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혹평을 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다. 나의 혹평으로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도 저어되지만, 더 중요하게는 혹평을 하고 듣는다고 한들 그가 조금치라도 발전하거나 변화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나쁜점을 마구 공격하기보다 좋은 점을 마구 칭찬해서 그쪽을 돋워주는 쪽을 택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가, 김진규에 관해서는 이제 혹평 좀 해야겠다. 뭐 나 따위의 혹평으로 이 사람의 글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지만. 

김진규는 2008년 벽두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다.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알라딘은 시끄러웠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아직 등단도 하지 않은 작가의 첫 작품이 제 13회 문학동네 문학상의 수상작이 되었고, 작가의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작가의 인터뷰가 먼저 알라딘에 게재되었다.  

그녀의 첫 책 <달을 먹다>로 나를 화악 끌어당긴 것은 책 뒤 박완서 선생님의 추천의 말이었다. 옮겨본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재,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무려 최명희란다. 무려 최명희. 그 혼불 최명희 말이다. 지름신이 내려와 머릿속에서 광을 쳐 댔다. 당연히 예약구매를 했다. 그리고 책을 받았다.  

이런, 문학동네, 이 조선일보스러운 것들아.  

책을 다 읽고, 책 뒤에 수록된 심사평까지 다 읽고 한 말이었다. 어떻게 박완서 선생님의 심사평 중에 딱 너 좋을 거 한줄만 꺼내놓냐?  

박완서 선생님의 <달을 먹다>에 대한 평가는 정말이지, 그지없이 가혹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모든 박완서 선생님의 각종 문학상 심사평 중 가장 가혹하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 박완서 선생님글 스토커쯤 되니까, 이 말 믿어도 된다.) 

박완서 선생님의 평 중 일부를 옮겨본다. 

"<달을 먹다>를 나는 아마 세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내리 세 번을 정독했다는 뜻이 아니라 읽다가 줄거리를 놓쳐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다는 소리이다. 참으로 읽기 힘든 소설이지만 난해한 소설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줄거리만 말하면 흥미진진할 듯싶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략).............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큰 그림을 총체적으로 보려면 독자는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스스로 꿰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게 그 조각 맞추기가 쉽지 않다. .... (중략) .... 어렵사리 꿔맞춰서 겨우 한 화판 속에 퍼즐조각을 빈틈없이 집어넣고 나서도 완성의 기쁨이 별로 없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다.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는 거, 곧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그 작의가 와 닿지 않았다.  .....(중략)....

혹평은 이만 접고 좋은 점도 많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제,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 작가의 억제해야 할 장점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인물도 사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물들이 구체적인 언동으로 성격을 표출하고 운명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미리 나서서 설명함으로써 인물들이 꼼짝달싹 못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인간도 정물화처럼 묘사해 박제화 시키는 건, 앞으로 이 작가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달을 먹다> 심사평 중에서

혹평 접고, 장점도 있다더니 두줄 써 주시고 바로 "그러나" 붙여버리셨다. 장점도 단점인 작가란다. 박완서 선생님 최고 乃 -_-;;; 

장점은 하나도 없는 글 되시겠다. 도대체 작가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모르겠고, 문학동네는 왜 무려 '소설'상을 줬는지도 모르겠고, 당췌 이 글이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처녀작이니까. 괜찮다. 최명희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도 인정한다. 구절구절 섬세한 묘사도 해 낼줄 안다.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 다음작품 기다렸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도 읽었다. 재미있게 술술 읽어넘겼다. 여전히 큰 줄기를 잡아내는 서사를 구성해내는 데는 약한 작가지만 그래 첫 작품보다 나아졌으니가 너그러이 넘겼다. 삼 세판, 한 작가에관해 글을 쓰려면, 세권까지는 읽어줘 보자 싶어 이 책까지 읽었다.  

아 쓰,.... foot. 어쩌라고오오오! 

아니 얘는 말이지, 그 위대한, 살아있는 대작가 박완서 선생님이 요목조목 넌 이런 점이 나쁘고 이런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다 손수 짚어주시기까지 하셨으면 극복하려는 척이라도 좀 해봐라, 응? 너한테 약한 건 서사거든? 넌 도대체 소설가라고 하기 무색하게(소설은 서사장르라고오오!) 서사가 너무 약해. 장면과 장면만으로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 나가라고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라고, 어떻게 넌 니가 쓰고 싶은 장면만 쓰냐고,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다는 말씀으로 이렇게 불친절하면 안된다, 라고 말씀해 주신 그 대작가 노선배의 말을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냐? 응? 응? 응? 아니, 뭔 깡이냐고, 대체! 

이 책은 전혀 서사가 연결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진짜, 웬만해서는 서사와 서사사이의 블랭크를 메우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편인데, 이 소설은 2/3가 넘어가도록 이 이야기가,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박완서 선생님이 달을 먹다를 세번 넘어 읽으셨다더니 이 책은(안 읽으셨으리라 확신하지만) 아마 열번쯤 읽으셨을게다. 나도 나중에 숫제 오기로 서사 파악하려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말한다.  

