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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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터키가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한 때는. 셀주크 투르크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가 일정한 흥미를 주었지만. 더 눈부신 세계사의 다른 구비가 그리고 질곡과 왜곡의 한국사가 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광풍이 몰아닥쳤다. 나는 코웃음쳤다. 차라리 기본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만다. 완역본이 없어서 축약본을 구입해 읽었다. 나나미의 글만 접한 사람보다는 왠지모를 뿌듯함이 으쓱하게 만들었다.

얼마후 심심풀이로 그의 전쟁 삼부작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주인공은 베네치아(내지 로마문명)라고 누구나 알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삼부작을 통해서 로마 기독교 문명이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필사적이었으며 드디어 무슬림의 의도를 분쇄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오스만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누구인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서 천년을 넘긴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서구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그 자신이 천년 가까이 존속을 유지한 저력을 발휘했던 그들. 하지만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터키가 궁금해졌다. 터카의 어제와 오늘. 때맞추어 여행지로서의 터키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그리고 파묵칼레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걷는다>를 통해 터키를 횡단하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통해 현대 터키를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목마르다. 백문이불여일견, 만고의 진리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터키에 대한 개설서. 월드컵을 계기로 나온 책. 하지만 어떠랴. 무엇이든 계기가 필요한 법.

터키가 자리한 땅의 역사가 무척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서에도 등장하는 그곳.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유적지로부터 트로이의 무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현장이 이 땅이라는 사실도 재발견하였다. 터키의 역사유적은 비잔티움과 오스만의 이스탄불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케말 파샤를 떠올린다. 훗날 아타튀르크로 추앙받는 그는 기력을 쇠한 오스만의 사체를 뜯어먹으려는 열강의 탐욕을 뿌리치고 한줌의 터키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다. 그 덕분에 터키는 중세에서 갑자기 현대국가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변화에 국민도 정치도 군대도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건국자들를 대비시킨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그렇다치고 박정희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아타튀르크가 될 수도 있었다. 조그만 미련을 덜 가졌더라면 비명횡사도 존경도 모두 잃지는 않았을터.

10.26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국민학교 저학년. 방과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죽었다라는 말 외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건의 파장이 우리 역사에 이리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울 줄은 몰랐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진 터키. 한국전쟁 때 터키가 16개 참전국 중의 하나이며 수많은 전사자를 남긴 사실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된다. 참전의 동기야 다 다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피가 우리 산하에 뿌려진 것은 사실이니 그 의의는 폄하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시아의 동쪽 끝, 대한민국과 서쪽 끝, 터키. 재밌는 지정학적 동질성을 지녔다. 먼 역사의 뿌리는 아마도 유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으로 달렸고 그들은 줄곧 서로 전진하였다. 이제 그들과 우리 모두 땅끝에 도달해 있다. 과거의 아픔이 땅끝의 체험이라면 새로운 양국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궁금하다. 그래서 코렐리라면 카르데수나 칸카르데쉬로 여기는 그들과 깊은 인간적 유대를 맺어보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백일몽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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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8.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세계화와 그 불만 - 前세계은행 부총재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비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 세종연구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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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양장본이 이 책에 대한 다중들의 관심을 웅변한다. 그만큼 우리는 세계화의 진지한 담론에 굶주렸던 것이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어느 날 문득 IMF 위기가 쓰나미 같은 기세로 몰려와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화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주역인 국제통화기금(IMF)과 배후의 미국 재무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IMF 관계자라면 이 책에 상당한 치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도 전직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지적이니 말이다.

1990년대 말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은 적정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구제 금융을 신청한 죄인의 입장에서 시혜기관이 던져주는 달러를 받기 위해 입도 뻥끗 못하고 죽은 듯이 복지부동하던 시절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IMF가 수행한 역할이 오히려 위기를 장기화하고 심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금융 긴축으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양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가중되었다고 한다. 차라리 통제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기업 활동이 이어져 나가게 하고 산업 전반이 침체되는 것을 막는 것이 나았다고 한다. 외자는 고금리가 아닌 사회적 안정과 경기 동향을 보고 투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전후로 IMF의 처방은 한결같았다.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는 IMF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직 금융계의 이익에 헌신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데 연유한다. 이 변질은 한두 명의 주도가 아니라 관료들의 출신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비민주성에 기인하여 뿌리박힌 것이다.

