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미국스러운 영화다. 18년동안 함께 산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생활에 위기를 겪는다. 정자를 받아 레즈비언 '엄마들'을 둔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으면서 삼각관계 구도가 된다. 흥미로운 소재와 대안 가족의 형태로 출발했지만 결국 배타적 가족중심주의로 끝나고 마는 아쉬운 영화다.
외형만 레즈비언 부부지 실제로는 남녀로 구성된 부부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줄스(아네트 베닝), 남편처럼 이것저것 지적하는 닉(줄리언 무어). 게다가 아이들이 찾은, 정자를 제공한 아빠는 새로운 긴장감을 제공한다. 아이들의 아빠와 줄스의 관계를 알고 절망하는 닉은 그에게, 가족이 필요하다면 직접만들라고 한다. 친아빠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된 가정은 결국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해피엔딩이다. 이 영화가 가족을 지키는 미덕을 보여주는 건 가정의 주체가 레즈비언 부부라서가 아니라 부부란 혹은 가족이란 구불거리는 길과 엄청난 위력의 태풍도 이겨내는 거라는 훈계가 담겨있어 참 못마땅했다.
영화 속 인물 중 가장 감정이 이입이 되는 건, 아이들의 생부다. 열아홉에 별 생각없이 정자를 기증했는데 18년이 지난 어느날 그 정자의 실재가 나타난다. 혼자 사업에 몰두하면서 적절한 즐거움을 찾으는 싱글라이프를 꾸렸다. 아이들의 등장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가족에 대한 불러일으킨다. 이런 것도 괜찮겠는데..했다. 어느날 짠 하고 다큰 자식이 나타나는 건 불로소득쯤 될 거 같다. 더구나 늙어가고 있다면 더더욱.
미국스러운 부분은, 불로소득은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생부의 진지한 태도는 고민스러운 게 아니라 가차없이 내팽겨쳐진다. 18년을 노력한 사람만이 안정된 감정을 가질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좋은 소재를 경박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내가 아이들한테도 또는 엄마들한테도 공감할 수 없는 탓일 수 있다. 내 생물학적 나이와 사회적 규범 나이가 불일치하는 데서 오는 블랙홀이 있을 지도 모른다.
비혼자 삶은 풍요로우면서도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돌볼 많은 시간과 여유 뒤에 더불어 삶에 대한 치열한 갈등이 없어서 공감하고 나 아닌 것에 애정을 들이는 데 인색하다. 어떤 사람에게 애정을 쏟는데 인색하다는 걸 알면서도 바꿀 수 없어 사람이 아닌 대상에 무한한 애정을 쏟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알면서도...결혼생활이 거친 바람과 비를 동반한 태풍이라면 비혼자의 삶은, 겉으로는 평온한 태풍의 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