"내 이야기의 팔할은 공부에 의지한다."  

<저승차자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문학동네, 2010, 작가의 말에서

그러니까 말이다, 이 작가, 공부한 거 아까워서 놓지를 못하는 거다. 자기가 공부한 염색과 당시의 사건들과, 각종 벼슬아치들 구실아치들... 그런 것들 공부한 거 자랑하고 싶어서, 나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아는데 니들은 이거 모르지? 자랑하느라 정작 소설은 쓰지도 못하고 끝이 난다. 막판에 가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자기도 헤메었을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학동네 문학상을 수상한 후, 김언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김진규는 이런말을 한다.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랬나봐요." 

<달을 먹다>,  김진규, 문학동네, 2008, p. 263 수상작가 인터뷰 중에서

 

그러니까 이 사람의 글쓰기라는게 과식과 급체로 쏟아져 나오는 오바이트 또는 설사 되시겠다. 공부하는 작가 좋지. 남들보다 많이 아는 작가 좋고, 남들이 쓰지 못하는 글 써내는 작가 좋고, 속에서 이야기가 고이고 넘쳐 도저히 참을 수 없을때 터져나오는 이야기도 좋고. 김훈이 칼의 노래를 한달만에 썼다던가 세달만에 썼다던가.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속에 담아 발효시키는 과정이다.  

잘 삭은 똥냄새는 곱기만 한데 말이지. 이 작가의 글을 전부가 전혀 삭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그러나 이미 서로 뒤섞여 쓰레기가 되어버린, 그런 토사물 또는 설사의 느낌이다.  

도대체 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것일까.  

 

1. 타인의 글에 대해 토사물이니, 설사니 이런 극단적인 악담을 하기는 싫은데, 표현을 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김진규의 스스로의 글에 대한 설명이 그러하였으니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표현일 뿐 특별히 욕을 보이기 위해 선택된 단어는 아님을 밝혀둔다. 

2. 지금까지 출간된 김진규의 책 네권(달을 먹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을 모두 읽고 쓴 글이니 뭐, 어쩔 수 없다.  

3. 에혀.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_-;;; 공지영이 그랬지. 일단 언어에 대한 감각은 있어야 한다고. 거기에 덧붙인다. 최소한의 서사를 구성해 낼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4. 문득 느끼는 건데, 문학동네에서는 김진규 의 책들마다 표지를 어쩌자고 이런 일러스트들을 썼을까?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1-01-0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 김진규 인터뷰만 몇 번 읽어 봤는데 등단도 하지 않은 주부가 단편 습작도 없이 장편을 갑자기 써서 바로 고액의 상금을 받고 등단했다는 그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좋아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군요--;; 요새 출판사 공모 수상작들이 함량 미달이라는 평이 많더라구요. 박완서 스토커 ㅋㅋㅋ 갑자기 안그래도 박완서 샘의 소설을 한 편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흉년>을 읽을까 하고 있었거든요. 또 아시마님의 추천을 듣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리뷰 왜이리 재미있죠? 아시마님이랑 얘기해 보고 싶어요.^^

아시마 2011-01-08 21:11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달을 먹다 기대가 너무 컸던 책이라 실망도 어마무지 해서요.
그래서 그때는 리뷰도 못쓰겠더라구요.

제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 다들 김진규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해요. 그나마 제가 좀, 희한하게 질깃하게 끌고가는 면이 있어서, 4권을 내리 읽어준거죠. 근데 이제는 그만 읽을까봐요. 사람이 발전이 없는 걸로도 모자라 점점 나빠져요.

습작도 없이 고액의 상금과 함께 바로 등단하는 드라마틱한 주부중엔 심윤경도 있죠. 심윤경은 김진규와는 전혀 달라요. 김진규가 달을 먹다를 내놓던 그 즈음해서 심윤경도 달의 제단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정말... 비교체험 극과극이니 반드시 읽어보세요, 달의 제단은. 너무 아름다운 책이죠.

김연수가 그랬잖아요. 첫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작가들이 80%가 넘는다고. 그러고보면, 등단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가는 외려 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도시의 흉년은 너무 좋죠. 하긴 뭐, 박완서 선생님 글중에 안좋은게 있으려구요. 그래도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책이기는 해요. 예전에 드라마도 했고.

이 리뷰가 재미있으셨다니 다행. 누구 험잡는 리뷰라, 재미까지 없으면 전파 낭비잖아요. ^^;;; 저도 블랑카님이랑 이야기 해 보고 싶어요.

최근 이사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디로 하셨나요? 나중에 저 귀국했을때, 가까이 산다면 우리, 다같이, 독서회라도 조직해 보아요!!!

잘잘라 2011-01-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관심 없던 책(작가) 리뷰를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평을 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다, 라는 첫 문장에 공감해서 읽기 시작한 리뷰, 끝까지 재미있게요^^.

