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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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택영 후작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인이다. 순종이 즉위하기 전 그는 딸을 세자비로 간택되도록 하기 위해 요즘 화폐단위로 5백억 원(당시 50만 원)에 해당하는 거액을 로비 자금으로 쏟아 부었다. 문제는 그 돈이 모두 빌린 돈이라는 데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빚 때문에 그는 남은 일생 동안 ‘채무왕’ ‘부채왕’ ‘차금대왕’ ‘대채왕(大債王)’ 등의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빚이 원체 많으면 배포도 커지나보다. 채권을 집행하러 온 집달리에게 그는 이렇게 우겼다. “본인 재산은 3천만 원(당시 3백 원)밖에 없어.” 신기한 것은 전 재산이 3천만 원밖에 없다던 윤택영이 그 후로도 하루에 수천만 원씩을 쓰고 다녔다는 것이다. 빚쟁이에게 줄 수 있는 돈은 3천만 원밖에 없었지만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쓸 돈은 마르지 않고 샘솟았던 것이다.

문득 어느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는 뇌물죄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재판에서 29만 1천 원이 든 예금통장을 제출하고 “측근과 자녀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씀씀이가 큰 것으로 소문난 그가 법정에 제출한 재산 내용은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측근을 대동하고 지방 또는 해외여행을 하고 골프장 나들이를 즐겼다. 그래도 3천만 원을 신고한 윤택영 후작이 조금은 더 양심적이었다고나 할까.

전봉관 교수가 『황금광시대』에 이어 또 역작을 출간했다. 전작이 1930년대의 ‘골드러시’를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은 일제 강점기 4건의 살인사건과 6건의 대형 스캔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신문과 잡지에서 보도된 기이한 사건들을 추적하고 있다. 4건의 살인 사건은 조선인이 조선인을 살인한 사건(죽첨정 ‘단두유아’ 사건),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 사건), 일본인이 조선인을 살해한 사건(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 그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살인마교 백백교 사건) 등이다.

사건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역사는 이국(異國)이다. 불과 70년전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낯설고 기이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우리에게 인간성은 불변이라는 교훈을 던져준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돈과 여자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흥미 있는 이야기 하나. 일제 시대에는 간통죄가 부인의 부정(不貞)에만 적용되었다고 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간통죄로 고발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말이다. 남편을 간통죄 처벌대상으로 올리는 문제가 1930년 일본 의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첩을 둔 의원들의 ‘조직적 반발’로 입법화 되지는 않았다. 남편과 부인 모두 간통죄의 처벌대상이 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다. 형법 제정 당시 남편을 처벌 대상으로 추가한 간통죄는 국회의원 재석원수(110명)의 과반수(56표)에서 겨우 한 표가 많은 57표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남자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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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1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닉네임이 바뀐 거 맞죠? ^^

안티고네 2006-08-1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바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