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가 진실이라고 믿으세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가 있나요? 인터뷰를 읽은 것으로 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거라고 믿으세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죠. 어쩌면 그 어떤 글쓰기보다 공적인 글쓰기 같기도 하고, 그 어떤 발언보다 사적인 발언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극단적인 개인사와 극단적인 공적 발화가 뒤섞인 장르가 인터뷰죠. 

잠깐, 제가 방금 '장르'라는 말을 썼나요? 흠. 인터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문학의 범주안으로 들어간 하나의 장르. 그럼 이 인터뷰는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한 조동일 선생식의 분류를 따르자면 교술장르인 걸까요, 서정장르인 걸까요. 인터뷰란 결국,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아니면 나의 외면을 치장하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이것에 따라 서정이냐 교술이냐가 나뉘겠군요. 인터뷰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도 여기서 결정이 나겠군요. 그런데 잠깐. 우리 흔히 그런말 하잖아요. 패션은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거라고. 그럼 말로 나를 치장하는 것또한 나의 내면의 반영이니 결국 인터뷰란 내 내면의 표현이되는 거네요? 결국 서정장르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 학부시절에 참 지겹게도 했던 말들.  

작년(그래요, 벌써 작년!), 2010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었던 김혜리의 책을 볼까요.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와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가 한 인터뷰를 하나로 묶어서 냈어요. 아무래도 영화잡지라는 한계가 있으니 당시 이슈가 되는 영화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인터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신경민 앵커나 유시민 님이나 장한나, 번역가 정영목 등등의 인터뷰도 있네요.  

사실 이 책은 고현정의 인터뷰가 보고 싶어서 샀는데, 정영목의 인터뷰가 뜻밖에도 몹시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으로 번역가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한 번역가가 정영목이었거든요.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 정영목도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줄바꿈이나 따옴표를 전혀 쓰지 않고 줄줄줄 기술하는 책을, 그것도 중역(포르투칼어->영어->한국어)으로 옮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정영목의 번역이라면 별 고민없이 집어들죠. 그렇다고 정영목이 자기 냄새를 많이 풍기는 번역자는 아니예요.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는데 정영목은 자기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정영목은 이렇게 말하죠.  

   
 

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나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p. 318 

 
   

 번역문이 번역스러운거, 그게 정영목스러운 번역일거예요. 아마. 그래서 저는 정영목을 좋아하구요.  

김혜리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식으로 흘러가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끄집어 내고, 상대방이 물어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김혜리의 인터뷰집을 읽고 있다보면 새록새록, 어머 이 사람 참 매력있네, 싶을때가 많아요. 이 책 이전에 나온 인터뷰집  

 

 

이 책에서도 김혜리의 장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혜리의 인터뷰는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죠. 한두페이지 정도, 김혜리가 생각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스케치가 들어가요. 그 스케치를 읽어보면, 김혜리는 이 사람을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인터뷰는 어떤 형태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문답 형식이 시작되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중간중간 괄호안의 (좌중 폭소)라는 대목도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성은 별로 없는, 가능하면 장점을 뽑아 내려 노력하는, 그래서 이충걸 식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거짓말'을 완성하는 거죠.  

이 책에서 김혜리의 인터뷰이는 전방위적이예요. 배우는 물론 기본베이스이고요, 소설가(박민규, 박완서) 만화가(김진) 건축가(황두진) 디자이너(정구호) 사진작가(구본창) DJ(전영혁) 등등. 그래서 인터뷰집 본연의 재미를 충족하게 해 주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재미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별난 생각들을 하며 각각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보는 재미요. 그게 아마도, 제가 인터뷰라는 걸 읽는 최고의 목적이니까요.  

김혜리의 인터뷰집은, 말하자면, 사실과 비유의 비율을 7:3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이 6:4 정도 되어요. 김혜리라는 창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김혜리가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김혜리의 아우라를 덧입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들 닮은 꼴로 보인다는 단점이. ^^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인터뷰집이라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요. ^^ 

자, 그럼 이번에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을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이충걸을 아시나요? 이 친구, 참 독특한 친구죠. 남성잡지 GQ의 편집장인 이 친구는 사실, 여성성을 굉장히 강하게 풍겨요. 외모와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실 글쓰는 스타일에서도 그래요. 섬세한 떨림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친구에 대해 "인터뷰 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이 책의 발문에서  

   
 

그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 그에게는 라디오 속처럼 사람을 뜯어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죠.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과연 인터뷰라는 글쓰기에서 가능한 걸까요? 이충걸은 자신의 그러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듯, 이 책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을 탈피해요. 일종의 에세이를 쓰듯, 줄줄줄 내려가죠. 일반적 에세이와의 차이라면 인용부호(따옴표)가 좀 많다는 정도? 

김혜리와 이충걸의 인터뷰이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아요. 이건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가져온 인터뷰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시의성이 강한 인터뷰의 특성상 당시에 회자되는 인물의 차이일수도, 게재되는 매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 사실 첫번째 이유가 가장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김혜리와 이충걸이 만나고 싶은 인물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이충걸은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것에 집착....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자, 이제 이충걸과 비슷하게, 패션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김경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김경은 패션지 월간 바자의 편집장이죠. 이 책의 인터뷰들은 대부분 바자에 실리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구요. 제목대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가 있고, 가수 싸이의 인터뷰로 끝이 나네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인터뷰가 있어요. 아, 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가 읽을때는, 그분이 나와 함께, 이곳에 계셨군요. ㅠ.ㅠ 

김경의 인터뷰집은 특별한 형식이 없어요. 이충걸과 김혜리의 중복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아무래도 패션지라는 형식상, 이런식의 질문이 나올때도 있죠.  