내친김에 『나는 여기가 좋다』 리뷰도 읽었는데, 사기 결혼 운운하신 대목에서 킥킥거리다가 즐추 눌러버렸습니다. 재밌는 아시마님을 알게되서 보람찬! 주말이 되었어요. 땡큐베리감사마치~~~

아시마 2011-01-09 18:57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겨찾기까지 해 주셔서, 더. ^^
즐겨 찾으실 때마다 읽을 거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볼랍니다. ^^

김진규는 음. ㅎㅎㅎㅎㅎㅎ 관심 갖지 않으셔도 될 것같은 작가중의 한명입니다. ^^;;;;;;

2011-01-09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1-01-1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스러운 것들!!! 지존이십니다그려~

아시마 2011-01-11 16:1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녀고양이 2011-01-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여, 이 책을 50페이지 읽다가
못 견디고 던져버렸어요. 저랑 취향이 너무 안 맞는거예요.

그런데 제가 친한 지인이 이 책 괜찮다고 리뷰를 썼더라구요.
역시 제 취향이 지랄맞아 하고 있는데, 아시마님의 리뷰 보고,,, 크크크, 위안 받는 중.

아시마님, 굉장히 오랜만에 들렸네요. 잘 계셨죠?
건강하고 즐거운 새해되셔요. 아직도 인도네시아에 계신건가요?

아시마 2011-01-15 20:45   좋아요 0 | URL
작가마다 특징이 다 있고, 이 작가의 장기가 문장이랑 묘사니까 그쪽을 중점으로 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은 해도... 이 작가는 좀 심해요. 정말 어지간하면 저도 읽어주는 편인데, 화율은 진짜 좀.

마녀고양이님도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저는 이제 2년 반쯤 남았답니다. ㅎㅎㅎ 세월 참 빨라요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소설가 정미경과 동향이다. 심지어 여고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가 정미경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하고, 그녀의 몇몇 작품은 구절을 외고 있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좋은 소설이고 좋아하는 소설이란 것과는 별개로 매번 의아해했던 것이,  

그녀의 글에는 그녀와 나의 고향 냄새가 없었다. 나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그대로 서울에 발목이 잡혀 주질러 앉혀졌다. 그래, 나는 '주질러 앉혀 졌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에서는 매끈한 서울내기의 냄새만 났다. 태생부터 서울인 듯,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구절은 단 한줄도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직장에 발목이 잡혔다. 젠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에만 있었다. 직장생활 5-6년차쯤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가자 돌아가' 할 무렵 남편을 만났다. 나와 동향의 이남자,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女"자 하나를 빼면 그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이 되는 이 남자, 나와 결혼하자 꼬실 때만 해도, 

"남자는 평생 세 번 반한대요. 여자에 한 번, 일에 한 번, 고향에 한 번. 남자들은 다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죠." 

라는 말로 미끼를 던져 나를 휙 낚아챘다. 난 그가 내민 미끼를 물고 파닥파닥 댔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내려가겠다 이거지? 좋아좋아. 이러면서. 

그와 살기 시작하고 어느하루, 서울살이 타향살이의 지겨움이 농울쳐 들어오던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수줍게 배시시 웃으며, 우리, 언제쯤 돌아가요오오? 교태와 사랑스러움을 듬뿍 담아서.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어딜?' 

어딜, 이라니, 어딜, 이라니. 이 배신감이라니, 어떻게, 어딜? 이라고 물을 수가, 어딜 이라니. 너 나중에 내려간다지 않았느냐고, 내가 파닥파닥 뛰었을때, 그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려가 뭐해먹고 살게?' 

아니, 응? 이따위로 나오면 곤란하지. 니가 이럴줄 알았으면 난 내려가서 해먹을 거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이미 내려가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단 한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사람하고 결혼했을 거라고오오오오오!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어! 사기 결혼이 별거냐, 응? 응? 응? 

향수는 주기적으로 몰려왔다. 어느때는 참을 수 없을만큼 나를 달달 볶아댔다가, 때로는 그저그만하게 견딜만 했다가. 동향 출신의 작가 책은 일단 사고보고, 어느 소설에선가 고향의 지명이 나오면 그건 그냥 지명이 아니게 되고. 

나의 그런 유난은 나로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인간의 기억이 5살부터 시작된다면, 19살까지 살았던 그곳의 기억 14년. 20살부터 살았던 이곳의 기억 14년. 이만하면 어디가 고향이다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떠돌아 살았던것도 아니고 한 도시의 붙박이 14년인데. 그래도 서울은 유난히 정이 붙지 않는 도시였다.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 도심이기만 했어도, 나는  남편이 미끼를 던질 틈도 없이 내려가서 거기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 등을 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절대 내 손으로는 돈 벌지 않겠다는... 이 태도는 뭔가... -_-;;) 

그러다 한창훈의 글은 일단 반가웠다. 오, 그래, 너도 내 과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막,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응응, 그래, 내 맘 알지? 알지? 이런 마음이 되었다.  

