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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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샤의 <측천무후>와 더블 리뷰 

언젠가, 강선생님이 프랑스어의 표현력에 관해 이야기 하신 적이 있었다. 영어, 불어, 일어, 한국어, 4개국어를 완벽하게 하는 데다 국문학을 전공으로 불문학을 부전공으로 하신 분이시니까 아마 설득력이 있는 말일테다. 문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언어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라고. 일본어와 영어의 표현력은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인이 아니면서 프랑스어로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꽤 있다. 벨기에 출신의 아멜리 노통이나 중국인 산샤등.

『측천무후』는 산샤가 프랑스어로 쓴 중국 황실의 이야기다. 중국의 역사에 그다지 해박하지 못한 나는 지금까지 당나라의 측천무후와 청나라의 서태후를 혼동하고 있었다. (창피하다.) 그 삶이 비슷해서일까. 아니면 중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혼동되어 버렸을까.

이국적인 것은 에로틱하다는 말이 있다. 이 글은 상당히, 에로틱하다. 에로틱한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글 자체가 에로틱하다. 묘사나 사건들에서 관능이 넘친다.

권력의 극에 달하면 색을 탐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공통적인 특성이 아닌가 싶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측천무후의 결말도, 미실의 결말도 그 끝은 색에 닿아 있다.

진본이다 아니다, 상상이다 아니다 논란이 분분한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그 바탕으로 쓰여진 김별아의 『미실』역시 에로틱하다. 엄격한 유교 윤리에 길들여 진 눈으로 보았을 때 미실은 확실히 파격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책의 제목으로 쓰게 되는 것은 몇가지 장점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 주인공의 행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측천무후와 미실은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다. 당나라에서 측천무후가 황태후로서 권력을 누리고 있을 때, 신라에서는 미실이 왕의 애첩으로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두 여인의 삶은 비슷한 양상을 띄고 진행된다. 비록 측천무후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자가 아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였고 미실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지만. 두 사람 모두 유명무실한 남편의 존재를 두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른다.

김별아는 『미실』이라는 작품을 쓰며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는 말을 했는데 소설에 그 말은 딱 어울린다. 미실은 작가의 통제와 상상을 벗어난 인물이다. 읽으면서 불편해 질 정돈데 쓰는 사람은 얼마나 더 불편했을까.

여자 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권력으로 남자 이상의 권세를 누렸던 동시대 두명의 여 황제. 글 곳곳에 느껴지는 관능적인 분위기가 매력의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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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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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미경에 관해, 나는 몇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 나와 동향출신의 그녀는, 이화여대를 나왔고 서울대 미대 학장인 화가 김병종의 아내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 글도 잘쓰는 그는,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 만큼이나 아내의 글도 아껴준다. 2002년이었던가. 가나아트센터의 오프닝을 갔다온 강샘이 웃으며 전해주신 말이다. 요즘 남자들은 아내를 참 사랑해. 글쎄 김병종 교수가 말야, "이 사람이 소설을 쓴답니다." 라고 온통 어찌나 대견해하며 자랑을 하는지. 그해에 그녀는 작가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둥글둥글 얼굴에 살집이 좀 있고 코끝이 둥글고 말투가 조신해 여려보이는 그녀는, 의외로 눈매가 매섭다. 그 매서워 보이는 눈매와 카피라이터였던 이력이 만들어 내는 그녀 소설은 뜻밖이라 해도 좋을만큼 대단히 좋다.

생의 이면을 담담히 관조해 내는, 그 이면에 동감하고 동정하면서도 막상 그곳에 빠져들고 싶어하지는 않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녀 소설 곳곳에서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서늘할만큼 예리하면서도 참신한 문체 또한 매력. 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것을 그려내는 문체도 금속적이지 않은 서늘함을 가지고 있다. 그 서늘함 속에 얌전히 숨겨져 있는 애정과 따뜻함 또한.

확실히,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삶에 대한 성실함이 그러하듯.

내가 본 것은 결국 겉보기일 뿐일지라도, 작가의 남편 김병종 화백은 참 좋은 사람이더라. 이처럼 어울리는 부부를 찾아보기도 힘들거다, 생각이 들 만큼. 전작 『장밋빛 인생』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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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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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장을 읽다가, 작가의 글솜씨가 놀랍도록 발전을 해서, 그야말로 놀랍도록 달라진 글 솜씨에 경악을 했던 글.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도 바뀌는 구나, 가 아니라 아, 이 사람의 진짜는 이쪽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달까. 어줍잖은 글(전작 『사랑스런 별장지기』가 어줍잖은 글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을 무턱대고 출판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명에 얼마나 크나큰 흠집이 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 준 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작은 수첩하나 손에 쥐고 뒹굴었다. 내일은 아주머니가 오는 날이니까 미루어 두었던 빨랫감들도 정리해서 베란다에 내 놓아야 하고, 장도 보러 가려고 수첩을 펼쳐들고 만년필을 꺼내 사야할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샴푸. 린스. 락스와 식용유. 보리차 티백과 잡곡. 국물용 쇠고기도 다 떨어졌고, 커피 믹스도 사야 하고, 냉장고 속 감자, 양파, 당근도 다 떨어졌다. 참치와 스팸도 없고. 아. 맛김도 다 떨어졌구나. 고체 카레와 다시용 멸치도 사다 놓아야... 아이구 귀찮아. 산다는 건 귀찮은 일들의 연속. 뭔가 대단한 사건이 뻥뻥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자잘하고 자잘하고 자잘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그러다 이 책을 잡았다.

