이 아닌데, 독자는 그 문장을 역설로 읽는다. 이런 역설이라니.

시대도 역설이고 인물도 역설이다. 간신이 충신을 고문하고 파직시키는 세상, 함대가 없는데 함장이 되는 세상, 적은 있으되 맞설 아군이 없는 장군, 이순신은 이러한 시대의 역설에 또한 역설로 당당히 맞서고, 우리의 김훈도 또한 역설로 세상에 맞선다.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는 역설을 통렬하게 터트리며.

그의 역설은 하나의 문장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김훈의 표현에 의하면 "블랙홀"의 설치를 통해 두 개의 문장이 결합되면서 역설이 된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p. 128) 
 
 이 두 문장 사이의 블랙홀. 이 블랙홀로 두 개의 문장은 역설이 되고, 그래서 그 어떤 수사법을 쓴 글보다 화려해진다. 김훈은 소설의 대부분에서 거의 이런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의 특징은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 2001)에 실려 있는 이순신에 대한 서술로 확인할 수 있는 바, 이순신의 서술법이었던 듯 하다.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같은 식의 놀라운 문장들을 쓰게 한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죽인 일이 동등한 자격의 사실일 뿐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생각의 나무, 2001, p. 225


그러니까, 이순신에게는 그 문장과 문장사이의 블랙홀이 역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에게는 '동등한 자격'의 사건일 뿐이니까. 단지, 그것을 동등한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독자에게만 그것은 놀라운 역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역설은 참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칼의 노래는 역설을 통해 아름다워진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만 블랙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도 워프는 계속된다. 1인칭 서술이라는 특성상 서술은 이순신 개인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갈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이 사건과 사건 사이에 블랙홀을 만든다.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 서술을 통한 긴장감, 사라진 생각을 통한 긴장감, 긴장, 긴장. 이 팽팽하고 칼날같은 긴장으로 소설은 내내 노래를 한다. 칼의 노래를.

깊디깊은 사유와 오래 갈고 닦은 고아한 문체들. 이 책은 고전이 될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9-11-2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설의 역설! 아, 이 리뷰도 감탄하며 읽었어요. 좋은 책에 이어 좋은 리뷰를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한참 책 팔아서 연명(?)할 때, 칼의 노래를 팔까 하다가 눈물이 나서 관뒀어요. 울어가며 책을 팔아 몇 푼이나 벌겠다고요...^^;;;;

아시마 2009-11-25 16:03   좋아요 0 | URL
전 이 책 두권있어요. 줄 그어가며 읽은 한권 있는데 저자 사인본이 또 생겨서. 웬만함 두권 있으면 남 줄텐데 이 책이랑 자전거 여행은 둘다 아까워서 못주고 나란히 꽂아 뒀어요. 물론 저자사인본. ㅎㅎㅎ 자랑질입니다요.
이 책 이후로 김훈의 소설이 여러권 나왔지만 여전히 제겐 최고의 김훈 소설이예요.

사실 이 리뷰 그 옛날에 yes24 에서 리뷰 열편 쓰면 만원준대서 거기 올렸던 리뷰인데 은근 여기저기 펌이 많이 되었더라구요. 그래서 알라딘에 올릴까 말까 망설이며 올렸어요. ^^;;;

blanca 2009-12-0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읽었는데 님의 시각이 참 감탄스럽네요. 잘 읽고 갑니다.

아시마 2009-12-07 23:20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 부끄럽네요.

덕수맘 2009-12-0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신청했는데 이글을 읽고나니..제가 서평단 하기에는 부족한듯 하네요.
글 잘 읽고갑니다.
조만간 칼의 노래를 접해야겠네...^^*

아시마 2009-12-08 14:08   좋아요 0 | URL
헉,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요. (덕수맘님 리뷰 몇개 읽고 왔슴다. ^^) 훌륭하신데요. 칼의 노래는 꼬옥! 꼬옥! 읽어보세요. 이 책은 책 절대 안읽는 제 남편도 단숨에 독파한 책이라죠. ㅎㅎㅎ
 
현의 노래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읽은 날 : 2004. 3. 3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던 날을 기억한다.

은빛 장정이 몹시 예뻐 그날 들어왔던 책을 정리하다 말고 책장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읽었던 책. 책을 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산중의 짧은 겨울해는 이미 져 버린 뒤였다. 그 화려할만큼 아름다운 문체, 낯선 이름의 작가 김 훈.

그로부터 꼭 2년, 김훈은 더 이상 나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다.

