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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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연말 쯤의 어느 주말 오후, 남편과 둘이 뒹굴면서 나는 책을, 남편은 핸드폰으로 vod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보고 있던 건 힐링캠프 백지영 편. 이어폰을 쓰던 남편이 귀가 아프다며 이어폰을 뺐고 그때 이경규가 백지영에게 질문을 했다. 힘든 일을 겪지 않으셨냐고. 그 일들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말 해 줄 수 있느냐고. 그때 백지영의 대답이 무척 놀라웠다. 나도 몰랐는데 백지영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그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 말을 믿고 버텼다고.


그때 생각했다, 와, 신앙을 가진다는 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말 든든한 빽을 하나 가진다는 거겠구나. 


나는 어설픈 불교 신자쯤 된다. 엄마가 때되면 절에 가시고, 때되면 남편과 나의 이름을 적은 연등을 달고, 나 역시 때되면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연등도 올리고(연등 다는 데 불전 낸다. ㅎㅎ) 스님들의 글을 좋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동의하에 가족모두 천주교에 입교해 볼까 생각하는 중이다. 그때부터 해가 바뀐 지금까지 여전히 생각하는 중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내 아이들에게 백지영이 가진 것과 같은 그런 든든한 빽을 하나 가지게 해 주고 싶어서, 그런 빽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좀 더 덜 힘들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모된 자의 중압감을 누군가와는 나눠지고 싶어서.


엄마 아빠 말고도 나를 무조건 무작정 사랑해 주신다고 믿을 수 있는 한 존재를 가진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지만, 사랑을 신뢰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능력이다. 믿는다는 건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p.302) 나를 사랑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를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으면 이 세상 살아가기가 좀 더 편안해 지지 않을까 하는 나의 이기적인 종교관조차도, 신은 아마도 어여삐 여기시리라는 믿음 같은 것이 나에게는 있다. 


이 책은 공지영이 세번째 이혼 시기를 말하면서 시작한다. 공지영이 결국 회심을 하게 되던 그 순간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하여 공지영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진다. 기행문에 가까웠던 수도원 기행 1권에 비하면, 공지영의 신앙은 많이 자랐고 성숙해졌다. 출판사도 푸른숲에서 성서관련 출판 사인 분도출판사로 바뀌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신앙서적에 더 가깝겠다. 


내가 이해하는 불교는 천주교를 비롯한 기독교에 비하여 좀 더 자아성찰 적인 종교에 가깝다. 내 안의 불성을 찾아내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성불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은 빽이 되기는 좀 힘들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자꾸만 반성을 하게 만들지 그걸 용서해 주시는 분은 아니라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비하면 하느님은 내가 잘못한 게 있어 반성하면 용서하고 그 뒷감당을 해주시는 분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내 삶의 빽같은. 자식이 살인을 저질러도 그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거둬들이지 않는 부모처럼, 그렇게. 때로는 나무라고 혼도 내고 크게 야단도 치지만 끝내는 사랑하는 그 부모들처럼.


어느날 나와 내 남편, 내 아이들이 성당으로 걸어가게 된다면, 두명의 지영씨 백지영과 공지영 때문일 것이다. 두분, 복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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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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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4


어디서 읽은 글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글이긴 한데(아마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중에서 읽었거나 이만교의 글쓰기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여튼 거기서 보면 1970-80년대의 소설가들이 현대의 소설가들에 대해 놀라워? 신기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비범한 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자신을 유폐시켜야만 하는 현대의 소설가들에 대한 연민? 또는 부러움을 느끼는 그런 이야기. 하긴 1970년생 김영하도 (71년생인가..) 자신은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열등감을 느낀다 하니 뭐.