그의 고향에대한 집착은 나만큼이나 유난하다. 오죽하면 소설집의 제목이 <나는 여기가 좋다> 일까. 피폐해진 농어촌의 현실에 못견딘 아내가 출향 아니면 이혼이라고 해도 이 남자, 아내보다 고향을 택해 주질러 앉는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그 말에 발끈한 게 한순간에 발목 잡힌다.
"여기서는 모두 잘났다고 추켜세워 주는디, 육지 가믄 그렇지를 못하니께, 그게 겁나서 못 가는 것 아니요?"

p. 32,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라고 다그치지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것이 아니다. 육지가 무서운 것보다 여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큰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단편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는 마치 떠날 것 처럼 끝을 맺었던 남편이 이어지는 이야기인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섬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마치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떠올리게 하던 <올 라인 네코>나 <바람이 전하는 말><아버지와 아들>은 섬생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풍광묘사를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만 가능한 어떤 정서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것의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 아니, 이미 집착으로 변해버렸지만 어쩔수 없는 거야, 라고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애정 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나는 여기가 좋다, 를 외치고 있다.  

그런 그의 글에서 그가 말한 '여기'로 가지 못한 나는 위로를 받는다.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듯한 위로.  

이러한 그의 고향에 대한 집착은 이전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가던 새 본다>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으며 장편 <홍합>과 최근에 발간한 에세이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고향과 어촌이라는 존재 바다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창훈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어낸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이미 타인이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랐다.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명랑을 비롯하여, 이렇게 특정부분, 남들이 쓰지 못하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화젯거리를 가진 작가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ps. 이 글이 고향에 관한 글로 타겟을 맞추느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작품은 아무래도 <밤눈> 같다. 그리고 내게는 가장 찡했던 <가장 가벼운 생>과. 

2010. 8. 1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1-0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밤 눈! 저는 올라인 네코도 완전 좋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아시마님, 정말 사기결혼 했네요. 하하하.

아시마 2011-01-08 21:03   좋아요 0 | URL
완전 불쌍한거죠, 저. 서울로도 모자라서 이제 여기까지 나와서 이러고 있슴다. 정말이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둘리 목소리로 읽으셔야 합니다.) 입니다.

그나저나 저 이 책 덕에 한창훈 책 죄다 구해서 콜렉션 했잖아요. 한창훈 완전 좋아요. ㅎㅎㅎ 좀 있다 줄줄이 리뷰 올릴테니 기대하삼! 절판 품절이 많아서 애 먹었더랬어요.

저절로 2011-01-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러다 궁둥이에 털 나겠어요,,울다 웃다..하여튼 몽땅 책임져잉이이히히힝~

아시마 2011-01-08 21: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며... 면도기라도? ^0^

한창훈 참 좋아요, 에파타님. 꼭 읽어보세요. 아마 한창훈도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접신 박완서 샘도 한창훈 소설 되게 좋아하신다는 후문이 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첫번째 책 <비밀노트>를 읽었을 땐 조안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이나 저지 코진스키의 <잃어버린 나>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계대전 때에, 유럽의 시골에 방치된 어린 소년의 생존 투쟁기 말이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의 화자를 여섯살 어린 여자아이 옥희로 선택함으로써 얻게되는 효과는?" 

물론 정답은, 아이의 천진한 눈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을 거짓없이 드러내게 만든다 류일테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 <비밀노트>에서 얻어내는 효과도 그와 비슷하다. 여섯살 소년 둘의 눈에 비친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 시골 풍경은 삭막하고 살벌하기 그지없고, 천진하기 때문에 더욱 잔혹하게 비친다. 아이는 사실을 듣기 좋고 먹기 좋게 포장할 줄 모른다. 아이에게 사실은 오직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고, 그것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해 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지. 아이들의 기록은 그들이 당한일, 한 일, 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지 못하(거나 알려 하지 않)고 그렇기에 가감없이 드러낸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는 데에 아이의 눈보다 더 좋은 창은 없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유니세프나 유엔의 보고서가 아니라 소년병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이렇게 천진한 아이들이, 천사같은 이라는 수식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어리고 천진하다는 점에선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겪는 전쟁이란, 그 무엇보다 전쟁의 진실을 잘 드러낸다.  

2부 <타인의 증거>는 1부의 연장 선상에 놓인다. 전쟁 직후의 피폐한 사회상을 보여주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대척점에 있는 타인이라는 존재다. 아니, 정확히는 타인의 대척점에 있는 나 라는 존재다. 1부의 쌍둥이 클라우스와 분리된 나 루카스는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존재하고,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좌표를 찾는다. 그러다 상대의 좌표가 변화하면 나의 좌표는 길을 잃고, 결국 소멸하기도 한다. 1부가 충격적이었다면 2부는 슬펐다.  

그러나 3부의 충격에 비하면 1부의 충격은 충격도 아니었다. 3부에 가서는 모든것이 뒤죽박죽 섞여버리고 만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더니 모든 거짓말은 마치 변증법처럼 거짓이 거짓을 거짓으로 반박하고 그 거짓이 중첩되어 또다시 새로운 거짓을 만들어 내고, 그 거짓에서 가지는 의미 또한 거짓이 되고... 그러나 3부를 읽다보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책이 전쟁 소설이라는 생각을 접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주 테마는 전쟁이 아니다. 이 책의 테마는, 테마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가 아니라 존재는 거짓말을 한다, 랄까, 아니면 존재는 거짓말 속에 있다, 라고 해야하나.  

