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빈 신년음악회가 오늘 저녁 KBS1FM <FM실황음악: 진행 정준호>로 방송된다고 한다. 저녁 먹거나 아니면 설거지 하면서 싱크대 위로 빈의 왈츠를 듣게 될 성 싶다.  

 올해 지휘자는 카라얀의 제자로 세계 무대에 등단해 맹활약 중인 프란츠 뵐저 뫼스트이다. 그는 두달 전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었다. 뵐저 메스트는 오스트라이 출신으로 80년대 후반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서구 오케스트라계의 기린아로 주목받았다. 90년대에 런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있었으나 데뷔 초기의 총기를 인정 받진 못했다. 덕분에 한동안 그의 이름을 비꼰 Frankly worse than most (솔직히 대부분보다 못한) 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주목받게 된 곳은 대륙 건너 미국이었다. 국내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탄탄한 내공을 선보였던 크리스토퍼 폰 도흐나니로부터 2002년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를 이어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0년 가을 빈슈타츠오퍼(빈국립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되었다.이어 2011년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지휘자로 초대된 것이다. 빈 필하모닉 단원들이 빈슈타츠오퍼의 단원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지휘자로 프란츠 뵐저 뫼스트가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셈이다.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1940년 부터 시작되었으니 60년의 역사인 셈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콘서트는 세기말의 빈 '황금시대'를 염두해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함과 세기 말의 우울이 동시에 존재하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었다. 거의 유럽발 지적 운동의 중심에는 빈이 있었다.즉 유럽 문화와 유행, 철학등의 대표 도시였던 셈이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말러,쇤베르크,클림트, 바우하우스 등등.. 

빈의 '황금시대'에 그 도시의 지배계급이었던 부르주아지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음악은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는 쇤베르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왈츠였다.  

1940년 빈 필하모닉이 신년음악회 레퍼토리로 요한 슈트라우스를 선택한 것은 지난 화려한 시절의 영광에 대한 추억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문율처럼 자리잡아서 여전히 신년음악회 레퍼토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 8,90년대를 들어서면서 모차르트나 하이든 등이 부수적으로 연주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슈트라우스의 '왈츠'라는 '춤곡' 장르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구성된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지휘자는 매년 클래식 호사가들의 관심사가 된다. 원래 지휘자 초빙의 원칙은 빈 출신이거나 빈과 깊은 관련을 맺은 지휘자들로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개방되었다고 한다. 빈 신년음악회를 기획하고 최초로 지휘를 맡았던 사람은 클레멘스 클라우스였지만 가장 오랫동안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사람은 빈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있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였다. 1955-1979년까지 빈신년음악회의 단골 지휘자였던 셈이다. 빌리 보스코프스키는 당연히 바이올린주자였기 때문에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지휘하기도 했다. 이런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사람은 로린 마젤이다. 1980년대부터 1986년까지 보스코프스키에 이어 빈 신년음악회의 포디움에 섰다. 90년대 이후로도 4번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맡는다.  로린 마젤은 지휘자가 되기 이전에 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신년음악회에서는 지휘자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지휘자의 문호가 개방되었다고 한다. 90년대 이후 빈 신년음악회 DVD에 가장 얼굴을 자주 보이는 사람은 리카르도 무티와 주빈 메타이다. 각각 4번씩 초대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이 2번씩 지휘를 했다. 2002년에는 오자와 세이지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지휘를 맡았다. 라데츠키 왈츠에 앞서 빈 필 단원들이 세계 각국의 나랏말로 새해 인사를 하는 작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단순한 인사이긴 하지만 빈-유럽 중심성에 일종의 작은 화두처럼 읽히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출신 조르주 프레스트가 지휘를 맡아 2008년 자신의 기록을 재갱신했다. 지휘계의 황제 카라얀은 1988년 딱 한번 빈 신년음악회를 맡았고 내년인 2012년은 지난 2006년에 지휘를 맡았던 마리아 얀손스에게로 낙점되어 있다.  

 

 

  

 

 

 

 

  

 

빈신년음악회는 음악 자체보다는 일종의 전통이 주는 상징효과가 더 큰 셈이다. 매년 신년 음악회 DVD가 나오지만 따지고 보면 대동소이하며 레퍼토리 역시 그렇다. 오히려 여전히 유럽이, 그리고 여전히 빈이 클래식음악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선언같은 것을 유희적으로 감싸 안은 것이 신년음악회라는 이벤트인셈이다. 빈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의 '빈의 자존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게 좀 지루할 일 중 하나는 오프라인 매장에 갈 경우- 비록 스쳐보긴 하겠지만-한동안 프란츠 뵐저 메스트의 신년음악회 실황만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투브에서 2010년 빈 신년음악회 (지휘:조르주 프레스트)를 가져다 왔다. 사실 이런 앵콜 곡에 지휘자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웃는거지.  