확실히, 20세기 초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야깃 거리가 풍부하다. 그들은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겪지 못할, 때로는 겪지 못해서 행복할 사건들을 온 몸으로 직접 겪어가며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1931년생 박완서 선생님이 자신은 평생 토악질을 하듯 글을 썼다는 말이 이런 대목에 가면 실감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소설은 주요 무대를 이제 6.25시절이 아닌 그 이후 한국 경제 발전기로 옮겨가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김만수씨는 1960년쯤에 태어난다. 큰형 백수씨가 6.25 동란 중에 태어나고 그 위로 금희와 명희 누님이 태어난 뒤에 태어났으니 터울을 대충 계산해보면 그쯤 되겠다. 그는 똑똑한 장남을 위해 희생하던 당시 전 국민의 70%가 넘는 농가 차남의 대표적 인물쯤 되어 보인다. 그러니까 유별날 것도 없는 인간이 되겠다. 그때 한국에는 수많은 만수씨가 있었으니까. 그러다 김만수씨의 가족은 그 당시 흔했던 서울로 서울로 옮겨가는 가족중의 하나가 된다. 잘난 큰 아들은 우골탑을 쌓아가며 대학에 다니고 딸들은 공장에 다니며 대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그러다 큰아들은 당시의 상황에 발맞추어 베트남 파견장병이 되고, 거기에서 어이없게도(그러나 흔해 빠지게도) 고엽제에 희생당해 죽는다. 큰아들이 죽은 집, 아버지가 부양의 의무를 파기한 집에서 만수씨는 당연하게도 집안의 가장이 되어 동생의 학교 뒷바라지를 하고 가족을 돌본다. 그는 존재하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누구보다 선했으나 그로 인하여 그는 점점 투명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까지.  


지난 일요일, 아홉살 먹은 첫째에게 일곱살 먹은 둘째를 맡겨두고(미국이었으면 우리 부부는 잡혀갔다. ㅎㅎ) 집 근처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갔다. 지난 추석에 언니 부부의 도움으로 봤던 타짜 2를 제외한다면, 우리 부부, 아이를 낳은 뒤 처음하는 영화관 나들이였다. (타짜 2를 보고 있던 도중 고등학생 조카가 데리고 마야를 보러 들어갔던 둘째놈이 울어서 ㅠ.ㅠ 영화는 보다 말았다.)축포는 이런 때 터져야하는데 말이지. 


남편이 고른 영화는 국제시장이었다. 함흥에서 태어난 윤덕수씨는 아마도 1940년생쯤 되겠다. 6.25때 함흥에서 그는 동생을 잃어 버리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다. 아버지 없는 집안의 장남이 그렇듯, 그 역시 가장이 되어 가족을 부양한다. 선장이 되고 싶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던 그는 서울대에 붙어버린 미친 동생놈 때문에 파독 광부가 된다. 해양대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아버지와 만나자고 약속했던 가게를 지키기 위해 파월 장병이 된다. 그는 투정부리지 않고, 왜 내가 해야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마치 만수씨 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덕수씨와 만수씨가 겹쳐보였다. 


책은 성석제 특유의 유머와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빠르게 교체되는 화자들을 통해서 인물의 입체성과 구체성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소설 소개글에서 우울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깐해서 사 놓고도 읽기를 미뤄두었는데, 전혀 우울하거나 구질거리지 않는다. 성석제가 가장 잘 쓸수 있는 분야의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성장하는 작가를 보는 것은 즐겁고도 경이로운 일이다. 성석제는 언제나 이전 글보다 조금, 때로는 아주 많이 나아진 차기작들을 내놓는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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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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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직접 겪었고, 때로는 그 현대사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한 지식 소매상의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인 필치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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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5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얼마만입니까!

blanca 2014-12-29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아시마님이다!!!!

아시마 2014-12-29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러분 방가방가~~~ 저 귀국했어요!!!!!!

