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이 머그컵을 연말마다 주기 시작한지 4년째다. 물론 알라딘 초 우량고객(내 맘대로 ^^)인 나는 지난 3년간의 머그컵을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다. 첫해의 머그컵은 머그컵 답지 않게 얇게 느껴지던 손잡이가 예뻤고, 두번째해의 머그컵은, 음, 별로였다, 솔직히. 작년의 머그컵은, 우리 딸의 애용품이다. 일명 '책보는 강아지 컵'과 '엎드린 강아지 컵' 되시겠다. (나머지 두개는 숨겨놨다.) 우유는 꼭 책보는 강아지 컵으로 드셔야 하고, 물은 꼭 엎드린 강아지 컵으로 마신다. 딴 컵에 주면 자기 컵 내놓으라고 난리다. 얘, 그거 엄마꺼거든? 

12월 구매는 안하려고 굳게 결심했는데, 이놈의 머그컵, 올해는 유난히 이쁘다. 환장하겠다. 

충무공에게 전화로 호통쳤다. 내가 내가 못살아! 너랑 왜 결혼해서 내가 머그컵을 못받는지 모르겠어! 다른데서 살수도 없는 머그컵인데! 어쩔테야!  

..........................라고는 차마 말 못하고, ;;;;; 

올해도요~ 머그컵을 준다는데요~ 제가요~ 12월엔 정말 책 안살려고 했는데요~ 진짠데요~ 근데 머그컵이 너무 이뻐서요~ 선착순으로 주는 거라는데요오오~ 12월이 지나가면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럼 전 너무 속이 상할건데요오오오오오오~ 머그컵이요~오~ 알라딘 머그컵이요~오~  

라고 납작 엎드렸다. 쩝. 

항상 정신나간(응?) 충무공, 이번에도, 단호한 안돼! 가 아니라, 기다려봐. 다. 

하루 이틀만 더 꼬시면, 그렴 4만원만 사, 이럴거다. 안봐도 견적이 나온다. 나란 인간은, 아마 4만원에 한개 받고 나면 똑같이 또 꼬셔서 결국 세개 다 받아낼 인간인거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결국 충무공은 이러나 저러나 최소 12만원은 털리게 생겼다.

우리 언제 부자될라나. 

알라딘 작년엔 막판에 머그컵만도 따로 팔았는데, 올해는 안그럴라나. 

나 인제 진짜 책 안사고 싶거든. 진심으로. 좀 고만사고 싶다고오오오! 머그컵만 내놔랏! 

6년 우량고객 내세우고 고객센터에 전화라도 해 볼까나. 

머그컵만 저한테 넘기실 분은, 없겠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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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2-10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는 판매도 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알라딘 머그컵은 책 사고 따라와야 맛이죠. ㅎ

아시마 2009-12-10 12: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 사고 따라와야 제맛이기도하고, 올해는 재고가 거의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정말 여기저기 머그컵 열풍이네요. 아. 고민된다.

Forgettable. 2009-12-1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시마님 너무 귀여우세요- ^^;
머그컵 진짜 귀엽던데, 저번달에 산 책을 거의 못읽고 있어서 이번달엔 참아야지 했는데 저도 흔들흔들입니다 ㅎㅎ

아시마 2009-12-10 12:45   좋아요 0 | URL
지난달에 산 책을 거의 못읽고 있어서 이번 달엔 참아야지, 라는 말을 저도 그 옛날 언젠가는 했었더랬지요. ㅎㅎㅎ 예전 리뷰 정리하다보니 2001년 경에 썼던 리뷰의 말미에 그런 말을 써 놨더라구요. 읽지않고 쌓아둔 책이 많아서 이 책을 사기 망설였는데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샀다, 운운. 그때로부터 강산이 변할 즈음이니.
이번 머그컵 너무 귀여워요. 귀엽지 않았어도 콜렉팅하는 취미에 사긴 했겠지만, 이번엔 그 자체로 넘 이쁘더라구요. 에혀.

