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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평점 :
은희경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그녀의 단편들 덕분이다. 장편도 괜찮은 편이지만 은희경의 단편은 순간순간 빛을 확 발하는 것이 한편씩 있다. 물론, 전혀 아닌 것들도 있고. 최근 소설집 『상속』에서 《꽃피는 봄날 누가 리기다 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와 《딸기도둑》은 은희경 단편 소설의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이쯤되면 은희경의 장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은희경의 가장 큰 장점은 소설적 세련됨에 있다. 은희경은 세련되었다. 어휘나 문장상의 세련됨 뿐만이 아니라 소설적 처세 역시 세련되었다. 그녀는 핵심을 짚는 예리한 말을 한마디씩 던지지만 결코 깊이 푸욱 찔러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흐음,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은 있으되 그 부분으로 인하여 가슴을 싸안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헌데 그것은, 그녀의 사유가 깊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처세술의 일환으로 보인다. 소설적 처세술. 그녀가 택하고 있는 소설의 위치는 깊이 들어가 함께 어울려 바닥까지 보여주는 굿판이 아니라 칵테일바에서 처음보는 남녀가 만나 세련되고 쿨한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기민하고 예리한 통찰이 오고 가기는 하지만 서로가 낯선 사람들끼리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는.
김형경의 소설은 그 반대다. 은희경이 가진 것이 은빛 바늘이라면 김형경이 가진 것은 무시무시한 장도다. 그것도 별로 잘 들지도 않는. 김형경은 그 칼을 들고 내내 죽을 힘을 다해 내리친다. 잘 피해가면, 쯧쯧, 잘못 휘둘렀어, 라고 측은함을 곁들인 비웃음을 줄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게 한방 맞으면 돌이킬 수없는 치명상을 입는다. 칼날이 무뎌 잘 들어가지도 않는 그 칼을 김형경은 집요하게도 쑤셔넣는다. 소설을 읽다가, 타악- 하고 덮어버리게 될 정도.
이쯤 되면, 상을 줄만한 소설은 당연히 은희경의 소설이지, 싶지만-소설적 기법이 훨씬 뛰어나고 세련되었으니까- 아무래도 깊이 싸안고 가게 만드는 소설은 김형경이다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김형경보다는 은희경이 취향에 맞는다 싶기도 하고.
은희경은 세련되고 날카로움에 조금만 더 깊었으면 좋겠고-『새의 선물』에서 보여주었던 통찰의 깊이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김형경은 소설적 기법을 좀 더 연마해 그 무딘 칼날을 조금만 더 날카롭게 갈아줬으면 좋겠고.
소설전 잡설을 너무 길게 깔았다. 김형경의 책을 읽으면서부터 하고 싶던 이야기였는데. 어쨌든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서.
은희경의 소설답게,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이 여러구절 있는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은희경 『마이너리그』창작과 비평사, p.53
「나는 유능한 카피라이터는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 결국 나는 '안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텐데'라는 말을 듣는 결로 자족했다. 한마디로 씨니컬한 어조로 이류를 자처함으로써 경쟁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뜻이다. 일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경계심을 살 필요가 없었으므로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같은책, p.132
논란이 아주 많았던 책이었던 것으로 알고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몹시 괜찮게 읽었던 책이다.
이 세상엔 10%도 안되는 메이저와 메이저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이너로 전락하는 90%가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4명의 "만수산 4인방"은 저마다 속으로 나머지 셋을 마이너로 깔아뭉개 스스로를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알고보면 똑같은 마이너리그의 인물들이다. 10%도 안되는 메이저들에게 내내 비교를 당하며 피해를 보고 끝내는 사기까지 당해가며 사는. 그들의 인생은 이 땅의 90%에 해당하는 나머지 인물들의 삶이기 때문에 감히 비웃거나 나무랄 수가 없을 것 같다.
소설은, 읽다보면 이들의 전락기라는 느낌이 든다. 사춘기의 남자아이가 어떻게 사기비슷한 것까지 당해가며 늙어가는지를 모여주는 그들의 성장은 조금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 서글픈 비애감을 은희경은 그냥두지 않는다. 작가는 여기에 날카로운 유머를 투입함으로써 풍자의 극으로 소설을 끌어올린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두환은 소희에게 수백번 되풀이했던 맹세를 얼마 전에 또 했다 이제 다시는 고생 안 시킬게. 그리고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 맹세를 지켰다. 죽여버린 것이다.」
p. 139
비애와 유머의 적절한 리듬감이 18살부터 40살 까지의 좀, 지루할 법도한 이야기를 꽤나 맛깔스럽게 바꾸어놓고 있다.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도 꽤 잘 살았고, 화자로 선택한 김형준(나)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역시, 은희경의 소설적 재능의 승리.
추가 : 김형경의 사랑을......이 페미니즘 소설로 읽혔다면 이 소설은 남성을 위한 소설로 읽혔다. 마지막에 승주와 조국의 대화중에 불쑥 튀어나오는 "그나마 조금 재미있다 싶은 건 월드컵하고 박찬호지."라는 말에 울 아부지 생각나서 콧등이 찡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