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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
키어런 앨런 지음, 박인용 옮김 / 삼인 / 2010년 1월
평점 :
제목만큼 재밌는 책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막스 베버 삐딱하게 읽기다. 아일랜드 대학에서 베버를 강의한다고 하니 베버 전문가다. 바로 이 전문가적 기질이 책을 재미없게 만들었다. 나같은 비전문가는 베버를 바라보는 더 보편적 시각을 원하는데 키어런 앨런은 조목조목 베버의 글을 인용해가며 반박한다. 베버의 책 달랑 한 권 읽은 독자한테 세부적이고 꼼꼼한 반박문들이 지루하다. 왜 이 구절이 허술하며 저 구절은 비논리적인지..하는 게 이 책 한 권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자본주의 정신을 종교와 관련시킨 데 터트렸던 감탄을 아직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 저자가 주장하고 의도하는 바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논문투의 세부적 반박문이 아니라 일반 독자가 베버에 대한 다른 각도를 가질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줬으면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모두 베버 연구자는 아닐테니.
그렇다고 전혀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가 왜 유럽에서 태어나 호황을 누렸는지 설명한 베버의 입장을 반증하는 부분에서 아시아권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설명한다. 베버의 설명이 꽤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기독교-영생과 불교-윤회의 차이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이다.
기독교가 엄한 아버지를 신으로 하고 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기반으로 미물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서양사에서 자본의 축적은 힘, 즉 엄한 아버지로의 상승할 수 있는 사다리였다. 산업혁명 이후 부즈주아지의 탄생은 엄한 아버지로의 상승이다. 반면에 불교는 축적보다는 무소유를 강조하고 힘보다는 힘에서 초월하는 가치를 역설한다. 힌두교나 유교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구조에 베버는 관심을 가진 인물이다. 어떤 사회 현상이나 인간 행동의 동기를 설명하는데 정답은 없다. 모든 발화된 설명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어떤 독자는 참을 크게 이야기하고 어떤 독자는 거짓을 크게 이야기할 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베버의 독창성만 빛나게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