덕수맘 2009-12-1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사랑스러우신 것같애요.
제게 그비결 좀 알려주세요. 저희신랑은 저보고 늘 무뚝뚝하다고..
참 슬픈게 다정다감했던 남편조차도 저처럼 무뚝뚝해지는게 가슴이 아프더라구....ㅜ.ㅜ

아시마 2009-12-10 12:41   좋아요 0 | URL
비결을 물으시니... 일단 책을 한달 평균 6-70씩 질러주시면, 그래서 세달 토탈 180을 휙 넘겨 주시면 나에게 존재하는 줄 누구도 알지 못했고 스스로는 더욱더 자각하지 못했던 애교와 상냥함이 호랑이 기운 처럼 솟아납니다. 아하하하...
아기들이 몽실몽실 귀여운 것도 생존 본능의 일환이라는 데, 저의 필살 애교도 그럴겁니다. 냐하하하하...
일단 사고를 치세요! 뒷일은... 제가 절대 책임 안져드립니다. ^^

덕수맘 2009-12-1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그비결이 아니라 애교 잘부르는 방법 말한건데..
헤헤..책은 글케 구매하고 싶어도 이사전까지는 집이 좁아서 놀 공간이 없어서
지금부터 걱정입니다.내년에 이사가면 이쁜 서재 만들어야하는데...아직도 9개월이나 남아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는지..헤헤 책은 계속 구매할텐데..

아시마 2009-12-10 20:22   좋아요 0 | URL
그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저의 초 필살 애교는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절박한 거라, 일단 생명의 위협(응?)이 없으면 나오지 않아요. 저 무능문대 나온 무능한 전업이라, 남편 지갑이 닫혀버리면 알라딘이여 안녕~ 되는 상황이라구요. 그럼 당연히 완전 간드러지는 애교가 불꽃튀게 작렬하는 거죠. 이건 진짜 생존에 관련된 문제라니까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바로 휙~ 튀어나오는. ㅎㅎ
저희집 책장은서재를 뛰쳐나와 거실을 절반 이상 잠식해 버렸어요. 아하하...

blanca 2009-12-1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머그컵 때문에 환장하겠습니다. 벌써 머리 굴리고 있다니까요....기냥 팔면 껴서 주문할텐데...참, 책 살 이유는 가지가지 많기도 합니다. 머리 잘 쓴 것 같아요

아시마 2009-12-11 20:39   좋아요 0 | URL
증정 기준이 4만원이상에서 6만원 이상으로 바뀌었다면서요. 알라딘 치사해요 진짜. 6만원씩 세개 받을려면 18만원인데, 음음, 이것도 17일부터는 머그컵 선택할 수 있다니 다행이지만, 랜덤하게 준다고 했으면 진짜 알라딘 테러하러 본사로 쳐들어 갔을지도...

아시마 2009-12-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풋. 충무공의 윤허를 얻은 저는 책 사러 갑니다. 예상대로 세번째 조르기에 넘어가더군요. 결국 넘어갈 거 버팅기긴 왜 버팅기냐, 싶지만, 애교 떠는 거 보는 맛에 그랬거니 용서하고 책 지르러 고고씽~

다락방 2009-12-21 14:44   좋아요 0 | URL
하핫. 그래서 뭐 질렀어요? 말해줘요, 아시마님. 뭐뭐 질렀는지. 헤헷

아시마 2009-12-21 16:55   좋아요 0 | URL
음, 알라딘, 치사하게 중고 구매액은 안쳐주더라구요. 그래서 새책을..
박완서 샌님 세계사판 전집중에 이빠진 몇권이 있어서 오만과 몽상이랑 목마른 계절 포함해서 몇권 사구요, 김이경 <순례자의 책>이랑 황석영 음식 에세이 샀어요. 이혜경 <길위의 집> 도 주문. 그렇게 하니 6만원 훌쩍 넘더라구요.