   
  외람된 질문입니다. '나쁜 여자 매뉴얼' 같은 데 나오는 얘기인데, 나쁜 여자들이 질질 끌지 않고 첫눈에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주길 바랍니다.
1.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나요?
2. 신발은 어디서 사나요?
3. 섹스나 전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p.26 김훈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의 김훈 선생께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거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야 원. 김훈 선생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영화는 안보고, 신발은 내 손으로 한 번도 사 본적이 없고, 그리고 세번째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으로 풀어버리는데, 그야말로 우문 현답이죠. 

얼마전 읽은 평론이었나, 아, 성석제의 글에서였나 김경을 새로운 기대주 중의 하나로 평가하던데, 저도 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음. 왜, 새로운 기대주일까, 싶어서요. 새로 글 내시면 꼭 읽어볼 의향이 있는데 아직 본격 소설이나 시나... 그쪽 장르는 손을 안대시는듯.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경의 인터뷰 집에서는 약간 마이너한 성향의 인터뷰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형태라든가, 한대수라든가,백현진 이런 매니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죠. 그리고, 김혜리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크리에이티브 리더" 라고 칭한 것과 달리, 김경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단독자"라고 표현합니다. 리더와 단독자의 어감의 차이는, 그대로 김혜리의 인터뷰이들과 김경의 인터뷰이들의 차이를 압축하기도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혜리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즉, 인물의 매력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김경의 인터뷰는 단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즉,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인터뷰에 치중합니다.  

자,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넘어갈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인터뷰 전문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지승호님의 인터뷰집입니다. 지승호는 김경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이 책을 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말하자면 시사성이 굉장히 강한 인터뷰를 하시는 거죠.  

이 책은 꽤 두껍습니다. 400 페이지가 넘으니까요. 이 400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다루는 인터뷰이는 고작(고작?) 9명입니다. 9명의 인터뷰이와 8개의 인터뷰를 하는 거죠. 인터뷰이도 문화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룹니다.  

진중권이라든가, 홍세화 라든가. 그나마 좀 소프트한 쪽으로 가면 김어준과 손석희가 있겠네요. 김동춘과 한홍구는 아이고야, 싶구요. 이건 인터뷰라는 형태를 띈 강연이다 싶을 때가 있어서.  

책은 그다지 쉽게 술술 넘어가지 않습니다. 꽤나 딱딱한 부분이 많아요. 그나마 진중권이 워낙에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라 진중권 편이 잘 넘어가고, 손석희는 알아듣게 말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싶구요.  

이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2004년 당시의 시사의 포인트를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지승호는 정말 드물게 제대로 인터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구요.  

이런 지승호가 이번에는 한권을 통 털어 한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2008년, 2009년을 통털어 베스트 셀러중의 한권이었죠.  

지승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공지영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을 많이 없애준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이 있는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인터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마주치다 눈뜨다 : 2005. 10.2 
괜찮다, 다 괜찮다 : 2010. 5. 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2007. 6. 14
해를 등지고 놀다 : 2004. 12.1
진심의 탐닉 : 2010. 12. 24 
그녀에게 말하다 : 20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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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또 관심이 겹쳐요. 김혜리의 저 책 두 권과 지승호의 인터뷰, 다. 이충걸의 것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바자,GQ 이러면 왠지 삶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도 다 근사할 것 같다는....저도 인터뷰 아주 많이 좋아해요.

아시마 2011-01-03 22:26   좋아요 1 | URL
이충걸의 책은, 음... -_-;;; 약간 난해해요. 글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충걸에 대한 태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굉장히... 뭐랄까... 수식적인 문장을 쓰는데, 스티븐 킹이 그랬죠. 지옥으로 가는 길엔 부사와 관형사가 깔려 있을 거라고. 징글징글하도록 많은 수식어들 부사어 관형어 부사절 등등등을 구사하는 작가라 음...
뭐, 저는 싫어하진 않지만요. ^^ 때로는 음, 맞다, 미원을 듬뿍 넣은 음식 맛 같아요, 글이.

저절로 2011-01-0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좋아해야 할 분위긴데요.
오히려 시마님이 인터뷰어들을 인터뷰한 것 같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떡국 드셨어요?


아시마 2011-01-03 22: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나라에도 떡국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서 먹던 그런 쫄깃한 떡은 아니구요. 쌀의 품종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끓여놓으면 풀어지고 이에 달라붙는 그런 떡국이라... 맛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먹긴 먹었습니다. ㅎㅎㅎ
그 덕에 한살 더 먹었고요. 애들도 남편도 다 한그릇씩 먹였지요.

인터뷰, 좋아해 보세요. ^^ 재미있다니까요. 거짓말이라도 재미있고 참말은 참말이라 더 재미있고, 허세에 쩔은 말도 재미있고, 진솔한 말은 진솔한 맛에 정말 쫄깃하니 맛나지요. ^^
 

다인은 약간, 특이한 데가 있는데, 아니 어쩌면, 정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때는 특이한 모습인데, 음, 동생에 관련된 거면 기겁을 하며 챙기려 든다. 보통은, 음음, 동생 갖다 내버려 달라든가, 뭐 그런게 정상 아닌가. -_-;;; 내가 너무 최악의 상상과 상황만을 보고 살아온 건가. 

