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펭귄클래식 50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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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새로운 소설을 읽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또다른 새로운 세계에 접하는 일이다. 책은 책이 없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들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책을 통해 신석기 이전의 세계들을 체험하며 중세와 섭정 시대의 유럽을 본다. 조선시대의 의식주를 보고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본다. 작가의 상상력 또는 복원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기록과 재현 능력 또한.

이 소설은 상상력과 복원력에 의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기록과 재현능력에 의한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이 작가 본인이 살아가던 시대의 특성과 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해 현대에 재현해 낸다. 체험만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소설이다.

사실, "오만과 편견" 이라는 소설 제목만 가지고는 뭔가 심오한 철학을 담은 소설이라는 "편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제목은 작가의 주제 의식을 함축하는 동시에,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의 또 다른 소설 『분별력과 감수성 Sense and Sensibility』가 분별력이 뛰어난 앨리너와 감수성이 풍부한 마리앤 자매의 이야기인 것처럼. 결국 이 제목은 작가의 또다른 소설 『엠마 Emma』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 주인공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 제목을 쓰는 것과 이름 그 자체를 제목으로 쓰는 것은 제목에 주제의식을 담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를 가질 뿐 동일 선상에 방법 같다. 아마도, 제인 오스틴은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마흔 한살에 죽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선함과 악함" 등의 제목이 붙은 소설이 줄줄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오만(해 보이는)한 남자주인공 "피츠월리엄 다아시" 씨와 남자주인공에 대한 편견에 빠져 그의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자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양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다. 거기에 곁다리로 끼어드는 둘의 어머니 베넷 부인의 이야기며 장황한 콜린스 씨의 편지와 인사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사실 현대의 로맨스 소설을 10권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은 별스러울 것이 없다. 어쩌면 아주 진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견문이 짧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여류작가의 특성일까, 특별한 경치 묘사도 없다. 그러니까 풍경화를 즐길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여타 로맨스 소설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좀 과장되긴 했으나 인간의 심리에 대한 예리하고도 재기 넘치는 풍자(콜린스 씨의 장황하기 이를 데 없는 인사와 편지를 보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와 당시의 중류 사회의 생생한 생활상 묘사 등이다.

사실, 이 소설은 군데군데 헛점이 있다. 자신의 하인이나 친구에게는 그리도 칭송받는 다아시 씨의 성품이었지만, 초반부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오만하다못해 재수없기까지 하다. (엘리자베스가 치를 떨 만 하다.) 그랬던 그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으나 행동이 급선회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못하다. 아니 행동이 급선회 했다기 보다, 초반부 네더필드 에서의 그의 행동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펨벌리(다아시 씨의 본가)의 하녀장과 그의 소작농들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그는 온갖 선량함과 덕행의 표상같은 인물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행동이 펨벌리에서 엘리자베스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지는 것에 대한 설명 또한 충분하지 않다.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견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심리만을 들여다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아시 씨에 비하여 엘리자베스의 심리변화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니까.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1700년대 말, 영국 중류층의 생활상과 그들의 심리, 그들의 오만과 그들의 편견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생명을 얻는다. 작가의 수다(물론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기는 했으나)가 이렇게 유쾌하게 느껴지는 소설도 오랜만이다. 로맨스 소설의 원전으로 꼽아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단순히 재미있다, 라고 말하기엔 넘치도록 유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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