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단어에 집착할때가 있다.예전에는 나의 천재성의 한 단면이 아닌가 걱정한 적도 있었다.또 돌아서면서 나의 황당함에 스스로 '진짜 웃긴넘이네' 라고 조소할때도 있었다.오늘 아침은 일찍 출근을 해야하는 날이다.졸린 눈으로 침대를 벗어나면 일단 소파로 향한다.소파에 누워서 TV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며 잠을 깨려 노력한다.그다음은 화장실.....

화장실에서 칫솔질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옛날에 학교에서 달마다 또는 분기마다 돈백원씩 걷던게 있었는데...그거 뭐라 하더라?"

왜 그 타이밍에 그런 생각이 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나에게 묻지마시길...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한 전동칫솔의 윙윙 소리를 귀로 들으며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계속 더듬었다.

'아....답답...그게 뭐더라....아....씨....진짜....돈 걷었는데....평화의댐 건설한다고 그럴때는 훨씬 많이 걷었구...평소에도 코묻은돈 걷었는데...'

전동칫솔의 오프버튼을 누르면서...그 답이 떠올랐다.

" 방.위.성.금 "  (오-예스)

졸린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와이프에게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말했다.

"자기....방위성금이라고 알아?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지?"

요즘은 방위성금 걷진 않을거다.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거의 매달 한번씩 코묻은 돈을 걷었다.반장이었던 나는 방위성금 징수원이었다.초등학교 저학년때는 100원정도 였던 것같다.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때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백원은 넘었을 거다.방위성금 걷는 요령은 철저히 중앙집중력 권력구조를 빼다 박았다.초등학교의 교실 구석 안에도 군사문화의 위계구조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때문이다.대개 책상 두줄이 한분단이었고 대여섯분단이 한 학급을 구성했던 것 같다.각 분단은 분단장이 있었고 그 아래 줄의 마지막에 앉은 두명의 줄반장이 있었다.방위성금은 대개 뒤에 있는 줄반장이 앞으로 나오면서 걷는다.그리고나서 그 줄이 속한 분단장에게 전달한다.분단장은 자기 분단에 안낸 사람 명단을 적어서 반장인 나에게 주었다.

나는 분단별 집계를 정리하고 안낸 사람 명단을 선생님께 건넨다.선생님은 가끔 조례종례 시간에 우리반 방위성금 모집이  다른 반보다 저조하다고 채근했다.대개 1주일 안에 방위성금모집은 끝났다.하지만 그때까지도 내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대개 좀 집도 어렵고 성적도 떨어지는 친구들이었다.칠판에 그들의 이름을 적는 것은 늘 내몫이었다.   

"방위성금 안낸 사람------김@@ ,박@@,정@@ "

두가지 웃긴 생각이 든다.도대체 코묻은 돈으로 탱크사고 비행기 사려고 했을까? 이미 세금 충분히 내고 잇는 우리부모들에게 아이들을 통해서 준조세를 걷어낸 정권은 참으로 치사하다.하기사 요즘 팬클럽 까지 생기셨다는 전두환 kang-agi는 서울이 물에 잠긴다고 단군이래 최대의 뻥을 쳐서 애들 엉엉울며 돈내게 만들엇다.평화의 댐 건설할때는 방위성금의 단위 규모가 훨씬 커졌다. 직장인들도 월급에서 떼고 방송국마다 성금모금 방송을 하며 애국심 경쟁을 했다.학교에서 내었는데 동네 반상회에서 또 내고...직장에서 냈는데 동창회 모임에서 또 내고...하여간 .... 그래도 서울이 물에 잠기는건 막아야하니까...... 당시에 이를 잘 이용해서 베니스같은 세계적 수상도시로 만들자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나 모르겠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군사문화적 위계질서는 방위성금 모집하듯 아직도 우리사회에 만연하다.그게 효율적 조직상이라고 말하는 조직이론옹호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개방적 조직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전통적 구조는 계단이다.이것은 일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중앙집중형 군사주의적 위계는  우리몸 속에 반도체칩을 하나 꼽아놓았다.삼성이 만드는 세계 일류의 반도체보다 성능이 훨씬 좋다. 나이에 따라 서열화되고 또 직위에 따라 서열화된다.쓰는 용어 자체에서도 권위주의의 속성은 그대로 반영된다.