해인을 임신해 있을 때 내가 들은 최악의 형제 이야기는, 큰애가 작은애를 너무 괴롭혀 엄마가 작은 애를 한집에서 키우지 못하고 친정인지 시댁인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나와 아주 친한 친구의, 아주 친하게 지내는 전 직장 동료의 동생 이야기였다. 둘째를 낳아 돌이 되기 직전에 시댁인지 친정인지로 보내고 4살인지 5살인지 되는 큰딸만 데리고 살고 있는 그 동생의 이야기는,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구나 나는 그녀보다 터울도 더 작은 아이를 낳게 될 판이었으니.  

참 이상하지. 해인을 임신해 있을 즈음에 내 귀에 들려오던 이야기는 죄다 그런 이야기였다. 이제 갓 백일 된 떡애기를 한밤중에 몰래 끌어다 현관에 내 놓고 자고 있더라는 형의 이야기, 엄마나 어른이 보고 있지 않으면 동생을 발로 뻥뻥 걷어차서 다른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는 옆집 아줌마의 시댁 조카 이야기.  

그래서 였을까, 피만 보지 말자, 이게 내 바램이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 하는, (^___________________^) 다인의 잠자리 습관은 "무서운 아저씨"에 힘입은 바 큰 데, 그는 망태 할아범과 유괴범과 괴물의 이미지가 교묘히 조합된, 말 그대로의 '무서운' 아저씨로, 밤 8시가 되면 우리집에 나타나 그 시간까지 눈을 뜨고 있는 어린 아이를 잡아가는 존재다. 다른 사람들의 집엔 이 무서운 아저씨가 없는가? 다인은 네돌이 멀지 않은 지금까지도 무서운 아저씨라는 말엔 기겁을 한다.  

그런 다인이, 세돌이 지났을 무렵, 밤 7시가 되어 잠을 자자고 방에 불을 껐는데, 동생이 자지 않고 어두운 방 안을 뱅뱅 돌며 돌아다니자, 울먹울먹 하며 말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해인아, 빨리 자. 무서운 아저씨 온단 말이야." 

그 전부터 별 해꼬지가 없는 아이이긴 했지만, 종종, 동생을 챙기는 큰애가 귀여워서 나는 부러 큰애를 겁주곤 했다. 

"해인은 안자네. 나쁜 아기네. 이제 무서운 아저씨 와서 잡아가겠네." 

그럴때마다 어김없었다. 울먹울먹하며,  

"엄마, 해인은 우리 동생이잖아. 잡아가면 안되는데. 해인아, 빨리 자. 해인아 빨리 자." 

라고 말하는 것이. 막상 다인은 무서워서 눈도 못뜨고 있으면서.   

 

애를 둘을 키우니, 둘의 성격이 참 비슷한 듯 극과 극이다. 다인은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해인은 걸핏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질이다. 드러누울때도 머리를 다칠까봐 팔꿈치로 뒤를 지탱해가며 모로 드러눕는데 어찌나 황당한지. 그러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쳐다본다. 자기 안고 가란다.  

한번은, 저 버릇 고쳐야지 싶어서, 그냥 두고 간다, 하고 돌아서서 한 5미터 갔더니 해인은 멀쩡한데 내 치마꼬리를 잡고 오는 다인이 기겁을 하며 자지러졌다. 해인이 데려가야 한단다. 두고 가면 안된단다. 왜냐하면 우리 동생이니까.  

엄마는 말 안듣는 저런 해인이 같은애는 키울수가 없으니 그냥 두겠다 했다. 좀 있으면 무서운 아저씨가 데리고 갈 거라고도 했다. 정 데려오고 싶거든 네가 가서 데려오라 했다. 다인은 왕왕 울면서 뛰어가 맨송맨송한 얼굴로 드러누워 땡깡질 중인 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등을 밀고 손을 잡아 끌며 데리고 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게 뭔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진짜, 큰애가, 아직 네돌도 안된 애가 말이다, 그렇게 기를 쓰고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봐야 내 심정이 이해가 된다. 으으으으, 그 심정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왜 윤리도덕에서 효 다음 가는 덕목으로 우애를 강조하고 있는지 알만하다. 우애란, 효의 또 다른 형태인거다.  

 

오늘, 다인이 처음으로 유치원엘 갔다.  

한국에서도 그런 교육기관에 가 본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가는 유치원이라는 데가 온통 노랑머리 칠갑에 들려오는 언어는 죄다 영어인 그런 곳이다. 한반 정원이 10명인데, 3명을 빼곤 모두 서양아이들이고, 그 3명 중에서도 다인을 제외한 2명은 영어 사용이 능숙한 아이들.  

이곳의 교육기관은 한국보다 훨씬 빨리 시작하는 편이라, 8시 15분부터 시작된 수업에 영어라곤 두어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번씩 개인 레슨 선생을 붙여준 것 외엔 접해본 일이 없는 애를 밀어넣어놓고 밖에서 해인을 데리고 기다렸다. 처음엔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들어갔던 다인은, 한시간이 지나 살짝 들여다 본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들 제가끔 무리를 지어 각각의 선생님들과(선생님이 셋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블럭을 만들기도 하고 있는데 혼자 한가운데 서서 울먹울먹 하며 또 다른 선생님에게 뭔가를 어필하고 있었다. 아니지, 어필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뭔가를 말을 하고, 아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고개만 흔들고 있었다.  