3부를 끝까지 다 읽고 아주 드물게 1부를 다시 펼쳐들어 3부까지 천천히 정독했다. 처음 읽을때의 충격과 경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번엔 눈물이 줄줄줄(그야말로 줄줄줄!) 흘렀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뭐가 중요한가.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리도 참혹하게 슬픈가..... 

이 책은, 두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3부의 끝에는 도돌이표가 달려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1-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지를 않았어요. 그걸 한번 해봐야겠어요.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꼭 한번 그렇게 해 보세요.

3부를 읽은 직후에 읽은 1부는 정말이지, 처음 읽었을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전혀 다른 이야기. 그러니까 저는 아마, 루카스가 혼자 할머니도 아닌 집에 소개되어 가는 상황을 혼자 가정하고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그 둘의 이야기가 정말 사무치게 아프더라구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외로울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하고.

너무 많이 울어서(저 의외로 책 읽다가는 거의 안웁니다. 영화는 폭풍눈물 하는데 책은 정말 안해요.) 나중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어요.

이 책 띠지에서였나, 1,2,3부중 어느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각각의 역학관계가 형성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가는... 놀라운 소설이었어요.


따라쟁이 2011-01-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권에서 도돌이표. ^-^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요?
저는 중권을 읽고는 뒷 이야기가 넘 궁금해서리... ^^
따라쟁이님의 도돌이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궁금해요.

blanca 2011-01-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 안 그래도 이 책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궁금해요. 저는 어떤 느낌이 들지. 요새 잡은 책들이 대체로 재미가 없어서--;; 처지는 중입니다.

아시마 2011-01-06 0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도 블랑카님의 느낌은 참 궁금합니다. 정말로 참 궁금해요.

요새 잡은 책들이 무슨 책이었길래 재미가 없으셨나요?
근데 사실, 가끔보면 블랑카님은 난 읽기 싫은 되게 어려운 책도 막 읽고 그러시는 것 같드라~ ㅎㅎㅎ 난 어려운 책이 재미없어서 싫어요.

저절로 2011-01-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찔찔이 도돌이표 군요.
이 책, 어른 울리는 재주가 있군요. 겁나는데요?

아시마 2011-01-06 01:22   좋아요 0 | URL
음, 어른 울리는 재주가 남다른 책입니다. 에파타님 감성이면, 정말 많이 우실지도 몰라요.
그저 에파타님께서 써 주시는 페이퍼와 리뷰로 짐작할 뿐이라 외람되지만, 에파타님은 공감의 능력이 특히 뛰어난 분 같아요. 남들보다 훨씬 섬세한 현을 가진 듯. 그런 에파타님이 읽으시면, 음음음,

후유증은 제 탓이 아닙니다. ㅎㅎㅎ

저절로 2011-01-0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이제는 콧물까지~)
아무래도 책임은 지셔야 겠네요;;

아시마 2011-01-08 20:56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읽으시면 남들보다 훨씬 힘드실 거라고, 경고(를 가장한 강력추천)도 드렸건만 굳이 굳이 읽으시고 제게 와서 이러시면, 저는, 음 그저,
뿌듯함을 느낄 뿐이고! ㅎㅎㅎ

책임의 근원을 찾으시려거든 다락방님을 잡으셔야 합니다요. 예예.
제게 그 책을 소개하고 읽게 하신 분이십니다. ^^

그런데 참... 슬퍼요, 그죠?

다락방 2011-01-10 08:48   좋아요 0 | URL
저...저....절, 잡으실겁니까? 하핫 ;;

저절로 2011-01-10 18:30   좋아요 0 | URL
쌩=3=3=3=3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심지어 유일하기까지 했던 직장은 서울 한가운데,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3살부터 30살까지 만 7년을 일했고, 처음 2년은 혼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까지 그 숲근처에 구해놓고 혼자 외따로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걸어서 15-20분쯤 되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자박자박 걸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몇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자박자박 걸어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고,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널널한 직업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난 정말 많은 일을 해치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그야말로 새롭게 맺어왔는데, 게다가 처음 2년을 제외하면 내내 일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무실이었는데 왜 내 기억속의 나는 항상 외따로인건지 모르겠다.  

그 숲 속으로 숨어들 때, 그래, 숨어들 때, 나는 내가 '숨어든다'라는 걸 의식하며 숨어들었다. 그 숲의 산 그늘 속에 꼭꼭 숨어 숲과 함께 숨 쉬는 나무이고 싶었다. 숲은 한없이 고요했고, 침묵과 외면에 능했으며, 시침떼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숲은 때로 나의 기쁨과 함께 자지러졌고, 나의 슬픔과 함께 통곡해주었다.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나에게 그 숲과,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곳은 정말, 현실적인 의미의 '내 젊은 날의 숲' 이었다.  

김훈의 이 책이 나왔을때, 그 표지의 백색과 은청색이 가지런히 섞인 문양은 겨울숲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의 유폐를 떠올렸다. 내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켰던 그때, 그때의 그 평화와 그 외로움과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들의 기묘한 단절감들을. 여전히 세상을 왕따시키고 싶어하는 나를.  