그냥 잘 차려 입고 빈 필의 반주에 맞추어 박수 한 번 치고 싶어하는 늙은 유럽인들에게 팬 서비스 한 번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뿌듯함 한 번 주는 광대 짓. 차라리 노래방에 가서 지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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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히트는 그의 미완의 희곡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부당함을 가르키고 있는 너희들의 손가락은 썩었다." 

'썩은 손가락'에 대한 가장 평이한 해석은 '개인의 도덕적 자질론'으로 돌리는 것이다. 즉 부정의를 행하는 너희들은 더욱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이런 '도덕 자질론'은 여러가지 형태로 변주된다. 쉬운 예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의 설정 방식같은 것으로 말이다. 나는 이 곳에서 매우 투사적인 발언을 하고, 또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토로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 역시 가끔 마음을 풀어놓는 글에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대립의 의제에 자신의 심사를 토로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거의 90% 이상은 전자, 즉 '인간됨'에 무게를 둔다. 이것은 매우 옳은 지적이지만 또한 진보를 매우 오랫동안 괘롭혀왔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보수는 이미 사회적 윤리같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 그들은 자기들이 버린 아들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진보세력을 매우 고까와 한다. 그래서 보수세력들은 그들의 상대를 '진정한 도덕집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의 자격지심을 만회하기 위한 공격의 과녁으로 '도덕'을 이용한다.  

실제로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룹은 도덕이라는 측면을 투쟁의 무기로 사용해왔다. 그래서 '민주화세력=도덕적'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해 기댈 곳이 없던 민주화세력은 옳음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도덕'의 이름으로 확보했다. 87년이 끝나고 자칭 민주화세력들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섰을 때 이제 그 '도덕'은 하나의 덧이 되어 쓰레기만도 못한 수구보수 세력에게 이용당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컹컹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예는 91년 외대 사건이다. 일명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사건이다.  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91년 봄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해 4월 명지대 강경대 학우의 사망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분신정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6월 정원식은 노태우 내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 강의를 하기 위해 외대를 방문한다. 신문,방송 기자들을 대동하고 말이다. 그 때 외대의 운동세력이 군부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정원식 총리 서리에게 계란과 밀가루 투척을 했다. 다음 날 신문 1면은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 쓰고 계란으로 떡칠된 그가 소동을 피해 쫓기듯 길을 뚫는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1991.6.4 <동아일보1면>

  

또하나의 6월 항쟁이라던 91년 봄 투쟁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대학마다 하계방학에 들어가는 시점이고 어떻게 91년의 열기를 이어갈까 고민하는 세력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내 기억에 외대 총학생회는 이 사건으로 운동권 내부에서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6월 말 있었던 내 전공수업의 시험 주제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신문은 '운동권의 비윤리성'을 한목소리로 드높였다. 흔히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사제관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 정원식이 아니라 정치인 정원식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쫓겨가는 방송국ENG 카메라의 영상과 스틸사진의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기획기사와 논설등은 악의적 방식까지 동원해서 운동세력의 윤리성을 깨부수는데 달려들었다. 

그런데 외신보도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들에게는 유교적 의미의 '그림자도 피해가는' 스승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어젠더를 '스승과 제자'로 설정할 수 있는 틀이 없었고 왜 그래야하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학생들의 투쟁 수단 역시 그렇게 과격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에서는 계란투척이나 밀가루 투척은 매우 일반적인 정치항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정치인들이 계란맞고 도망가는 사진은 국제란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다.)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은 대한민국 언론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그 원인과 이유를 말했다. 

   내게 '도덕'과 '정치'라는 매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 건 아마 저 사건일게다. 나는 '도덕정치'의 위험에 대해 경험적으로 알게된셈이다. 그래서 '정치=도덕이다' 라는 식의 논리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매우 위험한, 그리하여 문자 그래도 수용되어서는 곤란한 명제라는 것을 알게된 셈이다.  