살그머니 교실문을 열고 다인에게 손짓을 하니, 아이는 그제야 꾹꾹 참았던 울음을 쏟아놓으며 내 품에 안겼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조금있다보니 엄마가 없더란다. 그래서 울었단다. 글쎄, 이런 심정 또한 첫 아이를 처음으로 교육기관이라는 곳에 보내본 엄마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아닐까.  

선생님의 양해를 구하고, 해인까지 데리고 교실에 들어가 한시간쯤을 함께 있어 주었다. 그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다인은 안된다고 나를 붙잡는다. 그런 다인을 잡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해인은 어떡하지? 다인이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데 해인이 자꾸 돌아다니고 방해를 하니까, 해인은 이 교실에 있을수가 없는데, 그럼 엄마가 다인하고 여기 있으면 해인은 혼자 밖에 나가있으라고 할까? 그럼 무서운 아저씨가 와서 데리고 갈 텐데? 그래도 괜찮아?" 

울먹이던 다인은 급작스레 언니 모드의 불을 켰다. 엄마 나가있으란다. 해인이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란다. 자기 혼자 교실에서 한번 해 볼테니, 엄마는 밖에서 자기 수업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다. 해인을 안고, 노랑머리의 물결 속에, 나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쏼라거리는 영어 속에 다인을 놓고 나왔다. 어쩔수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언젠가는 적응해야 하는 수순인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과연 정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시간쯤 지나서 다인은 다시 울면서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엔 울음이 좀 더 크다. 역시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가 다인을 안아주고 달래주고,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해인은 어쩌냐, 물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유치원을 안가면, 우리집엔 인제 유모 언니가 없잖아? 다인이 유치원을 안가고 집에 있으면 엄마가 다인하고 놀아야 하는데, 그럼 해인은 어쩌지? 해인을 봐 주는 유모 언니도 없는데 해인은 그럼 재채기 나라에서 부침개 타고온 재채기 할미한테 데려가라고 할까? 찰퐁이처럼? (마술피리 어린이를 아는 사람은 이 이야기를 안다.)" 

다인은 이번에도 기겁을 하며 머리를 흔든다. 그리곤 또 씩씩하게 눈물을 싹싹 닦고 내가 한번 해 볼게, 한다. 엄마는 해인이랑 밖에서 기다려, 한다.  

그렇게 다인을 교실에 들여보내고 입맛이 쓰다. 도대체, 동생이 뭘까. 4돌도 안된 아이의 응석을 단숨에 멈추게 하는 위력적인 존재인 동생 말이다. 그 동생의 약빨이 기가 막히다는 걸 알아서 손 쉽게 동생을 내세워 이런 저런 것들을 강요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8시 15분에 시작된 수업은 중간의 30분간의 스낵타임을 포함해 12시 45분이 되어야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다인은, 이제는 유치원에 안간단다. 자기는 5살이니까, 6살이 되면 유치원에 간단다. 원래 6살에 유치원에 가는 거란다. 그걸 또 한참을 붙잡고, 한국에서는 4살이었으니까 유치원에 안가는 거지만 원래 5살이 되면 유치원에 가는 거야, 라고 꼬드겼다. 선생님과 미리 이야기를 해서 내일 유치원에서 책 읽어 주는 시간에는 다인이 좋아하는 영어책을 읽어주기로 약속을 해 놓고, 집에 와서는 그 책을 두세번 읽어주었다. 말하자면, 유치원생에게 예습을 시킨 격이다.  

아. 나는 극성 엄마인 것일까.  

아이라는 건, 대견해지는 만큼, 엄마의 가슴을 아리게 하기도 한다. 4돌된 아이의 대견함이란, 얼마나 속으로 힘들게 힘들게 애쓴 결과일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유치원을, 그것도 한국애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을 굳이굳이 찾아서, 보낸 것이 맞는 것일까. 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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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8-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궁, 다인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생활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낯설고 힘들까요. 그런데 저는 주로 먼스터를 활용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점점 두려움을 주는 강도가 커지고 있어요. 재우려고요 ㅋㅋㅋ 저는 왜이리 옛날 구전동화가 무섭나 했더니 다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 있는 거더라구요. 이 페이퍼는 둘째의 지름심을 부릅니다^^

루체오페르 2010-08-2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따님의 자매애가 예쁘네요. 평생 가길 바랍니다.^^

덕수맘 2010-09-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아시마님 다인이 좀 있으면 적응할거에요...아마 제가 이글을 쓸때쯤이면 적응이 살짝 됐겠죠..어디서나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게 되있으니까요.저는 아직 둘째가 없어서 늘 궁금하기는 했는데 우리덕수가 동생 생기면 어떡해 할까?가끔 그러거든요.엄마 동생 좀 나아줘 그럼 낳아주면 뭐하게 갖고 논다고 하더라구여. 제생각에는 같이 논다는 표현을 잘 못한게 아닐까 싶어여.가끔 동생들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나봐여. 여튼 다인의 편한 유치원가는 모습을 늘 기도할게요..타국에서도 늘 평안하기를요...

찌야마미 2010-10-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글읽다가 뒷부분에서 울뻔했당 다인이의 모습이 어떤건지 알꺼 같아서....첨으로 엄마 떨어지는데가 말두 안통하니 참으로 힘들었을꺼같당 근뎅 그놈의 동생이 뭔지 참고 이겨나가야 했던 울공쥬 대단하넹....이제는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겠징???
 