딴소리지만, 박완서 샘은 같은 글을 너무 여러가지 판형으로 낸다 싶어요. 어차피 그래도 팔리니 출판사에서 만드는 거겠지만 콜렉션하는 입장에서는 매번 고민에 시달리게 되요. <싱아>도 그렇고 <미망>도 그렇고, 세계사 전집판으로 다시 사야하나 고민중이예요.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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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 전에 아버지 환갑이 있었다. 큰아버지와 울 아버지는 쌍둥이인지라, 두분의 환갑잔치를 하느라 사촌형제들이 다같이 모였다. 펜션을 빌려 1박 2일의 잔치를 하고 다음날 아침 사촌들끼리 모여 이런저런 수다를 떨때, 당시 이슈가 되던 뉴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아버지가 한강 다리에서 자식 둘을 한강물에 던져넣었던 사건.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당시 둘째가 돌즈음이었던 사촌언니의 충격은 유난했다. 눈물까지 보이며 자기는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 저녁 내내 울었다고. 솔직히 그땐 그럴것까지야 있나. 했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해 첫째를 낳고 누워있을 땐 영아 유기가 한참 이슈가 되었었다. 지금도 궁금한 건, 그해에 유난히 영아 유기가 많았던 건지, 내가 그런 류의 뉴스에 예민해서 자꾸만 들렸던지 하는거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병원 화단에 버린 사건, 아파트 화단에 유기되어 죽은채 발견된 신생아. 그 뉴스들을 접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제서야 나는 아버지 환갑 무렵 사촌언니의 유난했던 충격이 이해되었다.  그건 그냥 뉴스가 아니었다. 그 참담했던 심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 첫째가 돌이 지난 다음에 읽었던 루안 브리젠딘의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이라는 책을 읽고서야 사촌언니와 나의 그 유난한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 책에 의하면, 출산 후 2년까지 여자의 뇌는 그런 류의 충격(영아 유기, 아동 학대, 아동 살해, 유괴 등등,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 평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분노를 느낀다고 한다. 호르몬 덕분에. 

사람이 자기가 현재 처해있는 환경이나 처지에 따라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이겠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에서 읽느냐에 따라 그 책이 주는 감동은 전혀 달라진다. 나는 이 책을 신경숙의 소설 중 가장 인상깊게 읽었고, 지금까지 써 온 신경숙의 소설중에선 가장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그런건지 나의 상황이 그러해서였는지는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건, 2009년 1월 4일. 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 첫째도 둘째도 산후조리는 친정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서 해 주셨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밥 먹고, 애 젖먹이는 것 외엔 꼼짝도 안하고 엄마의 수발을 받던 시기였다. 내 생애 두번째로 엄마를 독점하던 시기. (처음으로 엄마를 독점했던 시기는 당연히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던 한달이었다.) 

그 시기는, 그렇게도 힘들다는 산후조리를 해 주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엄마에겐 휴식의 시기이기도 했다. 가장 적은 양의 빨래를 하고, 가장 적은 양의 밥을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 외엔 오롯히 휴식할 수 있던 시기.  

첫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의 산후조리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엄마가 차려주던 하루 일곱끼의 밥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4시가 되면 엄마는 남편과 내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살그머니 들어와 사위의 잠을 깨울까 저어하면서도 나를 흔들어 깨워 밥을 먹였다. 수북하게 고봉으로 담은 밥과 냉면 사발 가득 담긴 미역국을 다 먹이고서야 다시 잘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끼니(엄마의 표현대로라면 새벽참)는 오전 7시 30분경, 정식 아침, 오전 10시-11시경 오전 참, 오후 1시 점심, 오후 4시 오후 참, 저녁 7시 저녁, 밤 10시-11시 밤참까지, 꼬박 일곱끼였다. 참과 식사의 양의 차이는 없었다. 머슴밥같이 고봉으로 담은 밥에 냉면사발 가득한 미역국. 반찬이라고는 간장에 백김치였고 국은 한달 내내 미역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려준 엄마보다 먹은 내가 더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이고보면 난 결국은 이기적인 자식일 뿐이고. 먹기가 힘들어 짜증을 부리면 엄마는 매번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안먹으면 젖이 안나고, 많이 먹어야 회복이 된다고. 덕분에, 애 가지고 찐 살이 하나도 안빠졌지. 그래봐야 6kg지만.  