어떤 사람은 그게 한국 문화라고 한다.그게 싫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나는 한국을 떠나야 하나?  이민가도 먹고 살게 없다.먹고 살려면 손으로 하는 기술을 하나쯤 배워야되는데...그래서 농담삼아 어느 선배에게 "목공 좀 배울까?"  그랬다.그 선배왈 "야....목공배우면 배곪는다.차라리 서예를 배워서 학원을 해라.."  

"...." ..."   음.....혹한다. 그래 서예를 배워가지구 양넘들한테 그럴싸하게 젠이다 뭐다 그러면서 팔아먹을까?

뉴욕가서 서예 학원하면 망할까?  지금도 이미 많을꺼야?.... 아직 한국뜨긴 시기상조다.무기한보류!!

에.....또 ...방위성금이 그냥 뜬금없이 나왔듯 서예학원도 같은 생각이다.두서없어..미안하당.허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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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0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예학원보다는 태권도 도장이 좋지 않을까요?^^
방위성금말고, 국군아저씨들에게도 일년에 두차례씩 무언가를 보냈죠.
근데, 궁금해요. 우리들이 모았던 세수비누, 치약, 칫솔, 타월등이 무사히 가긴 갔을까요?
 

두발 단속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도 많다.하지만 가장 선명한 기억은 중3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전격감행된 전광석화같은 단속이 으뜸이다. 중3때 담임은 진짜 악명 높았던 s선생이었다.1년전, 학년이 바뀌면서 이제 같은반이 된 10반 친구들이 쪼르르 줄 서 있었다.각 반의 담임을 발표하는 중대한 조회였다.s선생이 3학년을 맡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3학년 전체가 다 긴장하고 있었다.그리고 1반부터 한명씩 새로운 담임의 이름이 불리워졌다.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s선생의 이름. 결국 9반까지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3학년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우리 반이 가장 심란했다.결국 10반은 s선생에게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고 반대편에선 환희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렇게 중3이 시작되었다.

내가 학교를 다닌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었다.s는 애들을 거의 잡아가며 공부를 시켰다.요즘이야 일반적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여름방학 자율학습을 우리반만 했다.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방학땐 우리반 밖에 없었다.행여 자율학습에 결석했다하면 다음날 거의 죽음이었다.가중처벌인 셈이다.좀 논다는 녀석 하나는 며칠 결석을 하다가 2학기가 시작되어서도 나오지 못했다.공포가 그의 등교길을 잡아끌었을 터.결국 개학 보름후에 엄마를 대동해서 왔다.s 선생은 엄마앞에서는 네네...해놓고 엄마가 가시자 마자.애를 개패듯 팼다.오죽했으면 애가 맞다가 도망갔을까.도망간 녀석 잡아오란 고함소리에 뒤쫓아간 우리는 그 녀석의 다리통이 피범벅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두발 이야기하다 s선생이야기가 길어졌다.s선생은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고 애들을 풀어주었다.나름대로 무서울때 무섭고 풀어줄때 풀어주는 스타일이었던 셈이다.그래서 우린 다들 머리를 조금씩 기르기 시작했다.시험도 끝나고 학교도 별 할일 없던 시기였다. 어느날 1년 내내 우리반과 라이벌관계를 유지했던 국사선생이 수업에 들어왔다.그러며 하는 말. " 야...너희만은 이제 졸업 얼마 안남았다고 머리 너무긴거 아니야? "....그때 어느 녀석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뭐 담임도 뭐라하지 않는데.....왜..." ...허걱...이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지 당시 아무녀석도 알지 못했다. 그 국사선생은 분기탱천해서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올라갔다.쉬는 시간이 끝나고 담임인s선생이 차가운 얼굴로 들어왔다.그때까진 다 들 뭔일인가 싶었다.