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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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용한 적이 있는, 앤 패디먼의 말대로 나는 "책에 관한 책은 사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다."  한동안 미미 여사의 책이라면 덮어놓고 사들인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때 함께 딸려왔다. 나중에 책들을 정리하면서도 살아남았던 것은 이 책의 표지가 책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책에 관한 책이니까. 책과 연관된 서스펜스라니 얼마나 신선한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미미 여사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동일한 주인공을 둔 연작소설이 가지게 되는 한계점을 이 책 역시 피해가지 못한다. 약간은 억지스럽고 우겨대는 구성, 매번 사건에 말려드는 헌책방 주인 등등. 한 인간이 일생동안 겪을 수 있는 사건의 수에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가는 곳마다 말썽이네, 싶다면. 뭐. 

미미 여사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기분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외딴방이나 그 외 다른 장편들에 비하면 그럭저럭 단순한 플롯으로, 심리적인 긴장감도 그다지 강하지는 않으니까. 미미 여사의 소설은 너무 강한데가 있어서, 연달아 읽노라면 숨이 가빠지는 면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독서에 숨구멍을 틔어준다. 억지스럽다는 건 그만큼 허술하단 이야기고, 허술하다는 건 긴장감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소리니까. 미미여사는 사실, 약간 긴장을 늦출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작가와 만날때는 단편으로 가볍게 시작해 작가의 스타일에 맞게 접근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서스펜스 작가의 경우엔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서스펜스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은 장편쪽이 나은듯.   

그리고,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페이퍼 접기, 뭐 이런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냥 올린다. 쩝.  

 

 

 

이걸 뭐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는데, 페이지를 써 놓은 옆에 들어가는 소제목이다. 원래는 '거짓말쟁이 나팔'이 들어가야 하는데 저렇게 써 놨다. ㅎㅎㅎ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셨을까나. 

참고로,  

번역자 : 권일영 
발행편집인 : 김홍민 최내현 

되시겠다. ^^ 편집자 위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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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페이퍼 접기는여 리뷰에서는 안 된답니다. ^^
페이퍼 쓰실 때보면, 이미지 삽입이나 따옴표있는 바 옆에 "부분접기"라는 표시가 있어요. 그거 누르고 글이나 이미지 삽입하면 됩니다. 그런데 리뷰할 때는 "부분접기" 표시가 안 보여염~~~ ^^

미미 여사 책을 차례로 훑고 계시는군요? 나두 집에 있는 미미 여사 책들을 소화해야 할텐데 말이죠... 언제할까나. ㅠ
 

작년 이맘때쯤, 황경신의 프로방스 여행기를 읽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애초에 나는 독일이나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쪽으로 갈 사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 떠올린 곳은 그리스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리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이나 살다가 돌아와서 『먼 북소리』라는 훌륭한 여행서를 낸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년이나 살 수도 없을뿐더러 살다 온다고 해서 하루키보다 재미있는 책을 낼 자신도 없기 때문에 마음을 접기로 했다.  

p. 15 

그때, 내 책장에는 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꽂혀 있었다. 그것도 한 10년전에 사다 꽂아 둔 책이었다. <먼 북소리> 읽기를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난 책을 읽다 덮어두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먼 북소리는 두어번 시도해서 5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곤 했다. 특별히 글이 재미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내가 가진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거다. 첫판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번에도 쉽게 되지가 않는거. 하지만 황경신의 말은 그런 징크스마저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몇달 뒤, 드디어 나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 읽기에 성공한다. (정확히 3개월 뒤였다.) 읽고나서 알았다. 이 책이 <상실의 시대>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하루키의 책이 된 이유를. 

하루키의 책을 읽고 곧 이어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체류기?)를 읽었다.  

하루키를 의식해 그리스를 피해 간 황경신과는 달리, 김영하는 하루키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인지, 둘의 체류지는 많은 부분이 겹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도 비슷하고, 비교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마흔 살이 되려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긴 여행으로 몰아낸 이유중의 하나이다. p. 16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너무 지쳐 있다는 것이다. 참 내, 어쩌다 이렇게 지쳐버렸지? 그러나 아무튼 나는 지쳐있다. 적어도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그것이 내가 껴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두 편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생각하고 있다기 보다는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쓰면 좋은가, 어떻게 쓰면 되는가, 그런 것도 대충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대로 영원히 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조차 든다. 그리고 머리 안으로는 벌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다. 너무 시끄러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p. 30 

이런 이유로 하루키는 일본을 떠나 그리스 로마로 떠난다. 그럼, 우리의 영하씨는(사실은, 내사랑 영하씨, 라고 쓰고 싶지만, 김영하의 아내님이나 충무공이 보면 기분 나쁠 것 같아 참는다. 뭐, 어쩌면, 김영하씨가 보고도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더욱 큰 이유다. 쳇.) 그 멀고먼 시칠리아, 마피아들의 섬으로 왜 떠나셨나.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립 예술대학의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서울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내 책들이 어깨를 맞댄 채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p. 19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 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된다. 나는 그 저주의 대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꽤 쏠쏠한 출연료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쉬익,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p. 21

 

두 사람의 작가는 놀랍도록 동일한 이유로 각자의 생활터전을 포기하고 모국을 떠난다. 오직,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서.  

