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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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의 구호는 “잘 살아보세”였다. 백낙청은 새마을운동의 철학을 ‘걸인의 철학(the philosophy of a beggar)’이라고 비판한다(272쪽). 기본적인 의식주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걸인의 철학에 물든 사람이 거기서 탈피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걸인의 철학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보세”로 진화할 뿐, ‘잘사는 것’의 참뜻에 대한 성찰이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백낙청의 진단은 정확했다. 박정희의 구호 “잘 살아보세”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소득 2만 불 달성”으로 변했다. 2만 불이 달성되면 다음에는 “국민소득 3만 불 달성”이 나올 차례인가. 오로지 ‘잘 먹고 잘 살기’가 이 나라 국민이 추구해야 할 유일무이한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배(腹)가 우리의 신(神)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백낙청이 그리는 한반도식 통일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분단고착론도 흡수통일론도 모두 배격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일류국가 대한민국’ 건설이 아닌 ‘한반도의 일류사회’ 건설이다. 현재의 남과 북 어느 쪽보다 훌륭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개방성과 진취성이 제대로 살아나는 사회이다. 그것은 국가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장으로서의 ‘사회’를 앞세우는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어느 한쪽 절반만 떼어서 일류의 삶,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만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그는 우리 삶의 질적 도약을 담보하는 통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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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또 하나의 세계 - 근사체험을 통해 다시 생각하는 죽음
최준식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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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롱펠로(Longfellow)는 ‘인생 찬가’에서 “삶은 현실이다!”(Life is real!)라고 읊었다. 그러나 죽음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구절을 “죽음은 현실이다!”(Death is real!)라고 바꿔도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린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엄존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이런 태도는 대단히 불합리한 것이다.

 최근 30여 년 동안 서양 학계에서는 죽음학, 특히 죽음 뒤의 세계를 다녀왔다고 알려진 근사체험자들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이 책은 그 동안 축적된 연구 결과를 종합, 정리하고자 한 국내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사체험자들이 체험을 겪고 난 후 ‘사랑’과 ‘배움’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현존하는 위대한 고등종교 창시자들의 가르침을 압축, 요약해주는 말이지만, 정작 우리 주변의 기성 종교들은 교리와 형식주의에 치우쳐 이 본질적 가르침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제도권 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동시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지나치게 현세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 꼭 알아야할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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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5-3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웨이신의 '죽음 그 마지막 성장' 을 연상케 하네요. 사망학 관련 저작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안티고네 2006-05-3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책 방금 보관함에 집어넣었습니다. ^^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 현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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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서양사학자 노명식은 20세기 한국현대사에서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함석헌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함석헌이 평생 ‘선생님’이라고 부른 단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다석 유영모이다. 두 인물 모두 ‘외래의 목소리로 나를 말하지 않고 제소리를 만들어낸 한국 사상가’라는 평을 듣는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러나 함석헌과는 달리 유영모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남긴 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은 1935년에 쓴 글에서 유영모가 고귀한 사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글로써 표현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심한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위대한 사상가이면서도 가슴에 품은 뜻을 글로 써내지 않는 것을 두고 ‘물질적 수전노보다 더 심한 어른’이라고 원망 섞인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김교신에게는 유영모가 ‘정신적 수전노’로 비쳐졌을 법하다. 텍스트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리라.

 그러자 제자들이 묘안을 짜냈다. 1956-7년에 걸쳐 행한 일련의 강연을 속기사를 동원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강연이 행해진지 반세기가 흐른 2006년, 제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속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훌륭하게 정리되었다. 속기사를 동원하기로 한 제자들의 간절한 마음, 무려 반세기를 묵혔다가 이제야 책으로 풀어내기까지 제자들이 겪었을 심려와 노고를 국외자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유영모는 한글을 하나님이 세종대왕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신 계시라고 생각했다. 한글은 진리의 구현이며 한국어는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도구였다. 그는 한국말에는 진리의 빛이 언제나 빛나니 금강석을 다른데서 찾지 말고 우리말에서 찾는 것이 조국사랑이라고도 말했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나, 일찍이 과학성, 합리성을 이유로 한글을 예찬한 사람은 여럿 보았어도, 한글의 위대성을 사상과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찬양한 인물은 유영모 말고는 본적이 없다. 한국말에 대한 지고한 사랑으로 전개된 유영모의 사상은 우리의 정신에 깊숙이 뿌리 내린 진정한 한국 사상이다. 모국어의 보석상자로서 두고두고 후손들의 자랑거리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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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다 - 고요함의 동학 국궁
김형국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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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을 소재로 우리 역사와 문화와 현실을 흥미롭게 짚은 책이다. 태조 이성계의 활솜씨가 뛰어나단 얘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조대왕이 태조를 능가하는 명사수란 대목이 신선하게 와 닿는다. 50대를 쏴서 50대를 다 맞출 수 있는 실력임에도 겸양의 뜻으로 한 대를 일부러 빗나가게 쏘았다니 조선에 저런 왕도 있었던가 싶다.

 인마살상용이 아닌 화살로 효시(嚆矢)가 있었다고 한다. 살촉 대신 청동 또는 뿔로 만든 소리통을 달았는데, 거기 뚫려있는 구멍이 공기의 저항을 받아 소리를 내기 때문에 신호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사냥 또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용도인지라 효시가 ‘시작’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 사(史)는 활쏘기에서 적중수를 헤아리는 사람이었고, 목적(目的)은 과녁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활에서 유래된 한자말은 이외에도 부지기수이다. 유사 이래 활이 얼마나 동아시아인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과녁의 사각형 안에 빨간 원을 그려 넣었는데, 일제가 일장기를 닮았다며 그걸 쏘는 것은 불충이라고 호통을 치자, 붉은 원 바깥에 검은 사각형을 칠해 일제의 질책을 피했고, 이것이 오늘날의 과녁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국궁을 2003년부터 취미로 시작했다는 저자는 대단히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본시 쉬운 글을 어렵게 쓰기는 쉬워도 어려운 글을 쉽게 풀어쓰기는 어려운 법, 저자의 글쓰기 내공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렇게 보통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간결한 글이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지 싶다. 즉 역설적이게도 저자가 활쏘기 초보자이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고수들은 오히려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의 가려운 데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 장을 펴들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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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씨날코 - 1959년 이기붕家의 선물 꾸러미
김진송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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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한 해 동안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기붕 가 출입인 명부를 통해 재구성한 책이다. 4.19혁명으로 끓어올라 폭발되기 직전의 흐물흐물 썩어문드러진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역사상 경천동지의 대파국을 맞이하기 직전의 사회에서 종종 표출되곤 하는 ‘시대의 징조’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자유당 시대를 경험한 기성세대는 씁쓸한 감회와 함께 ‘허허,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낯선 미개 사회를 들여다보는 듯한 생경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후반부에서 일대 ‘반전’을 시도한다. 1959년에 목격했던 추악한 과거의 광경들을 오늘의 현실에서도 아주 실감나고 생생하게 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할 말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의 질기디 질긴 연속성을 확인한 셈이다. 과거를 현재의 타자로 만들고 싶어 했던 저자, 그리고 저자의 시도에 편승하려 했던 독자들의 기대는 좌절로 끝난다.

 과거의 참담함은 현재의 참담함이며, 과거를 향한 분노는 현재를 향한 분노일 수밖에 없다. 과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현실이라면, 그 어떤 경우에도 과거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듯이, 현재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함께 ‘쓴맛’을 보자고 권유하려는 듯하다. 물론 그것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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