엄마의 무지막지한 산후조리는, 말하자면 당신의 한풀이이기도 했다. 넷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지만, 엄마는 단 한번도 산후조리라는 걸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나의 할머니이지만 참 잔인하고 심성이 나쁜 사람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할머니의 구박은 자심했고, 셋째 딸이었던 내가 태어났을때는 절정에 달해 아이를 낳고 첫국밥도 첫기저귀도 엄마가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단다. 그 찢어지는 가난속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엄마는 젖이 제대로 돌지 않아 아이는 죽자고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고, 분유 한 통 살 돈이 없었던 엄마에게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다. 내가 배 부르다고 밥을 남길때 엄마의 얼굴에서는 그 공포가 여전하게 드러났다. 꾸역꾸역, 식도에서 항문까지 모든 내장에 미역국과 밥이 그득 차 있어, 밥 먹다말고 화장실을 다녀와야했던 지경에 이르러서도 엄마가 주는 밥을 끝내 다 먹었던 건, 엄마가 하지 못했던 한풀이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느껴져서였다.  

엄마는 단 한번도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몸이 아팠는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즉,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을 뿐, 자신의 심정을 말해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아이를 낳아 누워있으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난 다행히, 아이를 낳고 바로 젖이 돌았고, 매번 젖이 남아 괴로웠던 젖에 관한한 축복받은 체질이다.) 그때의 엄마 심정이 와닿았다. 이런 몸으로 밥을 하고, 수도 시설도 없어 개울가로 기저귀를 빨러 다니고. 이건 50년대 이야기가 아니라 70년대, 그것도 후반기의 이야긴데도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그런 일을 겪고서도 어떻게 엄마는 내가 27살, 할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명절마다 인사를 드리고 살았을까. 그분,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그분,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분, 참 나쁘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 책의 이 부분이 가장 마음 아팠다.  

도둑맞은 함지를 찾으러 왔다가 나는 그 어둡고 좁은 부엌에서 벽에 걸린 솥을 내려 물을 붓고 데웠소. 출산중인 아내 곁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당신을 밀치고 생전 처음 보는 당신 아내의 손을 잡고 힘내오! 힘을 내오!라고 외쳤소.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릴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리오. 미역 한가닥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집. 당신의 노모는 앞을 못보는 사람이었재요. 게다가 이미 저세상 사람인 듯했소. 아이를 받아놓고 함지에서 밀가루를 퍼내 반죽을 만들어 수제비를 끓여서는 몇그릇 퍼놓고 국물을 산모가 있는 방에 디밀어 놓고......
(..........)
칠팔일 지나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미역가닥을 마련해 당신 집에 들렀을 땐 산모는 없고 갓난쟁이만 있었소이. 당신 아낸 아이를 낳고 사흘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 종내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소. 극심한 영양실조라 출산을 감당하지 못했을 거라 했소.
(...............)
전날 내 함지에서 퍼서 남겨놓은 밀가루를 또 반죽해서 미역을 넣어 수제비를 끓여 한 그릇씩 퍼서 상에 올려주고 돌아서 나오려다가 방 안의 갓난쟁이에게 내 젖을 물렸소. 내 딸애에게 먹일 젖도 모자라던 때였네.
(p.229-231) 

소설의 주요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엄마의 "인생의 동무" 였던 은규씨의 죽은 아내와 남겨진 아이의 이야기가 그 순간에 그리 가슴이 아팠던 건,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은 직후였기 때문이고, 아내가 출산을 하는데 미역한가닥 마련해 놓지 못하고 극심한 영양실조에서 아이를 낳았던 엄마의 산후조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어찌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  

그럼에도 그 아프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던 건 이기적이게도 이 구절이었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p. 223)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 관계라던가. 부모가 전생에 자식에게 진 빚이 있어 이생에 다 갚고 간다던가. 부모는 그래도 끝내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더 많았다, 라고 말하고 자식은, 이기적인 자식은 결국 신에게, 엄마를 부탁해 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책은 내내, 결국 자식들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재발견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엄마에 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감정에 대해, 한 인생에 대해. 저런 일들을 견뎌내는 동안 엄마가 했던 생각들에 대해. 

난 그간 엄마에게 참 모진 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모진 딸이었는데, 이 리뷰를 쓰다보니 내가 나쁘다 욕하는 그 할머니나 나나 다를게 뭔가 싶다. 엄마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고 나의 감정만을 중요시하는 면에서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 저런 과정을 거쳐 낳아 길렀는데 잘못을 했기로서니 무조건 용서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그래서 이 리뷰는 상투적인 결말을 맺고 끝난다. 

