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오사와 마사치 지음, 송태욱 옮김 / 그린비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원제가 뭔지 모르겠지만 까페에서 꺼내 읽을 때 참 민망한 제목이다. 늙수그레한 얼굴로 가방에서 연애 불가능성..어쩌구 하는 책을 꺼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주변을 한 번 돌아봤다.ㅋㅋ 제목이 삼류스럽지만 글은 논문 모음집이다. 전반적으로 통일감이 없어서 읽다가 이, 뭥미?하고 소제목을 다시 홅게하는 책이다. 책 소개글이 언어..어쩌구하고 나와 있는데 언어, 화폐등으로 가시화된 기호화에 대한 고찰이다. 어떤 기호나 상징이 의미를 갖는 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다. 타자의 잠재된 욕망을 전제로 기호는 작동하고..이런 일련의 글들이다. 사랑의 대상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  

읽은지 시간이 꽤 지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별로 없지만 책을 책꽂이로 보내기 위해 오늘 읽은 마지막 챕터-다중화된 미디어-를 두고 좀 끄적거릴거다.   

에바 일루이즈의<감정 자본주의>에 보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취향을 분석해서 매칭하는 상대방을 만나는 실험연구가 있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이성은 먼저 글로 상대를 받아들이다. 글이란 수단이 촉각이나 감각적이라기 보다는 이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상대가 올린 글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한 개체는 오로지 그 사람이 보여준 글을 통한 정보로만 형상화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과 정보를 올린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몹시 높고, 그를 이상형이라고 여기며 그 이상형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에서만이다. 사람을 살과 피로 이루어진 개체로 보게 되는 오프라인에서는 상대의 말보다도 그 사람의 제스처나 반응이 더 무게감있게 작용해서 글에서 완벽했던 사람은 오프라인에서 실망으로 다가올 확률이 컸다. 그러니까 글, 즉 상징은, 컨텍스트 속에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또 글이나 상징은 조작이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니 글=(매스)커뮤니케이션은 믿을만한가? 

아무도 알 수 없다. 블로거들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로만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아주 매력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나를 파편화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데 신의 영역까지는 아니어도 의식적이든 아니든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알라딘 블로거로서 나는 주로 책과 영화만을 본다. 평소에 내가 세바퀴에서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즐겨보며 얼마나 하릴없이 킬킬대는지(-_-) 아무도 모른다. 내가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뉴스 미디어로 확대하면 신문이나 주간지가 주는 정보 속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개인 블로거들이 더 진실이 담긴 뉴스 뒤 뉴스를 게재하기도 하고 다수는 부화뇌동하기도 한다. 얼마전 타블로 학력사건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신정환 소재지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타블로의 심경이나 신정환의 심경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철저한 목격이 글로 실린다. 글은 시선이고 시선은 권력이다. 고로 글 혹은 말은 권력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물론 글이나 말에 대한 타자의 욕망이 전제될 때. 상징이나 기호는 타자화에 대한 은밀한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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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1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적인 조작 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경제 뉴스에서 조작이 부쩍 심해진 걸 느껴요. 아마 제가 이제는 경제면에도 관심도가 높아져서 주의깊게 보게 되어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글이 권력을 생산하기도 파괴하기도 하지요. 그것이 경제건 문화건, 그 어느 분야건 관게 없이요.

p.s 언젠가 제가 읽은 책은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 였어요.. 주변의 눈들.. 아.. ㅎㅎ

넙치 2010-09-17 01:16   좋아요 0 | URL
(ㅋㅋ제목..참 자극적이네요, 내용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전 뉴스를 안 믿게된지 어언 몇 년. 뉴스보다는 차라리 기획물이나 책을 더 믿는 편이에요.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건 다른 정보에 대한 적극적 리서치를 실행하는 행동력을 필요로하니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데미 2010-09-2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호와 상징의 소논문 모음집'이라는 제목이었으면 아무도 안읽었을 거에요. 저도 매번 제목에 속지만, 속고 나서 속상한건 어쩔 수 없네요.

넙치 2010-09-21 11:41   좋아요 0 | URL
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 그림이 빨간 입술인게(것도 약간 입술 틈이 벌어진)화가 나더라구요.^^;; 온라인에서 확인하지 않는 게으름 탓에 치뤄야할 대가려니, 합니다...;;
 
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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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경욱의 단편들은 밀도가 촘촘하며 냉철하다. 방금 산 머리끈처럼 짱짱해서 늘이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게 냉정해보이면서도 깊은 통찰이 스며있다. 감상주의의 철저한 배제가 한 몫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단편들에 절대적 편애를 지니고 있다. 김영하에 뒤지지 않는 입담과 김연수에 뒤지지 않는 필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독자층이 두껍지 않다는(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에 마음 아파하고 있는 편이다.

