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가 진실이라고 믿으세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가 있나요? 인터뷰를 읽은 것으로 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거라고 믿으세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죠. 어쩌면 그 어떤 글쓰기보다 공적인 글쓰기 같기도 하고, 그 어떤 발언보다 사적인 발언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극단적인 개인사와 극단적인 공적 발화가 뒤섞인 장르가 인터뷰죠.
잠깐, 제가 방금 '장르'라는 말을 썼나요? 흠. 인터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문학의 범주안으로 들어간 하나의 장르. 그럼 이 인터뷰는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한 조동일 선생식의 분류를 따르자면 교술장르인 걸까요, 서정장르인 걸까요. 인터뷰란 결국,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아니면 나의 외면을 치장하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이것에 따라 서정이냐 교술이냐가 나뉘겠군요. 인터뷰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도 여기서 결정이 나겠군요. 그런데 잠깐. 우리 흔히 그런말 하잖아요. 패션은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거라고. 그럼 말로 나를 치장하는 것또한 나의 내면의 반영이니 결국 인터뷰란 내 내면의 표현이되는 거네요? 결국 서정장르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 학부시절에 참 지겹게도 했던 말들.
작년(그래요, 벌써 작년!), 2010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었던 김혜리의 책을 볼까요.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와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가 한 인터뷰를 하나로 묶어서 냈어요. 아무래도 영화잡지라는 한계가 있으니 당시 이슈가 되는 영화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인터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신경민 앵커나 유시민 님이나 장한나, 번역가 정영목 등등의 인터뷰도 있네요.
사실 이 책은 고현정의 인터뷰가 보고 싶어서 샀는데, 정영목의 인터뷰가 뜻밖에도 몹시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으로 번역가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한 번역가가 정영목이었거든요.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 정영목도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줄바꿈이나 따옴표를 전혀 쓰지 않고 줄줄줄 기술하는 책을, 그것도 중역(포르투칼어->영어->한국어)으로 옮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정영목의 번역이라면 별 고민없이 집어들죠. 그렇다고 정영목이 자기 냄새를 많이 풍기는 번역자는 아니예요.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는데 정영목은 자기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정영목은 이렇게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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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나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p.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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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이 번역스러운거, 그게 정영목스러운 번역일거예요. 아마. 그래서 저는 정영목을 좋아하구요.
김혜리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식으로 흘러가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끄집어 내고, 상대방이 물어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김혜리의 인터뷰집을 읽고 있다보면 새록새록, 어머 이 사람 참 매력있네, 싶을때가 많아요. 이 책 이전에 나온 인터뷰집
이 책에서도 김혜리의 장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혜리의 인터뷰는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죠. 한두페이지 정도, 김혜리가 생각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스케치가 들어가요. 그 스케치를 읽어보면, 김혜리는 이 사람을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인터뷰는 어떤 형태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문답 형식이 시작되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중간중간 괄호안의 (좌중 폭소)라는 대목도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성은 별로 없는, 가능하면 장점을 뽑아 내려 노력하는, 그래서 이충걸 식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거짓말'을 완성하는 거죠.
이 책에서 김혜리의 인터뷰이는 전방위적이예요. 배우는 물론 기본베이스이고요, 소설가(박민규, 박완서) 만화가(김진) 건축가(황두진) 디자이너(정구호) 사진작가(구본창) DJ(전영혁) 등등. 그래서 인터뷰집 본연의 재미를 충족하게 해 주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재미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별난 생각들을 하며 각각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보는 재미요. 그게 아마도, 제가 인터뷰라는 걸 읽는 최고의 목적이니까요.
김혜리의 인터뷰집은, 말하자면, 사실과 비유의 비율을 7:3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이 6:4 정도 되어요. 김혜리라는 창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김혜리가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김혜리의 아우라를 덧입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들 닮은 꼴로 보인다는 단점이. ^^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인터뷰집이라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요. ^^
자, 그럼 이번에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을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이충걸을 아시나요? 이 친구, 참 독특한 친구죠. 남성잡지 GQ의 편집장인 이 친구는 사실, 여성성을 굉장히 강하게 풍겨요. 외모와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실 글쓰는 스타일에서도 그래요. 섬세한 떨림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친구에 대해 "인터뷰 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이 책의 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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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 그에게는 라디오 속처럼 사람을 뜯어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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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고 있죠.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과연 인터뷰라는 글쓰기에서 가능한 걸까요? 이충걸은 자신의 그러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듯, 이 책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을 탈피해요. 일종의 에세이를 쓰듯, 줄줄줄 내려가죠. 일반적 에세이와의 차이라면 인용부호(따옴표)가 좀 많다는 정도?
