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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수필 - 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
방민호 엮음 / 향연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몰랐다.
어쩌면 학부시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서정주의 〈귀촉도〉〈추천사〉 정지용의 〈유리창〉 고려가요 〈청산별곡〉〈가시리〉 그리고 그 숱하게 많은 작품들의 아름다움을. 그때까지는 그저 시험에 많이 나오는 시들이니 토막 쳐 외고, 모더니즘이니 생명파니 그런 것들이나 외고 있었지. 그 작품들의 아름다움이 내 가슴에 스미기 시작한 건 시험과 관계없어지고부터 비로소였다.
과외를 하느라 펼쳐 든 문제집의 갈피갈피에서 발견한 서정주와 윤동주, 지용과 육사의 시편은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다운지!(이 말의 끝에는 느낌표를 아니 붙일 수 없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서 계연이 떠나는 장면을 지켜보는 성기를 묘사하던 부분을 읽었을 때 새삼스레 느꼈던 그 감동이란. 그야말로,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 작품들이 끊임없이 교과서에 실리고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이로구나 라는 말을 수도 없이 중얼거리게 만드는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기의 작품들.
이 책은 그들의 산문을 모은 산문집이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아름답다는 것을, 소설이나 시에 비해 시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산문임에도 그 시대와 관계없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품들이 실렸다.
특히, 정지용의 산문은 압권이다. 월북작가라는 오명을 쓰고(그가 납북작가였음은 2001년 남북 이산가족 교류를 통해 겨우 밝혀졌다.) 88년에야 겨우 해금이 되어, 89년, 내가 중1이 되던 그해, 5차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중등 교과서에 <고향>이라는 시를 올려놓았던 그 시인. <향수>와 <유리창>의 시인. 나는 지용의 시를 배운 1세대였다. 운이 좋기도 했지.
지용의 산문은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한국인이 영어 교육에 그렇게 열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지지리도 못하는 이유는 한국어와 한글이 지나치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설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세상 어느 언어가 이처럼 아름다울까. 이처럼 삽삽하고, 이처럼 질박하고, 이처럼 처연하고, 이처럼 연연하고, 이처럼 요요롭고, 이처럼 실큿하고, 이처럼 화려하고, 이처럼 단아하고, 이처럼 섬세하고, 이처럼, 이처럼 고울까.
몇몇 사람을 석 달 열흘만 방에 가둬놓고 이 책을 비롯한 근대문학 작가들의 소설과 시집을 딱 열권씩 읽히고 두 번만 배껴쓰게 하고 싶다. 진심으로. 그럼 부끄러워 자살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언어를 그따위로 망쳐놓지 말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