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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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별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개의 정신과 질환(장애?)은 조울병과 자폐증이다. 

조울병은 다른말로 양극성장애 라고 하며, 자폐증은 발달장애라고 한다. 장애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발병(발생?) 후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정상으로(대체 정상의 기준은 뭔가 싶긴 하지만) 돌아가기는 힘들다는 의미고 질환은 원래는 정상적이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건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겼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애와 질환은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양극성'장애'를 조울병(질환)으로, 발달'장애'를 자폐증(질환)으로. 조울병, 자폐증은 질환일까 장애일까. 나을 수 있다는 소린가 없단 소린가.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천명중 한명이 양극성 장애 유병률을 보인다고 한다. 뜻밖에도 높은 수치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의 유병률을 보는데, 우울증같은 정신질환은 나라와 문화, 남녀 비율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반면 제1형 양극성장애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 없이 평균적으로 1%의 인구가 앓는다."(p. 175-176)고 한다. 백명중 한명이다. 우리가 조울병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인의 평생 유병 양대 정신질환이 조울병과 조현병이라고 한다. 


내가 자폐와 조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20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조울에 관한 책은 거의 나와있지 않았다. (항상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면 바로 책을 찾는다.) 학술 관련 서적이나 전공 서적으로는 그럭저럭 몇권이 있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양극성 장애인 본인이나 그들의 가족이 쓴 병상 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도 그런 수기중 하나. 


조현병을 앓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노희경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막의 낙타에 관한 은유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 이주현도 조울을 '사막'으로 묘사한다. 


상반되는 감정이 주기적으로 덮쳐온다는 점 때문에 조울병을 바다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해변을 휩쓸어버리는 조증의 해일,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달려드는 울증의 검은 파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울병은 '사막'에 더 가깝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지글거리는 사막의 태양.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극단적 추위. 

(중략)

정신질환으로 세상과 소통할 방도를 잃어버린 이들은 외로운 사막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p. 4-5


우리말에 "내 속 짚어 남의 속" 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마음에 비추어 남의 마음을 추측해 본 다는 의미인데 이는 인간 뇌 속 미러뉴런과도 관련을 가진다. 그런데 이 뇌가 고장이 난 상태라면. 정상적인(또한번 말하지만, 이 정상적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뇌를 가진 사람이 고장난 뇌의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사고 과정을 따라갈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고. 


결국 우리가 자폐인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템플 그랜딘과 같이, 자신의 심리와 상태를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자폐인의 기술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고, 조울병 환자의 내면 역시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 될 수 있다. 어차피 고장나지 않은 뇌를 가지고서는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경지인 것이니까.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를 고흐 외의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으랴. 


그래서 찬찬히. 이 책을 읽는다. 조울의 사막을 건너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내면을 짐작해 보려 노력한다. 여전히 그 내면의 어떤 부분에 가 닿을 수는 없으나 그 고통은 읽힌다. 사막을 홀로 건너는자의 고통. 


그녀의 사막이 조금은 덜 뜨겁고, 조금은 덜 차갑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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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울증이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 내면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어요. 이 책은 그 내면을 조금이나마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일 것 같네요. 덕분에 좋은 책 한권을 다시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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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말했던 바, 나는 시에 관해서는 영 맹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일진대, 나는 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재능은 영 없다.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를 위해서, 학부때는 전공필수과목이라 읽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시는 안(못) 읽는다. 나에게 시는 해석 못할 난수표와 같다. 


그 와중에 웃기게도 또 언어의 아름다움은 탐한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인간이 시는 읽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건 역설인가 반어인가. 언어의 아름다움의 끝판왕이 시일진대 이 어설픈 탐닉자는 시의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한다. 


시가 아니어도 이미 시인의 언어는 특별하다. 미술에 재능있는자 화가가 되고, 춤에 재능있는자 무용가가 되듯, 언어에 재능있는자는 문학가가 될 터인데, 그 문학가들 중에서도 언어에 가장 빼어난 재능을 가진자가 시인이다. 그런데 나는 시의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한다. 아. 나를 불쌍히 여기시라. 


시인의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탐하나 시를 읽지는 못하는 내가 대충 타협점을 찾은 것이 시인의 산문집이다. 그 시인의 시집 한권은 커녕 작품하나 제대로 읽지 않았고 알지 못하면서 시인의 산문집만 읽은 게 한 둘이 아니다. 아마도 박남준 시인이 이걸 안다면 몽둥이 들고 달려올지도. 박남준 시인은 아주 빼어난 시를 써 낸다고 하는데-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무조건 인정, 나는 그 시를 평가할 능력은 제로니까.- 정말로 아름다운 산문을 쓴다. 그런데 시인은 산문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산문집을 출간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다운 결벽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위대한 시인님이시여, 저같이 범속한 인간을 위해서라도 산문집은 계속 내어주소서. 아. 또 한번, Kyrie Eleison.


말이 길었다. 이 책의 저자 심보선은 사회학자다. 그런데 시인이다. 평론가 신형철의 발문대로 사회학을 하는 좌뇌와 시를 쓰는 우뇌를 가진, 그리고 그 둘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내는 시인이자 학자. 언어는 시인의 그것답게 아름답고 논리의 전개는 학자의 그것답게 명료하다. 이 아름답고 명료한 언어로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묻는다. 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언어를 쓰지. 


아마도, 내가 시를 읽지 못하는 것은 질투심조차 가지지 못하게 압도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여 산문을 쓰는 사람이 쓰는 시란, 대체 어느정도로 아름다울까. 시인의 시집을 찾아읽어보고 싶게 한다. 박남준, 허수경에 이어.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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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 관해 맹문이면서 아름다운 문장은 탐한다니 저랑 똑같으신 분이군요. ㅎㅎ 오늘 아시마님 덕분에 관심가는 책이 자꾸 생깁니다.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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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상태에서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감", 즉 ‘나도 사실은 저렇게 할 수있는데, 딱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나원참.’
이런 기분이 질투심이라고. - P181

이 책의 모든 글들은 자문자답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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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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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회학자 조은의 책 <사당동 더하기 25>를 기대하였는데. 음...... 그에 영영 못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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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기억이자 망각이야.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일단 한 번 몸에 배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되새길 필요가 사라지게 돼.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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