엄마에게, 잘 해줘야 겠다. 정말로. 엄마를 부탁해, 라고 눈물흘리고 싶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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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맘 2009-12-1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싶은책은데...오히려 더 구매안하게되네요...

아시마 2009-12-10 15:27   좋아요 0 | URL
에긍. 이 소설 슬프다는 말이 많아서요. 물론 슬프기는 한데, 소설 그 자체로 참 잘 짜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루안 브리젠딘의 조언대로라면, 덕수맘님이 아기를 낳은지 2년이 지났다면 저와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읽어보세요 재미있어요.

덕수맘 2009-12-1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아마 그시기랑 상관없이.저는 원체 눈물이 많아서 읽으면서 울거에요.동행이나 이런프로보면 저 너무 울어서...프로그램이 끝날때쯤되면 눈이 부을정도...
그럴때는 울아들 와서 그럽니다.
눈물나...?제 얼굴을 쳐다보면 눈물을 닦아줍니다...
그럼 다시 웃게 되고..여튼 울아들은 눈물이 나면 자기가 닦으면 큰일나는줄 알아요..
남이 닦아줘야 하는줄 알아요^^*
그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나쁘다, 이 사람. 글을 왜 이렇게 아프게 쓰는가. 

하릴없이 마음이 잦아드는 날이 있다. 평소와 하나 다를 것 없는 창밖 풍경이 문득 쓸쓸하게 보이는 날엔, 김훈의 글은 피해야 한다. 그런 날 김훈의 글줄을 읽어버리면 세상 사는 것이 하염없이 쓸쓸하고 덧없는 것으로 느껴져서 어쩔줄을 모르겠다. 

이 책은 기행문이다. 기행문은 기행문인데 감상이 없다. 무릇 기행문이란 여행을 하고 난 뒤의 감상과 느낀점을 기록하는 글 아닌가. 헌데 이 책엔 아름답다, 감동적이다 이런 감정에 관한 단어가 전혀다시피 없다. 그저 김훈은 그 풍경에 대해 신문 기자 시절의 습관대로 스케치하듯 옮겨놓는다. 그런데 그 스케치들을 읽다보면 그게 보인다. 이 글줄들을 쓸때,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가.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나의 감정이 된다.   

가끔은 그런 글들이 있다. 읽을 때 나의 감정의 층위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글. 내가 책에 줄을 긋는 이유는 단 하나다. 두번째 읽을 때에도 난 이 구절에 마음이 움직일까가 궁금해져서. 김훈의 글은 읽을때마다, 그때의 기분에 따라 줄이 그여지는 부분이 달라진다. 세번째 읽는 이 책은, 그래서 밑줄 투성이다.  

지난번에 읽을 때는 그저, 이 사람은 이 한반도의 풍경을 참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엔 이 사람이 이 글을 쓰면서 느꼈을 울분이 손에 잡힌다. 그 울분과 눈물을 꾹꾹 참으며, 그 울분과 눈물을 글에 섞지 않으려 노력하며 한줄 한줄 써내려 갈때, 그는 아마 울었을 것 같다. 그래서 도대체 울 것이 없는 구절에서도 울컥울컥 눈물이 난다.  

참 나쁘다, 이사람. 글을 왜 이렇게 아프게 쓸까.  

대부분에서 이 책의 구절들은 여행지의 안내문 같이 건조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구절들에 결코 건조하지 않은 김훈의 시각을 섞어 넣는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고려 중기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이다. 이 극락적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데, 건축 양식으로는 무량수전보다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장엄하고도 숨막히는 산하의 경치를 눈 아래 깔고 있지는 않다. 그 건축의 질감은 무량수전과 흡사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규모는 무량수전보다 작다. 봉정사 극락전은 고전적인 단순성의 위엄과 힘의 안정감으로 당당하다. 1363년에 이 건물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건립 연대는 그보다 앞선 고려 중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p.145)

 

이런 구절도 그 구절대로 아름답지만, 김훈의 절창이 드러나는 구절은 이쪽이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하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겨우, 그러나 기어코 봄은 오는데, 그 봄에도 손잡이 떨어진 냄비 속에서 한 움큼의 냉이와 된장은 이 기적의 국물을 빚어 낸다. 사람도 봄나물처럼 엽록소를 피부에 지니고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냉이된장국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슬퍼했다. 아내를 위로한다고 꺼낸 말이 또 이지경이 되었다.
(p.37) 

