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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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09. 9. 10   

당신이 소설을 읽으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일종의 판타지를 바란다. 완벽하게 구성된 하나의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그 이야기는 가능하면 아름답기를 바라고, 고난과 역경에 차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용기와 가능성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기를 바란다. 과거의 영웅들이 주인공이 되는 로맨스 소설의 세상에서 사소한 개인의 사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아름다운 여인과, 용감하고 능력있는 남성이 나오는 한편의 완벽한 로맨스나, 신데렐라류의 이야기는 지겹고 구태의연하기는 해도 열가지 이야기를 열번 읽어도 재미있다. 내가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아마 그런 것인 듯 하다. 어떤 가치는 차치해두고 라도. 

이 소설에서 가난하고, 구박받지만 아름다운 신데렐라 아가씨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82-83) 

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추녀다. 이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안경쓰고 촌스러워 못생긴줄 알았지만 안경 벗기고 미장원, 옷가게 한번 데려갔더니 눈이 튀어나오게 아름다운 "본모습"을 찾는 일반적인 신데렐라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못생겼고, 못생겨도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될 정도의 못생김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박민규의 예전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했다. 왜 모든 사람들은 1등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자문하게 만들던 소설. 아니, 사실은 지나치게, 음, 작가의 의도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라, 여기저기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려서 거칠다 싶은 소설이었지만,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고 본다면 아주 괜찮다 싶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한단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주제의식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대로이고, 작가의 말하기 방식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으나, 훨씬 세련되어졌다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똑같은 내용의 말을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데도 이 사람 말은 들을만 하고 저 사람 말은 빈정상하는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예전의 소설은, 뭔가 은근히 반감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가 않다. 말하는 방식이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고, 작가가 그만큼 소설속으로 더 잘 숨어들어가 있어서 소설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도 되겠다. 

어쨌든 박민규의 솜씨, 시쳇말로 "글빨"은 극에 달했다는 느낌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맛깔나게 읽히는지, 400 여 페이지의 소설이 그냥 술술 읽힌다.  

왜 여자는 예뻐야 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서?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건, 익숙함의 다르지 않은 이름이라는 걸 우리 대부분은 안다. 박민규의 이 말대로.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고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물론 근사치야 있겠지만 그런 거라구.
.........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p.173-174) 

항상 우리에겐  비교의 대상이 존재한다. 굳이 대상이 아니라면 기준이라도. 그런데 그 기준은 누가 선정하는 것이며, 그 대상과 비교해 우위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박민규가 질문하는 것은 그것이다. 너는 왜 너의 사랑에 관해,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너로 하여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정말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들은 해도 실은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란 거.(p.175) 

나는 사실은 나만을 생각한다. 내 생각을 하기에도 벅차서 남의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누가 아주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래 그 자리에선 잠시 부럽고,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래 그 자리에선 잠시 부럽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건 내가 특별히 쿨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인간이어서 그렇다.  

여기에 대고 박민규가 묻는다. 너는 그런 인간이면서, 사람들의 속성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너는 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가고. 너는 남에게 시선을 잘 주지도 않지만, 준다고 해도 그거 잠깐 주고 잊고 넘어가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하지만 생각거리 이전에,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박민규의 문체는 무척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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