s선생은 말했다."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봐 줬는데..너희들이 담임을 팔아...이 나쁜놈들...반장.가서 내자리에서 바리깡 가져와." ...   "아.....이럴 수가"  원래 좀 얄밉게 말하는 국사선생이 교무실가서 실실 쪼개며 담임을 긁었던 것이다. "10반 애들은 졸업이라고 이제 개판이네.뭐..담임이 다 봐준다니까 나야 할말없지만.그래도 싸가지 없는 놈들.. 왈라왈가......" 

번개 맞듯 시작된 두발단속은 중앙선 넘어 달려오는 자동차같았다. 다들 기준보다 머리가 길었으니 누구하나 그 벼락을 피해갈 수 없었다. s선생은 딱 머리 중앙부 부터 뒷머리끝까지 고속도로를 내었다.보통 10-15센티,좀더 머리가 긴 녀석들은 구렛나루 위쪽까지 농락당했다.어떻게든 조금 깍여 볼려고 머리를 뒤로 빼는 녀석들이 부지기수였다.하지만 그래봐야  머리통 한대 더 맞고 괴씸죄 가중 처벌 5센티 들어갈 뿐이었다.나는 담담해 당했다.

그날 방과후 전부 학교앞 이발소로 달려갔다.우리반 애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이발사 아저씨 왈 "요즘은 이렇게까지 단속하는사람은 없는데...좀 심했네." 그러면서도 갑자기 밀려든 코묻은 돈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바리깡에 밀려본 사람은 안다.바리깡에 맞으면 바리깡에 짤린 머리 높이에 맞추어 다른 머리카락의 높이가 결정된다. 앞머리가 1센티도 안넘을 정도로 머리가 정리되어 버렸다.

영원히 남을 중학교 졸업식 사진,사진 속 우리 10반 아이들은 전부 교도소 동기들 처럼 되어 버렸다.무슨 바보들 마냥 히죽거리고는 있지만 졸업식때도 심란했다.요즘 처럼 모자들을 많이 쓰고 다니지 않아서 전부 밤톨 까놓은 머리를 하고 있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두발자유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일부에서는 학생답게 라는 말을 하며 어느정도 단속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아마 알라딘에도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다. 사실 이 동의에는 논리가 좀 부족하다.그저 아이들이 아이들 답게 라는 것 외에 무슨 논리가 있을까..학생들이 난해하게 하고 다니면 일부 어른들은 불편해 한다.하지만 눈이 그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신체의 자유에 대해 억누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 모르겟다.두발 단속은 진짜 전근대주의적인 일제의 잔재이다.학생들의 개성은 억압하고 오로지 통제에만 목적을 맞춘 발상이다.그럼에도 그게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그것이 학생답게라는 온화한 표현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그리고 나는 그게 옳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두발단속은 당장 중단되어야한다.그럼 학생들 머리는 어떻게 하냐구...  어느 정도 기준을 둬서 하자구.....내 듣기에 다 똥이나 변이나다. 그냥 지들 맘대로 하게 내버려둬라.염색을 하던 지지고 볶던.....    올드보이 선생님들 답답하실 거다.애새끼들 머리가 지맘대로 부루스를 쳐대니 저걸 어떻게 하고 싶어 미치시겠지....하지만 참으시라 충고한다. 그게 역사가 흘러가는 거대한 흐름이다.막힌 것은 뚫리고 끊긴 것은 이어지고 네모난 것은 둥그러지고 멈추어선 것은 움직이는....이 자유의 거대한 흐름을  내 시절엔 하지 않았다고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잠깐은 그럴수 잇을 것이다. 사투리로..우짜둔둥 막아서 지금 두발단속을 옹호하는 현역선생들이 눈에 흙들어가기 전 까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때까지라도 한번 막아보시던지...... 다음날 다 염색에 지랄발광 폭탄머리로 조문갈터이다.