그의 장편은, 처음 읽는 데 밀도감이 많이 떨어진다. 플롯의 평범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 신입생 때 서로 데면데면했던 남녀가 졸업 후 만나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고 또 결혼 할 거 같은 분위기로 끝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거 같은 이야기고, 일상적 술자리에서 추억을 회상할 때면 나올 법도 한 남녀의 감정변화들이다. 구성은 재밌다. 동화를 뒤집어 말하고 같은 시간을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3인칭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작가는 전지적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작가는, 남녀가 같은 별 출신일 수 없다고 쐐기라도 박는걸까? 알라디너들의 리뷰를 봤더니 나랑 달리 대체로들 만족한다는 분위기다. 음...난 왜 이 소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

이 소설은 연애소설인 척하고 있는데 연애소설에 필수요소인 낭만이 없다. 연애소설이라면 남의 연애사를 읽고 헤벌쭉까지는 아니어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그래, 사랑은 해 볼 만한거야라는 뿌듯함은 줘야하는 게 연애소설의 의무아닌가. 연애소설인척 하면서 실상은 무한반복되는 일상을 고스란히 활자로 옮겨놓으니 김빠진다.  

우리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 사회, 친구등등..엄마와 나는 모녀지간이고 아빠와 나는 부녀지간, 어떤 동료와는 문자만을 주고 받는 사이, 어떤 동료와는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고, 어떤 친구랑은 이유 없이 만나며 어떤 친구랑은 이유가 있어야 만난다. 오늘은 이유가 있기도 하고 이유가 없기도 한 사람들과 만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늘어놨다. 문득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필요할진대 모든 관계가 의미있지는 않다.  

책에서, 의미는 물론 내가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나 역시 책에서 읽은 걸 읊어대지만 오늘처럼 삐딱할 때는 개뻥처럼 들린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건 바로 의미에 대한 시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를 의미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남자의 사소한 행동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러워서 발견했던 의미를 지속시키는 게 어렵다. 어느 순간 남자는 다른 행성에 살고 있고 여자와는 다른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사람이 된다. 이건 남자와 여자만이 그런게 아니라 일상에서 종종 부딪치는 일이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같은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이렇게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내가 사는 별에는 남아있는 유일한 생물은 나 혼자가 되버린다. 주변에 널린 활자는 일방향이어서 설득만했지 내게 맞장구를 쳐주지는 못한다. 맞장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나와 같은 별에 사는 사람이다. 단 한 사람이어도 좋다. 오늘은 맞장구가 필요한 날이었다.  여자가 남자한테 원했던 단 한 가지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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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1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아래문단에서 부터 다시 읽어보면서 .. 네.. 정말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마음이 이렇게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내가 사는 별에는 남아있는 유일한 생물은 나 혼자가 되버린다. 주변에 널린 활자는 일방향이어서 설득만했지 내게 맞장구를 쳐주지는 못한다. 맞장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나와 같은 별에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세상 사는게 좀 수월해질 것 같은데.. 그게 어려워요.. 언제나..

책은 밀도감이 없다 하셨는데 넙치님의 이 글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합니다.. 어쩌면 연애도 그 맞장구를 쳐줄 이가 필요해서 시작했다가 결국 그 엇갈림의 운명에 절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그 엇갈림은 운명 같아요. 벗어날 길 없는 너와 나


넙치 2010-09-13 00:21   좋아요 0 | URL
그 한 사람을 얻으면, 인생 성공한 거 아닌가 싶어요.
저는 점점 더 엇갈린 운명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거 같아요..ㅜ.ㅡ

반딧불이 2010-09-1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째서 마음이 삐딱 하셨을까나요? 저도 그런날은 뭘해도 고슴도치 털세운 듯한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대의 그 밉살맞았던 것들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구요.