무역 자유화와 금융 자유화가 경제 발전에 반드시 기여한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소위 선진국에서도 완전한 자유화를 시행하지 못하는데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구제 금융을 무기로 자유화를 강제하여 경제가 파탄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글리츠는 케인즈주의자다. 이는 그가 개발경제를 전공하고 있음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시장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금융계의 시각에서는 훌륭할지 모르더라도 그 속에 인간이 누락되어 있다. 세계는 수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치가 화폐로 환산되면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게는 미세한 수치가 주는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한동안 음모론(P.22~224)이 횡행하였다. 부상하는 아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서방의 의도된 음모라는 것이다. 사실 IMF 경제위기에서 덕을 본 이는 해당국의 부유층과 채권단(서방은행 등)들 뿐이다. 구제금융은 외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되었다. 외채도 서방 금융계의 것이며, 구제 금융도 결국 서방 금융계에서 나왔으니 꿩 먹고 알 먹고에 폭락한 실물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조치였던 셈이다.

어찌어찌하여 우리나라는 위기의 긴 터널을 벗어났나 싶었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전자 못지않은 강력한 위기에 휘말려 제2의 IMF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이번에는 우리보다는 소위 선진국들의 잘못이 훨씬 커다란데도 거대한 풍랑은 나룻배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시장은 신이 아님에도 많은 금융계 인사들은 이를 신격화한다. 신은 무오류성의 속성을 지닌다. 시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국가와 정부는 필요악이므로 최소한의 역할, 즉 야경국가의 역할만 이행하면 충분하다. 최근 수십 년간 세상을 지배하던 관념이다. 이제 신화는 깨지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움켜쥔 채 하늘로 오는 줄 만 알고 좋아하다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구체적 논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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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1.1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유럽에 빠지는 즐거운 유혹 세트 - 전3권 유럽에 빠지는 즐거운 유혹
베니야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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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이 지은 3부작 중 첫 번째다. 애초부터 시리즈로 기획하였던 같지는 않고 책의 반응이 좋으니 추가로 펴낸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마 1권과 2권은 전체적 분위기와 제재, 스타일에 있어 유사성이 있지만 3권은 동일한 저자인가 할 정도로 완전히 이질적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는 유럽에 빠졌던 발을 확 들어 올려버릴지도 모른다.

확실히 일본사람들은 여행이나 이런 면에서는 우리에 비해 폭이 넓고 깊이도 한층 깊다. 단순한 주마간산식 여행기가 여전히 대세를 이루는 우리에 비해 이들은 한 나라에 한 지역에 푹 빠져서 거의 현지인들처럼 그곳을 사랑한다. 호오에 관계없이 집요함은 인정해야 하리라.

이 책은 여행 가이드북의 상투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가이드북은 대충 알겠지만 지도가 나오고 이어 지역 소개, 관광명소, 교통편 그리고 맛집과 호텔 등으로 이루어지며 극히 사실적인 내용과 지은이의 주관적 감상이 버무려진 구성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체로 흥미롭다. 배낭여행자나 개별여행자에 꼭 필요한 일체의 정보는 다른 곳에서 얻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유럽에 와서 무엇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돌아갈 것인가에 주안점을 둔다. 쇼핑 관광자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제1권 신화와 역사 편은 잡다함이 혼재되어 있다. 1/3은 유럽 신화와 전설, 다음 1/3은 건축 양식에 대해 소개하는데 나머지는 공예와 보석 등을 중심으로 유럽 문화의 배경 지식과 상식을 알려주는 데 치중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한 이라면 부족함을 느끼겠지만 초보자나 회화 예술과 결부지어 새삼 되새기고 싶다면 꽤 그럴듯하다. 군데군데 흥미로운 단편적 지식도 축적할 수 있으니.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유럽 건축사에 대한 전반적 흐름과 주요 특징을 소개하는데 유럽의 웅대한 성당이나 저택 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게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음에 동의한다. 교회와 카테드랄의 차이가 뭔지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이런 정도의 내용은 진지한 서적에서는 취급 안하고 가벼운 책에서도 건드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나 할까. 이 책이 독자에게 뿐만 아니라 여행업계 종사자에게 호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관광객의 편안한 입장과는 달리 인솔자로 때로는 가이드로 손님들에게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이 책이 그 필요에 썩 부합하는 것이다.

