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
-문인수
대형 콘크리트 수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 겨우 알겠다.
흐린 물 아래 도다리란 놈들 납작납작 붙은 게 아닌가.
큰 짐승의 발자국 같은 것이 무수히
뚜벅뚜벅 찍혔다.
바다의 끊임없는 시퍼런 활동이,
엄청난 수압이 느리게 자꾸 지나갔겠다.
피멍같다. 노숙의 굽은 등
안쪽 상처는, 상처의 눈은 그러니까 지독한 사시 아니겠느냐. 들여다볼수록
침침하다.
내게도 억눌린 데마다 그늘져
망한 활엽처럼 천천히
떨어져 나가는, 젖어가라앉는, 편승하는
저의(低意)가 있다.
당신의 비애라면 그러나
바닥을 치면서 당장, 솟구칠 수 있겠느냐,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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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도다리, 가을 전어' 다. 어제 수족관 바닥에 배를 깔고 있는 도다리를 한참 바라보다 시를 쓰지는 못하고 문인수 시인의 '도다리'를 생각해 냈다.
이 시의 절창은 마지막 연의 반복되는 질문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도다리'인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저의'이기도 하다. 온갖 애상과 자질구레한 과잉화된 자의식을 단칼로 물릴 수 있는...
솟구치지 못하려면
소리없이 비단을 벨 수 있는 파란 칼이라도 하나 숨겨놓은 나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