김영하는  로마를 거쳐 라파리 섬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섬에서 그는 스무살적의 자신을 만난다. 그 부분은, 이 책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7년 겨울, 나는 시라쿠사와 타오르미나에서 한동안 기시감에 사로잡혀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그리스식 극장때문이었다. 20년 전의 그 노천극장이 거기, 시칠리아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라쿠사의 퇴색한 석회암 계단에 앉아 저 멀리 희붐하게 빛나는 지중해의 수평선을 보며 열아홉 살의 봄에 경험했던 찬란한 행복을 회상했다. 모두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손을 높이 쳐든채 <젊었다>를 부르던 그 날을. 그럴 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타오르미나의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나는 그때의 노래를 소심하게 웅얼거린다. 간단한 가사를 계속하여 반복하던, 그래서 신입생들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었던 그 응원가는 이렇게 끝난다. 그대여, 그대여어어,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
김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랜덤하우스, 2009, p. 87-88 

이 구절을 읽는데 왜 갑자기 울컥했었을까. 이 글을 쓰느라 다시 이 책을 펼쳐서 이 구절을 보는데도 여전히 울컥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젊었다>를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흥얼거렸을 김영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그 생각을 한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흥얼거리고 있었을 김영하는, 사랑해 줘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로마를 거쳐 들어간 라피나를 시작으로, 김영하는 두달간, 시칠리아 지역에 머문다. 여행기의 나머지 부분은 평이하다. 그렇다고 평범한 여행기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무려 김영하가 쓴 여행기이니까. 여행기도 위트있다, 이 친구는.  

그리고 그렇게 떠난 김영하는 아직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책에 의하면, 2008년 8월부터 캐나다 밴쿠버의 UBC대학에서 1년동안 머물러 있었을테니, 2010년 8월인 지금, 그는 어디를 흘러다니고 있을까. 그는 오지 않고 그의 책만 물결에 밀려 한국에 왔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소문에 의하면, 그의 새로운 단편집은 썩 괜찮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가 그의 재능을 허비하지 않아서. 조금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와 같은 나이에, 그와 같은 이유로 모국을 떠났던 하루키가 그 여행에서 그 자신의 최고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실의 시대>를 써냈던 것처럼, 김영하도 무언가를 들고 돌아오기를, 그리고 하루키가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철딱서니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젊은 글을 써 내는 현역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김영하도 그럴수 있게 되기를. 사실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다 좋아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뺄 수 없을만큼 사랑하지만, 그래도 노년문학으로 접어든 것은 슬펐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나는 김영하가 노년문학으로 가는 건 정말 바라지 않는다. 80이 되어서도 김영하는 김영하였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 또는 생활기에 가깝다. 김영하의 책이 여행기답게 자신이 방문한 지역의 특산물과 명소를 소개하고 그 지역에 얽힌 문학이나 고전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 과는 달리, 하루키의 책에서는 관광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이사를 했으니 옆집 사람은 이런 사람이 있고,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그럴거면 뭐하러 굳이 로마까지 가냐 싶기도 하지만, (로마, 그 복잡하고 물가 비싼곳!) 그거야 하루키 마음이고, 그는 거기서도 콜로세움에 가는 대신 영화관에 가고, 트레비 분수에 가는 대신 마라톤을 한다. 이 글 역시 하루키답게 재미있다.  

하지만 글 어디에서도 그의 내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외부 풍경이 건드린 자신의 내면을 펼쳐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라피나 섬의 원형극장이 김영하의 내면을 어떻게 건드렸는지, 김영하는 고스란히 펼쳐보인다. 하지만 하루키는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이, 일본인의 특성인건지도 모르겠다. 민족성이라는 게 전혀 없을수는 없을테니까. 일본인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하루키지만, 읽어보면 가장 일본적인 감성을 다루는 작가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작년 하반기, 김영하의 여행기를 읽고서, 써보면 재미있겠다, 생각한 글을 이제야 쓰고 있는 나는 뭔가. -_-;;; 지금까지도 안쓰고 있던 내가 게으른 건지, 1년 전의 생각을 끝까지 지켜낸 내가 집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ps1. 요즘 나는 꿩대신 닭을 하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집을 읽고 싶은 나머지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세권이나 읽었고, 김영하의 신작 단편집을 읽고 싶은 나머지 김영하의 다른 책들을 차례로 독파해나가고 있다. 하루키도 마찬가지. 사실 이 글은 그 꿩대신 닭의 결과물이다. 흑흑. 불쌍하다, 나.  

ps2. 충무공의 사랑이 식었다. 예전엔 다섯권씩 갖다주고 그러더니, 이번엔 딱 두권만 주문하라고 해서 김영하와 박완서의 신작을 선택했다. 하루키와 영원의 아이와 김이설은 또 뒤로 밀렸다. 에혀. 사랑이 식었어어어어어어어어어! \ 

ps3. 여튼, 며칠만 기다리면 김영하도 박완서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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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10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가들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알수있어서 이런 글이 좋습니다.

아시마 2010-08-11 11:33   좋아요 1 | URL
리뷰를 쓰고 읽는 재미가 그런거 아니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욕하면 막 열받기도 하고, 취향이 같은 사람 만나면 막 열렬히 찬양하기도 하고(제 취향은 열렬한 찬양쪽. ㅎㅎ) 서재질이 그래서 재미있나봐요.