헌법 권리 유린하는 두발 단속 즉각 철폐하라!!  철폐하라!!

## 권리가 유린당해도 묵묵히 당하고 그런지 알고 살았던 선배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학생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귀여운 것들.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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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5-1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입학 당시 귀밑 1센치였습니다.
다행히 2학년 때 완화되어 귀밑3센치.
졸업한 해 더 완화되어 뒷머리가 칼라를 덮지 않으면 된다로 바뀌어 목 긴 애들만 유리해지고.
지금요? 파마나 염색 불가가 유일한 단속기준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부럽던지.

물만두 2005-05-1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때 잘려 봤는데 엄청 기분 나쁘더군요 ㅠ.ㅠ 그거에 비하면...

깍두기 2005-05-1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것들, 투쟁!! 이라고 말씀하시는 드팀전님이 굉장히 귀여워 보입니다.(실례^^)

mannerist 2005-05-1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둥이 범생 중/고딩시절을 스물 넘어서야 후회하기 시작했다죠. 요즘 애들, 너무 귀여워요. 그런 녀석들에게 이십대 초반에 입에 풀칠 좀 하겠다고 못한 짓거리 한 걸 생각하면... 과외 다니면서 거리낌없이 숙제 안해온 애들 때리면서 그랬거든요. "꼬와? 맞았다고 엄마한테 가서 말해! 그딴거 무서우면 과외선생 안해!" 음음... 평생 반성해도 모자랄듯요. 어쨌든 귀여운 것들. 투쟁! 에 한 표입니다.

드팀전 2005-05-14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아침입니다.지금시각 6:11분...이곳은 진주랍니다.출장와서 바로 일하러가야되거든요.요즘은 여관에도 인터넷이 있군요.좋은세상이네...
조선인님>근데 그게 학교마다 좀 다른가봐요.어떤데는 그것보다 더 심하게 단속을 하더라구요.
물만두>전 그담부턴 알아서 기기시작했답니다.고등학교때는 무사했죠.지금 뉴스나오는데 두발단속이 위헌인지 아닌지 국가인권위에서 토론회를 했다는 이야기네요.
깍두기님>ㅆㅆ 실례까지야.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귀연넘들 투쟁이라구...
매너님>요즘 울산생활은 잘되십니까.최근에 님이 좋아하시는 리히터의 바흐영국모음곡 사서 듣고 있습니다.바흐부터 베토벤,쇼팽,프로코피에프까지...요즘은 이런피아니스트 찾기힘든데..대단하죠.
 



영화관에서 보려다 놓쳤다.영화 <여자 정혜>. 며칠전에 퇴근후 집에 들어갔더니 와이프가 빌려놓았다.평일에는 비디오를 잘 보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는 보고 싶었다.

아주 좋은 영화였다.감독이 독립영화출신이어서 그런지 신선함이 있었다.아이러니컬 하게도 영화의 내용은 지루하기 쉬운 일상의 모습이었지만. 영화는 온통 헨드핼드로 들고 찍었다.핸드핼드의 영상의 미덕을 보여준 가장 알려진 영화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상륙작전 씬이다. 역동성과 사실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이 영화<여자 정혜>에서 쓰인 핸드핼드는 역동성하고는 거리가 멀다.영화 자체가 큰 이벤트없이 흘러가고 카메라가 쓸어담고 있는 것 역시 일상의 소소함이다.이 느슨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는데 핸드핼드의 자연스러움이 한 몫을 해낸다. 그리고 정혜를 둘러싸고 있는 근원적 불안과 외로움의 시선을 핸드핼드의 흔들림이 그대로 잡아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컷들은 영화의 중요장면에서 잡은 정혜의 타이트한 얼굴모습이다.기계적이지 않으며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는 카메라는 정혜의 감정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대표적으로 정혜가 고모부와 마주한 자리를 잡은 얼굴 샷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타이트한 얼굴모습을  롱테이크로 잡고 그냥 놔둔다. 화려한 화면의 변화가 없이 또 큰 음향효과 없이 배우의 미세한 심리변화와 롱테이크 하나로 갈등을 최대한 증폭시킨다.

