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이야기
김형국 지음 / 나남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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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평전을 읽는다는 것 박경리 이야기』 by 김형국

 

읽은 날 : 2026.2.19.

 

나는 몇몇 작가의 언어적 사생팬에 속한다고 자인自認하는 바, 특별히 추종하는 작가에 관한한 그 작가 본인이 쓴 글은 물론, 그 작가에 대해 타인들이 평한 글도 열심히 찾아 읽으며 내 머릿속에 그 작가의 상을 재구성하는 걸 좋아한다. 순서는 보통 이러하다. 작가 본인의 작품 작가 본인이 쓴 에세이 언론이나 기타 인터뷰 타인이 그 작가에 대해 쓴 글(여기에 작품 평론이 포함된다) 작가의 에세이집에 포함되지 않을 사소한 잡문들(ex. 문학상 작품 심사평이나 책 추천글 등). 다행히 작가의 오프라인 사생활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나 혼자 구성한 그 작가의 상을 어디가서 우겨댈 생각도 전혀 없으니 다행이라 할지.

 

이 책은 그 차원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박경리 사생팬이어서, 내가. (참고로, 내가 2002년에 발간된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오탈자 투정을 하며 김형국 사장님 욕을 거하게 했는데, 정정한다. 김형국은 나남출판사 사장이 아니다. 2002년 당시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2002년 나남 출판사 사장은 조상호였고,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책임 편집자는 방순영이었다. 이름을 왜 이야기하느냐면, 내가, 하도 하도 분해서 그런다! 난 뒤끝 길고 질긴 여자.)

 

나는 몇몇 배우의 팬이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그 배우의 팬 이라기 보다는 그 배우가 맡은 역할의 팬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 배우의 사생활이나 인품이나 기타등등을 알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거든. 그래서 나는 연예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는다. 딱 드라마만 본다. 문학으로 옮기자면 작가 본인의 작품을 보는 데서 끝나버리는 셈이다. 사실, 내가 전작하고 있는 작가들도 대부분은 , 또는 번까지가 끝이다. 타인이 쓴 글이나 사소한 잡문들까지 찾아보는 건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내가 사생질을 하는 작가의 수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건 게으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타인이 쓴 글을 읽는 건, 그리고 그 타인의 글솜씨가 범상할 경우, 참 힘든 일이 된다. 보통은 작가에 대한 글을 다른 작가가 쓰기 때문에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데(작가들의 글솜씨는 일단은 범상한수준을 넘으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음. 이 식재료가 너무 먹고는 싶은데, 맛없게 조리된 음식을 한 접시 앞에 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은, 작가의 평전은 대개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 글도 그렇다, 슬프게도.

 

이 글은 1980년대부터 작가가 타계하던 2008년까지 작가의 문하에 드나들었던 인연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같은 서부경남에 속하는 마산 출신이라는 인연도 있어(시장과 전장의 주인공 남지영은 마산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제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 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제가 박경리 선생과 거의 비슷한 억양, 비슷한 발성법으로 우리말을 하기 때문”(p.527)이란다.

 

김형국은 사람 일대를 연대기적으로, 곧 시간대별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으로 일대를 재구성 하려’(p.603)는 시도를 했다. 문제는 작가의 의미론이 아니라 김형국 본인과 박경리와의 만남에 따른 의미론으로 진행을 했다는 점이다. , 본인은 평전이 아니라 하였으니 김형국이 본인의 의미론 순서에 따라 글을 진행했다고 한들 딱히 뭐 잘못이라고 할 건 없겠다.

 

글의 시작은 토지의 제 3부까지가 완간되었을 무렵, 김형국이 자신의 전공(도시계획학)과 관련하여 토지를 해석하는 글을 쓴 것을 기점으로 박경리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로 시작해, 시장과 전장을 저본으로 살펴보는 박금이(박경리의 본명)의 결혼 이야기와 소박데기가 되어 딸의 집에 함께 살던 어머니 김용수의 이야기를 엮어가다 박금이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박경리가 이미 다른 에세이나 인터뷰 등에서 밝힌 이야기들(14세 소년과 18세 처녀의 결혼, 버림받은 본처 김용수가 결혼 4년 만인 22살에 우연히 외동딸 박경리를 얻게 되는 사연, 기봉이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던 아버지의 첩실 이야기, 어머니와의 불화,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미움의 감정 등.)을 재구성해 낸다. 이후 박경리의 등단 이후 정릉 시절의 단절된 생활 이야기와 김약국의 딸들파시를 저본으로 살피는 고향 통영에 대한 애정, 유방암 투병과 사위 김지하 이야기 등등이 이어지며 끝내 토지의 완간기념 행사-솔출판사 주관- 이후 토지문화관을 건립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렇게 써 놓으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별로 재미가 없다. 슬프다. 박경리 선생의 색채보다 김형국의 색채가 훨씬 강해서 그렇다.

