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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2014. 12. 24
어디서 읽은 글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글이긴 한데(아마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중에서 읽었거나 이만교의 글쓰기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여튼 거기서 보면 1970-80년대의 소설가들이 현대의 소설가들에 대해 놀라워? 신기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비범한 일상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자신을 유폐시켜야만 하는 현대의 소설가들에 대한 연민? 또는 부러움을 느끼는 그런 이야기. 하긴 1970년생 김영하도 (71년생인가..) 자신은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열등감을 느낀다 하니 뭐.
확실히, 20세기 초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야깃 거리가 풍부하다. 그들은 20세기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겪지 못할, 때로는 겪지 못해서 행복할 사건들을 온 몸으로 직접 겪어가며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1931년생 박완서 선생님이 자신은 평생 토악질을 하듯 글을 썼다는 말이 이런 대목에 가면 실감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소설은 주요 무대를 이제 6.25시절이 아닌 그 이후 한국 경제 발전기로 옮겨가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김만수씨는 1960년쯤에 태어난다. 큰형 백수씨가 6.25 동란 중에 태어나고 그 위로 금희와 명희 누님이 태어난 뒤에 태어났으니 터울을 대충 계산해보면 그쯤 되겠다. 그는 똑똑한 장남을 위해 희생하던 당시 전 국민의 70%가 넘는 농가 차남의 대표적 인물쯤 되어 보인다. 그러니까 유별날 것도 없는 인간이 되겠다. 그때 한국에는 수많은 만수씨가 있었으니까. 그러다 김만수씨의 가족은 그 당시 흔했던 서울로 서울로 옮겨가는 가족중의 하나가 된다. 잘난 큰 아들은 우골탑을 쌓아가며 대학에 다니고 딸들은 공장에 다니며 대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그러다 큰아들은 당시의 상황에 발맞추어 베트남 파견장병이 되고, 거기에서 어이없게도(그러나 흔해 빠지게도) 고엽제에 희생당해 죽는다. 큰아들이 죽은 집, 아버지가 부양의 의무를 파기한 집에서 만수씨는 당연하게도 집안의 가장이 되어 동생의 학교 뒷바라지를 하고 가족을 돌본다. 그는 존재하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누구보다 선했으나 그로 인하여 그는 점점 투명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까지.
지난 일요일, 아홉살 먹은 첫째에게 일곱살 먹은 둘째를 맡겨두고(미국이었으면 우리 부부는 잡혀갔다. ㅎㅎ) 집 근처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갔다. 지난 추석에 언니 부부의 도움으로 봤던 타짜 2를 제외한다면, 우리 부부, 아이를 낳은 뒤 처음하는 영화관 나들이였다. (타짜 2를 보고 있던 도중 고등학생 조카가 데리고 마야를 보러 들어갔던 둘째놈이 울어서 ㅠ.ㅠ 영화는 보다 말았다.)축포는 이런 때 터져야하는데 말이지.
남편이 고른 영화는 국제시장이었다. 함흥에서 태어난 윤덕수씨는 아마도 1940년생쯤 되겠다. 6.25때 함흥에서 그는 동생을 잃어 버리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다. 아버지 없는 집안의 장남이 그렇듯, 그 역시 가장이 되어 가족을 부양한다. 선장이 되고 싶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던 그는 서울대에 붙어버린 미친 동생놈 때문에 파독 광부가 된다. 해양대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아버지와 만나자고 약속했던 가게를 지키기 위해 파월 장병이 된다. 그는 투정부리지 않고, 왜 내가 해야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마치 만수씨 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덕수씨와 만수씨가 겹쳐보였다.
책은 성석제 특유의 유머와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빠르게 교체되는 화자들을 통해서 인물의 입체성과 구체성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소설 소개글에서 우울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깐해서 사 놓고도 읽기를 미뤄두었는데, 전혀 우울하거나 구질거리지 않는다. 성석제가 가장 잘 쓸수 있는 분야의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성장하는 작가를 보는 것은 즐겁고도 경이로운 일이다. 성석제는 언제나 이전 글보다 조금, 때로는 아주 많이 나아진 차기작들을 내놓는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