이 영화속 등장인물은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주인공 정혜 역시 그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정혜씨"라고..... 또한번의 타이트한 얼굴 롱테이크가 이어진다.이 장면 역시 아주 맘에 든다.김지수를 약간 우측으로 배치하고 얼굴 전면을 보여준다. 이 샷은 정혜가  어두움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웃는 듯 웃지 않는 배우의 표정이 잘 처리되었다.

정혜가 가진 외로움과 고독은 어린시절의 심리적 외상에 기인한다.그녀의 일상은 일상이 돼 무채색을 띤다.공간과 시간 모두가 아무런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트라우마로 인한 자학도 아니고 그에 대한 반동의 퇴폐적 오버도 아니다.공기가 아무런 빛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물이 아무런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무념한 일상의 삶을 이어간다.물론 그 무념의 뒤안에는 상처로 인한 분노,아픔,고독이 숨어있다. 그녀가 타인 또는 세상과 맺는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그 벽은 결코 과격하지도 슬프지도 뒤숭숭하지도 않다.단지 절대적 단절의 힘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아무도 그녀를 호명하지 않으며 또 그녀 역시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다.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이 관계성의 이름하에서 배경이 될 뿐이다.그녀는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려한다.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러한 관계성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다.고양이는 버려진다.

그녀는 결국 상처와의 대면을 시도한다.여린 여자 정혜의 힘이 처음으로 느껴진다. 분노의 극단적 분출까지도 염두에 둔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그 과정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이 이루어진다.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마치 흑백영화에 어느 한부분만 컬러로 채색되듯 그녀는 외로움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이에게 불려진다.김춘수의 <꽃>이란 시의 '호명행위'가 주는 위대한 의미가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형상화된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한국 영화다.마이너 영화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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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아무도 모른다>를 봤다.지난 토요일이다.영화관에서 직원에게 물었다."이 영화 언제까지하나요?" 뜬금없이 물었던 이유가 있다.그날은 너무 화창했다.날씨가 그렇게 좋은데 컴컴한 영화관에서 보내는 것은 봄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영화를 보느냐 산에 가느냐? 두가지 다 할 경우 아무래도 좀 피곤해질 것 같았다.그래서 영화가 좀 길게 한다면 다음에 보려고 했다. 좀 생뚱맞은 질문에 직원이 대답했다." 금새 끝날 것 같은데요.보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고민중)..."

우선 가까운 산을 찾았다.날씨는 좋았는데 겨우내 빈둥거려서 그랬는지 걷기가 좀 힘들었다.산행이 산책으로 바뀌게 되었다.덕분에 영화관을 갈 여력이 생겼다.

토요일 저녁이었다.영화를 보는 사람이 20명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아무자리에 앉아도 무방....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던 사건.<나시스가모의 버려진 4남매사건>이라고 한다.당시 일본사회가 그 사건으로 한 충격먹었던가 보다. 비정한 모정,무관심한 이웃,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어린남매에 대한 우려와 동정.....  감독은 15년전에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마련했었다고 한다.그렇게 보면 비록 감독의 머릿속이지만 오랜 제작기간을 가진 작품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연배우들의 연기와 무관심한 카메라와 자연광이다. 남자주인공인 키타우라 아유는 이 영화로 칸느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그의 연기를 비롯해서 다른 주인공들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무심함'이다. 어떻게 보면 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전부그냥 무심하게 노는 아이들 같다.과장된 대사도 없고 과장된 몸짓도 없다.조금 복잡한 집안 환경에 어느정도 적응된 아이들이 갖는 어른스러움이 아이들 전부에게 스며들어 있다.각기 다른 캐릭터임에도 한 아이와도 같은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그 조숙함의 정점에 장남인 키타우라 아유가 있다.철없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을 이끄는 형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감독의 캐스팅의 힘이 큰 듯하다.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영화를 찍었고 어린 배우들에게도 다큐 대상을 다루듯 접근 한 듯 하다.조숙하지만 그래도 아이인 자연스러운 연기.차남 시게루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어떻게 보면 아무일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다.시게루는 장난기 어린 아이이다.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일까?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 수 록 시게루가 가진 무심함의 표현력이 인상에 남는다.아무것도 모르지만 또 무언가를 알고 있는 아이의 연기이다.

