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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69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평점 :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그렇다.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이다. 아니 술집의 네온 싸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도심에서 별을 볼 수는 없다. 작은 곰을 찾겠다고 옥상 위로 올라가는 소년이 없으니 밤하늘을 쳐다보는 어른은 더더욱 드물 수 밖에.
하지만 소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너무 오랫동안 굳은 상처는 굳은 살이되어서 아프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알라딘 천장에 뜨는 별이 있지 않은가? 또한 매주마다 시대의 교양인을 위한 영화 잡지에도 별이 뜬다. 안도의 한숨을 쉬자....oh! no.no. .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자.
'떠 봤자. 별은 다섯뿐이다.'
청천 하늘엔 잔 별도 많구요.이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이미 간파하셨을 것이다.
"왜 별은 다섯뿐일까?" 가 내 수심의 뿌리이다. '많아봐야 고작...다섯이라니. 이건 부당하다'
나는 고전을 읽을 때 머릿 속에 환청이 들린다. 그 음악은 '감탄'을 도입부에 베이스 라인으로 깔고 간다.'둥 둥 둥둥' . 그리고 이어서 색소폰과 트럼펫같은 생각이 잼을 한다. 하나는 이런 감사의 멜로디를 쫓아간다. '이걸 읽지 않고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랄라라' 그리고 또 다른 멜로디는 탄식의 가사를 쫓는다. '도대체 뭘 하다가 이걸 이제야 본 거야. 띨띨띨..'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한 나의 소견은 다 밝혔다. 할머니 손등같은 인문학의 리뷰를 던지고 쾌청발랄 리뷰를 쓰니 9월 아침처럼 좋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해도..너의 목소리가 들려어어..너의 목소리가 들려어...너의 목소리..너의 목소리이이... . -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
모스크바 거리에 나타난 볼란드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매력적인 -이름이 여럿인 -친구가 전 서리이자 하-노리츠(예수)의 제자라고 자임하는 마태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마치 그림자들을, 그리고 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어.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만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의 선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또 만약 이 지상에서 모든 그림자들이 사라진다면, 그때 지상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림자는 사물과 인간들로부터 만들어지지. 여기 내 검의 그림자처럼.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은 나무와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너는 지구 전체를 벗겨버리며고 하고 있어! 벌거벗은 빛을 즐기려는 너의 환상으로 이 지상의 모든 나무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벗겨내버리고 싶은 건가? 너는 어리석어."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여기다. 나는 물론 메피스토펠레스의 발푸기르스의 밤에도 볼란드의 아파트에서 열린 만월의 무도회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내가 설마 이 부분을 좋아했다고 '선 의지'로 무장한 '계몽주의자'들이 비난한다면 나는 당당히 꼬리를 내릴 터이다. "아니요. 그냥 취소할께요. 선이 반드시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전래동화와 헐리우드 영화가 좋아요." 라고 사상전향을 할 것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볼란드 일당을 따라가다가 이게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검색에는 나와 있지 않다.( TV 드라마 이야기는 나와있다. )볼란드 일당의 행각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감독이 '팀 버튼'이다. 볼란드 일당의 캐릭터는 마치 '팀 버튼 표'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과 거의 흡사하다. 귀여운 그로테스크함도 그렇고, 베헤못과 코르비예프의 장난끼어린 짓도 그렇다. 악마 대장 볼란드와 고양이 베헤못의 체스 두는 장면은 진짜 배를 잡고 넘어지게 만든다.