약간의 전문성과 많은 대중성의 조화. 뭔가 부정적인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심리적 한계다. 역으로 많은 전문성과 약간의 대중성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다. 진지한 자연과학자도 필요하지만 그 연구성과를 다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내용으로 해설할 수 있는 대중과학자 내지 과학저술가가 크게 요청되고 나름 인정받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그래도 번역에 있어 오타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전적으로 편집부의 잘못인데 어려운 전문용어도 아닌 일상적 어휘에서 그리 많은 오타가 난무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웬만하면 사소한 수준은 넘어가려고 하는 편인데 이것은 정도가 상당하다. 아예 교정을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제2권은 축제와 문화편이다. 절반은 기독교와 축제를 다루며, 나머지는 자연과 음식물 및 이모저모이다. 한마디로 잡학을 습득할 기회라는 의미다.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흐름을 좇아서 간략한 배경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 또는 나름 기독교 지식에 해박한 이라면 별로 대단치 않겠지만 문외한에게는 쓸 만한 내용이다. 특히 '조형미술에 나타난 상징'은 서양 문화권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든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은 성 마가인데, 그래서 상징은 날개달린 사자이고, 대성당 이름이 산 마르코라는 것. 또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등등. 이어지는 각종 종교축일은 더더구나 이방인에게는 낯선 영역인데 나름 잘 정리하여 알려주고 있다. 저작 의도에 어울리게 어디를 펼쳐도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 여기도 여전히 무수한 오타가 난무한다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하기엔 티가 너무 커서 옥의 옥다움을 가리고 있다.

앞서 두 권의 독자라면 제3권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 내지 편향이 생길 것이다. 대충 그럴듯한 내용으로 쉽고 쏙쏙 이해되게. 그런데 저자는 앞서의 성공에 자심을 얻었는지 이번에 내공의 깊이를 뽐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주위에서 너무 가볍다고 쏙닥거린 듯. 제3권 고성과 건축편은 앞서의 기억을 지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그렇지 않으면 어어, 이 사람이 왜 이렇지 하는 끊임없는 의구심으로 쉬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뜩이나 만만한 내용도 아닌데 말이다. 유럽 여행 소개책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멋진 성들이다. 오죽하면 고성 호텔, 고성 탐방 같은 프로그램이 성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서구의 성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저자는 성채와 성관을 구분하는데 사실 그런 구분이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성의 역사, 중세의 성, 남아있는 중세의 성벽도시 방문, 성관과 의고성(노이슈반슈타인 성이 그 예다)의 구성으로 꽤 전문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 흥미 본위의 접근으로는 배겨내지 못할 사람이 많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면 흠, 서양애들도 그럭저럭 쓸 만하군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더욱이 빨리 가서 유럽의 아름답고 웅장한 성을 실제로 밟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게 한다. 한 가지 잊지 말 것.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성(성관이 아닌)은 실제 거주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 아 또하나 이 권은 오타가 상대적으로 거의 없어졌다. 내용의 무게와 오타율의 관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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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1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이솝우화전집 - 새롭게 재해석한
이솝 지음, 송경원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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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필독 도서 목록에 포함되며, 지금도 성인남녀 누구나 한두 가지 이야기는 기억한다. 그만큼 이솝우화는 우리에겐 친숙하다.

하지만 우화와 동화는 틀리다. 동화는 특별히 어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흥미있는 서사다. 우화는 동(식)물을 빗대어 인간세상을 비유하여 깨우침(교훈)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는 전자와는 달리 독자에게 이단계의 사고를 요구한다. 우화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가 먼저이고, 이어서 이것의 인간사회에 대한 변용과 적용이다. 따라서 우화는 속성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솝우화는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대상이다. 누구나 알면서도 기실 아무도 윤색되지 않은 참모습은 알지 못하는. 약 500편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각각의 우화는 매우 짧다. 게다가 건조하다. 여기서는 동화책이나 만화로 윤색된 겉치장이 없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 <채근담>의 글귀처럼  꽃 지고 잎 떨어져 겨울바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앙상한 나무줄기와 가지. 이것이 사물의 근본적 형태이자 본성에 가까움을 상기시킨다.

옛적 추억을 되살리려 이 책을 펼쳐든다면 단언컨대 분명히 실망만 하게 된다. 깡그리 잊어버리고 첫 장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천년도 더 옛날의 이솝이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솝이 간파한 것처럼 민족과 시대를 건너뛰어 내려오는 인간의 속성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이솝우화가 현대에도 재해석되고 고전으로 대우받는 연유다.