카메라 역시 관조와 개입을 적당히 섞어쓰고 있다.감독은 첨에는 비개입을 의도했었던 듯 하다.다큐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여서 그랬던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하지만 그런 바람은 곧 무너졌다고 한다.감독 말을 빌자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였다나.어쨋거나 관조적인 느낌을 주는 카메라의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어떠한 상징이나 복선에서 카메라는 적극적으로 피사체에 다가선다.하지만 대개는 느슨하게 구도를 잡는듯 하다. 막내를 묻는 장면에서도 멀리서 롱테이크로 담담하게 담는다.아이를 묻고 돌아오는 지하철.두 아이의 모습 역시 루즈한 샷으로 그냥 바라보고 만다.아이들이 오르내리는 계단 씬은 거의 다 롱샷이다.그렇다고 큰 그림만 가지고 승부하지는 않는다.개입과 관조의 적절한 안배의 묘미가 이 영화에 있다. 조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 자연광을 쓰고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영화의 마지막 장면 슬프며 희망적인 뒤모습에서 화면은 피사체를 제외하곤 거의 날리는 듯 하얗다.자주 등장하는 아파트 씬에서도 빛이 참 자연스럽다.아이들의 연기를 살리는 조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싶다.실제로 촬영할 때는 자연광으로 승부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영화<아무도 모른다>는 영화관 직원 말처럼 곧 상영관에서 내려갈 것 같다.스토리도 알고 보면 그다지 재미있진 않다.그럼에도 괜찮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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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잔혹 반일집회’는 과연 애국인가


단지 반일시위 전국 무술인연합회 회장부인 박모씨가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우익단체들의 일본 역사왜곡 규탄집회에서 일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손가락을 잘라 치켜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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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독도수호전국민연대의 일본 독도.역사 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반일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일장기 불태우는 반일시위대 14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역사왜곡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장기를 불태우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최근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도심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가 일본 상징물을 태우자 취재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15일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반일시위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사진설명]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홍정식 활빈단 대표가 할복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진설명]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HID(북파공작원)단체가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분석] ‘잔혹 반일집회’가 걱정되는 까닭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연일 비장감이 넘친다. 닭의 생모가지를 치고,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미수에 그쳤지만, 배를 긋거나 산 돼지 멱을 따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피의 제전’은 독도 문제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일본은 정말 싫다. 그런데 저 사람들 저러는 것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그들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독도보다 제 손가락을 귀히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나쁜가? 이럴 땐 꼭 피를 봐야 나라사랑이고 민족사랑인가?

    “잘랐으면 됐지 웬 봉합수술?…서민은 몸으로 때워서 민족 지켜야”

    섬뜩한 의식을 마다지 않는 방식으로 ‘애국’을 외치고 실천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감행할까. 의문의 실타래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 무관심하다. 저 놈들이 독도를 가져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일환(69)씨는 지난 14일 부인과 아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지식을 한 뒤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은 채, 국민이 독도 문제에 무관심한 걸 깊이 근심했다.“둘 다 봉합수술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두고 왔다. 잘랐는데 왜 붙이나?”