2014-12-3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2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나와서도 한동안 알라딘 플래티넘을 유지했었다. 받는 방법이야 다양하다. 출장자 편에 받기도 하고, 친정에 모아놨다가 누가 이삿짐을 싼다 그러면 그 편에 부탁하기도 하고, 누군가 한국에 다니러 갔다 오는 길에 가져다 주기도 하고.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을 땐 알라딘 해외배송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알라딘 해외배송은 안할거다.  

물론 알라딘의 문제는 아니다. 알라딘의 해외배송 시스템은 꽤 편리하고 요금도 개인이 발송하는 것보다야 조금 저렴하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에 있다. 아무런 원칙도 규칙도 없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나라. 알라딘에서 도합 예닐곱번을 주문했다. 매번 물건의 금액은 50-100 달러 선이었고, 처음 몇번은 문제가 없거나 있어도 납득 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 예를 들면, 이미 한국에서 배송료를 다 지불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나라 우체국에서 잡아둔 채 한화로 치면 1-2천원의 배송료를 요구하는 수준의 어이없지만 애교로 봐 줄 수도 있을 정도.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얼마전 남편 회사에서도 회사로 물건을 발송하고 (DHL) 나도 알라딘에서 DHL로 발송 주문을 넣었다. 내용물은 한치 틀림 없이 똑같았다. 둘다 비슷한 가격의 책이었고, 둘다 똑같이 책 외에 사소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알라딘에서 보낸 것에는 얼마전 알라딘의 사은품이었던 여행용 백이 들어있었고, 남편 회사에서 발송한 것에도 책과 원단 한마(90cmX120cm)가 들어있었다. 알라딘에서 집으로 발송한 것은 아무 문제없이 집까지 잘 도착했고, 회사에서 회사로 발송한 것은 무려 한화 3만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물렸다. 같은 날 발송해 같은 날 도착한 물건이었다.   

헐. 이건 뭐지. 아마 회사에서 회사로 보낸 물건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집으로만 보내자, 했다. 다음 주문을 넣었다. 알라딘에서 집으로, 그나마 조금 싼 EMS로 주문을 넣었다. 물건 가액은 120 달러가 조금 넘었나보다.  

같은 날 옆집 사는 언니와 같이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언니는 150 달러라고 물건 가액을 써 넣은 박스였고, 나는 120 달러라고 써 놓은 박스였으나, 그 언니는 세금을 물지 않았고 나는 한화 5만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물었다.  

헐. 그래, EMS라 그랬나보다. 나름 우체국은 국가 기업이니, 이놈의 나라는 정부가 썩을대로 썩었으니까, (옆집 언니는 왜 세금을 내지 않았을까?) 그럼 그나마 사기업이고 국제적인 기업인 DHL을 비싸더라도 이용해주마. 했다.  

다시 알라딘에 주문을 넣었다. 집으로 발송, DHL 이용. 물건 가액은 하나는 70달러 하나는 90 달러.  

풋. 70 달러 물건은 50달러 세금, 90 달러 물건은 55달러 세금을 매겼다.  

알라딘에 전화를 하고, 한국 DHL에 전화를 하고 인도네시아 DHL에 전화를 했다.  

알라딘에서는 이런 컴플레인은 처음이란다. 전혀 모르는 사실이란다. 이런 일이 있으니 공지에 올려달라 말했다. 인도네시아로는 웬만하면 보내지 마세요! 그렇게.  

한국 DHL에서는 알고 있단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란다. 심지어 입던 옷이라 목깃에 때가 꼬질꼬질 묻어서 간 옷 조차 세금을 물린 경우를 본 적이 있단다.(전 세계적으로 중고물건에는 세금 안물린다.) 

인도네시아 DHL에 전화를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을 해외에서 사서 들여왔기때문에 세금을 메긴 거라고 했다. 니네 한국말 책도 만들어내니 했더니 우물쭈물, 바로 말을 바꾼다.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이란다. 무슨 라이센스?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인도네시아 거주 외국인이 자국의 책을 받으려면 라이센스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니? 그랬더니 바로 그렇단다. 그 라이센스 어디에 가서 받니? 했더니 대답 못한다. -_-;;; 

두번째 물건은 못받는다 했다. 열받은 남편 님하, 그 책 새로 사 줄테니 걍 버린셈 치란다. 그래 그러마, 했다.  