이 책의 내용도 그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폐 시키는 사람. 숲 속의 적막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숲 속의 나무들이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만을 원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p. 187 
 
   

 

주인공은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사 그 간극을 뛰어넘어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고 한들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너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내가 아는 너' 일 뿐이고, 네가 아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내가 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난다. 나는 내가 아는 너 만큼만 너에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김훈이 변했다.  

단 한번도 희망에 관한 말을 해 본적 없던 김훈이, 이 글에서 처음으로 마지막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비록 희망아닌 희망이고 의미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김훈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을 통과해 나오며, 숲의 치유력의 영향을 입은 것일까. 주인공이 입은 그런 치유력을 김훈도 입은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김훈의 문체는 여전히 예리하고 날렵하지만 따뜻해졌다. 아. 김훈의 글이 따뜻하게 읽히는 날이 다 오다니. 김훈선생께서 늙으신 겐가.

나는, 33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나왔다. 순순히는 아니고 자유의지는 더욱더 아니고, 그럼에도 불가항력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나왔다. 나왔으되 버리지는 않았다. 숲이 준 것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2010. 12. 23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토끼 2011-01-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어요 ^^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솜씨에 비해서 방문자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블로그 모음 사이트에 가입하셔서 더 많은 분들에게 노출시키면
많은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요번에 새로 생긴 사이트에 가입해보세요(http://thegle.net )
얼마 전 오픈해서 님의 글쓰기 솜씨면 충분히 메인에 올라갈 수 있을꺼에요 ^^
그리고 오픈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꼭 같이 참여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아시마 2011-01-03 19:12   좋아요 0 | URL
네. ^^ 그렇군요.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

blanca 2011-01-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벼린다'는 용어가 항상 떠올라요. 한겨레21의 편집장 일기를 보니 문체가 거의 비슷해서 기자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시마님의 문장들도 정결하고 깔끔하고 그래요. 아시마님이랑 저랑 동감 아니면 한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올해가 왔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더라구요. 내가 나도 나마저 결국 중년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게다가 아시마님, 전 아직 둘째도--;; 이렇게 육아로 소진되는 (물론 생산적이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상찬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가는 구나, 싶어서요. 아시마님 페이퍼에 또 중언부언하고 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아시마 2011-01-03 22:15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예요.. ^^
김훈의 문장은 지우개의 문장이죠. 길게 길게 써 놓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나간 문장이라는 느낌. 하긴, 김훈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나 에세이에서였나, 여<칼의 노래>에서 죽은 여진을 대하는 대목이요. 그 부분을 원고지 두장쯤 썼다가 싹 지우고 "내다 버려라." 한 마디만 남겨 놓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하루는 글 안쓰고 종일 나가 자전거 타고 놀았다더라구요. ㅎㅎ 그런게 "벼린다" 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듯해요.
결국 벼리는 것도 깎아 내는 거니까.

그리고, 김훈의 글을 볼 때나 조선희의 글을 볼때나 느끼는 거지만, 언론인, 기자로서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팩트에 근접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제 문장이 정결하고 깔끔하다니... 오,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ㅎㅎ

전 아마, 블랑카님과 동갑인 것 같은데요. ^^ 학번은 아마 하나 빠를테고요. 저는 올해가 왔을때 정말 오히려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우리 나이를 벌써 중년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억울하단 말이죠. 전 아직 중년 안할랍니다. -_-;;;

육아로 소진되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간다는 말, 정말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독서라는 취미를 통해서 그 시간들을 무미하게 보내지만은 않잖아요. 전 지난 5년간 정말 애 둘 임신해서 낳아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다 다시 임신하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음, 기억나는 건 육아의 기억 절반과 내가 읽은 책들의 기억 절반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아요. ^^아

둘째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님의 방명록에 쓴 그대로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제 둘째는 두돌이 지났습니다아아아아!!! 으쓱으쓱.

저절로 2011-01-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항상 젊어요 그죠, 정작 나는 늙어가는데 말이죠.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왠지 짠해지는걸요.^^

아시마 2011-01-03 22:18   좋아요 0 | URL
옴마나, 그 문장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나봐요. ㅎㅎㅎ
젊의 날의 숲과 겹쳐져서 그런가 ^^
숲이 항상 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늙은 숲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숲과 젊은 숲, 장년의 숲은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게 지리산의 숲은 젊은 숲이고 설악산의 숲은 장년의 숲이거든요. 그 차이가 뭐냐 물으시면, 음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답했는데 왜 홍시맛이라고 했냐 물으시면,

이라는 답을 차용할밖에요. ^^

근데 아잉... 이분들이 왜 새해 벽두부터 늙음을 말하실까나.
저 처럼 철이 없으면 아무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는데요. ㅎㅎㅎ
 

인터뷰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가 진실이라고 믿으세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가 있나요? 인터뷰를 읽은 것으로 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거라고 믿으세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죠. 어쩌면 그 어떤 글쓰기보다 공적인 글쓰기 같기도 하고, 그 어떤 발언보다 사적인 발언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극단적인 개인사와 극단적인 공적 발화가 뒤섞인 장르가 인터뷰죠. 

