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웬만한 스포츠는 다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야구는 정이 안간다. 축구 골프 배구 농구, 하다못해 탁구까지도 보는데도 이상하게, 참말 이상하게 그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야구에는 관심이 없다. 야구가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야구 선수가 멋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 나에게 야구는, 늘 지겨운 종목중의 하나였고 겨우겨우, 이현세의 만화에서나 그저 그만하게 볼 만했던 스포츠에 불과했다.

그래서였나.
이 책도 사 놓은지는 오래 되었으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박민규라는 이 친구, 글 꽤나 유쾌하게 잘 쓴다는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박민규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려 있던 「갑을 고시원 체류기」였다. 유쾌하면서도 냉소적이고 어딘지 허무한 문체 사이사이에 짙게 깔려있는 페이소스 때문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작가였다.

아마 야구와 고교야구(이 고교야구는 이현세 만화의 주요 배경과 소재가 되어 주었다, 사실)만이 있던 한국에 갑자기 프로야구 바람이 불면서 프로가 되기를 강요당한 야구 선수들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마추어들을 프로로 만드는 건 결국 국가와 사회의 음모였다는 게 이 글의 결론. 삼미 슈퍼스타즈로 대표되는 아마추어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열정적으로 찬미하는 소설이었다.

글쎄. 박민규식의 가치관에 내가 쉽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말고 문득, 어쩌면 내가 추구하고 있는 삶도,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삶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도태된 것 처럼 보이는 아마추어의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시간을 내 것으로 온전히 가지는 삶.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꼼꼼하게 음미하고 맛볼 수 있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큰 집과 멋진 차...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집과, 내가 원하는 차가 있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인 그런 삶. 돈이 많이야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아야 하는 삶. 하긴 세상을 알아버린 지금은,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집은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더 높이 더 빨리 날고 뛰어야 하는 걸까. 그래봐야 삶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건데.

박민규에게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또 하나의 답변이 된 책이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말이야, 이 세상엔 1등이 하나밖에 없듯, 정답도 하나밖에 없는 거고, 정답대로 살아가는 1등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 자기 나름의 답변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책.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 였다. 그래도 읽어볼 만은 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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