 

 

 

 

 

 

ㅠ.ㅠ 

 

 

 

 

한국에 살때, 기분이 꿀꿀해지면 책을 샀다. 책을 주문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도착한 책을 읽는 순간들의 즐거움이 나를 지탱했다. 그걸 아는 남편은 가끔, 내가 정말 우울해 보일 때 책 사줄까? 묻곤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 나라에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 투정을 부리면, 남편은 한번씩 책 사줄까? 출장자 있는데. 했다.  

헌데 이 나라에서는 책을 사는 것이 더 스트레스다.  

dhl 과 싸우고 패닉 상태로 누워서 오늘도 하루키의 먼북소리를 꺼냈다.  

 

 

하루키가 이탈리아에 체류하며 쓴 이 책에는 <이탈리아의 몇가지 얼굴>이라는 챕터가 있고, 그 안에 <이탈리아의 우편 사정>이라는 챕터가 있다.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이탈리아란 나라의 특징을 40자 이내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수상이 매년 바뀌고,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식사를 하고, 우편 제도가 극단적으로 뒤진 나라."라고 답할 것이다.
p.377 

그리고 많은 페이지를 이탈리아의 우편 제도에 대한 놀라움을 토로하는데 할애한 하루키는 "아무튼 이 나라의 공공 기관은 치명적으로 번잡하고 비능률적이고 불친절하고 관료적이다. 그런데다 자잘한 규제가 많고 그런 규제가 또 반년마다 제멋대로 바뀌니 거의 아무도 규제 따위 기억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연유로 도처에 제도적 블랙홀이 생긴다. (p.380)"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리한 하루키는 "하나 그런 일로 화를 냈다가는 이탈리아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p.381)"고도 잘라 말한다. 왜나하면 "매일이 이런 일의 반복(p.381)"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다시, "내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감탄하는 것은, 그들이 이런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을 조금도 개선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p.382)"라는 진지한 감탄까지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은 그지없이 인상적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이런 일을 써본들,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p.386)"라고.  

내가 이 책을 읽은 2009년 무렵에 하루키의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우스개였다. 지금 나는, 하루키의 분노와 체념 뒤에 오는 그 허탈한 심리를 너무나 절절히 이해한다. 이건 정말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테니까. 아, 정말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는 존재로구나.  

하루키의 책으로도 도저히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가 없을 때는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의 책을 꺼낸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석학(아 이 식상한 표현이라니.)이신 이 분, 정말 끝내주는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이 분 말이다. 이분이 어느날 암스테르담을 지나오다 운전면허증을 도둑맞으셨단다. 그리고 그 도둑맞은 운전면허증을 이탈리아에서 재발급 받기 위해 겪으신 일들을 글로 남겼다. 이름하여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챕터다. 이건 도저히 요약도 안되고, 어디를 뽑아낼 수도 없다. 배를 잡고 깔깔깔 웃을 수 밖에 없는 코메딘데, 이 깔깔깔 웃는 코메디가 읽는 사람에게만 그렇다는 걸 이제야 나는 안다. 그간 웃었던 일들이 너무 미안해지는 거 있지. 이 일련의 일들에 대해 이 뛰어난 두뇌를 가지신 분은 이렇게 요약을 해 낸다. "한마디로 말해 불법의 대량화 또는 합법의 허구화(p.81)"라고.  