학생운동권세력을 포함해서  민주화세력 등에 대한 윤리적 기대가 높았던 국민들은 정치권에 유입되면서 하나 둘 수의를 입는 민주화 세력의 일부 엘리트들을 보면서 결국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진다. 정치=도덕으로 보았기 때문에, 도덕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의 실패가 이어진 자리에는 냉소가 자라난다. "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똑같다."  (노무현 사후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런 도덕의 실패의 역에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의 도덕성은 어느 정치인보다 뛰어났다. 그의 자살은 그런 면에서 도덕성의 표상이다. 그런데 그의 비극적 죽음 이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그의 정치적 실패는 도덕성의 이름으로 가려졌다. 생존에 노무현을 놈현이라고 평가하던 이들이 갑자기 '당신의 뜻을 오해했습니다'라며 사과문을 쓰더니 노무현! 노무현! 이렇게 된다.정치=도덕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 다른 예가 된다.)  

도덕정치의 현실적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제 사회윤리적 차원의 높은 수준을 생각하기 보단-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실제 자본주의적 풍요를 조금 더 누리기 위한 몰역사화된 경제적 동물로 주체화한다. 특히 97년 IMF 라는 초유의 사건은 성장 일변도의 한국경제에 일침을 가하며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노숙자와 도산 사업가의 자살 소식은 정신줄 놓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제 생존을 위한 변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87년 투쟁이 만든 시민들의 연대의식은 이제 쓸쓸한 자화상이 되었고 개인들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재탄생하기 위해 누구보다 착실한 자본주의의 시종이 되었다.  

오로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파괴된 정치와 실용화된 도덕일 뿐이다.정치는 불구가 되었고 도덕은 오욕을 뒤집어 쓸 지언정 어떤 이름으로든 살아남았다.  

엄기호는 그의 책<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언어에서 한쪽에서는 냉소주의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물들의 윤리적 언어로 전화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절대적 가치로 고정해놓고 도덕적으로 사용하다가 정치가 도덕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도덕'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주의자들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이다.' 

 우리사회에 과잉화된 '도덕 담론' 속에서  나는 '정치'와 '도덕'의 화용론적 결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정치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 답은 부정적이다. 근대 정치학에서 마키아벨르의 업적은 그가 '정치'를 '도덕'의 영역과 분리시키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신학정치에서 세속정치로 바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신학정치의 영역과 세속정치의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막연한 본질적 대상으로서의 도덕으로는 포퓰리즘과 그의 짝패(전체주의)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게 도덕적 유토피아는 가능성으로서의 유토피아일 뿐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현대정치철학자들이 가능성이 없어진 시대에 그 '가능성을 창조하기' 찾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 일정 부분 공감도 하지만 말이다.  

밀레니엄의 10분의 1을 달려온 한국 사회. 나는 아직 이 땅에 정치적 역동성이 한 조각쯤은 남아 있다는-있을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이것도 야금야금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5년 또는 10년 사이에 어떤 전환적 출구를 만들고 시스템화하지 못한다면  퇴행적 순응으로 안착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이 말이 민주당식의 대통합론 수준을 의미하진 않는다.그들은 전환적 출구를 만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치사회의 역동성은 제로수준으로 가라앉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는 그런 징후들이 징후의단계를 넘어서 조건들로 자리잡고 있다. 

  97년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철저하게 개인화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태어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 역시 개인적 차원으로만 이해한다. 투표를 한다거나 정책 결정에 대해 툭툭 한번씩 말대꾸하는 정도로 말이다. 정치는 개인과 집단, 또는 집단과 집단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집단의 것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는 그것 자체로서 매우 의미있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정치를 위한 필요조건 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은 본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여기저기 시끄럽게 하는 것은 남보기 우사스럽기 때문에 조용히 나 혼자 하면 된다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개인적 윤리로서는  이것을 꼭 나쁘게 보지만은 않지만 이것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그러면 아마 이런 질문이 있을거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핵심은 거기에있다. '모이게 하는 것'. 혼자 조용히 삼성에 불매하는 것은 아직까진 정치적 행위의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모이게 하는 것' 이라는 참여와 연대의 영역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러한 집단화 과정에 참여하는 실천에 있는 것이다. 물론 너무 낯을 가리고 말도 못하고 쑥스러워서 남들과 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게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여'란 뭔가 껄끄러운 말이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하면 안되냐?' 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럴 때 나름대로의 해법을 '선언'이라는 차원에서 찾는다.  그래서 '조용히... 선언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실천하는 것'  알랭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이'선언'이 '정치'로 가는 첫길이다. 그냥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은 다 말뿐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의 가장 본원적인 짓은 마스터베이션임도 알것이다- '선언'이라는 것은 그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가장 작지만 또 가장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혼자서 조용히 '나는 삼성 안사...그걸 실철할거야' 이런 것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무런 효력도 없는 분출일 뿐이다. '나는 삼성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훨씬 정치적이며 자기 구속력도 강하다. 그리고 항상성의 측면에서도 그 유통기한이 길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시 정치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 복원을 위해서라도 '정치는 모든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듯 하다.  

