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아는 한국사 교수 한분이 들려주신 학창 시절 이야기 한 토막. 1960년대의 일인데, 같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는 친구 한 분이 ‘조선 시대의 축첩 제도’를 가지고 논문을 써보겠다고 지도 교수에게 말씀드렸다가 면전에서 된통 꾸지람을 받고 욕만 잔뜩 얻어먹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한국 사학계 풍토로 보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심각하고 진지한 주제만이 역사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고정 관념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사, 제도사 등의 주요 연구 분야에서 실증적 차원의 연구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양반들 첩질 하던 행태를 연구 주제로 잡겠다고 했으니, 꾸지람하던 교수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부끄럽지만 한국사의 경우 자국사이면서도 1970년대까지도 일본보다도 연구 수준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전반기부터 프랑스 아날 학파에 의해 주도된 신사학 연구 동향에 비춰 보면, 조선 시대의 축첩 제도를 연구하겠다던 그 학생이야말로 실로 혜안을 지닌 선각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역사책들의 제목을 열거해보면 이점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감자 이야기>(지호), <눈물의 역사>(동문선), <죽음의 역사>(동문선), <유방의 역사>(자작나무),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미래M&B), <색채: 그 화려한 역사>(까치), <이브의 역사>(자작), <신들의 열매 초콜릿>(지호), <광기의 역사>(인간사랑), <고통 받는 몸의 역사>(지호), <중세의 쾌락>(이학사), <중세의 밤>(이학사), <죽음의 역사>(동문선) 등등...

모두가 서양 학자들에 의해 저술된 것을 번역한 책들이다. 기존의 통념으로 보아서는 역사책의 제목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들이다. 정치, 경제, 사회제도 등 거창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러나 바로 이런 다양한 소재 발굴을 통해 오늘날 서양 세계에서 역사 지식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날학파에 대한 연구서인 <조각난 역사>(푸른역사)의 저자 프랑수아 도스는 1981년12월에서 1982년 1월까지 15세 이상 프랑스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50.2%가 역사책을 소지하고 있었고, 그들 중 9.6%가 역사책을 독서의 1순위로 손꼽았다고 밝혔다. 프랑스인들이 역사에 얼마나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잘 드러낸 조사이다. 적어도 프랑스에서 ‘역사’는 성공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소개하려는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그와 같은 서양 사회에서의 역사학 대중화 성공 사례를 한국 역사에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풍속 화가로서 단원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통해,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던 조선 시대 선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동시대 최고급 화가가 그린 시각 자료를 곁들여서...

조선 시대 기방 풍속에 대한 설명을 보기로 하자. 색주가의 포주는 대개 포도청 포교의 끄나풀이었으며 이들은 수입 중 일부를 대개 포교에게 상납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경찰에 해당하는 포교들이 유흥가 배후에서 지배권을 휘두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 풍속도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유흥계에서 포교들보다 더 큰 권세를 휘두르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별감, 특히 대전별감(大殿別監)이었다. 별감은 그야말로 조선 후기 유흥계의 주역이었다. 놀고, 먹고, 마시는 데 빠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유흥계가 본래 그렇듯이 이들도 폭력을 휘두르는 습성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록을 보면 이들이 시정 깡패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별감이 벌인 사건들을 보면 대개가 유흥가 패싸움, 난투극이다. 금주령을 어기고(영조 때 금주령이 내려져 술 먹는 것이 법으로 금해져 있었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술을 먹다가 체포되는가 하면, 술주정을 하다가 체포당하자 포교의 집을 찾아가 박살을 냈다. 조선 시대 별감은 포도대장도 겁내지 않을 정도로 끗발이 좋았던 것이다

자 이쯤 되면 별감이 도대체 어떤 집단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별감이란 대전(大殿, 왕의 거처), 왕비전, 세자궁 등 세 곳을 호위하는 무사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경호원 쯤 된다고나 할까? 문득 유신 말기 박정희 대통령 측근에서 온갖 권세를 부리다 10.26 사태로 죽음을 맞이한 차지철 경호실장이 생각난다. (그야말로 대전별감 우두머리 아닌가? 궁정동 주연의 ‘여인들’도 그가 주선하지 않았던가?)

별감들은 지위가 지위니 만큼 의상이 매우 화려했다. 특히 대전별감은 사치스런 복색으로 유명했다. 서울 시내 남자 의복의 패션을 주도한 이들이 대전별감이었다고 하니 알만한 일이다. 책에 소개된 신윤복의 그림에 나오는 별감의 의상을 보면, 겉옷인 붉은색 철릭 안에 푸른색의 화려한 옷자락이 비어져 나온다. 비단으로 만든 호사스럽기 짝이 없는 색깔이다. 굳이 요즘과 비교를 한다면 국군 의장대나 헌병대의 복장(예복)에나 견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조선 시대 양반(문반)은 기방에 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방에 출입을 하면 양반 사회 내부에서 악평이 나기 때문에 출세에 지장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텔레비전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백발성성한 정승, 판서가 기방에서 술을 마시고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현대의 요정이나 룸살롱 같은 것을 조선 시대에 투영하여 만들어낸 조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책은 텔레비전 사극을 비판적 안목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미덕도 갖고 있는 셈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이 다루는 세계는, 혜원이 그린 풍속화의 세계가 그러하듯, 주색잡기(酒色雜技)의 세계이다. 엄숙주의자의 시각에서는 얼굴을 돌리고 싶어 할 장면도 꽤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금이나 그 때나 사람 사는 세상의 실상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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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흥미로운 책이네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안티고네 2006-05-3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당선 축하...감사합니다. ^^ 발간 당시 워낙 화제가 됐던 책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