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의 번식력은 바퀴벌레만큼 강하다. 닥치는대로 먹는 잡식성이고 서식지 분포도 넓다. 약간의 습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번식할 수 있다. 습하고 어두운 서식지에 살면서도 때깔만큼은 광택이 나는 것도 비슷하다. 이 책의 표지는 들여다 볼 수록 매력적이고 고급스럽다. 근사한 표지 뒤에 쓰여진 내용은 바퀴벌레를 실제 마주쳤을 때처럼 끔찍해서 소름이 돋는다.  

자아 찾기, 소통, 자기 계발이란 긍정적 키워드에 뒤에 상품화 욕구가 어떻게 숨어있나, 가 이 책 전반적인 내용이다. 정체성이나 소통의 문제가 현대인의 화두고 "나는 나", "개성을 찾아서", 두루두루 잘 지내기 위한 전제조건인 감성언어 등은 문화적 자본인 아비투스고, 아비투스 형성에 자본은 교묘하게 작용한다. 이런 것들이 치료학과 결합하면서 자아, 소통에 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양분하고 치료학은 고통의 내러티브를 전제로 해서 자아 찾기, 소통을 위한 감성어 발달시키 등과 같은 패턴화된 심리상품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읽다보면 밥 맛이 싹 달아나는데 감정이란 발화하는 순간에 하찮은 것이 되기 쉽다. 주말 저녁 커플로 가득 찬 멀티플렉스 한 상영관에서 피크닉 나온 것처럼 팝콘을 질겅거리며 서로 속닥이는 커플을 양 옆에 두고 혼자 앉아 스크린만 응시할 때의 기분을 꼭집어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티스푼의 우울을 넣어 마시는 커피 맛 같은데 이런 게 말로 막상 하면 가끔은 찌질해보이고 가끔은 청승맞아보이기도 하고 씩씩해보이기도한다. 이런 날은 수다가 땡기지만 실제로 수다를 떠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경험으로 체득해서 대신 극장에서 집까지 걷기를 택한다. 바람이 차가우면 차가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바람의 온도 따위 아랑곳없이 달리는 차체들처럼 감정을 볼에 모아 바람이 볼에 모인 감정을 다가져가게 내버려두고 두 다리는 차 엔진처럼 감정없이 일정한 보폭으로 전진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감정이란 이렇게 모호한데 감정을 계량화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감정을 누르는 게 아니라 표출하는 게 미덕인 사회 속에 살다보면 감정를 계량화 못 하는 게 낙오자처럼 보이게 된다. 억압된 감정은 곧 고통이라는 등식이 만연해있는데, 이 등식이 징그러운 자본주의의 조종이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면, 감정의 일렁임을 간직하는 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낭만을 누릴 수 있다. 낭만적 현실을 사라고 사방에서 부추기지만 낭만적 현실은 자본이 만든 거고 현실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계속된 주입과 소비자의 심리가 결합했다. 결국 소비자가 사는 건 낭만적 현실만이 아니라 낭만적 허구마저도 누리지 못 하는 습한 세계에 종종 갇히게 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26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5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7-2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무더운데 '밥맛이 싹 달아나는' 책을 읽으셨네요. 억압된 감정=고통이라는 등식마저 자본주의의 조종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니까..저도 공연히 입맛이 가시는데요.

넙치 2010-07-26 21:50   좋아요 0 | URL
에궁, 안 그래도 가냘픈 반딧불이님 더 가냘퍼지겠어요.
당분간 자본주의 어쩌구...하는 책 근처에는 안 가려고 결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