넙치 2010-09-13 00:22   좋아요 0 | URL
원래도 까칠하지만 더 까칠했던 게...
오늘부터 마법이 시작되려고 그랬나봐요.;;
 
Twilight (Paperback, Reprint) - The Twilight Saga, Book 1 The Twilight Saga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 Little, Brown and Company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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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가 쓴 <페스트>에 보면, 오랑주 시가 고립되자 사람들은 변한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으니 영화도 바뀌지 않고 같은 거만 상영되어도 극장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평소 싸웠던 사람들이 새삼 만난 사람들처럼 팔짱을 끼고 공원을 거닌다. 더 없이 사랑한다는 표정으로 페스트란 장애가 지리멸렬했던 일상을 더 없이 소중한 보물로 바꿔놨다. 장애가 사람의 태도를 아주 긍정적 열정으로 변화시켰다. 열정적 사랑에는, 그래서 반드시 장애물이 필요하다.  

진도 잘 나가는 영어 소설책으로는 베스트셀러만한 게 없다. 초반에는 아주 지루했다. 내성적 십대 소녀의 마음만 200페이지에 달하는 데 왜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중반에 에드워드의 헌신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지점부터 지루함은 급반전된다.ㅋ 나이가 들어도 여자한테는(남자가 아니어서 남자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로망이라는 게 사라질 수 없나보다. 에드워드의 기사도 정신은 책장을 급박하게 넘기는 힘이었다. 여성작가들은 여자들이 원하는 남성상을 묘사한다. 진짜 남성상이 아니라 여자들의 꿈 속에서만 존재하는 특징들만 모아놓으니 여자들이 열광 안 할 수 없다.-,.- 

물론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의 근원은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를 설정하고 시작한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하는 소녀와 인간의 삶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뱀파이어 남자. 백년동안 혼자지내다 만난 짝이란다. 혼자 지낸 기간을 아는 건 충성도의 강도를 짐작케한다. 게다가 더 큰 물리적 장애로 벨라가 만신창이가 되면서 에드워드는 말한다. "You are everyting to me...The reason I am here is you..." 따위의 말을.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흐뭇하게 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내 인생에서 이런 말을 직접 해 볼 행운이 있으면 좋겠다.;;

벨라가 헌터 뱀파이어를 만나는 지점에서 밤 새고 읽다가 다음 날 헤롱거렸다. 이 나이에 십대들 사랑 이야기에 밤이나 새고..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인간이 나이든다고 해서 다 철 나는 게 아니니까, 하고 위안하기로 했다. 어제 <뉴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벨라와 에드워드의 멈출 수 없는 감정처럼 내가 시리즈를 다 읽을 지는 미지수다. <뉴문>을 좀 더 읽어봐야 알 거 같지만 귀중한 시간을 안 읽어도 그만인 책에 낭비하고 있다는 자책도 든다.   

덧. 영화도 궁금해서 dvd로 봤는데 에드워드의 이미지는 아니시다. 벨라가 에드워드를 묘사할 때 완벽하고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각진 얼굴과 삐쩍 마르고 캐주얼한 차림은 책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그렸던 그리스 조각같은 이미지가 한 방에 날아갔다. 게다가 두 배우의 목소리는 (당연하지만) 십대들의 말투여서 우아하지 않다. 책의 지루한 부분을 다 빼고  핵심만 잘 배열했는데 인물들이 주는 아우라가 오우, 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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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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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미국스러운 영화다. 18년동안 함께 산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생활에 위기를 겪는다. 정자를 받아 레즈비언 '엄마들'을 둔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으면서 삼각관계 구도가 된다. 흥미로운 소재와 대안 가족의 형태로 출발했지만 결국 배타적 가족중심주의로 끝나고 마는 아쉬운 영화다.  

외형만 레즈비언 부부지 실제로는 남녀로 구성된 부부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줄스(아네트 베닝), 남편처럼 이것저것 지적하는 닉(줄리언 무어). 게다가 아이들이 찾은, 정자를 제공한 아빠는 새로운 긴장감을 제공한다. 아이들의 아빠와 줄스의 관계를 알고 절망하는 닉은 그에게, 가족이 필요하다면 직접만들라고 한다. 친아빠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된 가정은 결국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해피엔딩이다. 이 영화가 가족을 지키는 미덕을 보여주는 건 가정의 주체가 레즈비언 부부라서가 아니라 부부란 혹은 가족이란 구불거리는 길과 엄청난 위력의 태풍도 이겨내는 거라는 훈계가 담겨있어 참 못마땅했다.   

