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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어지간한 우리나라 사람치고 단원 김홍도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설사 이름은 헷갈리더라도 그의 풍속화 몇 점을 보여주면 대번에 어디선가 봤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유명한 조선 후기의 화가이지만 정작 그의 삶과 그림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이 책은 전문 전기 작가에 의한 본격적인 김홍도 전기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도에 출간되었는데, 이 점은 꽤 중요하다. 김홍도는 당대 최고의 화가임에도 중인 신분이기에 그의 삶의 전모는 역사 속에 숨어 있다. 도화서 화원이기에 공적인 활동 내용, 어진화사로 제수받은 몇 가지 벼슬을 통해 그의 생을 단편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계속적 연구와 발굴을 통해 김홍도에 관한 정보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무엇보다 김홍도의 고향에 대해서 기존 자료에서는 서울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안산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근거도 명확하다. 안산시에 단원구와 단원 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전혀 터무니없지 않다. 김홍도의 대표적 호인 단원에 대해서도 기존의 중국 화가 모방설과 달리 저자는 고향 뒷산의 박달나무 정원에서 가져왔다고 하여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데 훨씬 설득력 있다.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로 선배 화가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과 강원도 지역 봉명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일본으로 2차 봉명사행을 출발했다가 영남에서 김응환의 사망으로 중단되고 만다. 기존에는 김홍도 혼자 일본 대마도에 다녀왔다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이 책은 이처럼 최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김홍도의 삶을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매끄럽게 훑고 있다.
김홍도는 천부적 재능과 더불어 훌륭한 스승을 만난 행운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안산 시골에서 제아무리 뛰어나봤자 아무 쓸데 없는 재주에 불과했을 그의 솜씨가 표암 강세황과 현재 심사정을 통해 갈고 닦여 일세를 이루게끔 되었음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그것은 중인과 양반이라는 신분 차이를 넘어 진정한 예인 간의 교류이다.
우리는 대개 김홍도를 풍속 화가로 알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김홍도의 작품세계가 실로 방대함을 알 수 있었다. 영조와 정조의 초상화를 그린다든가, 신선도, 산수화, 풍속화, 인물화, 왕실의궤 등 회화의 전 영역에서 그는 최고 수준을 성취해 냈다. 그것은 어느 화가도 이루어내지 못한 위업이다. 그뿐 아니라 글씨와 시에도 능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대표작과 탄생 배경, 그 예술적 특징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적절한 수준에서 잘 나타낸다.
그러나 도설을 완성하고도 도화서로 돌아가라는 명은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김홍도는 자신이 오래전 강세황과 심사정이 예견하듯 이야기했던 방외화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진을 세 번이나 그리고 몇 차례 봉명사행을 다녀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 부질없게 여겨졌다. (P.388)
이즈음에서 김홍도에게 안타까운 점은 그의 개인사다. 중인 신분이라는 타고난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어진화사로서 최대 연풍 현감이라는 벼슬까지 올랐지만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명성이 자자한 화가로서 무난하게 관리만 이루어졌더라도 그의 노년은 그리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 곳 없어 방황하고, 자식의 학비를 낼 돈이 없다고 탄식하는 단원을 보면 도화서를 향한 미련의 끈을 기약 없이 부여잡고 있는 연약한 인간적 면모가 중첩된다. 차라리 방외화사로서 양반과 부유한 중인들의 주문에 응하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에만 몰두하였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동안 중시되었던 정조와 김홍도의 인연 강조에 비판적이다. 김홍도에 대한 정조의 배려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조는 소위 병 주고 약 주고 한 셈이다. 단원에게 찰방직과 현감직을 제수하는 한편, 일방의 제보만으로 그를 파직시키고 도화서에 돌아오게 해주지도 않았다. 관점에 따라서 그에게 공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도화서 화원과 그렇지 않음은 천지 차이다.
그동안 많은 미술사가는 김홍도의 성취를 ‘정조의 총애’와 연결했다. 임금의 후원으로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 그러나 김홍도에 대한 기록을 살필수록 우리가 그의 삶에 정조의 그늘을 과도하게 드리웠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P.21, 서문)
이 책은 김홍도를 중심으로 다루지만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 특히 조선 후기 미술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스승인 강세황과 심사정은 물론 선배 김응환, 신한평과 동문 이인문의 우정까지. 또 다른 유명 풍속 화가인 김득신과 김홍도가 생면부지가 아니며, 신한평의 아들이 혜원 신윤복이라는 점에서 날실과 씨실처럼 당대 회화사의 숨은 면모를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 단원 이후 화가의 최대 과제는 단원 넘어서기가 아니었을까.
김홍도는 그림에다 자신의 자나 호를 적었는데, 자는 사능이고, 호는 단원, 서호 등 여러 개를 사용하였다. 이 중에서 취화사와 첩취옹이 눈에 띤다. 모두 술에 취한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인생의 말년에 그는 아픔과 괴로움과 불행을 잊기 위해 매일 술에 취해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실의 후 다른 집에 얹혀살다가 제자를 만나러 전주에 가서 끝내 숨을 거둔다. 위대한 예술가의 삶은 대개 비극으로 마치는 것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다.
김홍도는 이렇듯 쓸쓸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오죽하면 당대의 문신이던 심상규가 “우리나라는 인재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한탄했겠는가. (P.20, 서문)
저자는 대중성과 전문성의 경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여기서 자칫 삐끗하면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할 테니. 제아무리 글솜씨가 뛰어나더라도 저자가 김홍도의 예술세계에 문외한이거나 조선 후기 시대상을 해독하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했으리라. 반신반의하며 집어 든 책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울러 이인문과 신윤복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고, 강세황과 심사정의 예술은 어떠할지 궁금증도 생겼다. 그런 면에서 좋은 책이자 잘 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