그리고, 한 작가에 대한 리뷰를 꾸준히 쓰다보면, 그 작가의 변화도 느껴지지만 글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진다는 것도 느껴져요. 예전에 읽었던 글을 새로 읽고, 예전에 읽고 써 뒀던 리뷰를 읽으면, 막, 남이 쓴 것 같을때가 있다니까요! 전 그런게 좋아요.

stillyours 2010-08-10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유월, 높은 곳에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읽었어요.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떠나지 않는 한 결국 여기구나,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래 전에 읽은 <먼 북소리>가 새록새록 떠올라 두근거렸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아시마 2010-08-11 11:41   좋아요 1 | URL
달님 안녕하세요. (문득 울 딸들이 환장하는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 달님 안녕이. ^^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대부분 유아들의 '훼이보릿'북이라지요.)

높은 곳에서라면, 어디에서 읽으셨던 걸까요? 설악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 아니면 63빌딩 스카이 라운지?(아. 이 빈약한 상상력.)

떠난다고 해도 똑같은 것 같아요. 중심에 대한 구심력이 강한 사람들은, 떠나도 떠나지 못하고 늘 한쪽발을 걸쳐두죠. 때때로 저는 장 그르니에 식의,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어쩌면 지금 그런 상황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은, 뭐. 귀환을 염두에 둔 떠남이라는 건, 결국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먼 북소리, 네, 저도 참 좋았어요. 그렇게 살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마음 나눌 배우자랑 단 둘이,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밥 지어 먹고, 영화보고, 글 쓰다가, 때때로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가고.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참 무책임한 삶 같기도 해요. 아니, 자기 인생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 있지만, 나머지 것들, 예를 들면 관계라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정확히 반반이 있는데, 배우자와의 관계 이외의 관계는 맺지도, 맺더라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태도 같아요. 책임지기 싫으니까 관계 맺지도 않는, 아, 그러고 보니, 하루키 문학의 쿨함의 배경이 이것인지도.

-_-;;; 저 지금 달님 댓글에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걸까요. 아. 이건 정말 하루키 식의 총체적 난국이군요. 흠.

LAYLA 2010-08-10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 북소리는 베스트이고, 김영하씨 책은 바로 장바구니로!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 근데 김영하씨 한국에 계시지 않나요? 6월에 뵈었는데.. ','

아시마 2010-08-11 11:43   좋아요 1 | URL
헉, 한국에 계신가요? 음, 작가 사인회나 출간 기념 등등해서 잠깐 들어온 거 아닐까요? (이건 뭔가, 들어오면 안된다고 막 우기고 있는듯...;;;)

내 맘대로 막, 외국에 보내버렸군요. 흠...

blanca 2010-08-10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도 김영하를 스토킹하기로 했습니다. ㅋㅋㅋ 사생활도 집요하게 파구요 ㅋㅋ 사실 그리 관심없을 때부터 아내가 참 궁금하기는 했답니다.

너무 신기해요. 저 막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그리고 그 담에 또 김영하의 <호출>을 읽을까 했었는데. 아시마님의 리뷰가 기다려져요. 제가 홀릭해 있는 두 작가의 근간을 연대기처럼 읽어내는 리뷰 정말 기대됩니다. 젊음. 저 그기분 알 것 같아요. 김영하님, 아시마님, 저. 찬란한 젊음. 그 시간을 동시에 떠올려 봐요.

<먼 북소리>는 읽으려다 빽빽하고 두꺼워서 안읽으려고 결심했었는데...방금도 도서관에서 빼보고는 말았어요. 아시마님의 리뷰로 갈음할래요^^

아시마 2010-08-11 11: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열아홉 살때의 그 찬란한 행복감이라고 하니까, 음,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그때의 그 기분이 막 살아나면서, 뭔지 알것 같아요. 저도 대학 신입생때 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특별하거든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막 그대로 살아나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괜찮기는 한데, 하루키의 에세이는 뭐랄까, 동어반복이 심해요. 어떤거 하나만 읽으면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는데, <달리기>랑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든가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이런걸 읽으면, 맨날 하는 그 말이 그말이다, 싶어요. 이건 예전에 김훈 에세이집 <밥 벌이의 지겨움>보면서도 했던 생각이기는 한데, 그런거 있잖아요. 글을 잘 쓰고, 인지도 높고 잘 팔린다 싶으니까 여기저기서 청탁이 막 쏟아져 들어오고, 그럼 그 청탁 받아 글 다 써주고(물론 다 써주지는 않겠지만) 그러다 보니까 동일한 시기에 너무 많은 글을 써냈다, 라는 느낌? 김훈이나 하루키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을 써내는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되는 걸 보면, 참 희한해요. 하긴 김훈 선생도 <밥벌이의 즐거움>을 마지막으로 그런 동어반복이 좀 줄었다 싶긴 하지만요.

자자, 작가 스토킹에 일가견이 있는 제가, 작가 스토깅 방법을 말씀드리겠는데 말이지요, ㅎㅎㅎ 작가 스토킹을 하려면 일단,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으셔야 해요. 반드시. 젊은 김영하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2002년에 출간된 에세이집 <포스트 잇>을 읽으세요. 그리고 좀더 자라면 2006년에 출간된 <랄랄라 하우스>가 있지요. 물론 영화 에세이도 두권 <굴비낚시>와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가 쓰는 영화 평론이란 늘 딴소리를 하게 마련인지라, 읽으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모아들어 조합하면 김영하가 됩니다. 물론 김영하의 아내도 만들어 낼 수 있고, 심지어 장모님도 가능합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사는 지역 등등은 뭐, 껌이죠. 침고로 김영하 아내는 부산 사람이고 장모님은 부산에 살고 계십니다. 네네네. ㅎㅎㅎㅎㅎㅎㅎㅎ

이 글 쓰다가 또 생각이 났는데, 그러고 보면 말예요, 박완서 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에세이를 써 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극단적일 정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이리 저리 변형해서 나오지만 그나마도 남편에 한정되었고, 자식이 글에 등장하는 건 정말 보지 못한듯.