인상에 남는 몇 편을 언급하자면 2편 <구두쇠와 금덩이>, 5편 <바닷가의 나그네들>, 13편 <쇠똥구리와 독수리>, 32편 <노인과 당나귀>, 60편 <두 개의 주머니>, 68편 <헤르메스신과 도끼>, 89편 <원숭이와 두 나그네>, 92편 <살인자와 나일강>, 110편 <황소와 수레>, 141편 <어미개와 강아지>, 186편 <말벌과 나비>, 188편 <소크라테스와 친구>, 205편 <기회>, 276편 <벼룩과 낙타>, 281편 <생쥐와 대장장이>, 437편 <프로메테우스와 두 길> 등이 있다.

그런데 129편 <개구리와 해>, 223편 <당나귀와 귀뚜라미>, 287편 <사자와 농부의 딸>, 335편 <뱀과 게>, 415편 <이솝과 도망친 노예> 등은 그 해석이 나와는 사뭇 달라 이채롭다. 129편은 오히려 미리 조심하자는 취지가 아닐지, 223편은 굶어죽은 당나귀는 순수한 예술혼의 구현으로 각광받아야 하지 않을까. 287편은 어떠한가. 농부의 딸을 사모하여 이빨과 발톱마저 빼버린 사자는 완전한 사랑에의 헌신 그 자체가 오히려 배반을 당하였다. 사랑에 지고지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시각에서 사자는 비극의 주인공 감이다. 디즈니의 <야수와 미녀>를 볼지어다. 또 335편은 타고난 본성 상 불가능한데도 불의한 강요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뱀의 슬픈 삶이 안타깝다. 친구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라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를 하는 친구를 만나라가 제격이 아닐는지.

마지막으로 415편을 보자. 얼핏 이솝의 조언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순응하여 언젠가 마음씨 좋은 주인이 자유의 몸으로 놓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의 잔재다. 만약 주인이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노예로 죽어야 하는가. 독재국가에서 독재자가 언젠가는 개심하겠거니 압제에 순응해야 하는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삼척동자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이것이 우화는 나날이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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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조선시대 동성혼 이야기 - 방한림전 즐거운 지식 81
장시광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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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에서부터 확 눈이 끌린다. 언뜻 과도한 상업주의 의도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완독 후에는 이렇게 해서라도 눈길을 끌어보려는 안쓰러운 시도가 오히려 눈물겹다. 결코 대중 영합적인 유형의 서적은 아닌 게 270면에 가까운 분량 중 번역문은 80면 정도, 원문이 150면, 그리고 나머지가 작품해설이다.

먼저 분명히 하자. 일단 동성혼이다. 결코 동성애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이 부득이하여 그렇게 되었음을 초반부에 구구절절이 기술하고 있다. 또 말미에는 이 모든 게 하늘의 장난이었음을 밝혀 혹시 모를 보수파의 반격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정해 두었다.

작품 제목은 방한림전으로 남장 여자인 방관주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져 있고 그의 출생부터 혼인, 벼슬살이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속사포처럼 전개된다. 워낙 분량이 적다 보니 구체적 배경이나 사건 묘사보다는 서사의 전개에 치중하고 있다. 솔직히 작품성으로는 그렇게 두드러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제재의 의외성이 흥미를 유발하는 점을 제외하고.

방관주의 남장은 여성해방이나 다른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동성애 관계에서 남자 역할을 하는 여성처럼 방관주도 외양은 여성이지만 사고와 의식 구조는 남성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지배계급인 남성처럼 동지이자 아내인 영혜빙을 강압하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 보인다. "남자에 대한 콤플렉스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P.254)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역자의 주장대로 오히려 영혜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관주가 여성임을 알면서도 남성에게 억압받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주체적 판단으로 결혼을 하는 선택을 한다. 여차하면 독신도 각오하고 있는 영혜빙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그리고 부부 관계에서 대등한 동지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애쓴다.

소년 출세, 문무 달통, 자손 번창은 전형적인 고전소설의 특성이다. 방한림전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다. 다만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다. 속박당하는 여성의 실현하지 못하는 기상과 소망을 소설로나마 성취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보다 통속성을 추구하는 의도일 뿐 특정한 의식적 표출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방한림의 행동과 발언은 후자에 가깝게 이해된다.

호기심으로 일독할 정도는 되지만, 추천할 정도는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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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