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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 방법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세경멀티뱅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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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연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얻는 지적인 기쁨이 너무나 달콤한 것이어서, 노령(老齡)이 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겁나기는커녕 오히려 정년(停年)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차례로 신간(新刊)을 사들여 아침부터 책을 읽는, 정년 후의 인생이 지금부터 기다려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논어』에 보면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실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경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은 어디에 와 있는가?

저자는 지적 생활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그 때 그 때 자기 돈으로 책을 조금씩 사들여 자기 주위에 책을 쌓아가는 것이 지적 생활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장서’, 곧 ‘도서관’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어느 날 문득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찾던 그 책이 곁에 없어서 읽을 수 없었다면, 그것은 지적 생활에서 치명적인 일이다. 이튿날 또는 다음 기회에 도서관 등에서 빌려 보려 했을 때에는 이미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감흥이 사라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책을 산다든가 하지 않는 사람이 지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적 생활이란 언제나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는 생활을 말한다. 따라서 책을 둘 장소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즉 공간과의 싸움이다. 저자가 아는 한 연구자는 책 때문에 밤에 이부자리를 펴지 못해 책을 깔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잤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과연 이런 사람이 있던가 하고 자문(自問)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적 생활자는 수동적 지적 생활자와 능동적 지적 생활자의 둘로 나뉜다. 수동적 지적 생활이란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 한다. 이 경우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된다. 작은 방에 애독서들이 들어차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능동적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 즉 논문을 쓰거나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권의 책을 쓰려면 50배, 100배의 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집에서 잡지에 기고할 글을 쓰다가 무언가 조사할 일이 생겼을 때 집안에 참고문헌이 없다면 그날 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튿날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경우라면 참고문헌이 없어 집필을 중단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된다.

문득 민족주의자이자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金敎臣)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선생은 절대 책을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서재란 마치 구축함과 같아서, 전시에 어떤 무기를 뽑아 사용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쓸 때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 초심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카드를 만들지 말라고 권한다. 카드 작성은 너무나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독서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결국 카드 쓰기가 귀찮아져서 독서하기가 싫어지고 지적 생활을 위축시키게 된다.

책 한 권을 사서 카드를 작성하면서 읽는 시간에 20권의 책을 읽으면서 중요 대목에 줄을 쳐가며 읽을 수 있으니, 도서관 책을 빌리지 말고 책을 사버리는 것이 결국은 시간 절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산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인생은 짧으니까)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의 경지에 들어간 저자가 부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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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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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에서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에는 '뱅크'라 불리는 얕은 해역이 있다. 이 해역은 북아메리카 대륙붕 끝에 있는 거대한 여울목이다. 이곳에는 상반되는 해류로 인해 뒤섞인 질산염에서 태어난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어치운다. 그리고 이 동물성 플랑크톤을 크릴이라고 하는 마치 새우처럼 생긴 아주 작은 부유 생물들이 잡아먹는다. 청어와 바다 중간층에 사는 다른 물고기들은 수면 가까이 떠올라 크릴을 잡아먹고, 흑고래도 크릴을 먹는다.

뱅크의 이런 풍부한 환경 때문에 이 해역에는 대구가 수백만 마리로 늘어난다. 북해에서도 역시 뱅크에서 대구 어장이 발견되긴 하지만, 멕시코 만류가 북극의 그린란드 해류와 만나는 북아메리카 뱅크에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많은 대구가 서식하고 있다.

바스크(Basque)인은 유럽의 피레네 산맥을 끼고 에스파냐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독특한 언어인 에우스케라어로 문학 활동을 한다. 에우스케라어는 에스토니아어, 핀란드어, 헝가리어와 함께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지 않은 네 개뿐인 유럽어 가운데 하나이다.

바스크인은 오랜 억압과 전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독립을 유지했는데, 그것은 수백년에 걸쳐 그들이 강력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을 기를 뿐 아니라, 해양민족으로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세의 유럽인들이 많은 양의 고래 고기를 먹어치우던 시절, 바스크인은 먼 바다로 나아가 고래를 잡아왔다. 그들이 먼 바다로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대구떼를 발견하고 그것은 잡아 소금에 절여, 오랜 항해에도 상하지 않고 영양분도 풍부한 풍부한 식량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 가공법을 처음 개발한 것은 바스크인이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세기 전에 이미 바이킹족이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캐나다로 항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항로가 대서양산 대구의 서식 해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985년에서 1011년까지 아메리카를 다섯번이나 탐험했다. 그러면 이 장거리 항해 동안 그들은 무엇을 먹었는가?

