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막바지라 공짜로 주어지는 느낌의 휴일이었지만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아침 일찍 온가족이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바쁘게 사무실로 향했다. 소중한 주권이니 하는 광고의 말처럼 반드시 투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투표를 거부하거나 기권하는 것도 정치적 의사표현의 한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던진 표가 당락에는 의미가 없더라도 꼭 필요한 이가 있다는 판단에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투표소를 들렀었다.

근래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함이 커서 사무실에서 가까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반고흐전 표를 예매해서 애들엄마와 아이들이 관람을 마치고 퇴근시간 무렵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퇴근하며 잠시 뉴스를 보니 예상대로 당선자가 가려졌다. 여지껏 20년 가까이 대선, 총선, 지자체 투표를 했는데 한번도 내가 투표한 이가 당선된 적이 없는 걸 생각하며 담에는 당선 안 됐으면 하는 이에게 표를 던져볼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했었다.

6시가 넘어 서울미술관 앞에서 가족들과 만나서 아이들이 원하는 광화문 베니건스로 걸어가는데 아뿔사! 시청 앞이며 청계천 주변이 온통 선거 당선자 집단의 뒷풀이로 난리가 났다. 항상 선거때면 대한민국 소수 10%내에 속하는 내 입장에선 불편해서 자리를 옮기고 싶었는데 이런 광경을 처음 구경하는 애들엄마나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꺼리였다.

내주변엔 이번 선거의 당선자에게 투표하겠다는 이가 거의 없었는데 그곳에 자발적으로 몰려들어 깃발과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보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후보의 구호처럼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고 하는데 거짓 진보의, 거짓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도매급으로 진실된 진보세력도 추락을 한건지 이미지로든 실제로든 진정한 비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소수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건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윤리 교과서가 아닌 이상, 요즘 젊은이들처럼 계산이 빠르고 실리를 중시하는 상황에서 공자님 말씀만 되뇌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많은 이들이 이번 결과에 환호도 하고 좌절도 하는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 완전히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난 나름 내 사고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생활에 쫓겨 아무런 일도 못하며 지내는데 내가 보기에 지극히 평범하고 보수적인 환경에 산다고 생각되던 젊은 친구들이 태안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며 땀흘리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행동하며 사느냐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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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2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변에는 지지자가 거의 없는데, 참 어디에 숨어들 있다가 이렇게 꼬박꼬박 투표들은 하시는지. ㅠㅠ

Mephistopheles 2007-12-20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전 10년후에 아버진 그때 누굴 뽑았어요? 라는 아들의 질문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되었습니다.

antitheme 2007-12-2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원래 보수 투표자는 표현을 잘 안한다는군요.
메피님 / 누굴 뽑았냐에는 떳떳할 수 있는데 세상을 위해 뭘 했냐고 묻는다면 떳떳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