이 나라에 살려면 한국으로치면 외국인 등록증 같은 걸 받아야 한다(이름은 KITAS다). 이건 여권과 함께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하고 매년 갱신해야 하며, 심지어 이민 당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불심 검문을 나와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당해본 적은 없지만, 꽤 흔한일이다.) 이 중요한 것이 말이다. 크하하, 나는 지금 없다. 일년에 절반은 내가 가지고 있지를 못한다. 절반이 뭐야. 2/3 정도는 이 나라 정부에서 들고 있는 것 같다. 꼭 가지고 있으라고, 안가지고 있으면 안된다고, 벌금을 물린다고 추방을 하겠다고 난리지만 실제로는, 아니, 줘야 가지고 있지. 나는 매년 7월에 이 거주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데 5월경에 이민국 브로커를 통해 이민국에 여권과 끼따스를 비롯한 부속 서류들을 넘겼다. 그리고 7월도 지나서 8월에(푸하핫!) 이민국에 가서 갱신을 하기는 했다(뭐, 이 갱신 과정으로 이 나라에 불법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걸러낼 수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자 갱신을 하기는 했는데, 아직도 여권과 끼따스와 기타 등등의 서류는 10월이 된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는? 누가 알라나. 아마 브로커는 알겠지.  

이민국에 가보면 이민국 직원이 좀 있고, 외국인이 있고, 그 이민국 직원 전부와 갱신을 위해 와 있는 외국인 전부를 합한 수의 세배쯤 되는 브로커들이 있다. 서류에 사인하라는 말조차, 눈 앞의 외국인에게 하지 않고 바로 옆의 브로커에게 한다. 나름대로는 이 나라의 고용창출이라나. 푸하하하하핫. 하긴 뭐, 이 나라는 도로는 좁고(10년째 도로는 확충되지 않고, 자동차는 10배가 늘었다.) 교통 체증은 심화되니 도로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3 in 1 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는 무조건 3명 이상이 타고 있어야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자 조끼(joki)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 근처에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 하릴없이 서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한국에 예전에 남산 터널이 3명 이상이라야 무료 통과할 수 있다는 제도를 만들었을 때 전설처럼 들려오던 그 앞에 서서 차를 타고 같이 터널을 지나주는 알바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똑같은 거다. 그게 정상적인 직업이 되고(장인자리가 사윗감에게 "자네 직업이 뭔가?" 하면 "네, 저는 조끼 일을 합니다." 가 되는) 나름 고용창출을 했단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아 웃고 있어도~ 나는 눈물이 난다~~~

하루키 말대로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고, 에코의 말대로 "불법의 대량화 또는 합법의 허구화" 인 것이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남편이 DHL과 통화를 다시 했다. ㅠ.ㅠ 남편은 그 책을 폐기처분하라 말했다. 아아아아아아아. ㅠ.ㅠ 내가 이 그지같은 나라에 왜 날 끌고 왔냐고, 나는 도저히 못산다고 발작을(종종 일으킨다. -_-;;) 할 조짐이 보이자 미리 선수를 친다. "새로 사 주께! 똑같은 거 사서 출장자 편에 받아다 주께!!!" 아. 마음에 좀 안정이 온다. 

마지막으로 은희경의 책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니 모든 인간이 가진 개인성을 다양함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그리고 배려하는 사회는 규칙이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p.244

규제가 많은 것, 좋게 보자면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이민의 나라이기 때문에 필요하겠지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함게 살자면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을 최소화하려면 규칙과 규제가 많아질 수밖에요. 사회의 우선 가치는 물론 공정함fair이고 말이죠. (걸핏하면 소송, 그러니 변호사가 그리도 많고...)
p.250 

미국은 이러하군.  

저는 이 나라에서 아직 2년 남짓 더 살아야 한다. 뜻밖에 모범생 기질이 다분하고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못견뎌하는 나에게 이 나라는 참 견디기 힘든 나라.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 법과 규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라.  