그들은 대구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멀고 먼 황량한 해안까지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구의 무게를 5분의 1로 줄이고 나무 토막처럼 만들어, 오랫동안 상하지 않도록 얼어붙을 듯한 겨울 공기 속에 매달아 두었다. 그들은 대구를 마치 건빵 먹듯이 찢어서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이미 9세기경에 바이킹족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 대구를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세우고, 남는 물량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었다. 식량의 안정된 공급, 바로 그것이 바이킹족으로 하여금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도록 만든 요인이었던 것이다.

대구라는 생선을 주제로 이렇게 흥미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니 저자의 역량이 정말 놀랍다. 하지만 번역이 별로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다. 역주마저 전혀 없어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독자들을 생각해서 북유럽, 대서양, 북아메리카 등의 지도를 곁들였으면 좋았으련만 쓸만한 지도 한장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 편집자의 무성의가 돋보이는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책도 하나의 작품이라 할 때, 완성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출판 현실에서 다시 번역을 할 수는 없을테니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독자를 너무 무시하는 번역과 편집이라는 느낌에 뒷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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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숲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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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에커만은 젊은 날 괴테의 인격과 사상과 문학을 흠모하여, 자신의 직업을 가질 기회마저 포기하고 젊은 날을 오로지 괴테와의 대화에서 얻는 배움에 희열을 느끼면서 지냈다.

괴테도 위대하지만 에커만의 열정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커만은 "인간이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는 끊임없는 열망에 따라 교양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른바 "밥벌이가 되는 학문"을 외면하고 내면의 음성을 따랐다. "밥벌이가 되는 학문"은 그가 "천성적으로 지향하는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열정을 영어로는 enthusiasm이라고 한다. 르네 듀보는 그 말의 어원(en + theos)을 풀어 "내재(內在)하는 신(a God within)"이라고 설명한다. 내 안에 "신"이 임한 것이 열정이라는 뜻이다. 르네 듀보의 해석대로 한다면 열정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삶이란 이유 모를 열정에 이끌리어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버리는 삶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충만한 삶이 아닐까? 그런 열정 없이 오로지 밥벌이를 기준으로 생애 사업(life work)을 결정짓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이 갑자기 불쌍해지려 한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18세가 아니라는 것이 기쁘네. 내가 18세였을 때는 독일이란 나라도 겨우 18세밖에 안되어서, 아직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지... 나는 이렇게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 시대에 사는 젊은이가 아니어서 행복하네."

요즘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외국으로 이민 가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온통 난리다. 하지만 어디 교육뿐인가?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왜곡된 현대사를 겪으면서 정치, 사회, 경제 등 구석구석이 엉망진창이고, 어떤 면에서는 국가 장래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낄 만큼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괴테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점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방송인 이한우 씨(얼마 전에 보니 이름이 '이참'으로 바뀌었다)가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회자가 "왜 독일을 떠나 한국에 왔느냐"고 묻자, 이참 씨는 "독일은 사회 구조가 이미 확립되어서 한 개인이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한국에서는 해볼 여지가 아주 많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괴테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참 씨에게 독일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 사회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그 정반대 경우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미비한 점이 많을수록 젊은이들에게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이니, 우리는 오히려 행복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어떤 의미에서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한 개인이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극도로 제한되다보니, 그 결과 오로지 먹고 사는 경제 문제에만 매달리는 소시민적 삶을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약, 동성애, 총기난사 등 각양각색의 퇴폐적이고 일탈된 행위에서 돌파구를 구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 삶이란 열매나 결과보다는, 가치와 보람을 향해 목표의식을 갖고 투쟁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래서였을까? 괴테는 "과정"의 중요성에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은 늘 작업을 끝내기만 바라며 작업 자체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는 제작 과정에서 최상의 기쁨을 발견하지... 재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예술 그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그것을 끝내고 얻게 될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법이지. 하지만 그러한 세속적인 목적과 경향만으로는 위대한 것을 결코 이룰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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