쑥 된장국의 냄새는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의 정갈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풀은 풀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p.39) 

이 구절들을 읽다가 문득 울컥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이 국토를 여행하기 시작했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괜찮다, 다 괜찮다 라는 위안을 받고 싶어서. 그런 위안이 필요할만큼 이 글을 쓸 무렵의 김훈은 힘들었나보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쓸쓸해서 아리고 슬픈 날엔, 나도 김훈의 그 글줄에서 아픈 위안을 받는다.  

그래도 참 나쁘다. 글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은 김훈의 글줄들을 피해다녀야겠다. 이 마초중의 상마초인 아저씨가, 어쩌자고 이런 글들을 써내는가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국내 여행기에선 거의 최고봉이란 생각을 한다. 감상을 넣지않은 기행문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건드리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도대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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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별 생각없이 나의 계정을 열었다가 본 저 금액. 순수 구매금액이 저거면, 알라딘에서 물경 200만원 넘는 책을 샀다는 이야기다. 병도 이정도면 중증이다. 살면서 아직까지는 그런적 없는데 처음으로 충무공한테 미안해져서, 12월 한달간 책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잘 지켜질 수 있을까. 4000원 맥스무비 영화 할인권은 지난 몇년간 써본적도 없이 매번 날렸다. 오늘은 동생에게 전화해서 저거라도 받아가라 해야할까보다. 

2. 곧 이사를 해야해서 이삿짐 센터 사람을 불렀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책에 질린 얼굴을 하는 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삿짐 센터 사람이 견적내러 와서 질린 얼굴 하는건 좀 맘에 걸리더라. 보기보단 안많아요, 아하하하하하하하... 비굴하게 웃었더니 생각보단 싸게 견적이 나왔다. 하긴 뭐, 우리집에 책 말고 또 짐이 있어야 말이지. 

3. 책을 살수도 없으면서 중고샵엔 왜 그리 열심히 드나드는 걸까. 에혀. 갈때마다 사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꾸역꾸역 담아놓고, 다른 사람이 사 가서 살수 없다는 메세지가 뜰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며 충무공에 대한 미안함이 희석되어 간다. 아놔, 난 왜 돈 없는 남자한테 시집을 갔을까아아! 

4. 오늘 간만에 김훈 <자전거 여행>을 펼쳤더니 서문에 이런 말이 있더라.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그 말에 슬적 덧대어 말한다. "이 리뷰를 팔아 책을 또 사려한다. 사람들아 thanks to 좀 해라." 

5. 저 책 구입비의 절반은 딸 책 산거다. 그러니까 충무공은 나한테 구박하면 안된다. 딸은 나 혼자 낳았냐, 같이 낳았지. 그러니 절반은 충무공이 쓴거다. 그러니 알라딘 구매 금지를 절반으로 줄여라아아아아아... 절반은 아니라도 적어도 1/3은 다인 책일... 지도 모르겠다.  

6. 몇달 뒤엔 20피트 컨테이너에 우리 짐을 다 실어야 한다. 다 안들어가면 어쩌지, 충무공은 맨날 그 걱정이다. 책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책장이 다 실리지도 않을 거라고. 혼수로 한 장롱은 이미 버림받았고, 또 뭐 버릴까. 책을 버리느니 날 버리라고 했더니 오냐, 냉큼 버려주마, 하신다. 쩝.  

7. 요즘 노리고 있는 책은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책들과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황금가지판 전집이다. 그 두 가지의 책이 중고샵에 뜰때마다 심장이 찢어진다. 지금 안사면 내일은 없을게 뻔한데. 아이고 데이고. 그나저나 알라딘 참 머리 잘 썼다. 중고샵은 내 충동구매의 원흉이다. 

