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는 결과주의적 성향이 있기에 과정이 힘들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는 다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과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동기를내면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출세를 해야 할 문턱에 섰을 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여자는 행복해지기 위해 출세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같은 상황에서 그냥 간다. 목표를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심리가 단순하다고는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라면 얼마든지 복잡하게 머리를 쓸 수 있는 게 또한 남자다.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성공하겠다는 사람과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 중 누가 출세하기 좋을지는 말 하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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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큼 잘못하지 않았다, ‘당신이 과하게 화냈다‘처럼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측정할 수 없는 ‘정도에 관한 내 쪽의 이유들은 그의 뇌에서 여지없이 튕겨져 나왔다.
남자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벽을 느낄 때는 그가 결과적으로 무었을 바라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충족해주면 그제야 남자들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보다 중요한 것들에 눈을 돌린다. 내 남편이 그가 생각하는 좋은 결론이었던 사과를 받고 나서야, 백화점 한복판에서 성마른 투정을 받아주어야 했던 내 기분을 이해하려고 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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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남자들이 행복이라는 말에 가장 근접할 때는 게임이나 취미처럼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무언가에 몰입할 때일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행복을 이해하게 되면 여자들은 한 남자와 오랜 관계를 지속할 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될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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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벽파의 칼끝이 연일 채제공을 겨누자, 그는 도성 밖에 나가 살며 숨을 죽였다. 채제공은 이제 끝났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목숨을 거둬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권력의 속성은 무섭다. 큰 권력이 흔들리면 새 줄서기가 시작된다. 잡고 있는 줄이 썩은 동아줄로 판명난 뒤면 너무 늦다. 문제는 썩은 동아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때 일어난다. 뒷감당을 할 수 없는 데다 배신자 낙인까지 찍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숱한 정객들이 단 한 번 판단의 결과로 아예 사라지거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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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로 다른 꿈이 만나는 꼭짓점에 천주교가 있다. 도는 존재하는가?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희망이 있는가? 주리와 주기로 한 100년쯤 싸우고, 3년 복을 입느냐 1년 복을 입느냐로 몇십년 다투는 사이에 수많은 목숨이 스러지고 정권의 향배가 갈렸다. 그러고 나서는 인성과 물성이 같으냐 다르냐로 또 한 100년을 싸웠다.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와 대명 의리의 유령이 그 배후에 있었다.
그게 그렇듯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가? 그들이 말하는 도와 리는 백성들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실록에는 굶주린 백성이 자식을 바꿔 잡아먹었다는 기사가 실리고 있었다. 가뭄 끝에 홍수 나고, 홍수 뒤에 전염병이 돌았다. 추수할 것도 없는 빈 들판 너머에서 극강의 한파가 몰아닥쳤다. 그 와중에도 위정자들은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의 수탈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백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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