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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이런 책이 필요했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by 김지현
읽은 날 : 2026.3.4.
나는 음식 관련 이야기를 좋아한다. 음식을 주요 소재로 한 소설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보다 이야기의 갈피에 삽입된 음식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박완서를 좋아하는 건 그분의 소설에 음식이야기가 정말 맛깔나게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관련 최고의 박완서 작품은 『그 남자네 집』이지만(아 그 다양한 서울 음식의 향연), 『도시의 흉년』에 등장하는 음식들과 『미망』의 그 개성 음식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소설 속 음식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에 생동감과 실제성을 높인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에서 눈 내리는 날 메이플 시럽 달이는 이야기와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에서 등장하는 그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는 어떻고. 그 중 최고 백미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의 그 장면이다. 어멘가드와의 파티가 라비니아의 고자질에 따른 민틴 선생의 훼방으로 파토난 직후 등장한 그 마법 같은 한상.
접시의 뚜껑을 열어 보니 충분히 끼니가 될 만한 따끈하고 먹음직스런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와, 둘이 먹고도 남을 만한 토스트와 머핀이 있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세라 이야기』, 시공주니어, 2004, p.246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의 맛과 식감을 충분히 알고 상상할 수 있기에 세라가 받은 그 따뜻한 위안을 독자인 나도 함께 받는 순간이었다. 따끈하고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 토스트와 머핀. 그게 어떤 맛인지 나도 알거든.
언제나 문제는 그 상상이 불가능할 때에 발생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버터맥주(버터비어) 같은 것. 아직도 한참이나 미성년인 11-2살 아이들이 먹는 맥주라니, 19세 미만은 술을 사는 것조차 불가능한 나라에서 성장한 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너무도 맛있게들 마시니까 더욱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에 읽었던 소설에 등장하는 요크셔 푸딩 이라든가,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끝내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원인이었던 라임 절임, 《초원의 집》에서 나오는 버터밀크나 로라의 아빠가 “히코리 나무 연기로 처리한 햄만큼 맛있는 건 없단다.”라고 말하던 그 훈제 사슴고기나 돼지고기. 아.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어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요즘은 구글느님의 힘으로 클릭 몇 번이면 사진은 물론 제조법과 원한다면 구매처까지 일괄 검색이 가능하지만.)일단 내가 아는 햄은 고깃덩이가 아니고, 히코리 나무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오감을 동반한 실제감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것과는 정 반대에 있었다. 아는 맛과 모르는 맛의 차이.
그저 홀로 상상을 해 보는 수 밖에. 버터 맥주는 맥주에 버터를 녹여 넣은 건가, 아니면 맥주가 버터를 녹인 것처럼 걸쭉한 질감이 나게 만든 건가. 버터 밀크에 대한 상상은 나름의 합리성까지 띠고 있었다. 우유에 버터를 녹여서 더 녹진하고 풍부한 맛을 내게 한 건가보다. 하는 실제의 버터밀크와는 정반대의 상상을. 크리스마스 만찬마다 등장하는 칠면조 통구이는 어차피 같은 조류니 통닭 전기구이와 비슷한 맛이려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마다 일상의 음식을 하도 맛있게 조리하고 먹는 장면을 삽입하기에 하루키의 소설속 음식 관련 책들도 나왔다. (『내 부엌으로 하루키가 걸어들어왔다1,2』,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작가정신, 2003 / 『하루키 레시피』, 차유진, 문학동네, 2013) 소설 속 주인공이 먹는 음식을 나도 먹어보는 건 그 무엇보다 강력한 몰입을 위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이 나온 걸 보면. 이 책은 해외 소설(주로 영미권)에 등장하는 우리에게는 낯선 음식과 식재료, 그리고 오역으로 잘못된 소개로 잘못 알려진 음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덕분에 몇몇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풀었고, 몇몇 음식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었으며, 몇몇 소설을 소개받았다.
그래, 이런 책도 있긴 해야지.
2026.3.4.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