 

그 와중 이 책 덕에 새롭게 알게 된 건, 박경리 선생이 통영 피란시절 음악교사와 재혼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이고(1년 살고 헤어진다), 시인 고은의 추잡한 행동이다. 고은 선생 좀 창피하시겠어요, 좀이 아니고 많이. 박경리 선생의 이름을 도용해 자작 추천사1967년 출간한 에세이집 ·高銀 엣세이: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의 표지 안쪽에 붙여서 냈단다.(p.512-514. 박경리 이름을 도용한 외에, 이어령, 박목월, 강신재의 추천사도 있다. 박경리는 이름 도용이 확실하고, 나머지 세 분은 모르겠다) 한 번만 그랬으면 좀 창피하고 말 일인데, 같은 책을 1968년 문성출판사에서, 1969년 평화문화에서도 재출간 하면서 여전히 그 도용한 추천사를 달고 다녔다는 사실은 좀 추접스럽다.

 

김형국은 작가 연구의 저본으로 이 책이 기능하기를 바란 모양이라 첨언한다.

 

p.279 에서 파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는 부산 사는 처형의 부탁을 받고 통영사람 조만섭이라고 한다거나 p.284에서 보호해 주겠다며 집에 들인 피란민 수옥을 처음 범했던 이도 바로 조만섭의 손위 동서였다. 수옥을 계속 집에 두면 제 서방이 계속 그 짓을 할 거라며 멀리 통영에 사는 동생 집으로 다시 피란, 아니 피신시키는 서울댁 언니의 처신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명백히 오류다. 부산 사는 사람은 조만섭의 처제, 서울댁의 여동생 영자.

 

부산 바닥에 있으면 아무래도 동서하고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난다는 거지. 쫓아내지 않고 나를 부른 것은 당신 동생이 똑똑한 때문이고.”

참 기가 막혀서.”

남자가 나쁘지 계집애야 무슨 죄가 있나. 인생이 불쌍해서 데리고 왔지. 피란 와가지고 오갈 데 없는 처지고 보니 두었다가, 지같이 의지가지 할 데 없는 사람에게 시집이나 보내면 지도 좋고 부산 처제도 안심할 게고…….”

박경리, 파시, 마로니에북스, 2013, p.34

 

p.335에서 작가 박완서와 대학 국문과를 함께 다녔던, 토지2부 가 연재되었던 월간지 <문학사상>을 위해 작가로부터 원고수령 일도 맡았던 문학평론가(강인숙)”라는 서술이 있는데, 일단, 박완서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6.25 발발이후 대학을 다닌 바 없다. 강인숙은 서울대 국문과 52학번이 맞고, 박경리와는 친분이 있지만, 강인숙의 남편 이어령이 <문학사상>주간이요, 본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문학평론가였기에 박경리와 교류했을 뿐 토지가 문학사상에 연재되던 당시 원고수령일을 맡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토지 3부의 연재 관련 문제로 접촉이 있기는 했다. 그 부분을 옮겨본다.

 

토지를 문학사상에 연재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언가에 기분이 상하면 선생님은 연재를 중단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지막은 원주에 계실 때였는데 원고료를 인상하라고 요구하시면서 연재 원고를 주지 않으셨다.

……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 선생(이어령)이 긴 여행을 떠나자 편집실에서 내게 박 선생을 만나 그 일을 마무리해 달라고 자꾸 부탁을 했다.

강인숙, 강인숙 평론전집여류문학, 유럽문학 산고, 박이정, 2020, p.101

 

월간지 <문학사상>은 토지3부가 연재 될 예정이라는 광고까지 실었지만, 결국 토지 3부의 <문학사상> 연재는 불발되었고 <주부생활> 잡지에서 19771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한다. 1976년 하반기의 문학사상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2026.2.20.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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