...부산에도 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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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한 권 보고 싶어졌다. 온힘을 다해 지난 계절의 수분을 빼어내는 겨울나무를 보다가... 언젠가 사두었던 코맥 맥카시의 <피빛 자오선>을 열었다.   

영어로 하면 Blood... Fascinating! 이다. 그러고 보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드>,<피빛 자오선>을 본 셈인데, 그는 아직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 중 으뜸은 <피빛 자오선>이다. 논란이 될 말한 결말 부분 역시 개인적으로는 흡족하다. 

이러다 국경 3부작을 다 따라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이런.... 특정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닌 '전작 읽기'는 내게 스노비즘의 의혹을 들게 한다.)     

초식의 환상으로 폭력의 삶을 건너려는 세계에 죽은 동물의 내장을 통과하고 날아오는 비릿한 모래 바람은 어떤 종류의 난처함을 던져줄까?  

어제 밤 회식에서 돌아온 후 취기에 모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계란을 벽에 던지듯 시집을 던져버렸다. 고깃살에 뚝뚝 떨어지는 지난 생존의 상징이 주는 역겨움이 차라리 낫다. 반백의 시간, 고행의 숨결을 통해 겨우 닿은 곳이 그곳이었다면 말이다.   

  

 

 

 

 

 

 

 

  1.<피빛 자오선>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기에 혹시하고 유투브를 뒤져봤다. 영화 티저가 하나 있는데 실제 영화 홍보물은 아니었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한 대학생이 과제로 만든 작품이다.  

 

 

2.유투브를 뒤지다가 예일대학 공개강의에서 <1945년 이후 미국문학>에서 <Blood meridian>을 다루는 강의를 잠시 들었다. 실존 인물 홀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90분 강연물이어서 살짝 보고 나왔는데 좀 한가해지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3. 홀든 판사가 전쟁에 대해 설하는 장면이 있다. 나름 역사를 가진 흔한 이야기지만 인상적인 장면으로 포함 될 만하다. 홀든식으로 생각하든 홀든에 대결하든 말이다. 지금 이 곳에는 너무 많은 늙은 홀든과 홀든이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살고 있나? 

어쨋거나 어제 그 시집을 던져버린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The good book says that he that lives by the sword shall perish by the sword, said the black.

The judge smiled, his face shining with grease. What right man would have it any other way? he said.

The good book does indeed count war an evil, said Irving. Yet there's many a bloody tale of war inside it.

It makes no difference what men think of war, said the judge. War endures. As well ask men what they think of stone. War was always here. Before man was, war waited for him. The ultimate trade awaiting its ultimate practitioner. That is the way it was and will be. That way and not some other way.

He turned to Brown, from whom he'd heard some whispered slur or demurrer. Ah, Davy, he said. It's your own trade we honor here. Why not rather take a small bow. Let each acknowledge each.

My trade?

Certainly.

What is my trade?

War. War is your trade. Is it not?

And it ain't yours?

Mine too. Very much so.

What about all them notebooks and bones and stuff?

All other trades are contained in that of war.

Is that why war endures?

No. It endures because young men love it and old men love it in them. Those that fought, those that did not.

That's your notion.

The judge smiled. Men are born for games. Nothing else. Every child knows that play is nobler than work. He knows too that the worth or merit of a game is not inherent in the game itself but rather in the value of that which is put at hazard. Games of chance require a wager to have meaning at all. Games of sport involve the skill and strength of the opponents and the humiliation of defeat and the pride of victory are in themselevs sufficient stake because they inhere in the worth of the principals and define them. But trial of chance or trial of worth all games aspire to the condition of war for here that which is wagered swallows up game, player, all.