8. 고통과 수난의 달 12월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이사하고 어쩌고 하면 휙 지나가고 없겠지. 그러나 저러나 188만원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3개월 금액이 100 이하로 내려가 본 적도 없지만. 매달 충무공과 합의한 나의 책 구매 한도액은 25만원이다. 매달 그 두배 이상을 쓴거다. 에혀. 월급쟁이인 충무공은 국세청과 두집 살림 중이시고(신문에 나는 연봉과 통장의 실수령액은 체감상 거의 두배 차다.) 나는 알라딘과 두집 살림 중이다. 집에 돈이 모일 새가 없다.  

9. 두집 살림하니... 결혼 첫해에 신문에 남편 회사 연봉이 떴다. 매달 얼마로 환산한 금액인데, 내가 관리하는 남편 월급통장에 찍히는 금액의 정확히 두배 금액이더라. 월급 절반을 어디다 줬냐 따졌더니 세청양 갖다줬단다. 국씨집안 세청양. 그래서 충무공은 장인도 두분이시지. 차-암, 훌륭하시기도 하다. 둘째를 낳고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이제 두집살림은 정리해. 우리도 이제 애가 둘이야. 했더니 남편이 말한다. 안돼. 왜냐하면 그쪽에도 애가 둘이거든. 어이구, 이걸 농담이라고.  

10. 아. 괴롭도다. 마태 수난곡이 울려퍼지는 듯 하다. 나도 이달엔 재고 소진이나 해야겠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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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07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석달에 저는 25만원 넘었다고 반성 또 반성했는데 ㅋㅋㅋ 님은 저보다 두 수는 위이신듯. 저 4번 안그래도 김훈 자전거 여행 화장실에서 다시 읽다 뿜었잖아요. 책좀 사가라! 아이 키우면서 책읽는 낙이라도 없으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식으로 합리화중이랍니다.

아시마 2009-12-07 22:05   좋아요 0 | URL
남편에게도 맨날 나 애 키우느라 우울해서 책 사야겠어! 라고 말하는데요, 저 좀 심했죠? ㅠ.ㅠ 구박받고 반성 해볼라고 긁어 올렸어요. 188만원은 뭘로도 변명이 안되는 금액같아요. 그냥 미친듯이 질렀구나, 라는 말밖엔. 세달에 25만원 넘었다고 반성반성 하는 분도 있는데, 제가 제정신이겠어요. 저정도로 질러놓으면요, 솔직히, 6개월간은 책 안사도 책 읽는 낙은 충분히 느낄수 있을만큼의 비축분이예요. 에혀. 오늘은 정말, 진심으로 남편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오죽하면 괜히 전화해서 애교 좀 떨어줬죠. 남편은 황당했을 거예요. 얘가 갑자기 왜이러나 그러면서.

아시마 2009-12-07 23:21   좋아요 0 | URL
아, 맞다. 더 압권은, 오늘 전화해서 괜히 애교 좀 떨어주고 이쁜짓 해줬더니 남편 왈, "너 사고 싶은 책이 생겼구나. 얼마냐?" 그러더군요. -_-;;;

blanca 2009-12-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님 댓글 읽고 오늘 분리수거날인데 괜히 신경쓰이더군요. 알라딘 상자가 좀 많아서... 그래서 저도 아기가 크면 빨랑 책값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놔, 그냥 책 읽으면 돈 주는데 없나요? ㅋㅋ

아시마 2009-12-09 00: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님도 외치세요. 이 리뷰를 팔아 책을 사려한다, 사람들아 thanks to 좀 해라. 그렇게. 난 외쳤지만 아무도 안해줘서 슬펐다는...
저희 부부도 참 안싸우는 편인데, 가끔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남편이 씩씩 거리곤 했지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전 평생 놀고 먹을 계획이라(김훈 선생 왈, "노는 게 신성하다!" 하셨으니) 애 커도 돈 벌 계획은 전혀 없고, 어떻게하면 남편 등을 좀 더 잘 쳐먹을수 있을까... 이 궁리만.
여러모로 님이 저보다 훨씬 나은 아내이시니, 알라딘 박스가 좀 많이 나와도 당당하시압! 서재가니 이런 여자도 있더라고 남편에게 알려주면 남편이 님에게 고마워하실 거예요. 아. 나 남의 부부 평화에 도움준 건가요? 냐하하하하....
 
