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지은 어머니 - 피가로 3부작
보마르셰 지음, 이경의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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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르셰의 소위 피가로 3부작을 한 권에 모두 수록하였다. 원작보다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작가와 작품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된 이가 더욱 많은 현실이다. 오페라에 가려진 보마르셰의 희곡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좋은 기회다. 작가는 앞의 두 편을 희극으로, <죄지은 어머니>는 드라마로 분류하였는데 해학과 풍자보다는 진지한 사건 전개에 초점을 맞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3부작을 개별 작품으로 접근할지 아니면 전체적 맥락에서 조감할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이다. 다만 작품마다 독자적 특징과 미감이 있음은 명확하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후견인의 지위로 무리한 결혼을 획책하는 늙은 바르톨로를 응징하고 청춘 남녀의 자연스러운 맺어짐을 찬양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가 각각 다른 이성에 눈을 돌리는 현상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나타난다. 백작은 초야권을 빌미로 쉬잔을 취하려 하지만, 피가로와 쉬잔, 백작 부인의 노력으로 부부는 다시 사랑을 회복한다. 부제 그대로 광란의 하루라고 하겠다. <죄지은 어머니>는 백작 부인의 실수가 빚어낸 비극적 가정사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또 다른 타르튀프베가르스와 피가로의 치열한 대결이다. 백작의 고뇌와 분노, 백작 부인의 후회와 죄책감과 함께 이 작품의 추진 동력이다.

 

3부작의 핵심 인물은 단연 피가로와 백작 부부이다. 백작은 자신의 지위가 갖는 권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바람둥이형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행위는 관대하면서 백작 부인의 실수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이중적 가치판단을 보여준다. 다만 그는 백작 부인의 부재 가능성의 현실에 임하자 자신의 연약한 또는 순진한 면모를 드러낸다. 백작 부인은 처녀 시절부터 순진하고 호락호락한 타입은 아니었음을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바르톨로와 갈등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식어버린 남편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존경할 만한 자태의 그녀가 돌연 실수를 저질러 그 죄책감에 자책하며 갈팡질팡하는 대목은 취약한 인간 본성 그 자체다.

 

피가로는 카멜레온처럼 변화한다. 1부에서 백작을 도와 백작과 로진이 결합할 수 있도록 애쓰는 꾀돌이형이라면, 2부에서 자신의 약혼녀 쉬잔을 지키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신분 불평등에 노골적 불만을 토로하는 숨겨진 과거를 지닌 반항아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의 발언이 지나치게 강성인 탓에 무대 공연이 순탄하지 못했다는 사연과 프랑스 대혁명과의 동시대성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반면 3부의 피가로와 쉬잔 부부는 백작 일가를 지켜내는 충직한 하인의 전형이다. 베가르스의 백작의 음모를 저지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가로 또한 이미 중년에 이르렀으니 자신이 몸담은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악인이 승리를 쟁취하는 걸 용납할 수 없으리라.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바지 역할의 케루비노에 해당하는 원작의 셰뤼뱅이 작중에서 의외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음에 인상적이다. 백작 부인에 대한 그의 연모는 거짓 없는 진정이었으며, 자신의 열정에 대한 책임을 그는 죽음으로 이행한다. 어쨌든 그와 백작 부인의 한순간의 격렬한 사랑의 대가는 당사자의 죽음과 끝없는 눈물을 유발하였고, 육신의 열매를 낳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만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죄지은 어머니>의 전개는 충격적일 것이다. 희극적 재미로서는 2부가 으뜸이지만, 극적 전개와 몰입도 측면에서는 단연 3부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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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1-06-1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별 작품으로 접할지 이 책을 살지 고민인데. 번역은 괜찮은가요??

성근대나무 2021-06-1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자체는 괜찮다고 봅니다. 다만 편집이 좀 빽빽해서 대학교재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어 호오가 갈릴듯 합니다.