    손가락을 자른 처자에 대한 그의 담담함은 ’멸사봉공’의 극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조씨 자신이 이미 74년 육영수씨 피살 직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른 바 있다. 그는 “학자들은 글로써 애국하고, 정치인은 정치로써 애국하고, 서민은 몸으로 때워서라도 민족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안병욱 교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

    그러나 그의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진부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국사학과)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북한 문제나 일본 문제를 국내정치에 써먹으려고 이용했던 관제데모의 잘못된 관행이 간접적 영향을 끼친 것 같다. 30여년 궐기대회의 문화가 민주화된 뒤로도 제대로 정리되거나 승화되지 않아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대응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의 지적은 심리학 이론으로도 뒷받침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과)는 “인간은 좌절감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나름대로 학습된 내용에 따라 고정된 행동방식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좌절감을 손가락을 자르거나 화형식을 하는 행위로밖에 표출하지 못 한다”며 “예전 같으면 이런 행동이 지사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생뚱맞다는 반응을 부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제데모의 뿌리깊은 학습효과…그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이들은 이념적 경향에서도 매우 뚜렷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때만 되면 예외없이 극우적 목소리를 내온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독도 문제를 놓고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박정희가 생각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전공)는 “박정희 정권 때도 단지식도 하고 엄청나게 반일 데모도 했었다”며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변신한 뒤 반일감정을 고취했던 박정희의 캐릭터가 극우단체들의 최근 반일 행태를 푸는 열쇠”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캐릭터가 ‘다중인격’적이어서인지, 그를 통해서 극우단체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일제 찬양성 글을 쓴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와 그의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나선 지만원 시스템연구소 소장,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같은 인물들이 지금 일본대사관 앞에서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여주는 인물들과 정치적 사안에서 거의 한목소리를 내온 사실을 떠올리면 머리 속은 한층 복잡하게 꼬인다. 왜 이들은 유일하게 일본 문제 앞에서 분열되는 것일까.

    한홍구 교수는 “한승조 교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일파라고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하면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아우팅당해 본색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며 “한쪽이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하고 있을 뿐 일본에 대한 양쪽의 본색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친미파들이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이용한 것은 우리의 반일감정이 인종주의가 아닌 역사적 피해 경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대중에게 강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극우세력이 국민 호소력을 잃어버린 걸 만회하려고 더욱 극단적인 반일 행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자의 논리’ 숭배 앞에선 ‘친일=반일’ 등식 성립”

    극우세력 사이에 ‘박정희=반공=친미’의 등식은 뚜렷하게 공유되지만 일본에 대한 태도는 갈릴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승조 류의 ‘박정희=친일=반공=친미’의 등식은 부분적이거나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팀장은 “해방 이후 권력투쟁 과정에서는 친일파들이 생존수단으로 미국과 손을 잡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붙들었기 때문에 그런 등식이 성립된다”면서도 “친일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극우세력 안에서도 다수가 된 지금은 문화적으로 그런 등식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젊은 우파들 가운데는 심지어 친미에 대해 헷갈려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태도가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도 이들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같은 목소리로 합창할 수 있는 사정은 무엇일까.

    “소설가 이문열씨는 ‘을사늑약은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독도를 북한에 미사일 기지로 내어주자’는 주장을 하지 않느냐.” 김 팀장은 “양쪽은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를 숭배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힘이 약해서 일본에 먹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자는 태도와 힘의 방식으로 일본을 쳐부수자는 태도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강자의 논리는 미국의 침략전쟁까지 ‘선’으로 여기며, 반일운동을 하면서도 과거사 규명을 ‘좌파의 음모’로 공격하는 태도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을 따라야 하나?

    한국내 극우세력의 극단적인 행동이 독도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탈민족주의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철학부)는 “한국사회가 들끓으면 일본의 극우파들이 양심적 좌파들에게 ‘한국의 민족주의자를 도와준다’는 비난을 퍼붓는다”며 “흥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탈민족주의가 아니더라도, 독도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케시마를 탐내는 방식보다 엽기적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지난 1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극우단체들말고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청년학생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항의 표시는 ‘종이 비행기’를 접어 일본대사관 안으로 날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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