잠깐, 제가 방금 '장르'라는 말을 썼나요? 흠. 인터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문학의 범주안으로 들어간 하나의 장르. 그럼 이 인터뷰는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한 조동일 선생식의 분류를 따르자면 교술장르인 걸까요, 서정장르인 걸까요. 인터뷰란 결국,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아니면 나의 외면을 치장하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이것에 따라 서정이냐 교술이냐가 나뉘겠군요. 인터뷰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도 여기서 결정이 나겠군요. 그런데 잠깐. 우리 흔히 그런말 하잖아요. 패션은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거라고. 그럼 말로 나를 치장하는 것또한 나의 내면의 반영이니 결국 인터뷰란 내 내면의 표현이되는 거네요? 결국 서정장르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 학부시절에 참 지겹게도 했던 말들.  

작년(그래요, 벌써 작년!), 2010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었던 김혜리의 책을 볼까요.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와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가 한 인터뷰를 하나로 묶어서 냈어요. 아무래도 영화잡지라는 한계가 있으니 당시 이슈가 되는 영화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인터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신경민 앵커나 유시민 님이나 장한나, 번역가 정영목 등등의 인터뷰도 있네요.  

사실 이 책은 고현정의 인터뷰가 보고 싶어서 샀는데, 정영목의 인터뷰가 뜻밖에도 몹시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으로 번역가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한 번역가가 정영목이었거든요.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 정영목도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줄바꿈이나 따옴표를 전혀 쓰지 않고 줄줄줄 기술하는 책을, 그것도 중역(포르투칼어->영어->한국어)으로 옮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정영목의 번역이라면 별 고민없이 집어들죠. 그렇다고 정영목이 자기 냄새를 많이 풍기는 번역자는 아니예요.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는데 정영목은 자기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정영목은 이렇게 말하죠.  

   
 

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나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p. 318 

 
   

 번역문이 번역스러운거, 그게 정영목스러운 번역일거예요. 아마. 그래서 저는 정영목을 좋아하구요.  

김혜리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식으로 흘러가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끄집어 내고, 상대방이 물어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김혜리의 인터뷰집을 읽고 있다보면 새록새록, 어머 이 사람 참 매력있네, 싶을때가 많아요. 이 책 이전에 나온 인터뷰집  

 

 

이 책에서도 김혜리의 장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혜리의 인터뷰는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죠. 한두페이지 정도, 김혜리가 생각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스케치가 들어가요. 그 스케치를 읽어보면, 김혜리는 이 사람을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인터뷰는 어떤 형태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문답 형식이 시작되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중간중간 괄호안의 (좌중 폭소)라는 대목도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성은 별로 없는, 가능하면 장점을 뽑아 내려 노력하는, 그래서 이충걸 식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거짓말'을 완성하는 거죠.  

이 책에서 김혜리의 인터뷰이는 전방위적이예요. 배우는 물론 기본베이스이고요, 소설가(박민규, 박완서) 만화가(김진) 건축가(황두진) 디자이너(정구호) 사진작가(구본창) DJ(전영혁) 등등. 그래서 인터뷰집 본연의 재미를 충족하게 해 주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재미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별난 생각들을 하며 각각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보는 재미요. 그게 아마도, 제가 인터뷰라는 걸 읽는 최고의 목적이니까요.  

김혜리의 인터뷰집은, 말하자면, 사실과 비유의 비율을 7:3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이 6:4 정도 되어요. 김혜리라는 창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김혜리가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김혜리의 아우라를 덧입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들 닮은 꼴로 보인다는 단점이. ^^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인터뷰집이라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요. ^^ 

자, 그럼 이번에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을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이충걸을 아시나요? 이 친구, 참 독특한 친구죠. 남성잡지 GQ의 편집장인 이 친구는 사실, 여성성을 굉장히 강하게 풍겨요. 외모와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실 글쓰는 스타일에서도 그래요. 섬세한 떨림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친구에 대해 "인터뷰 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이 책의 발문에서  

   
 

그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 그에게는 라디오 속처럼 사람을 뜯어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죠.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과연 인터뷰라는 글쓰기에서 가능한 걸까요? 이충걸은 자신의 그러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듯, 이 책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을 탈피해요. 일종의 에세이를 쓰듯, 줄줄줄 내려가죠. 일반적 에세이와의 차이라면 인용부호(따옴표)가 좀 많다는 정도? 

김혜리와 이충걸의 인터뷰이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아요. 이건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가져온 인터뷰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시의성이 강한 인터뷰의 특성상 당시에 회자되는 인물의 차이일수도, 게재되는 매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 사실 첫번째 이유가 가장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김혜리와 이충걸이 만나고 싶은 인물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이충걸은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것에 집착....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자, 이제 이충걸과 비슷하게, 패션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김경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김경은 패션지 월간 바자의 편집장이죠. 이 책의 인터뷰들은 대부분 바자에 실리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구요. 제목대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가 있고, 가수 싸이의 인터뷰로 끝이 나네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인터뷰가 있어요. 아, 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가 읽을때는, 그분이 나와 함께, 이곳에 계셨군요. ㅠ.ㅠ 

김경의 인터뷰집은 특별한 형식이 없어요. 이충걸과 김혜리의 중복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아무래도 패션지라는 형식상, 이런식의 질문이 나올때도 있죠.  