이 책은 편집 순서상 전작 『칼의 노래』와 유사한 면이 많다.
칼의 노래 속표지 다음 장이 이순신의 한시 《한산도 야음》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이 책의 속표지 다음 장은 삼국유사 중 우륵의 가야금 곡조에 관련된 기록을 옮겨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무인 이순신의 삶을 통한 조선 중기의 세상을 ‘노래’하였듯, 이 책에서는 예인(藝人) 우륵을 통해 진흥왕 무렵의 신라와 가야를 ‘노래’하였다. 김훈에게는 무인도 예인도 같은 사람일 뿐. (“칼을 들여다보는 일과 악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나에게는 같았다.” 『현의 노래』, 김 훈, 생각의 나무, 2004, 서문 중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에 보면 독립운동을 하는 사팔뜨기 강쇠의 이종사촌 짝쇠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인물이 또 걸작인 게

「가령 너 지금 어디 갔다오느냐고 물을라치면,
“그놈의 버르지(벌레)를 씹었더마는,”
하는 식의 대답인데 배밭에 가서 배 한 개를 얻어먹었는데 배벌레 씹은 것이 기억에서 젤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어본 사람 편에서 보면 동문서답인 것이다.
『토지』, 박경리, 나남출판, 2002, 3부1권(9), p.105」


이런 식이다. 앞뒤, 양옆까지 다 잘라먹고 그 순간의 가장 강렬했던 어떤 것을 쑥 꺼내놓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동문서답일지라도 자기자신에게는 아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는 앞뒤, 양 옆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남아있으므로.

때로, 김훈의 글을 읽다보면 토지의 짝쇠가 생각난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칼의 노래 서문 중에서」
「2003년 1월부터 10월까지 나는 가끔씩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안의 악기박물관을 기웃거리면서 소일하였다. 관람객이 없어 늘 나 혼자였다.
별 할 일도 없는 나는 오랫동안 악기를 들여다보다가 혼자서 밥을 사먹곤 했다.
-현의 노래 서문 중에서」


창작의 모티프가 되어 준 칼과 악기를 하루 종일 혼자서 들여다보는 그의 머릿속에는 분명 앞뒤, 양 옆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는 완벽한 이야기가 하나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 완벽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굴리다 “기억에서 젤 뚜렷한” 부분만을 뚝 잘라 소설로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뜬금없는 동문서답이 되는데, 뜬금없는 동문서답이어서 아름답다.

김훈의 글은 단촐하다.
인물에 대해서도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 인물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에서 “젤 뚜렷한” 부분만 뚝 잘라 역시나 앞뒤, 양 옆이 뚝 잘린 사건 속에 던져 넣는다. 인물의 외면과 과거와 미래와 성격, 모든 것은 뚝 잘려 나가고 없고,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할 고뇌, 감정 그런 것 들 만이 동문서답마냥 파닥파닥 살아 날뛴다. 결코 동문서답이 아닌 상태로.

#쓰다보니 늘, 김훈의 글에 대한 리뷰는 죄 문체론이다. ㅡㅡ;;;

2004. 4. 24 by ashima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omek 2009-11-2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성립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 문체에 힘이 있지요. 김훈에게 있어서 문체란 "고통스런 글쓰기의 조건"이라 했으니... 잘 읽었습니다. ^.^

아시마 2009-11-25 15:03   좋아요 0 | URL
네. 굉장히 특이한 문체였어요, 처음 읽었을 땐. 김훈의 글로서는 처음읽었던 <칼의 노래>에서의 충격은 잊을수가 없죠. 그리고 읽은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문체이기도 하구요. 헌데 요즘은 김훈의 글을 많이 읽어서 그 문체에 익숙해진 건지, 김훈류의 글줄이 많아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만큼 충격적일만큼 아름답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그대신 요즘은, 문체가 김훈의 걸림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들어요. 매너리즘이란 말이 아니라, 문체 외에도 인물이라든가 사건이라든가 구성들 역시 훌륭한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문체만을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훈의 사유에서 나오는 사람들(특히 남자들)은 굉장히 독특하고 분명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도, 문체의 화려함에 눌리죠.

마노아 2009-11-2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근데 ashima는 무슨 뜻일까요? '아시마'라고 읽는 게 맞나요? 소리내어 읽어보면 발음이 예뻐요!

아시마 2009-11-25 15:59   좋아요 0 | URL
중국 고산부족의 설화 <아시마>에서 따온 이름인데(아마 티벳쪽과 관련있는 것 같아요.) 인도쪽에서는 흔한 이름 같아요. 게다가 무려 성경에까지 나오는 이름이라는... ㅎㅎㅎ ashima로 검색해보면 인도의 디자이너가 나오죠. 성경구절과 함께. 뭔가 대단히 성스러우면서도 속스러운 이름 이잖아요? (막 혼자 자화자찬에 빠져있다. ㅎㅎ)
중국 고산부족의 설화에서 "아시마"는 향기로운 여자 라는 뜻이라고 하구요,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에서는 벵골이름 "아시마"는 경계를 모르는, 가능성이 무한한 여자라는 뜻이래요.

그나저나, 마노아는, 레 마누와 리할 사이에서 태어난 그 레 마노아(마누아?)와 연결되나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 55 | 56 | 5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