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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세계사 ㅣ 히스토리아 문디 4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5년 9월
평점 :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정복하기 전 멕시코 문명권의 인구는 2500만 명에서 3000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아스텍 제국을 정복할 때 코르테스가 거느렸던 군대는 600명 미만이었다. 아스텍 최후의 왕 몬테수마(1480-1520)는 처음에는 스페인 사람들을 신이라고 믿었을지 몰라도, 직접 상대해본 다음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처음 본 말과 화기(火器)는 놀라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겠지만 일단 무력충돌이 시작된 다음에는 스페인군의 군마나 총포의 위력이 대단치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복자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도 마찬가지였다. 먼 바다를 건너 신대륙까지 원정할 수 있었던 스페인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인들은 수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문명이 갖는 각별한 매력이나 스페인이 보유한 기술적 우위만으로 원주민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생활방식이나 신앙을 송두리째 저버리게 한 까닭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멕시코와 페루의 전통적인 종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시카고대학 역사학과의 윌리엄 맥닐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전염병’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코르테스의 승리 비결
스페인 정복 직전 아메리카 원주민의 총인구는 1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렇게 많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코르테스의 정복을 계기로 원주민과 유럽인이 함께 섞여 살기 시작한 지 50년도 되지 않은 1568년에 멕시코 인구는 코르테스가 상륙하던 당시의 10퍼센트에 불과한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감소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그 후 50년 동안에도 인구는 계속 줄어들어 1620년에는 약 160만 명이라는 최저치에 도달했다.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인구는 아주 조금씩 늘어났을 뿐이다.
인구가 이토록 엄청나게 줄어든 원인은 유럽인들이 가져간 병원균에 있었다. 코르테스는 1520년에 아스텍 군대에 쫓겨나 점령지였던 테노치티틀란(오늘날의 멕시코시티)에서 퇴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코르테스가 퇴각한지 넉 달 후 테노치티틀란에 천연두가 발생했다. 코르테스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던 지휘관을 비롯해 수많은 아스텍인들이 죽어갔다. 천연두를 처음 경험한 아스텍인들은 전염병의 공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천연두에 대해 유전적 또는 후천적 면역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질병이 발생한 초기에 인구의 25-30%가 죽어나갔다.
무수히 죽어가던 원주민들의 눈에 기이해 보인 현상이 하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질병이 원주민만 죽이고 스페인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같은 감염증이라도 과거에 그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 집단에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경험한 적이 없는 집단에 침입하면 감염자 상당수의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현상은 엄청난 심리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초자연적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전투를 벌이는 양자 중 어느 쪽이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특히 코르테스가 퇴각한 뒤 발생한 천연두는, 스페인군을 공격했던 자들에 대한 신의 징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결과 아스텍인들 중 일부가 코르테스에게 자진해서 복종하기로 했고, 스페인군은 그들의 도움으로 테노치티틀란을 다시 정복할 수 있었다.
만일 그 때 천연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코르테스 원정군은 승리를 얻기가 더욱 힘겨웠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피사로의 페루 침략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525년경에 잉카제국까지 침범했다. 그 결과는 아스텍에서 일어났던 것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잉카 제국의 왕은 군대를 지휘하던 도중 천연두에 걸려 죽었고, 왕위계승자마저 사망해 적통을 이을 후계자가 없어져버렸다. 결국 내란이 일어나 잉카 제국의 정치구조가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피사로와 그 부하들이 쿠스코에 도착해 잉카의 보물을 약탈해갔다. 그들은 이렇다 할 군사적 저항도 받지 않았다.
침략자를 일방적으로 두둔한 신
스페인인들과 원주민들은 전염병을 신이 내린 무서운 징벌이라고 믿었다. 역병을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하는 것은 <구약성서>와 기독교의 전통이었다. 치명적 전염병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원주민의 종교 역시 신들이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행동으로 나타낸다고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스페인인은 어렸을 때 이미 이 병에 감염된 적이 있어서 실질적인 면역력을 갖고 있었다. 양측이 역병의 원인을 똑같이 종교적으로 해석했다면 신이 일방적으로 침략자들만 두둔하는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기독교도의 신뿐만 아니라 아스텍의 신들마저 백인 침략자의 모든 행위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아연실색한 원주민들로서는 스페인의 우월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수도 적고 행동도 잔인하고 비열했지만, 스페인인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권력구조는 무너졌고,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숭배해온 신들을 버렸다. 스페인인이 숭배하는 신의 우월성이 유감없이 입증된 마당에 전통적인 원주민의 신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종교, 사제단, 생활양식이 존속되기는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는 집단개종으로 이어졌고 선교사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성직자, 총독, 지주, 광산주, 징세인 등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명령하면 원주민은 순순히 복종해야만 했다. 신과 자연의 섭리가 한결같이 원주민의 전통과 신앙을 저버리는 마당에 저항할 무슨 근거가 남아있었겠는가.
물론 전염병만이 원주민 공동체 붕괴의 유일무이한 원인은 아니었다. 침략을 당한 후 원주민들은 절망감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스페인인의 군사행동, 대규모 공사를 위해 강제 징집된 노동력에 대한 스페인인의 학대도 전통적 사회구조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그러나 폭력이나 잔혹행위가 원주민 인구 급감의 ‘주된 요인’은 아니었다. 조세납부자이자 노동력이기도 한 원주민의 인구 감소는 스페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원주민 사회를 파괴시킨 주범은 분명 전염병이었다.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킨 천연두가 창궐한 뒤 1530-1531년에는 멕시코와 페루에 홍역이 번졌다. 15년 후인 1546년에는 발진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발생했다. 1558-1559년에는 인플루엔자가 아메리카대륙을 휩쓸었다. 16세기와 17세기 내내 디프테리아와 유행성이하선염, 그리고 두 가지 치명적 전염병인 천연두와 홍역이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발생했다. 원주민을 보호하려는 스페인 선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인구의 90% 이상이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