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보기 위해 신문을 사본 적이 있는가? 허영만의 만화를 보기 위해 이현세의 남벌을 보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하철역 가판대에서 스포츠 신문을 샀던 일이 있었다. 한겨레의 논조가 조금은 아쉬웠지만 박재동화백의 만평을 보기 위해 열심히 그신문을 봤던 때도 있었다. 친구들 피는 담배 한갑의 가격이 5~6백원 할때 10원 어치의 조선일보 기사가 아니라 10원을 뺀 나머지의 가치를 가진 광수생각을 보느라 팔자에도 없던 조선일보를 사서 뒤적이던 때도 있었다.
한컷 많아서 너댓컷의 만평이 신문이 얘기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주장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마팔다였다. 어린 여자 아이 마팔다의 시선에 비친 부조리하고 모순에 가득찬 세상을 생각하게 해준다. 20여년 전에 우리가 사는 곳과는 지구의 정반대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신문에 실렸던 만평이 지금 내게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시절 그들이 느꼈던 모순과 문제점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질곡 속에 빠뜨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돈만은 사람들은 베개와 이불만 덮고 있어도 신문에 나오는구나"하는 마팔다의 이야기나 축구시합의 불공정한 판정에 화를 내는 아빠에게 "고아로 버려지고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어린이 수가 날로 증가"하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모습을 둘러 말하는데서 사회의 부정과 모순을 입으로 비판만하고 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짧지만 깊은 얘기를 담은 좋은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