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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예전에 과외했던 아이중에,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4년을 살고 온 아이가 있었다. 특별히 친한 아이는 아니어서 다른 생각은 별로 나지 않는데, 무슨 이야기 도중이었는지 "중국 사람은 식탁 빼곤 다 먹어요." 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엽기적이라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어느면 익숙해져 있다는 표정으로 해 준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엔 의자를 들고 씹어먹는 중년 아저씨나 접시를 아그작 아그작 깨 먹는 아이가 떠올라 한동안 괴로웠었다.
몇천년을 이어온 도저한 문화의 힘이란 그런 것일까, 현대가 되어도 과거가 사라지지를 않는다. 현재와 과거의 교묘한 혼재가 현대의 중국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변방의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우죽우죽 피를 팔러가는 허삼관이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아주 코믹하다. 유쾌하다고 썼다가 얼른 우습고 코믹하다, 라고 바꾸었다. 유쾌,라는 말의 그 쾌 라는 단어에 포함된 산뜻한 느낌이 이 책에는 없다. 코믹하고 우스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찡한 이야기다. 그게 피를 팔아서 만들어진 이야기일까.
주인공 허삼관은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그 고비를 넘긴다. 허옥란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피를 팔고(정확히는, 피를 판 돈이 생기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그제야 허옥란에 관한 생각을 한 것이다.) 자신을 오쟁이진 남편으로 만든 첫째 아들 일락을 위해서 또 피를 판다. 중국 공산 혁명과 문화 혁명기를 넘기면서 허삼관의 피는 자신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팔기 시작하고, 그 피를 판 돈으로 흉년에 자신의 아이인 이락과 삼락만을 데리고 국수를 먹으러 가면서 그 국수값의 1/3에 해당하는 돈을 일락에게 쥐어주며, "너는 내 친아들이 아니니 내 피를 판 돈으로 산 국수를 먹일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도 미워지지가 않는다. 더구나, 끝내는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가지 않는가.
아버지 허삼관에게서도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를 받고 다들 친 아버지라 이야기 하는 하우량에게서는 아들로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일락은, 그러나 "네가 친아들이었다면 너를 가장 사랑했을 거야."라는 허삼관의 말에 행복하다. 허삼관도 그러하기에 행복하다.
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진창길을 걸어 사흘 또는 닷새마다 피를 파는 허삼관의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찡하다.
작가 위화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심리묘사를 하나도 하지 않고 대화와 서술만으로 처리해 낸다. 심리묘사가 없는 소설임에도 그 어떤 심리묘사보다도 훨씬 절절하게 그 심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오히려 심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작가가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 놓은 장치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중국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곳곳에 배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