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그 불만 - 前세계은행 부총재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비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 세종연구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덜너덜해진 양장본이 이 책에 대한 다중들의 관심을 웅변한다. 그만큼 우리는 세계화의 진지한 담론에 굶주렸던 것이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어느 날 문득 IMF 위기가 쓰나미 같은 기세로 몰려와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화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주역인 국제통화기금(IMF)과 배후의 미국 재무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IMF 관계자라면 이 책에 상당한 치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도 전직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지적이니 말이다.

1990년대 말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은 적정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구제 금융을 신청한 죄인의 입장에서 시혜기관이 던져주는 달러를 받기 위해 입도 뻥끗 못하고 죽은 듯이 복지부동하던 시절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IMF가 수행한 역할이 오히려 위기를 장기화하고 심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금융 긴축으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양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가중되었다고 한다. 차라리 통제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기업 활동이 이어져 나가게 하고 산업 전반이 침체되는 것을 막는 것이 나았다고 한다. 외자는 고금리가 아닌 사회적 안정과 경기 동향을 보고 투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전후로 IMF의 처방은 한결같았다.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는 IMF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직 금융계의 이익에 헌신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데 연유한다. 이 변질은 한두 명의 주도가 아니라 관료들의 출신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비민주성에 기인하여 뿌리박힌 것이다.

무역 자유화와 금융 자유화가 경제 발전에 반드시 기여한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소위 선진국에서도 완전한 자유화를 시행하지 못하는데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구제 금융을 무기로 자유화를 강제하여 경제가 파탄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글리츠는 케인즈주의자다. 이는 그가 개발경제를 전공하고 있음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시장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금융계의 시각에서는 훌륭할지 모르더라도 그 속에 인간이 누락되어 있다. 세계는 수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치가 화폐로 환산되면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게는 미세한 수치가 주는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한동안 음모론(P.22~224)이 횡행하였다. 부상하는 아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서방의 의도된 음모라는 것이다. 사실 IMF 경제위기에서 덕을 본 이는 해당국의 부유층과 채권단(서방은행 등)들 뿐이다. 구제금융은 외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되었다. 외채도 서방 금융계의 것이며, 구제 금융도 결국 서방 금융계에서 나왔으니 꿩 먹고 알 먹고에 폭락한 실물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조치였던 셈이다.

어찌어찌하여 우리나라는 위기의 긴 터널을 벗어났나 싶었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전자 못지않은 강력한 위기에 휘말려 제2의 IMF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이번에는 우리보다는 소위 선진국들의 잘못이 훨씬 커다란데도 거대한 풍랑은 나룻배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시장은 신이 아님에도 많은 금융계 인사들은 이를 신격화한다. 신은 무오류성의 속성을 지닌다. 시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국가와 정부는 필요악이므로 최소한의 역할, 즉 야경국가의 역할만 이행하면 충분하다. 최근 수십 년간 세상을 지배하던 관념이다. 이제 신화는 깨지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움켜쥔 채 하늘로 오는 줄 만 알고 좋아하다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구체적 논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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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1.1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