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세트 - 전5권 - 우리 시대 건강한 시민을 위한 열린 한국사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서란 이런 것이다. 의미있는 역사서술이란 이런 것이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한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술하고 있는데, 내가 직접 글로 풀어보니 이 책의 참맛을 실감하겠다. 역사적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주르륵 나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사실들의 나열을 역사'서술'이라고 가장해 왔다. 그런 책들을 읽고 또 그런 책들로 가르칠 때마다 언제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게 뭐? 그래서 어쨌다구? 외우고 또 외우면 머리속에 박아 넣을 수는 있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그 시절의 삶들을 눈 앞에 그려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두 가지 공부는 평행선을 타고 달렸다.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과, 역사 속의 이야기.

역사교사로서의 나의 꿈은 역사 속의 이야기들이 현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역사 속 그네들의 삶이 지금 우리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사를 한줄기의 역사서술로 풀어가면서, 나는 역사 속 사람들의 상황과 그들의 결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서 누구를 이해시킨단 말인가 하면서. 그러다 보니 사실들 간에 느슨하게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장 큰 스승이 바로 이 책들이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빠짐없이 중요한 사실들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그 사실이 왜 중요하게 인식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스스로 해석하고 상상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라면 두 말 하지 않고 권할 수 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었던 것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강조했던 어느 사건을, 누군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타임 캡슐 속에서 박제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손에서 조물조물 반죽되고 있다는 사실. 이게 얼마나 신나고 놀라운 일인지.그때의 그 희열이 지금까지 나를 역사학을 하는 사람으로 붙잡아 주고 있다.

 

이 책을 앞으로 보고 뒤로 보며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5권이 모두 비슷한 수준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해석과 상상력의 가능성이 가장 큰 1권, 고대 부분은 매우 좋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설화와 역사 속 한 줄의 기록을 이리 저리 끌어다 이야기를 만드는 모습은 너무나 신나는 경험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뒤집어 보고, 과장된 것을 깎아보고, 깍아내린 것에 살을 되붙이는 작업들은 롤러코스터보다 흥미진진했다.

지나치게 만족했던 탓인지 2권 중세 부분은 다소 눈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장의 수준이 들쭉날쭉하여 이 책에 들어있기에는 미흡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려의 역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샐쭉거리며 보았다.

3권 조선도 즐거운 독서였다. 조선사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탓에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아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그래도 역시 조선은 밉다. 아니, 임진왜란부터의 조선의 위정자들은 밉다.

4권, 5권은 평소에도 아파하고 애잔해하며 또한 가슴뭉클해하는 역사이므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부한 사진과 다채로운 편집의 묘미도 놓칠 수 없다. 하단의 상자글이나 읽을거리로 기획된 꼭지까지, 어쩜 이렇게 내가 궁금했던 것들만 담아놓았을까 감탄했다. 내 친구가 편집자였기 때문에 하는 공치사가 결코 아니다. 이런 멋진 책을 만들어내다니, 자랑스럽다 친구야, 하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이다. 

 

역사는 사실들을 해석하는 학문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어떠한 '입장'을 갖게 만드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학을 인문학이라 부르는 것일 터이다.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