   
  외람된 질문입니다. '나쁜 여자 매뉴얼' 같은 데 나오는 얘기인데, 나쁜 여자들이 질질 끌지 않고 첫눈에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주길 바랍니다.
1.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나요?
2. 신발은 어디서 사나요?
3. 섹스나 전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p.26 김훈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의 김훈 선생께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거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야 원. 김훈 선생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영화는 안보고, 신발은 내 손으로 한 번도 사 본적이 없고, 그리고 세번째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으로 풀어버리는데, 그야말로 우문 현답이죠. 

얼마전 읽은 평론이었나, 아, 성석제의 글에서였나 김경을 새로운 기대주 중의 하나로 평가하던데, 저도 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음. 왜, 새로운 기대주일까, 싶어서요. 새로 글 내시면 꼭 읽어볼 의향이 있는데 아직 본격 소설이나 시나... 그쪽 장르는 손을 안대시는듯.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경의 인터뷰 집에서는 약간 마이너한 성향의 인터뷰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형태라든가, 한대수라든가,백현진 이런 매니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죠. 그리고, 김혜리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크리에이티브 리더" 라고 칭한 것과 달리, 김경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단독자"라고 표현합니다. 리더와 단독자의 어감의 차이는, 그대로 김혜리의 인터뷰이들과 김경의 인터뷰이들의 차이를 압축하기도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혜리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즉, 인물의 매력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김경의 인터뷰는 단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즉,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인터뷰에 치중합니다.  

자,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넘어갈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인터뷰 전문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지승호님의 인터뷰집입니다. 지승호는 김경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이 책을 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말하자면 시사성이 굉장히 강한 인터뷰를 하시는 거죠.  

이 책은 꽤 두껍습니다. 400 페이지가 넘으니까요. 이 400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다루는 인터뷰이는 고작(고작?) 9명입니다. 9명의 인터뷰이와 8개의 인터뷰를 하는 거죠. 인터뷰이도 문화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룹니다.  

진중권이라든가, 홍세화 라든가. 그나마 좀 소프트한 쪽으로 가면 김어준과 손석희가 있겠네요. 김동춘과 한홍구는 아이고야, 싶구요. 이건 인터뷰라는 형태를 띈 강연이다 싶을 때가 있어서.  

책은 그다지 쉽게 술술 넘어가지 않습니다. 꽤나 딱딱한 부분이 많아요. 그나마 진중권이 워낙에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라 진중권 편이 잘 넘어가고, 손석희는 알아듣게 말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싶구요.  

이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2004년 당시의 시사의 포인트를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지승호는 정말 드물게 제대로 인터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구요.  

이런 지승호가 이번에는 한권을 통 털어 한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2008년, 2009년을 통털어 베스트 셀러중의 한권이었죠.  

지승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공지영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을 많이 없애준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이 있는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인터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마주치다 눈뜨다 : 2005. 10.2 
괜찮다, 다 괜찮다 : 2010. 5. 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2007. 6. 14
해를 등지고 놀다 : 2004. 12.1
진심의 탐닉 : 2010. 12. 24 
그녀에게 말하다 : 2010. 12. 2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1-01-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또 관심이 겹쳐요. 김혜리의 저 책 두 권과 지승호의 인터뷰, 다. 이충걸의 것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바자,GQ 이러면 왠지 삶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도 다 근사할 것 같다는....저도 인터뷰 아주 많이 좋아해요.

아시마 2011-01-03 22:26   좋아요 1 | URL
이충걸의 책은, 음... -_-;;; 약간 난해해요. 글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충걸에 대한 태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굉장히... 뭐랄까... 수식적인 문장을 쓰는데, 스티븐 킹이 그랬죠. 지옥으로 가는 길엔 부사와 관형사가 깔려 있을 거라고. 징글징글하도록 많은 수식어들 부사어 관형어 부사절 등등등을 구사하는 작가라 음...
뭐, 저는 싫어하진 않지만요. ^^ 때로는 음, 맞다, 미원을 듬뿍 넣은 음식 맛 같아요, 글이.

저절로 2011-01-0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좋아해야 할 분위긴데요.
오히려 시마님이 인터뷰어들을 인터뷰한 것 같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떡국 드셨어요?


아시마 2011-01-03 22: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나라에도 떡국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서 먹던 그런 쫄깃한 떡은 아니구요. 쌀의 품종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끓여놓으면 풀어지고 이에 달라붙는 그런 떡국이라... 맛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먹긴 먹었습니다. ㅎㅎㅎ
그 덕에 한살 더 먹었고요. 애들도 남편도 다 한그릇씩 먹였지요.

인터뷰, 좋아해 보세요. ^^ 재미있다니까요. 거짓말이라도 재미있고 참말은 참말이라 더 재미있고, 허세에 쩔은 말도 재미있고, 진솔한 말은 진솔한 맛에 정말 쫄깃하니 맛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