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하도 많이 질러대다 보니, 이 책을 내가 도대체 왜 샀는지, 언제 샀는지 내가 산게 맞기는 한지 싶은 책이 정말 혹가다 한권씩 생긴다. 이게, 알라딘 중고샵을 이용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사고 싶은 책이 나오면 무료배송 2만원을 채우느라 또는 5만원 이상 추가 마일리지를 노리느라 급하게 걍 땡기는 책 한권 정도를 집어 넣어서 더 잦아졌다. 

이 책도 그래서 끼어들어왔는데, 읽는 내내 후회했다. 아, 차라리 시작하지말고 되팔아버릴 걸. 

가끔은 어느 분야에 학을 띠게하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고나면 한동안 그 책의 분류와 관계있는 책들 근처도 가지 않게 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잘썼고 못 썼고는 다음문제고, 아니 오히려 잘 썼으니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는 거겠지만, 그냥 읽고난 뒤에 어우어우어우...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류의 책들.  

주로 일본 소설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한번씩 이렇게 학을 띠고 나면, 일본 소설은 쳐다도 보기 싫다. 한번씩 이런 지뢰가(글이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나의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점에서 이건 핵폭탄급 지뢰다.) 걸려든다는 걸 알면서도 일본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나도 내 스스로 웃긴다. 뭐, 변명해 보자면, 내가 주로 읽는 작가들(하루키, 바나나, 가오리, 에이미, 히토나리)의 작품은 적어도 이런 류의 정서와는 관련이 없으니까, 한번 읽기 시작한 작가는 웬만하면 차기작도 읽어주자 주의라서... 운운.  

일본이 아닌 미국에 거주하면서 글을 써내기도 하는 하루키부터 일본색을 버리고 싶어 바나나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는 요시모토 바나나 까지도, 그 기본 정서에 깔고있는 일본적인 어떤 느낌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일본 적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산뜻하지가 않고, 끈끈하고, 기괴한 느낌이다. 음. 귀신이 아니라 요괴 라는 느낌이랄까. 좁디 좁은 바나 하나를 사이에 둔 이렇게 가까운 나란데도 이렇게 다를수가 싶을때가 있다. 뭐, 서양인이 보면 일본의 정서나 한국의 정서나 비슷할라나. 

에엥, 이야기가 영 딴데로 새고 있다. 

하여간 이 소설은 한동안 일본문학 근처에도 가기 힘들어질만큼 학을 떼게 만들었다. 으윽. 

그렇다고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떤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런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가게 된다.  

헌데... 작가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허점이 너무 많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고지마씨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고, 아버지가 고지마씨에게 왜 그렇게 약한 입장을 취하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어떤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지마라는 인물을 계속 미스테리로 남겨둔 채 끝까지 밀고나가는 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하는 중요한 원동력이긴 하지만, 이놈의 고지마라는 인간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냥 변태적 취향을 지닌 화가, 이게 끝이라는 사실이 더 어이없다. 이건 뭐야 밝혀진 게 밝혀지지 않은 거나 상황이 달라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이와지마와 유키코, 주인공 셋이 왜 재의 도시를 떠나야만 했는지도 모르겠고, 첫번째 단편에 등장한 주인공의 형이 왜 그런 종류의 요괴(? 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가 되었는지, 왜 부모님은 그 요괴를 그냥 두고만 보는지도 알수 없고, 죽음 이후에 주인공을 그렇게 대하는 부모와 누나의 태도는 더 미스테리다. 형은 그냥 단순한 정박아였던 건가? 어쨌든 갱생원(? 교도소랑 비슷한 곳 같은데)에서 몇년만 살고 나올정도로 어쩔수 없는 상황, 또는 실수 였던 것을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에 그런건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같던데, 주인공은.  

모든 것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기괴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니 밝히지 않는 것이 작가의 또다른 의도였다고 보기에는, 음.  

여하간.  

어익후. 싶은 소설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융의 이론대로 집단 무의식을 적용하자면, 내가 일본이 싫고, 일본적인 뭔가가 싫은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인거 아닐까 싶은. 

ps. 근데 또 내 노트북은 VAIO 라는거~ 카메라는 캐논이고. 앞으로도 노트북은 바이오로, 카메라는 캐논이나 소니로 갈 예정이라는 거. 우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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