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과 허무에 빠져 분노와 소외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니다. 내게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다는 말 처럼 들린다.  최소한 내 밑둥이 흔들리는 짓은 애시당초 거리를 두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냥 반창고 하나, 머큐롬 한방울이면 나을 정도의 위험만 감수하는 삶.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서적이든, 감정적이든,또는 철학적이든. 그리하여 그들은 늘 강 건너 편으로 공성전과 비방전은 한다. 하지만 기동전과 진지전은 하지 않는다. 이건 비 맞고, 옷 젓고, 기다리고, 지치고, 피 흘리고, 뛰쳐나가고, 때로는 숨어서 머리통을 감싸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후자의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늘 환멸과 허무에 빠진다. 특히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기만적인 일들이다. 아리따운 말로 기만하는 사람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련다. 어제 예를 한가지만 들자. 기권? 중도적인가? 그가 한 일이라고는 정족수를 채워 투표를 성립시켜 준  일이다. 이런게 다 기만인데 그런 기만이야 읽히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 그것보다 더한 것도 기만하는 세상에 뭐 그런 것까지 읽으라고 요구하랴.   

어쨋거나 두더쥐는  땅을 판다. 땅을 파는 게 두더쥐니까.암 그래야지.ㅎㅎ 

기만과 적대하느라, 또는 환멸과 허무가 너무 쌓여서  나를 상하게 할 때 나는 이 시를 찾아 읽는다.  

식사법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껏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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