하긴, 나중에 <한말씀만 하소서>로 모두 말씀하시긴 하셨지만요.

마녀고양이 2010-08-10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블랑카님의 서재에 이어 아시마님이 서재에서도 김영하 님을 보는군요.
한번 읽어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나저나.. 인도네시아는 덥지 않나요? 한국 너무 덥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여행기, 또는 사는 얘기 부탁드려여, 아시마님 글이야 워낙 이쁘니.. ^^

아시마 2010-08-11 12:06   좋아요 1 | URL
김영하는 한번쯤은요. ㅎㅎㅎ 읽다보면 빠지십니다. 단편으로 시작하셔요~
그렇지만 막 중독성있는 매니아적 작가는 아니예요.

인도네시아 덥죠. 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은 가을이라는 희망이 있잖아요! 벌써 8월도 중순이고 입추도 지났고, 처서만 지나면 덤불밑이 훤해진다는 말도 어른들은 하시던데. 저희 외할아버지 기제가 처서거든요. 그래서 외할아버지 제사만 지내고 나면 여름도 다 갔다고, 그런 말씀하시던 기억이 나요.

여행기는, 여행을 하지 않으니... -_-;; 사는 이야기는 그렇잖아도, 흑흑, 식모가 바뀌고 기사가 바뀌고(사실 이 나라 아줌마들 화제의 90%는 식모와 기사라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설마가 설마가 아녜요. 워낙에 어이없는 사고를 퍽퍽 쳐주는지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정말 버라이어티한 며칠을 보냈는데 말이죠. ㅎㅎ 기대하시라~
 
인숙만필
황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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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황인숙에 대한 찬사는 부럽기 그지없다. "황인숙은 기품있는 여자다" 라니. 고종석은 이 말을 황인숙의 책 <인숙만필>의 발문으로 쓰는 것으로 모자라, 그의 책 <고종석의 여자들>에서 또한번 황인숙에 대해 말을 한다. 기품있는 여자라고. 기품이라니, 기품이라니! 그 얼마나 우아한 찬사인가 말이다. 그렇게 우아한 찬사를 듣는 황인숙이 과연 어떤 여자인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며칠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아, 이 상투적인 표현이라니. ㅠ.ㅠ) 서정희의 쇼핑몰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피식피식 웃다가, 누군가의 댓글에서 "서정희씨 우아하고 기품있게 사는 것 같아 좋아했는데," 운운 하는 댓글을 읽고서 불현듯 황인숙이 떠올랐다. 황인숙은 서정희와 정확한 대척점에 서 있다. 기품이라는 단어를 아무데나 갖다붙이면 안된다.

그녀는 미혼이고, 가난하며, 크리스천이 아니고, 친구가 많고, 솔직하다. 인테리어하고는 상관 없는 남산 어귀의 옥탑방에 살고 있고, "내" 고양이를 기르고 있지는 않지만 동네 고양이를 거둬먹이는 일도 한다. 이 책은 그런, 고종석의 표현을 빌자면 "기품있는 황인숙 아씨"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난 일도 없고, 그냥 어제 만난 친구 오늘 또 만나 따뜻한 아랫목에 발묻고 고구마라도 까먹으며 도란도란 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들은 전혀 두서없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꼭 친구들간의 수다처럼. 어린시절의 이야기, 날씨 이야기, 가족 이야기, 나이 이야기, 건강 이야기, 체중 이야기,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 TV 이야기도 나오고, 만난 사람들 이야기. 그런거 있지 않은가. 친구들끼리 만나서 또는 전화로 막 이야기하다 문득 시계를 보고, 어머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라고 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끓인 물을 큼지막한 사발에 붓는다. 잠시 식힌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에 분유를 넣고 젓는다. 평화롭고 달콤한 냄새가 김을 타고 올라온다. 사발 가장자리에 잘 풀어져 녹은 분유의 순한 거품이 자디잔 레이스처럼 둘러쳐진다. 뜨거운 물에 탄 분유는 데운 우유와 또다른 맛이다. 우윳빛 맛, 유순하고 무구한 맛, 따듯하고 바보같은 맛이다.
p. 57 

사실 나는 황인숙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이럴때는 차마 '황인숙을'이라고 말을 못하겠다.) 직접 뵈고 말을 해 본 황인숙 선생님은 바로 저 글의 분유같은 분이셨다. 유순하고 무구한 눈매의 따듯하고 좋은 의미의 바보같은 그런 분이셨다.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은. 가식이 없고 솔직하니까 사람을 깊이 끌어당긴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천진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마도 고종석이 말한 기품이란 여기서 온 것 아닐까. 아무런 꾸밈이 없이도 매력적인 그 천부의 무엇. 서정희에게 기품이라니... 말도.

특별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책이다. 무언가 대단한 곳, 유명한 곳에 여행을 가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말하는 바 글쓰는 것 외에는 직업도 없고 산책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가난한 노처녀의 일상인데도, 마치 분유처럼 그렇게 그리운 무언가가 있다.  

아랫목에 발을 묻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거나, 지금당장 만날수 없는 곳에 있다면,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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