진솔의 자잘한 일상이 손에 잡힐 듯 들어와서, 서울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는 이 작은 여자의 고백에 한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더구나 조용하고 한적한 지방 소도시 출신의 여자에게- 서울은 지나치게 삭막하고 복잡한 곳이지.

인물들의 성격이 매력적이었다. 특별히 대가 세거나 연약하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나름의 줏대를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 작가의 잔잔한 글솜씨와 맞물려 아주 좋았다.

작가가 참 오래 공들여 썼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을 너무 아끼면 글이 죽어버리거나 등장인물들이 죽어버리는데 인물에 대한 욕심을 버린 작가의 애정이 글을 살렸다. 구성 작가를 오래 했다는 작가의 이력 덕일까. 진솔과 건의 직장생활이 그대로 보여서, 그 또한 하나의 매력.

참 좋았다. 정말이지, 참 좋았다. 『사랑스런 별장지기』에서의 그 좋은 에피소드 사이의 어딘지 모를 어설픔이 완전히 빠져나간 글이라 더욱 좋았다. 이 작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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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의 검 애장판 세트 - 전6권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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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기로 유명한 작가다. 참말이지 읽다보면, 이 작가, 사디스트가 아니고서야... 싶은 생각이 절로 들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주인공들을 고생시키나.

『북해의 별』에서 아델라이드는 끝내 하반신 불수가 되어버리고, 『테르미도르』의 주인공들도 끝내 완벽한 행복을 맛보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딘가 성찮아진 주인공들이 그나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만화는 그녀의 만화치고는 주인공 남녀가 사대육신 멀쩡하게 살아 아들딸 줄줄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희한하다고 해야 할지. 소설 내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서 마지막에라도 행복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걸까.

김혜린은 역사의식이 투철한 만큼 여성의식 또한 투철한 작가로 보인다. 김혜린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연약한듯 강하며 남자의 횡포에 짓밟히지만 꿋꿋히 딛고 일어선다. 아주 꿋꿋하게. 게다가 그녀는 순결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불의 검』에서 아라도 『북해의 별』에서의 아델라이드도 모두 남편(또는 남편이었던) 사람과의 성관계가 있고, 아라는 아이까지 낳는다. 그녀는 아마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에 대한 항거를 그녀들을 통해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들을 그 과거를 의연하게 쓸어안는 남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땅의 가련한 남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진정 멋진 남자 강한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스스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남자에게 안길 수 밖에 없었던 것 따위 스스로의 미력함을 책할지언정 결코 여자를 책하지는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가라한 아사(산마로)도 유리핀 멤피스도 속된 말로 눈이 튀어나올만큼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그녀의 주인공들은 무작정 강하거나 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의 검』에서 마리한은 무작정 선한 사람은 아니요, 머리 위에 올려진 왕관의 무게에 괴로워 하고 사랑하는 여자 소서노에 대한 연정으로 번민하며 절친한 친우 가라한 아사에 대한 질투로 몸을 떠니까.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종이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소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라한 아사 역시, 사랑하는 여자 아라가 낳은 적의 아이 단목다루를 안고서 "너를 보기 괴로워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 얼마나 인간적인 고백인가.

삶, 사람, 사랑... 자꾸 반복해 발음하다 보면 끝내는 같아지는 말이라고 소설속 붉은 꽃 바리가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결국은 사람이 사랑이고 사랑이 삶인. 그런 것인지도.

참. 좋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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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의 꽃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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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대나 뭐래나, 광고도 해 대고, 궁녀라는 특이한 계층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읽은 책.

여러 분야의 학문이 그렇듯이 다년간의 연구가 쌓인 뒤, 그것을 정리하고 추려낸 것들이 가치를 가지듯 궁녀에 대한 연구도 그럴 것 같다. 아직은 여러모로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듯. 87년 일지사에서 나온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박하고 있는 글이지만, 지나치게 중구난방이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말은 김용숙의 연구는 조선왕조의 몰락기 궁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그 정확도가 떨어지고, 경국대전의 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궁녀의 특성상 그 연구 자료가 너무도 희박하다... 라는 말. 그리고 나오는 말들은 전체적으로 뭘 말하고자 하는지 뼈대가 잡히지 않는다.

세종조에 중국으로 건너가 옹정제의 애첩이 되었던 조선의 여자 한씨에 대한 기록이 흥미로웠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죄다 그저 그렇다. 궁녀의 월 급여가 얼마였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니까~~~!!! 버럭!

인문학 서적 특유의 정확한 정보 전달 노력도 좋지만 작가가 직접 말한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재료 자체가 미비한 시점에서 상상력을 발현하여 정보와 정보사이 빠진 부분을 메꾸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사람의 글솜씨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싶다.

나에게는 크게 가치있는 글로 읽히지 않았다.

차라리,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 등등의 궁녀문학을 읽는 것이 훨씬 나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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