김혜리와 이충걸의 인터뷰이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아요. 이건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가져온 인터뷰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시의성이 강한 인터뷰의 특성상 당시에 회자되는 인물의 차이일수도, 게재되는 매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 사실 첫번째 이유가 가장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김혜리와 이충걸이 만나고 싶은 인물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이충걸은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것에 집착....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자, 이제 이충걸과 비슷하게, 패션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김경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김경은 패션지 월간 바자의 편집장이죠. 이 책의 인터뷰들은 대부분 바자에 실리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구요. 제목대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가 있고, 가수 싸이의 인터뷰로 끝이 나네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인터뷰가 있어요. 아, 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가 읽을때는, 그분이 나와 함께, 이곳에 계셨군요. ㅠ.ㅠ
김경의 인터뷰집은 특별한 형식이 없어요. 이충걸과 김혜리의 중복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아무래도 패션지라는 형식상, 이런식의 질문이 나올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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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람된 질문입니다. '나쁜 여자 매뉴얼' 같은 데 나오는 얘기인데, 나쁜 여자들이 질질 끌지 않고 첫눈에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주길 바랍니다.
1.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나요?
2. 신발은 어디서 사나요?
3. 섹스나 전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p.26 김훈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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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의 김훈 선생께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거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야 원. 김훈 선생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영화는 안보고, 신발은 내 손으로 한 번도 사 본적이 없고, 그리고 세번째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으로 풀어버리는데, 그야말로 우문 현답이죠.
얼마전 읽은 평론이었나, 아, 성석제의 글에서였나 김경을 새로운 기대주 중의 하나로 평가하던데, 저도 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음. 왜, 새로운 기대주일까, 싶어서요. 새로 글 내시면 꼭 읽어볼 의향이 있는데 아직 본격 소설이나 시나... 그쪽 장르는 손을 안대시는듯.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경의 인터뷰 집에서는 약간 마이너한 성향의 인터뷰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형태라든가, 한대수라든가,백현진 이런 매니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죠. 그리고, 김혜리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크리에이티브 리더" 라고 칭한 것과 달리, 김경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단독자"라고 표현합니다. 리더와 단독자의 어감의 차이는, 그대로 김혜리의 인터뷰이들과 김경의 인터뷰이들의 차이를 압축하기도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혜리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즉, 인물의 매력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김경의 인터뷰는 단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즉,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인터뷰에 치중합니다.
자,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넘어갈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인터뷰 전문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지승호님의 인터뷰집입니다. 지승호는 김경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이 책을 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말하자면 시사성이 굉장히 강한 인터뷰를 하시는 거죠.
이 책은 꽤 두껍습니다. 400 페이지가 넘으니까요. 이 400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다루는 인터뷰이는 고작(고작?) 9명입니다. 9명의 인터뷰이와 8개의 인터뷰를 하는 거죠. 인터뷰이도 문화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룹니다.
진중권이라든가, 홍세화 라든가. 그나마 좀 소프트한 쪽으로 가면 김어준과 손석희가 있겠네요. 김동춘과 한홍구는 아이고야, 싶구요. 이건 인터뷰라는 형태를 띈 강연이다 싶을 때가 있어서.
책은 그다지 쉽게 술술 넘어가지 않습니다. 꽤나 딱딱한 부분이 많아요. 그나마 진중권이 워낙에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라 진중권 편이 잘 넘어가고, 손석희는 알아듣게 말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싶구요.
이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2004년 당시의 시사의 포인트를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지승호는 정말 드물게 제대로 인터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구요.
이런 지승호가 이번에는 한권을 통 털어 한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2008년, 2009년을 통털어 베스트 셀러중의 한권이었죠.
지승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공지영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을 많이 없애준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이 있는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인터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마주치다 눈뜨다 : 2005. 10.2
괜찮다, 다 괜찮다 : 2010. 5. 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2007. 6. 14
해를 등지고 놀다 : 2004. 12.1
진심의 탐닉 : 2010. 12. 24
그녀에게 말하다 : 2010.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