Suppose two men at cards with nothing to wager save their lives. Who has not heard such a tale? A turn of the card. The whole universe for such a player has labored clanking to this moment which will tell if he is to die at that man's hand or that man at his. What more certain validation of a man's worth could there be? This enhancement of the game to its ultimate state admits no argument concerning the notion of fate. The selection of one man over another is a preference absolute and irrevocable and it is a dull man indeed who could reckon so profound a decision without agency or significance either one. In such games as have for their stake the annihilation of the defeated the decisions are quite clear. This man holdgin this particular arrangement of cards in his hand is thereby removed from existence. This is the nature of war, whose stake is at once the game andthe authority and the justification. Seen so, war is the truest form of divination. It is the testing of one's will and the will of another within that larger will which because it binds them is therefore forced to select. War is the ultimate game because war is at least a forcing of the unity of existence. War is g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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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에서 <더 셀>,<더 폴>을 만든 타셈 싱 감독의 여자주인공들이 순간 스쳐간다. 아니면 이스트반 자보의 <메피스토>라든지... 

 

<블랙스완>은 <더 레슬러>를 만든 대론 아로노프스키의 최신작이다. 나탈리 포트먼과 뱅상카셀이 주연을 맡고 있다. 국내 개봉은 내년 2월정도로 잡혀 있다고 한다. '검은 백조'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악마의 딸 오딜이다. 주인공 왕자가 백조 오데트와의 약속을 깨게 만드는 것이 흑조 오들이다. 즉 팜므 마탈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데트와 오딜은 1인 2역을 맡는다. 영화 예고에서 주인공이 그녀의 라이벌 릴리에 대해 갖는 강박은 흑조의 그런 본능적인 검은 매력이 자신에게 약하다는데서 출발한다. 거기에 완벽을 향한 예술적 강박이 포개진다. 그녀의 강박은 또 다른 자아를 현실 속에 불러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며 언뜻 보이는 또 다른 자아로 추정되는 배우는 위노나 라이더이다. (나탈리 포트먼과 위노나 라이더의 이미지가 매우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다.) 질투와 경쟁,그리고 예술적 강박은 주인공을 실제로 검은백조로 만들어간다. 참고로 감독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영화는 심리스릴러 장르로 알려져있다.

 

여담삼아.. 

차이코프스티의 발레 <백조의 호수>중에서 검은백조 오딜의 유명한 32회전 뿌에테를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질리안 머피의 공연 중에 올려본다. 이런 장면은 권투로 치면 '마지막 한방' 같은 그런 것이다.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마추어 장기자랑에 나오는 성악가 지망생들이 대개 부르는 노래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중에서 '공주는 잠못이루고'이다. 그 마지막의 All'alba vincero! ...  vincero... vincero. (파바로티의 한방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빈체로...빈체로...빈 체에에엥에에에로.... 열정적인 이탈리아 남자 성악가들은 이거 한방으로 먹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거 한방이 없으면 식자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대중적 장악력은 떨어지는 법. <백조의 호수>에서도 마찬가지다. 32번 멋지게 돌아주어야 한다. 쉬크하게 

 

'예술과 삶'이라는 겨울에 어울릴 만한 주제로 내 책상 위에 놓인 영화는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뉴욕>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데-윈터 홀릭? 오로지 눈때문인가? 부산은 '무설'의 도시다- 그렇다고 자잘한 감상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건 정말 딱 밥맛-밥에게 미안하지만- 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겨울은 무뚝뚝한 손님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존중하며, 유약한 남자들처럼 배불뚝이 불의 우상에게 기도 드리는 일 따위는 하지않는다." 

&nbs 

 혹시 예고 중간에 나오는 잔잔한 노래가 귀에 걸리면  좋은 귀를 갖고 있는 거다.  

겨울은 차가운 위로가 필요한 계절이다.

영화 속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Jon Brion 의 Little pers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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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퇴근한다.  

비록 다음 한 주는 또 바쁠 지라도.그건 그 때일이지.  

"아들들아 기다려라. 아빠가 집에 간다.ㅋㅋㅋ ㅋㅋㅋ  마구 마구 어지르고 놀아보자..으하하 

예찬이...그리고 낼은 목욕가자. 크하하하.크하하 " 

옛 시인이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새가 날아가는 걸 보고 이 아니 통쾌한가...라고 노래했다지. 나의 적들아...나는 간다. 모두 다음 주에나 보자. 크하...이 아니 통쾌한가.!! 

중3때 나를 락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ozzy님. 여전히 전 님을 좋아해요.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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