ㅎㅎㅎ 운전 면허증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나라에서는 면허를 돈을 주고 사거든요. 그리고 그것또한 갱신을 해야 하는데, 뭐 면허증이 없으면서 운전을 해도 교통 경찰에게 뜯기는 돈이 있을 때보다 세배쯤 많아진 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_-;;; (참고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어도 돈은 뜯긴다. 단 벌점이나 기록은 전혀 없다. 걍 돈만 주면 된다. 교통경찰하면서 돈 구하긴 참 쉽다, 이 나라는.)

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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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맘 2011-10-2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속상하셨겠어요..ㅜ,ㅜ그래도 열심히 책읽는님의 모습을 보면 제모습에 반성이 되네요..책을 편하게 살수있는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요즘은 뭐가 그리 바쁜지 책을 못읽고 스트레스만 읽어야지 하는...ㅋㅋ직원이 한명 있었는데 어렵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시켰거든요 얼마나 서로 무등켜안고 울었는지...사실 정말 어려워서 그렇다면 할말이 있는데 그건 아니었으니까.요...한명의 직원이 그만둔 빈자리는 고스란히 제가 다 일로 전해주네요...
덕수와함께 놀시간도 괜히 피곤하다는 이유는..여튼 힘내세요...

아시마 2011-11-10 22:44   좋아요 0 | URL
열심히 읽죠. 후진국이 괜히 후진국이 아니라서 한달 이십만원 정도 되는 돈에 식모 둘을 부리고 있으니, 닉 혼비가 말했듯, 저녁 먹고 설거지 거리를 미뤄두고 책을 읽는 거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근데 참... 이 나라가 싫어요. 진짜로.
 

얼마전 곽재구의 신작 에세이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었다. 판단은 일단 보류. 이 사람 글은 좋을 땐 참 좋은데, 음. 뭔가. 싶을 때가 있어서. 그래도 별 세개 반은 일단 주고. 

그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 라는. 정확한 문장을 옮겨보면 이렇다.  

이 학교는 지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째와 둘째 셋째 학교를 알지 못합니다. 빠따바반이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세개쯤은 더 있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곽재구, <우리가 사랑한 1초들>, 톨, 2011, p. 47  

요즘 나는 남편과 곧잘 페이스 타임으로 노는데, 약간 사오정끼가 있는 이분(실제 신체검사에서 청력 약화 소견이 나왔음!)에게는 정말 딱 맞는 소통의 방법이 되셨다. 그 전까지 우리의 대화는 보통 거의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이러했다. 

"뭐해?"
"책 봐."
"무슨 책?"
"블라블라블라...(책제목, 또는 저자 이름 등등등)"
"뭐라고?"
"블라블라블라... 라고."
"몰라몰라몰라?"
"아니, 블라블라블라!"
"아, 울라울라울라...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
"울라울라울라 아니고 블라블라블라아아아아!!!"
"니가 아까는 줄라줄라줄라 라며."
"됐어! 이 사오정!!" 

요즘은, 똑같은 질문에 그냥 화면으로 비춰준다. 그럼 그나마 노안은 안 오신 이분, 책 제목이랑 저자명이랑 잘 읽어주신다. 그러고는 묻는다. 

"무슨 책인데?
"뭐 이러쿵저러쿵 하는 책이야."
 

그럼 반드시 하시는 말. "무슨 그런 책을 읽냐." -_-;;; 

이번에 읽던 책은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와 <호박속의 잠자리> 7권을 사흘간 달렸다. 2004년에 마지막으로 읽고 덮어뒀다가 다시 꺼내 읽었는데 여전히 완전 재미있음. 역시나 남편님하와 같은 질문을 반복한 끝에, 

"내 인생의 10대 소설 안에 들어가는 책이라 할 수 있지." 

라는 말을 무심코 덧붙였더니 그런 말 절대 놓치지 않는 이분, 바로 질문한다. 

"그 10대 소설에 들어가는 다른 책은 뭔데?" 

그래서 꼽아본 내 인생의 10대 소설들.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영원한 1순위. 