영화 속 인물 중 가장 감정이 이입이 되는 건, 아이들의 생부다. 열아홉에 별 생각없이 정자를 기증했는데 18년이 지난 어느날 그 정자의 실재가 나타난다. 혼자 사업에 몰두하면서 적절한 즐거움을 찾으는 싱글라이프를 꾸렸다. 아이들의 등장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가족에 대한 불러일으킨다. 이런 것도 괜찮겠는데..했다. 어느날 짠 하고 다큰 자식이 나타나는 건 불로소득쯤 될 거 같다. 더구나 늙어가고 있다면 더더욱.  

미국스러운 부분은, 불로소득은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생부의 진지한 태도는 고민스러운 게 아니라 가차없이 내팽겨쳐진다. 18년을 노력한 사람만이 안정된 감정을 가질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좋은 소재를 경박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내가 아이들한테도 또는 엄마들한테도 공감할 수 없는 탓일 수 있다. 내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적 규범 나이가 불일치하는 데서 오는 블랙홀이 있을 지도 모른다.  

비혼자 삶은 풍요로우면서도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돌볼 많은 시간과 여유 뒤에 더불어 삶에 대한 치열한 갈등이 없어서 공감하고 나 아닌 것에 애정을 들이는 데 인색하다. 어떤 사람에게 애정을 쏟는데 인색하다는 걸 알면서도 바꿀 수 없어 사람이 아닌 대상에 무한한 애정을 쏟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알면서도...결혼생활이 거친 바람과 비를 동반한 태풍이라면 비혼자의 삶은, 겉으로는 평온한 태풍의 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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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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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봉전부터 잔인하다는 말이 나돌아 봐야하나 망설였다. 난 다른 상상력은 지나칠정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하다. 피가 낭자한 장면은 거의 못본다. 이 무슨 불균형스런 태도인가 싶지만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느니 어쩌겠는가. 잔뜩 겁을 먹고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견딜만했지만 144분이라는 런닝타임동안 별 이야기 없이 인간을 살덩어리로만 보는데 울렁증이 났다. 저녁에 바지락 칼국수를 먹는데 바지락 살을 씹는 순간, 남의 살을 씹고 있는다는 불쾌감이 이어졌으니 영화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2.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자체를 좋아하기 보다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적 즐거움 때문에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본다. 닫힌 공간에 인물들을 모아 놓고 공간에서 풀어가는 플롯은, 전체 틀이 대체로 약한 그의 영화들을 보게 하는 힘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간의 세부적 집착을 버린 대신에 조명 사용이 눈에 띈다. 어처구니없게도 조명은 따스하면서도 명암이 선명하다. 클로즈업을 너무 많이 사용한 영화는 촌스럽게 여겨지는데 사극 드라마처럼 빈번한 클로즈업 사용에도 이 영화는 촌스럽지 않다.

3. 메인 플롯이 건들거리고 전체적으로스릴러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긴장감보다는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를 뒤따라간다. 근데 너무 길다. 순진한 사람들이 야수의 심성을 지닌 이들에게 희생당하는 건 일차원적 잔혹함에 대한 탐구아닌가.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 뜯던 사슴이 재수없어서 사자의 습격을 받아 갈갈이 찢기는 데서 안됐다고 느끼만 심적 동요나 정신적 고찰을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초원의 동물의 세계를 사람으로 치환해 놓은, 원시적 잔혹함만이 있어 희생자와 복수하는 자의 절박한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다.  

4. 영화적 스타일에 대한 생각을 좀 했다. 나아가 거시적으로 한국영화의 나아길이라기 보다는, 영화 보기를 인생의 큰 낙으로 여기는 관객 1인으로서 좀 더 다양한 한국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한국영화는 분명히 전환기에 있다. 주로 활동하는 감독들이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려있다. 스타일이 분명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외국감독들의 유년기를 보면 대여섯살부터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해 십세 전에 첫 단편을(비공식적 영화지만) 만들 경우가 많다. 내 다음 세대나 다다음 세대들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싶다. 지금 감독들은 하드보일드한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영화 속에 그런 어린 시절의 꿈을 이미지화한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이 많이 보이고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다양성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런 영화라면 굳이 한국영화가 아니어도 되지 않나...한국배우, 한국감독, 한국자본으로 미국적 영화를 만들어낼 필요가 꼭 있을까, 싶다.  

하드보일드 소설을 즐겨 읽었던 트뤼포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미국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21세기는 트뤼포의 영화를 미국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미국장르 영화를 즐겨본 감독들이, 트뤼포처럼 한국적 장르영화로 즐거움을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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