나는 팀 버튼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분명히 봤을 것이라고 내 맘대로 추측하고 싶다. 아니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내 맘대로 우겨버리고 싶다. 소설이 다루는 주제와 풍자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더라도, 지금 유명한 헐리우드 감독 중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가장 그럴싸 하에 영화로 만들어 줄 사람 하나를 뽑자면 당연히 '팀 버튼' 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약간은 환상적이며서, 만화같은 미장센들도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러므로 국내에 불가코프의 팬들보다 대략 11배쯤 많을 팀 버튼의 팬이라면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고 팀 버튼에게 제작 압력 이메일을 보내자...물론 팀 버튼이 영화를 잘만들어도 결코 불가코프의 소설을 따라잡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영화와 소설을 단순 비교하는 초등학교 방학 숙제형 감상만 피한다면 팀 버튼이 만든 영화도 즐거울 것이다. 원작이 뛰어나니까 말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볼란드와 일당이 도착한 후 나흘 간의 소란과 거장이 쓴 본디오 빌라도의 이야기다. 모스크바와 예루살렘이 시공간을 확확 건너뛰며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역자 해제를 보면 이 시공간은 대칭적으로 배치된 것이다. 뭐 구조를 몰라도 흰 눈이 내릴 것 같은 모스크바 거리와 타는 목마름의 예루살렘을 오고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거기에 2000년 정도이 시간 이동까지 있다. 이런 시간여행을 기획하다니, 미하일 불가코프는 '볼란드'의 일행이 되어버린 '거장'이다.(중의법인거 알지..밑줄 쫘악)
모스크바는 좌충우돌이다. 검은 마술사 볼란드의 등장 이후에 생긴 일이다. 이 일당은 재기발랄,깜찍하다. 특히 인간들이 '서류'에 얽매이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뭐든지 '서류조작'을 통해 인간들을 설득한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일도 '서류' 보여주면 다 통한다. 근대사회에서 '서류'는 어쩌며 '존재'에 선행하는지도 모른다. 즉 '서류'가 있어야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주민등록증' 없으면 '비존재'가 되는거다. TV 다큐멘터리나 진보적 잡지에 실린 '서류' 없는 '호모사케르' 들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하다. 하여간 스탈린의 러시아 역시'서류' 한 방이면 다 된다. 거기에 볼란드 일당은 필요하면 알리바이까지 만들어주는 친절한 악마들이다. 그러니 모스크바가 몇 일 동안 헤괴한 일을 수습정리하게 위해 바둥거린 것은 당연하다.
'빌라도의 이야기는 거장의 소설을 통해, 또 볼란드의 입을 통해 액자소설처럼 구성된다. 페르 라게르비스크가 예수 대신 사면된 바라바를 모티브로 상상력을 펼쳐 <바라바>를 썼다. 이걸로 노벨상도 받았다. 소설 속 거장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림으로 영원히 예수와 함께 이름을 남긴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게 상상력의 면류관을 씌운다.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외아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조기 교육이 중요한게 초등학교 때 외운건데도 아직 기억이난다. 하여간 빌라도, 이렇게 운빨이 없을 수가 있나 싶다. 어쩌다가 저 기도문에까지 이름을 남겨서 만대에 이렇게 오명을 남기는가? 아마도 불가코프 역시 그런 빌라도가 불쌍했고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혹했다 싶었나 보다. 거장을 통해 빌라도의 울먹이는 소리를 대신 들려준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주인공들은 불행한 거장과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이다. "사랑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살인자가 튀어나오 듯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니 주인공은 주인공이다.그런데 도대체 왜 그들이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아야 하는 건가? 나는 볼란드와 그의 일행이 조연상 후보에 올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물론 그들이 아쉬워할 일이야 없겠지만...어쨋든 그들이 수상 무대에 오른다면 분명히 모스크바에서 했던 것 보다 더 깜찍한 흑마술 쇼를 보여줄 텐데 말이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최고의 쇼가 될게 뻔하다.ㅋㅋ
사족))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몇 몇 구절을 썩먹었는데..."진실을 말하는 것은 쉽고 기분 좋은 일이다."같은 것들 말이다. 덧붙이자면 강 건너에서 말이다. '이명박은 쥐다 ' 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쉽고 기분 좋은 일인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안한다. (알겠지만, 사회와 냉전중인 부적응자가 하는 말이니 무시해도 된다.흐흐 )
또 한가지 잠결에 있는 와이프에게 ' 운명을 함께 나누는 이' 라고 불러주었더니 잠결에도 웃으면서 좋단다.ㅋㅋ "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운명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에서 훔쳐왔다. 거 봐라.. 고전 읽으면 다 좋은거라구..연애하려면 고전을 읽으라구, 소년!! 이 책이 고전이냐구? "몰라. 하지만 고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