토지.  

p.s 문득 자랑질. 나 토지 1번에 박경리 선생님 저자 싸인 받아놨다아아아아!!! 

 

 

빠질 수 없는 2순위  

빨간머리 앤.  

빨간머리 앤이랑 토지는 내가 몇번이나 읽었을까 곰곰 생각중. 각각 10번은 넘지 않았을까? 뭐가 날 이리 매료시킨 걸까.  

p.s. 문득 추가, 앤 번역 판본 모으고 있음. 

그리고 이번엔,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음, 뭔가를 딱 하나 찝어서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박완서 선생님의 책들, 이라고 넣어줘야 할 것 같은. 

이래서 목록은 무한대로 길어지고 있음. 이건 뭔가 반칙같지만, 뭐 어쩌라고, 어느 한권을 뽑아낼 수가 없는데. 3순위에 놓는 것도 이건 뭔가 아닌듯. 에세이를 뺀 것도 죄송스러움. 내 인생관 사고관 가치관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신 관계로다.

 

 

 

드디어 나온 단행본. 이 책 이후로 김훈 선생은 많은 글들을 써 냈지만 여전히 이 책의 아우라를 벗어나지 못하셨다는 느낌. 

p.s. 나 또 자랑질. 이 책이 동인문학상을 타기 직전 2001년 생각의 나무에서 은빛 장정으로 나온 적이 있다는. 그 책 되게 예쁜데, 나 가지고 있다눈!!!  

 

그리고, 5,6,7,8,9는 여전히 블랭크인 상태로.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랑 <호박속의 잠자리>(둘다 아웃랜더 시리즈.) 

이 책은 나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열망... 이라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필요성을 자극하는 책.  

현대 문화센터가 다음 시리즈들을 번역해 주기만을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건만... 

2006년에 출간되리라던 시리즈 3편 번역본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임. 현대 문화센터는 각성하라! 

음, 그리고 순위 외지만 11번쯤엔. 

<앰버 연대기> 넣어주겠음. 

 

 

 

ps. 문득, 

서재 식구님들, 잘 계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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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15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의 10대 소설이라... 재밌어요.

아시마 2011-09-16 16: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런 줄세우기 좋아하는 저는 .... 좀 쫌스럽고 많이 촌스럽고 꽤나 편협하지요.ㅎㅎㅎ 그러나, 이런 줄세우기, 재미있죠?

다락방 2011-09-1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 이 페이퍼 클릭하기 전에 막 두근두근 했거든요. 뭐가 있을까, 나랑 겹치는게 있을까,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한권도 겹치지 않아서 좀 놀랐어요. 생각해보니 아시마님은 주로 국내소설을 애정하시고 저는 번역소설을 애정하지요. 겹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토지]는 좋았어요. 한번 밖에 읽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시마님도 아웃랜더 읽으셨군요! ㅎㅎ 젊은 청년 제이미 ㅎㅎㅎ
좀 자주 오셔서 글 좀 써주세요, 아시마님!! 네?!!(안그러면 즐찾 빼버릴거에욧! 흥!)

아시마 2011-09-16 16:52   좋아요 1 | URL
젊은 청년 제이미는 겨우 23살. 그러나 최고의 남주여요.

즐찾 빼신다는 말은.... 열심히 써 보렵니다 ㅎㅎㅎ 잘좀.

Ps. 또 문득 자랑질, 저 지금 아이 패드로 서재질 중!!!

blanca 2011-09-16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저도 모르게 기다렸나 봐요. 아시마님의 강추 리뷰를 읽고 <토지>를 읽은 게 올해의 유일한 의미 있닌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칼의 노래>의 아시마님 평에 동의해요. 얼마전 이런 생각도 했어요. 김훈에게 이순신이 임해서 ^^;; 김훈이 받아 쓴 것 같다고.

아시마 2011-09-16 16:53   좋아요 1 | URL
김훈이 이순신에게 임햤단 말엔 저도 격하게 공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